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03

제1장 좀비인데 좀비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 주인공 오리캐. 설양 루트(일 수가 없는데).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소설만 읽은 상황이며 이해부족으로 원작 설정이 미세하게 뒤틀릴 수 있음. 일부러 뒤트는 일은 원작자의 요청에 따라 하지 않습니다. 아 씨바 출신지며 나이며 죄다 불명이잖아.
의도치 않게 부산 사람을 대구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임.
오리캐 말투는 아저씨라고 생각하세요. 걸람의 자아는 34세입니다.



가까스로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왔을 적엔 이미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거의 내던지듯 지게를 내려놓은 뒤, 내 몫이랍시고 남겨놓은 간장 주먹밥 두 덩이를 손에 쥔 채 그리운 ‘마이 스위트 홈’으로 향했다.
몸이고 마음이고 다 너덜거리는 상황이라 게으름 그만 피우고 빨리 좀 다니라고 야단치는 채소가게 주인 송씨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땅만 쳐다보며 걸으며 대꾸를 안 하자 송씨가 화를 냈다.
무시하고 뒷간 옆에 붙은 작은 창고 문을 열었다.

원래는 장작을 말리는 용도로 쓰였다는 창고가 송씨의 은혜로 구한 내 침소다.
이모부네 계단 밑 벽장에서 살았다던 유명 판타지 소설 주인공보다 더 못한 신세라고나 할까.
모든 창고가 그러하듯 습기만 막으면 되었기에 얇은 마룻장에 지붕이랍시고 널빤지 기와를 얹은 게 전부인 누더기였다. 덕분에 얼마나 웃풍이 심하던지 새벽이면 입이 돌아갈 지경이라 틈새에 꼼꼼하게 진흙을 채워 넣어 지금은 널빤지 사이로 뜬 별을 구경하는 일은 없다.
그래봤자 아늑하다는 느낌은 일절 들지 않고 침상 하나 놓지 못할 좁은 구조여서 다리를 쭉 펴고 누울 생각도 못한 채 벽에 기대어 무릎을 세웠다.

오늘은 정말 향불 올리는 날인 줄 알았다.
아첨하며 내뱉은 말들 중 무엇이 설양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는 알 재간이 없다. 쓰레기 같은 그 인간의 감정은 좌로 우로 멋대로 널뛰기를 했으니까.
아무튼 저승 갈 뻔했다는 건 확실했다. 삼도천에 발목까지 담갔다가 겨우 발을 뺐다고 보면 되었다.

‘소문으로는 선동요 사람들이 약양 상씨 세가에 도움을 요청할 거래요. 이 부근에서 요괴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약양의 상씨 세가밖에 없으니까요.’
그때 설양의 입가가 뒤틀렸다.
‘이 부근에서 요괴를 잡을 수 있는 건 약양 상씨밖에 없다, 라...’
‘으아앗~!!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물론 신묘하신 설 공자도 요괴를 잡을 수 있겠죠. 암요. 공자의 능력이라면 한 손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아니. 손가락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새끼손가락만 있어도 됩지요. 그렇지만 설 공자의 호의는 매우 값진 것이지 않습니까. 바위를 가르는 칼로 닭을 잡지 마라, 그런 것이지요.’
‘그렇다는 건 약양 상씨는 닭 잡는 칼이라는 거야?’
‘아이고, 공자도 참.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요. 무슨 오해를 그렇게 하세요. 상씨 사람들이 들으면 제가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타박할 거 아닙니까. 제가 드린 말의 뜻은 공자가 바위를 가르는 칼이라는 뜻으로... 컥!’

목을 움켜쥐어 잡은 건 아니었다.
그는 단지 검지를 들어 내 목의 한 가운데, 정확하게는 목울대를 지그시 눌렀다.
먹은 것이 부실하여 2차 성징이 더디게 온 내 몸은 변성기를 겪으면서도 목젖이 그리 도드라지게 나오지 않았다. 설양은 무슨 흔적기관처럼 희미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는 그 목젖 바로 아래를 눌렀다.

세게 누른 것도 아니니 장난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목에 구멍이 뚫렸다는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손가락으로 눌렀을 뿐이라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살갗을 찢고 들어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 칼날은 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한 바퀴 회전하며 연약한 안쪽 살을 썩둑 베어냈다.

‘이러지 마세요.’ 나는 눈빛으로 애원했다.
입술에 침을 바르는 설양은 약간 흥분한 눈치였다.
더러운 개새끼.
목 한 가운데 살갗을 손가락으로 훑고 내려오면서 놈의 눈동자 동공이 좁아졌다.
제일 더러웠던 건 설양의 사타구니 한 가운데 자리한 양물 크기가 커졌다는 점이었다.

