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좀비인데 좀비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 오리캐×설양(아닐 걸?)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소설만 읽은 상황이며 이해부족으로 원작 설정이 미세하게 뒤틀릴 수 있습니다. 드라마 진정령 보기 시작했는데 소설과 설정이 틀려! 주요 커플링은 원작자의 요청에 따라 건드리지 않습니다.
“아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는 구제불능의 천치인 것 같아.”
아껴먹으려고 남겨뒀던 밀과를 덥석 깨물어 삼키는 설양을 짠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더러 바보 아니냐고? 남들 다 아는 이야길 새삼스럽게.
거짓말 보태지 않고 두 번 우물거리자 설양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나는 일곱 번 씹었는데 저 새낀 그냥 초고속 광선 랜이었다.
아무튼 밀과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어깨를 으쓱여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티를 냈다.
화내지 말자. 나는 어른이다.
“안 들리는 척하냐. 바보라고, 너.”
안다니까 그러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빙의자에게 언어패치 정도는 해주던데 말이지.
일개 회사원이던 내가 전염병으로 죽고 한 어린아이 몸에 빙의되었을 적에 귀에 들려오는 건 혀 꼬부라지는 중국어였다. 할 줄 알았던 중국어는 워아이니 이게 전부인데 예고도 없이 실전 중국어 상황으로 떨어진 거다. 몸은 아프고 기운도 없는데 주변 사람이 하는 말은 중국어...
소산 사람들이 내가 귀머거리에 벙어리라고 착각한 까닭이 이거다.
갑골문자 닮은 희한한 한자를 쓰는 건 지금까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판국이고, 말을 지금과 같이 유창하게 구사하기까지는 무려 3년이 걸렸다.
이세계로 떨어진 주인공은 한 달이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높으신 분들과 친분이 생기며, 상단 일을 배워 큰돈을 벌어들인다던데 그와 비교하면 매 맞는 배추가게 머슴이 된 나는 확실히 바보 맞았다.
“저 태평스런 낯가죽 하며. 쯧쯧. 이렇게 머리가 나빠서야. 심지어 눈치도 없고.”
채소가게 기둥에 기대어 선 설양은 느른하게 팔짱을 꼈다.
“너, 고소 남씨 수행자가 굳이 너 하나를 찍어 따로 보자고 한 까닭이 뭔지 알고는 있어?”
글쎄다. 선사는 이 주변으로 사기가 충만하고 주시가 목격되고 있어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나를 콕 찍어 보자고 한 건 내가 옆 마을까지 배달을 나간 당사자라서 그런 거고. 목격자 조사 이런 거지.
짐짓 눈을 감고 있던 설양이 한쪽 눈만 슬며시 치켜떴다.
“사기가 짙어 원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럼 밖으로 나가 주시부터 찾아봤겠지. 그런데 그 인간은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신 널 찾았잖아. 거기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지금 현장 확인을 빼먹었다고 그러는 건가. 그런데 그게 꼭 순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 목격자 탐문을 먼저 하고 현장 확인을 하러 나갔을 수도 있는 거고.
나는 뺨을 긁적거렸다.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거 봐라. 눈치가 발바닥이다.”
뒷짐을 지고 자세를 바로잡은 설양은 거드름을 피우며 가게 안으로 세 걸음 들어왔다.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 둘을 보고만 있던 송씨 셋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대들보 무너진 사당을 봤다는 식으로 손도 떨었다.
설양의 따라붙는 시선에 얼른 손을 감추었지만 셋째가 떠는 모습은 나도 봤다.
“재밌어... 당사자인 아걸 빼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아는 듯한데.”
패션쇼 워킹 모델처럼 제자리에서 휙 돌아선 설양은 아직은 가게 지붕을 무너뜨릴 때가 아니라며 세 걸음 후퇴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걸. 활시가 뭔지 알아?”
“활어는 알아도 활시는 모르는데요. 설 공자.”
“그럼 오늘이 가기 전에 활시가 뭔지 알아놔. 과제야.”
나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서 하라는 대로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 활시가 무엇인지 아느냐 물었다.
의미가 좋은 건 아닌 듯했다. 보지나 잠지 같은 천박한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열에 아홉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 몸을 밀쳤다. 한 명은 아무 것도 안 들려요 무시하고 저 가던 길을 갔다.
가게로 돌아와 미친 척하고 송씨 부인에게 활시가 뭔지 아느냐 물었다.
그 즉시 솥뚜껑 손바닥이 날아와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동안 먹여주고 입혀준 은혜도 모르고!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 단어를 입에 담아?! 활시라니. 그럼 내 남편이 사술을 부리는 이릉노조라도 된다는 거야?! 자기 손으로 밤 껍질도 못 까는 사람이 의장에서 숨이 끊어진 죽은 널 꺼내와 사술을 부렸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애고 아파. 이릉노조는 또 뭔데요.”
“닥쳐! 어디서 이상한 소문이나 주워 먹고 들어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걸 담는구나!”
