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저, 근데 이거 피폐물입니다.


세 사람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휴지? 방금 쟤 휴지라고 말한 거 맞아?

반장을 알아본 스가와라 미즈키가 얼굴을 붉혔다. 집에 혼자 있는 줄 알고 가면라이더 주제가를 부르다가 동생에게 면박을 당했을 때처럼 큼, 이러고 헛기침도 했다. 엉덩이에 힘을 잔뜩 주고 코타츠 안에서 방구를 뀌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방구 냄새 지독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자 스가와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어, 그게. 하나에 선배를 찾는 중이라서.』
『같이 있지 않았어?』
『도중에 엇갈렸어.』

집에 전화를 걸어야겠다며 이이지마 하나에가 유선 전화기가 있는 행정실로 들어갔다.
개인적인 통화를 옆에서 듣기 뭐했던 스가와라는 예의를 차려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다리겠다고 말은 해놓고 얼른 화장실에 들어갔다. 장소가 교직원 화장실인 만큼 평소 학생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지만 서둘러 코피가 번진 얼굴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수도꼭지부터 열었다.
굳은 피를 지워내다 보니 다음에는 옷에 떨어진 피가 신경 쓰였다. 상의는 체육복으로 갈아입었지만 교복 스커트는 그대로였는데 방울방울 떨어진 피가 생리 혈을 연상시켜 보기가 흉했다.
하지만 피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물을 묻혀 첨벙거려봤자 지저분하게 얼룩이 번지기만 했다.
에라이 망했네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는데 당혹스럽게도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이이지마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쭈뼛거리고 선 스가와라는 잠시 생각하다 손에 묻은 물을 털면서 현관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갔다.

『뭐?! 밖으로 나갔어?!』
『아이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그러다 실내화를 신은 채라는 걸 깨닫고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 다시 안으로 향했다. 선생님에게 걸리면 혼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게 문제냐! 아니, 이 녀석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내가 방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몰랐구나... 나카소네. 쟤 은근 블랙홀이었어.』
블랙홀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고, 어쨌거나 신발장이 전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엄청 무거운 신발장을 혼자 일으켜 세운다는 건 불가능했기에 포기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엄청 큰 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아마 신발장이 쓰러질 때 난 굉음이었나 봐.』
『미치겠다. 그보다 보이지 않는 그물 같은 거 안 느껴졌어? 투명한 막 같은 거. 물렁거리지만 절대로 뚫고 나갈 수 없는 거!』
『보이지 않는 그물? 그게 뭔데. 거미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반문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스가와라 미즈키는 아무래도 나갈 수 있는 쪽이었던 것 같다.

혈압 상승으로 나카소네의 콧구멍이 커졌다. 콧쿠리님과 대화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진작 까먹었다.
『얘는 진짜! 나갈 수 있었다면서 왜 또 돌아왔는데!』
『나, 화장실 갈 거라고 선배에게 말 안 했거든. 하나에 선배도 내가 없어졌다며 나를 계속 찾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일단 2학년 교실 쪽으로 가봤는데... 생각해보니 선배가 몇 반인지 들은 적이 없지 뭐야. 덕분에 좀 돌아다녔어.』
『아까 휴지, 휴지, 중얼거린 건 뭐야.』
『음, 일종의 주문 같은 거랄까. 안전기원, 만사형통, 운수대통, 이런 의미지.』

초등학교 시절에 메챠걸이 알려준 이야기가 있다.
애들을 잡아간다고 소문이 난 빨간 원피스의 귀신은 아이들에게 가위를 줄까, 풀을 줄까, 휴지를 줄까? 질문을 한다고 했다. 가위를 달라고 하면 입이 찢어지고, 풀을 달라고 하면 목소리를 빼앗긴다. 휴지를 달라고 하면 귀신이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 틈을 타서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기 뭐꼬! 너 어디 초등학교 나왔는데. 원래 지우개를 달라고 하는 거잖아. 그러면 받은 지우개로 귀신을 슥삭슥삭. 내 말이 맞지? 루미.』
『유치원 시절에 들어봤어. 나도 지우개라고 들었는데.』
『가위를 든 빨간 원피스 여자 이야기는 잘 알아. 그런데 풀이나 휴지 준다는 건 들어본 적 없는데.』
『동네마다 버전이 달라?』
『어쨌든 휴지는 아니야, 진짜.』
실수로 사투리가 살짝 튀어나왔지만 나카소네와 이시즈미가 도중에 끼어들어 분위기상 잘 넘어갔다.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가와라 미즈키는 슬그머니 자기 손등을 꼬집었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반 아이들과 이렇게 길게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쳐다보기까지 하고 있다. 어쩐지 꿈이라는 느낌인데 꼬집은 부위가 통증으로 얼얼했다.

