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후 설양이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효성진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뭐, 대충 짐작은 갔다. 속이 뒤틀린 놈은 고매한 분위기의 효성진이 아니꼬웠을 테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을 잔뜩 늘어놓았을 거다. 삐---에 삐---를 해서, 삐---를 한 다음, 삐---를 보여주마, 대략 그런 내용으로 떠들면서 손을 가랑이에 대고 자위하는 시늉을 했겠지. 마무리로는 ‘어차피 너나 나나 엄마가 음탕한 그 짓을 해서 태어난 거잖아. 다 똑같다고. 뭘 아닌 척하고 그래!’ 신나게 조롱했을 거다.
그 정신 나간 짓거리에 한 번 휘말리면 귀가 벌개 지고, 심장이 뛰고, 주먹질이 고파진다.
원효대사도 꼭지가 돌 거다. 설양은 사람 미치게 만드는데 도가 튼 녀석이었다.
“도장님도 대단하네요. 때리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았어요?”
내 질문에 효성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꼬리를 돌렸다.
“송자침이 나서 모든 걸 4대 현문 종주들 앞에서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해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더구나. 음호부로 흉시를 만들어 상씨 세가를 공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보기 전까지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설양이 소산 지역에 소음기를 설치한 일이나, 고소 남씨의 문하생을 살해한 뒤 시변하게 만들어 약양 상씨가 야렵에 나서게 유인했다는 것도 일방적인 주장 아니냐고...”
문하생을 잃은 고소 남씨는 어떤 사건에든 매번 신중한 입장을 취한 탓에 이번에도 한 발 물러섰다고 했다.
시변한 시신은 이미 수습에 들어갔고, 자체적으로 조사에 들어갔으니 그동안 말을 삼가겠다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렇게 일정 선을 긋더니 고아하게 고소로 돌아가 버렸다.
운몽 강씨 종주는 설양이 이릉노조가 탈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송자침의 주장에 밥 먹다 젓가락을 쥔 채로 어검하여 날아왔다고 한다. 젊고, 성격 급하고, 입이 험한 강씨 종주는 이릉노조에게 원한이 매우 깊었는지 말 그대로 앞뒤 가리지 않은 채 설양이 갇힌 감옥으로 곧장 쳐들어갔다.
순서를 밟아 감옥 문을 열어야 한다며 말리는 수사를 채찍으로 갈기고 기어코 설양을 꺼냈다.
‘염병할. 뭐야 이 쓰레기는.’
소동 끝에 자리로 돌아온 강 종주는 송자침과 효성진 두 사람을 향해 ‘댁들 눈깔은 옹이구멍이오?’ 쏘아붙였다.
송자침은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는데 그게 강씨 종주의 심기를 더 긁었던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노안이 왔다니, 안타깝구려. 앞으로 눈에 좋은 견과류를 많이 까 잡수시게들.’ 조롱까지 하더니 흥, 콧소리를 내고 옷자락을 털었다. 재수 옴 붙은 걸 털어낸다는 뜻이었다.
금릉 난씨의 종주는 가문의 객원이 술을 먹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추태를 부렸으니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며 모두에게 사과했다. 피해보상도 약속하며 앞으로 난릉 금씨의 이름을 팔아 폭력을 휘두르는 수행자를 단속하겠노라 했다. 이미 아들 광요에게 지시했으니 곧 일이 바로잡힐 거라 하였다.
사실상 상씨 세가의 참변에 설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넌지시 돌려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음호부는 세상에 없소이다. 이릉노조가 죽기 전 자신이 만든 음호부를 파괴하였지요. 그것이 그 배덕자가 행한 유일한 덕행이었소. 망가진 조각을 전부 모아도 이릉노조의 술법 없이는 복구가 되지 않소. 그리고 젊은 강 종주께서 친히 설양은 이릉노조 위무선이 아니라고 확인을 해주셨지요.
명월청풍 효성진 도장은 포산산인의 제자로서 창생을 위해 하산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이릉노조의 술법을 얘기로만 접했지 직접 본 것은 아니오. 그러니 이쯤 합시다.’