“소문은 먹는 게 아닌데요, 부인.”
“어디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그럼 말해보렴. 네가 활시니? 활시냐고!”
눈에 핏발을 비치며 노성을 터뜨리는 송씨 부인과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궁금해 하는 걸 알려준 이는 거름을 운반하는 지게꾼 노인 진수였다.
노인은 하루도 쉬지 않고 거름을 밭에 뿌리는 일을 했기에 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그 탓에 소산에서 나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진수 노인이 유일했다.
“숨을 쉬고 살아 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체인 걸 활시라고 한단다.”
“에엑? 말도 안 돼. 세상에 그런 게 다 있단 말예요?”
“어찌하여 놀라느냐. 마을 사람들 말로는 네가 활시라던데. 활시가 활시더러 세상에 어찌 존재하느냐 놀라워하다니.”
시커먼 색의 국물을 흙에 쏟아 부으면서 노인이 껄껄 웃었다.
“제가 진짜로 활시에요?”
내 질문에 노인이 웃음기를 싹 지우고 ‘어랍쇼?’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바보 멍청이가 뚱딴지같은 말을... 당연히 넌 활시가 아니지. 그냥 소문이 그렇다고.”
“무슨 소문인데요.”
“그냥 뭣 같은 소문이야. 배추가게 셋째가 어린 비렁뱅이 거지를 죽여 관을 보관하는 의장에 몰래 숨겼는데 일이 들통 날 걸 두려워한 아비가 비렁뱅이의 시체를 꺼내와 활시로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처음에는 숨만 쉬고 꼼짝을 못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점차 말을 하고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들기 시작했다고... 활시라서 밥도 안 먹고 일만 한다며 채소가게 부부가 아주 좋아했다는 거야.
한 가지 문제라면 활시의 몸으로 음기가 잔뜩 모여들어서... 그래서 부근에 시변하는 자가 늘었다지.”
화가 나 실소가 절로 나왔다. 이건 박수를 절로 쳐주고 싶은 개소리가 아닌가.
“인석아! 갑자기 벌떡 일어나지 마. 똥물이 튀잖니.”
진수 노인의 말에 따르면 소문은 보름 전부터 돌기 시작해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내 손목을 잡고 진맥을 보던 선사도 분명 소문을 들었을 거다.
“어쩐지 웃는 모습이 가식적이었어... 예뻤지만 눈이 안 웃었어.”
필시 사람인지 활시인지 확인하려던 거였겠지.
밀과를 줘서 먹게 한 것도, 팔을 접었다 폈다 해가며 힘줄과 근육을 살폈던 것도, 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거다. 정말로 활시라면 음식을 삼키지 못했을 거고, 몸도 굳어있었을 테니.
“캬아, 배반 돋네. 배반 돋아.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더니 신선이 되고자 수선을 하는 자가 나 같은 순진한 애를 가지고 놀았네.”
저번처럼 배추 250근을 짊어지고 길을 걸으며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말로 서운함과 억울함을 내쏟아도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아 일부러 나뭇가지를 치고 풀을 당겨 뽑았다.
그리고 뽑은 풀을 머리카락 틈새에 빈틈없이 꽂아 분노로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친 모습을 만들고자 했다. 반 시진 뒤에는 이마저 도로 다 뽑아버렸지만... 부러진 나뭇가지를 무슨 채찍인양 좌우로 흔들며 걸음을 빠르게 했다.
진수 노인은 소문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내버려두면 자연히 가라앉는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생각할수록 마치 내가 재앙의 원흉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잖아.’
활시를 없애야 마을에 평안이 올 거라며 선동하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발주 신청에 실수를 했던 건 과장님인데 업체로 확인전화를 하지 않았다며 말단 대리를 꼽주는 분위기라는 거, 아주 익숙하다. 여기서 분위기가 더 나빠지면 채소가게 송씨는 나를 멍석말이해서 내쫓으려 할 거다.
멀쩡한 몸으로 내쫓기만 하면 다행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처럼 장작불에 태워 죽이려 할 수도 있으니까. 엄한 사람 잡아 화형에 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고...
고뿔에 걸려 열이 나는 것도 아닌데 몸이 오싹오싹했다.
하늘을 올려보니 태양이 구름에 가려진 것도 아니고 날씨가 청명했다.
그래서 더 불길했다. 서늘바람이 불지 않는데 왜 털이 곤두서느냔 말이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걸으며 큰길에서 벗어났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활시다!’ 외치기라도 하는 날엔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자 두고 볼 것도 없이 샛길로 방향을 틀었다. 소위 말해 멧돼지 길이라고 하는 곳이다. 걷기 힘들어 일부러 이런 길을 찾아다닐 사람은 없을 테니 남의 시선을 피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당나귀 목에 맨 방울이 딸랑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아 안쪽으로 더 깊게 들어갔다.
무명적삼 옷깃을 바짝 당겨 여미며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장대에 매달린 웬 검은 깃발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