‘몰라.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다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예전부터 나는 고민거리가 많으면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곤 했다.
예전이 아니라 전생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만, 은행 융자금 만기가 다가온다거나. 원룸 보증금을 떼먹힐 상황이라던가. 중고거래 사기로 노트북이 아닌 벽돌을 택배로 받았다던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만 원짜리 암막커튼을 치고 싸구려 조립 침대에 누워 잠에 빠지면 그 순간만이라도 고민거리에서 해방이었다. 사람을 죽일까 말까 망설이며, 그것도 목에 구멍을 낼까 말까 저울질하며 성적으로 흥분하는 정신이상자에게 아무래도 제대로 찍힌 거 같다고 백날을 고민해봐라.
양팔을 감싸 안은 자세로 스프링 매트리스가 아닌 한 겹 나무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
몸이 고단했던 탓인지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자 의식이 흐려졌다.

“밤새 끙끙거리더구나.”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퍼주는 밥 양이 많았다.
주시가 나온다고 하여 발걸음이 끊긴 길로 강제로 배달을 보냈으니 내심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살짝 부운 눈을 꿈뻑거리자 송씨 부인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신 보리밥을 한 주걱 더 올려줬다.
기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반찬도 없이 밥만 올리니 그게 꼭 제사상에 공양 올리는 느낌인지라 참 뭐 했다.

눈치껏 젓가락으로 절인 무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 운을 뗐다.
“저, 송 부인. 어제 말인데요.”
“한 번 더 다녀 오거라.”
아이 씨! 진짜 이러기야!
주시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없었어. 도중에 설영을 만났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송씨 부인은 아예 고개도 돌려버렸다. 내가 뭐라고 하던지 듣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오늘 당장 다녀오라는 건 아니다. 하루는 쉬고 내일 가거라.”
그 이상은 안 된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널 보살펴준 우리 부부에게 은혜를 갚아야 할 거 아냐. 못 하겠다는 말을 주둥이에 담기만 해봐!”
송씨 부인은 예전 우리 외숙모를 닮았다. 덩치도 우람하고 팔뚝도 우람했다.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어떤 손바닥인지 잘 알고 있는 나는 눈을 곱 뜨는 대신 시선을 무릎 아래로 깔아야 했다.

“설양을 보았다고? 어디서.”
하루는 배달 일을 쉬게 되었기에 결국 내 이야기 상대는 채소가게 셋째 송만희가 되었다.
재미 삼아 썩은 과일을 먹여 날 골로 보내려 했던 그는 어느새 장성하여 결혼도 했고 코찔찔이 아이도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명이었다.
제 어미에게 늘 그러듯 명이는 어부바를 해달라고 떼를 썼다. 내가 짐짓 모르는 척하자 명이는 내 정강이를 발로 찼다.
그런 아이의 난폭함을 접하고도 송만희는 아들이 참 씩씩하다며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말리기는커녕 어째서 빨리 업어주지 않는 거냐고 눈총을 주는 건 덤이었다.

“쯧. 그 망할 것이 명문 세가의 객원으로 신분이 상승했다고 들어 기주로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건만.”
소산에서 그간 설양의 폭거에 데지 않은 자가 없었다.
고아인데다 채소가게 밥풀떼기인 나조차 돈을 뜯겼을 정도다.
설양은 딱 한 가지, 강간만 안 했다. 강간을 빼고 폭행, 협박, 살인, 강도, 방화, 납치, 금품강탈, 그동안 저지른 짓을 열거를 하면 리스트가 끝이 안 났다.
셋째는 머리가 아프다는 걸 숨기지 않으며 신음했다.
“그래. 설양 그 자가 뭔 짓을 하더냐.”
제 목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거시기를 바짝 세웠습니다, 사실을 말하기는 뭐해서 최대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본 송만희는 지레짐작하고 다시 끌끌 혀를 찼다.
“문제네, 문제야.”
설양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재앙이라서 그가 소산으로 다시 활동 영역을 바꾼다면 우리로선 바짝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어디 맞진 않았고?”
“그런 건 아니고...”
“아니긴.”
예전부터 설양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으니 등허리라도 한바탕 걷어차였을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퍼뜩 깨달았다며 눈을 크게 떴다.
등허리가 아작난 자가 자기 아들을 업고 있었다.
송만희는 나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땅에 떨어뜨릴까 두려워하며 명이를 떼어내 얼른 자기 무릎에 앉혔다.

“셋째 나리. 죄송합니다만 좀 나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때 잔심부름을 하는 아이가 문밖에서 인기척을 내며 우리를 불렀다.

Posted by 미야

2021/10/15 17:40 2021/10/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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