유일하게 효성진과 송자침 주장에 손을 들어준 청하 섭씨는 ‘죽여라! 사악한 것들을 모두 죽여라! 목숨으로 대가를 치루게 하라!’ 이러고 기운을 폭발시켰다.
음호부와 음호부로 만들었다는 흉시를 굳이 눈으로 볼 필요도 없다며 죽여라 일갈했다.
앞뒤 맥락도 없이 무조건 죽이자고 덤비니 반대로 효성진이 나서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효성진! 그대의 주장은 무엇이오!’
‘정의 실현입니다.’
‘그렇담 사법을 쓴 범인을 찢어 죽여야지! 뭣들 하는 거냐. 나를 감옥으로 안내하라. 내가 직접 처단하겠다!’
‘지나치게 흥분하셨습니다. 진정하십시오, 섭 종주.’
‘왜 그러오, 효성진. 왜 나를 말리는 거요. 설마, 거짓이오?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거짓이란 말이오? 그게 아니라면 썩 비키시오!’
살기가 지나쳐 탁자가 둘로 쪼개졌다.
이러한 섭 종주의 성마르고 과격한 태도는 일 처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설양은 난릉 금씨의 이름을 팔아 술 먹고 행패를 부린 협잡꾼이 되어 있었고, 음호부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송자침은 성급하여 엉뚱한 사람을 잘못 고발한 수행자가, 효성진은 능력은 좋으나 경험이 부족한 탓에 일을 그르친 자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설양은 무전취식으로 감옥에 갇힌 거예요? 와아, 망한 거네요.”
나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애초에 송자침과 효성진이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인 날 이곳에 떼어두고 간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동시에 나쁘지 않은 결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설급 범죄자 알 카포네도 300명 이상을 살해한 죄로 체포당한 게 아니었다. 그의 죄명은 탈세였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죠. 죄명이야 어쨌든 감옥에 갇혔으니 그것으로 충분...”
“난릉 금씨가 음식 값과 망가진 집기 값을 모두 보상하면 설양은 곧 풀려날 거다.”
“와아, 진짜... 이건 정말.”
이래서야 젊은 혈기에 대기업 비리를 고발하려다 물 먹고 지방 좌천한 신임 검사 꼬라지잖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혹독히 배웠구먼. 정의를 외쳐봤자 옳고 그름으로 딱 떨어지지 않지.
턱을 괸 자세로 질문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데요.”
“설득해야지.”
이 양반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효성진을 쳐다봤다.
“그러지 말고 날 데려가 세워요. 그럼 설양도 자신의 행위를 인정할 거고, 깔끔하게 잘 해결될 거예요.”
“네 말대로 하는 건 그건 그리 좋은 수가 아닐 거다.”
“왜요?”
“설양이 계속 모르는 척하고, 금씨 종주가 널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깊은 곳에 감춰버리면 그만이야.”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대안이 없잖아요. 뭘로 사람들을 설득할 건데요.”
“설양이 썼다는 음호부를 찾으면 된다.”
옳거니. 물증 부족이니 살인도구를 찾자는 거군. 나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감옥에 갇혔을 적에 이미 소지품을 검사했을 거고, 물건이 여태 발견되지 않았다면 설양이 근거지 어딘가에 숨겨뒀을 거라는 얘기군요.”
“네가 설명한 버려진 도둑산채 같은 장소에 대한 지식이 그래서 필요하다.”
“아... 제가 죽었다 깨어난 장소 말씀이군요. 그런데 음호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세요? 저도 그게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는데요.”
“나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확실하게는 모른다. 허나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영 못 미더운데.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내가 깨어난 장소에 대해 묘사했다. 입구 밖으로 달려 나왔을 적의 해의 모양과 눈에 들어온 구릉의 모습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흡사 동굴 같았던 내부의 모습, 피로 그려진 문양과 밧줄, 주렁주렁 달린 부적들, 무너진 도량 같은 겉모습에 대해 손짓발짓을 섞어 전달했다.