하시모토가 투덜거렸다.
『아무튼 이이지마 선배, 2학년 5반이야.』
『5반이었구나! 근데 반장... 예전에 내가 물어봤을 적엔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하시모토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로 동시에 써먹을 수 있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러니까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스가와라가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몫이어서 하시모토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소리를 내어 말을 해야 비로소 거짓말이 되는 거다.
어차피 현 상황에선 2학년 5반 교실을 제대로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적당히 넘겨도 되었다.

일단 몇 층으로 가야 하는지부터가 숙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슷한 내용의 외국 영화가 있었다. 폐쇄된 정신병원이 배경인데 출입구도 없어지고, 복도 끝도 없어지고, 문을 열면 다시 병실이고, 창문은 열리지도 않고...
그리고 정신병동 한 가운데로 환자복을 입은 유령이 -

『저기에 1학년이 있다!』
나카소네가 따돌렸다던 3학년 무리인 듯했다.
겁이 많은 이시즈미 루미가 얼른 하시모토의 등 뒤로 숨어 눈치를 봤다.
무리도 아니다. 일본에서 커터 칼은 누구나 필통 속에 한 개씩 넣고 다니는 평범한 학용품이지만 일부 국가에선 학교에 가지고 오면 안 되는 물건이다. 키티 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커터 칼도 써먹기에 따라 흉기가 된다. 그걸 쥐고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흔들고 있으면 불쾌한 위협이 되고도 남는다.
해리 포터 원서 독해부에 소속된 하시모토는 마법사의 지팡이 대신 대나무 젓가락을 흔들며 책에 적혀진 마법 주문을 소리 내어 읽곤 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남들이 봤을 적에 상당히 꼴불견이었을 거라는 깨달음이 이제서야 왔다.

『칼은 치워주시죠.』
하시모토의 요구에 3학년 선배는 문구용 칼을 쥔 오른손을 일단 옆구리 쪽으로 내렸다.
칼날이 올라와 있는 걸 보고 하시모토 리코가 다시 요구했다.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칼은 치워주시죠.』
다행히 3학년은 하시모토의 요구대로 버튼을 눌러 칼날을 숨겼다.

『몇 반이야?』
『3반입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3학년이 진위를 가늠하며 눈을 가늘게 떠보였어도 약 바른 혓바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명찰은 나카소네의 조언을 듣고 치웠고, 솔직히 같은 학년 얼굴도 잘 모르는 판국에 3학년이 1학년을 알아볼 리 만무했다. 하시모토는 두껍게 철판을 깔고 세기의 연기를 이어갔다. 나는 1학년 3반이다.

『1학년의 콧쿠리님이 2반이라던데 혹시 아니?』
『옆 반이니까 잘 알죠. 우리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대답을 하면서 너는 입 뻥끗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스가와라의 발잔등을 지긋 밟았다.
불행하게도 스가와라는 눈치가 수수가루 부꾸미였다. 속된 표현으로 젬병이었다.
『저기, 우리 3반이 아니라 2반인데... 반장?』

100미터 달리기를 몇 초에 뛰었더라, 오른손으로는 이시즈미를 잡았다. 왼손으로는 스가와라를 붙들었다.
튀자.
『저것들 거짓말을 했어. 잡아~!!』
빠르게 달리기를 할 적에 숨을 참는 버릇이 있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려면 산소가 필요하다고 배웠지만 입술을 오 모양으로 만들어 후욱후욱 짧게 호흡하는 건 어쩐지 임산부 호흡법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하시모토 리코는 늘 숨을 가득 들어 마신 뒤, 호흡을 딱 멈춘 채 전력질주를 하곤 했다.
함께 뛰어나갈 타이밍을 놓친 나카소네는 3학년들에게 그대로 붙잡혔다. 얻어맞는 모양인지 악, 악, 이러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뒤돌아보진 않았다.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은 건 아닌데 여유 같은 걸 부렸다간 그대로 머리채가 잡힐 거다.

이시즈미의 발이 꼬였다. 비틀거리는 친구가 나뒹구는 일 없도록 오른손으로 더 힘을 줘서 잡아당겼다.
『리코! 리코!』
손목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분수에 넘게 힘을 줘서 그런지 욱신거리는 통증이 송곳처럼 머리를 후벼 팠다.
그런데 복도가 너무 길었다. 100미터 전력질주 골인 점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쳤다. 숨을 참은 지 이제 16초가 지났다. 얼굴이 검붉게 변했고 세포들이 산소, 산소 입을 모아 외쳤다.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려 참았던 호흡을 토해냈다. 동시에 눈에 띄게 속도가 떨어졌고 따라오던 3학년이 하시모토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상의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기까지였다. 하시모토는 쥐고 있던 손을 모두 놓았다.
『달려, 루미! 달려, 스가와라!』
뒤통수로 주먹이 날아왔고 충격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Posted by 미야

2021/04/23 15:03 2021/04/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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