그러다 어째서인지 작은 소반에 올라가 있던 술잔이 뇌리에 떠올랐다.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술잔이었다.
금박이 화려했고 모란 문양이 있었다.
‘정신 나간 놈. 죽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나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려 했지.’
어쩌면 나에게 건 주술의 완성은 술을 먹임으로 끝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금박을 입힌 모란 무늬 술잔이라고 하였느냐?”
“무척 화려한 모양새여서 기억이 나요. 비싸 보였으니 분명 어디서 훔쳤을 거예요.”
“......”
“왜요? 갑자기. 사람 궁금하게.”
효성진 도장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할 말이 남았다는 눈치였으나 깊은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그대로 침묵했다.
“아, 뭔데요. 중간에 똥 끊고 나온 표정으로 왜 그러는 건데요.”
“별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것보다 다음엔 옷을 가져오마. 넝마 차림새로 스승님에게 보일 수는 없지.”
“응?”
“송자침과 상의해본 끝에 내린 결정이다. 널 내 스승인 포산산인께 데려갈 거다. 지금 네 처지에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딱히 거기밖에 떠오르지 않더구나. 하지만 근심하지 말거라. 포산산인은 속세의 이치를 뛰어넘은 분이니 네가 사람이 아닌 시체라고 해도 그리 박해하진 않으실 거야. 분명 널 거둬 제자로 삼아주실 거다.”
“뭐라고요?”
포산산인은 신선이라며. 지금 날 신선에게 데려갈 테니 제자 되라고 말한 거야?! 제정신이야?!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던지 손보고 있던 돌칼로 하마터면 효성진을 찌를 뻔했다.
“얌전히 있거라. 도중에 척한(※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음)할테니.”
“척한? 도장님, 저는 아직 글을 몰...... 아아악!”
바람처럼 와 구름처럼 떠나니 진정한 신선이로다.
“저런 식이니 설양이 범인이라고 설득 못 시킨 거잖아!!!”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마구 헝클어뜨리며 욕과 비난을 바가지로 퍼부었다.
그래도 주먹밥 은혜를 생각해 머리카락 빠지라는 저주는 관뒀다.
송자침과 둘이서 잘 해낼 거라 믿어보자.
꽤 여러 날이 지났을 때, 새가 하늘에서 둥글게 같은 자리를 세 번 날고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세 번 접은 종이를 펴자 한석봉이 쓴 정갈한 서체가 보였다.
‘잘 썼군.’ 칭찬하고 종이를 품에 넣었다.
이 양반들은 이 세계의 평민 아이들이 글을 익힐 짬도 없거니와 배움의 기회도 없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야 전생 시절에 한문을 접하긴 하였지만 영어단어 외우는 걸 주로 한 탓에 획이 많은 어려운 글자는 음독하는 법도 몰랐다. 그런 까닭에 효성진이 보낸 편지는 불쏘시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음호부를 찾았다는 얘기겠지? 앞으로 일이 잘 진행되어야 할 텐데. 두 사람이 고생이 참 많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그동안 어렵게 만든 토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흙을 파내고 위로 나뭇가지를 가득 덮어 지은 토굴은 박물관에서 본 선사시대 움집을 따라 만들었다.
비가 오면 무너질 확률이 높았고 땅을 파서 만든 자리는 벌레가 많아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일단 내게는 최선이었다.
이름 모를 벌레를 밖으로 내쫓으며 두 다리를 뻗었다.
좁았지만 익숙했다. 채소 가게 송씨네 창고에서 신세를 졌을 때보다 환경이 더 나쁜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움집이 무너지기 전에 효성진 도장님과 여기를 떠날 테니.’
그게 얼마나 방만한 생각이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뭐라고 적혀진 건지 모를 편지가 두 번 더 날아들었고, 나는 근심에 빠졌다.
매우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건 마지막 편지의 모양새로 알 수 있었다.
새를 배달하던 새가 고꾸라져 죽어버렸고, 몸통에 화살이 스친 흔적이 있었다.
이후 소식이 뚝 끊겼고, 몇 번의 봄과 겨울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끝.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