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 설정을 가져온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저승꽃 쓰다 탈주 비슷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완결 냅니다. 저승꽃도 쓰는 중이에요.
다케다 씨가 몸살로 뻗어 후로다니 료칸 출장의 건이 내 몫으로 떨어졌다.
불만은 없었다. 기차를 타고 왕복 이틀 일정에 주말이 온전히 날아간다고 해도 목적지가 고급 료칸이라 고즈넉하게 여행을 간다는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 그러니까 1950년대에는 문인들이 글을 쓴다며 통조림을 자처하는 장소였다는 설명을 사전에 들었기에 은근 기대도 컸다.
광고사진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흑백 사진과 벽에 장식된 설국 소설책이 배경으로 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후로다니 료칸에 통조림이 되어 글을 썼다고 착각할 법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소설 설국이 사진에 나온 이유는 그 책의 줄거리가 시마무라라는 주인공이 설국의 한 온천장에서 아름다운 게이샤 고마코와 부엌에서 일하는 요코와 삼각관계를 이룬다는 줄거리 탓일 거다. 이렇게 말하니 책의 내용을 이상한 쪽으로 함축시킨 것 같다만... 여하간 료칸이었다.
그리고 그 료칸에서 사용할 손님용 그릇을 소개하고 주문을 받는 것이 내 일이었다.
약간의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 전문 카탈로그를 꿰차고 목적지에 도착한 건 오후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온천장 주인과의 면담은 오후 7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예정대로 알맞은 시간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서양식 인테리어가 된 사무실로 향했고,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 동안 녹차를 대접받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케다 씨의 몸살은 순전히 핑계였고 그 양반, 아무래도 영감이 있는 쪽이 아닌가 싶다.
늦은 9시 27분, 몸이 갈기갈기 찢긴 상태로 널브러져 머리의 절반이 주령에게 씹히는 중이었다.
다케다 씨는 이 온천장에 주령이 나온다는 낌새를 챈 것 같다. 능력 좋다.
숨은 이미 끊어졌지만 어렵게 눈알만 움직여 날 씹고, 뜯고, 맛보고 있는 주령을 쳐다봤다.
2급 정도는 되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방향으로 전문가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주령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기 때문에 – 아, 이미 죽었다. 궁지에 몰린 탓에 시각화된 형체를 볼 수 있는 거였다. 따라서 지금 내 입장에서 저놈이 2급이네 1급이네 따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 어. 어...》
색이 붉었다. 오니 같은 외견이다. 지옥에서 업보가 많은 혼령들의 사지를 찢는 오니처럼 생겼다.
웃기게도 에도시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촌마게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에게는 표정이 있었다. 전쟁터에서 어린애를 강간하는 눈빛을 하고 놈이 내 눈알을 삼켰다.
암전.
숨이 끊어져본 적은 오랜만이다.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 수준으로 몸이 해체된 것도 진짜 오랜만이다.
1944년인가 대략 그 즈음에 수류탄을 정면에서 맞고 폭사당한 적이 있었는데 객관화를 하자면 그때보다 지금 상태가 더 나빴다.
아마도 간이었을 덩어리가 조각으로 천장에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응고하기 시작한 피가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해서 내장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살이 많은 허벅지부터 엉덩이 쪽은 침대 아래로 굴러갔기 때문에 주령의 눈에서 벗어났다. 대신 녀석은 가슴에 손을 넣어 심장을 후벼 파고는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갈비뼈를 좌우로 벌려 맨손으로 뜯어냈다.
아, 좀!
후룩후룩 국물 마시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이팔국수 먹어치우듯 하고 있다.
님아! 부탁이니 뼈는 남기 삼!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그때 물그릇 안을 가득 채운 물이 찰랑거렸다.
흠칫하고 깨닫고 보니 저승도 아니고 이승도 아닌 애매한 공간에 일명, ‘좌절은 금지’ 포즈로 엎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듣기에도 얼빠진 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자 뼈로 이루어진 언덕이 보였고, 그 꼭대기엔 소매가 넓은 기모노를 입은 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으면 옷자락이 벌어져 남이 봐서는 안 되는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는데...
하찮은 생각을 하며 내 얼굴을 더듬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주령에게 뜯겨나간 머리가 제대로 잘 붙어 있었다. 턱을 좌우방향으로 움직여도 보고 뺨을 잡아당겨도 보았는데 정상이었다. 방금 전에 주령이 씹어 삼켰던 안구도 제 위치에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주변을 더 살폈다.
아무래도 이승은 아닌 듯하다. 일단 산처럼 쌓아올린 뼈만 봐도 이승 느낌은 아니었다.
뿔이 달린 짐승의 머리뼈부터 인간의 두개골까지 종류도 무궁무진했다. 하나같이 살이 깨끗하게 발라져 하얗게 반질거렸는데 덕분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느낌도 없진 않았다.
그 해골의 꼭대기에 앉은 남자가 내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목소리를 냈다.
『저, 혹시 염라왕이십니까. 저는 이시야 히로시라고 하는 사람으로 어쩌다보니...』
말하고 보니 비즈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내심 당황했다. 실례지만 사장님 되십니까, 거의 그 느낌이었다. 8년 가까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마에서 구워낸 그릇을 팔고 다녔더니 뼛속까지 세일즈의 향기가 스며들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적당히 눈웃음을 쳐가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있었다.
《이시야 히로시... 흐음. 그 이름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모노의 사내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염라왕이 아니다.》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도합 네 개의 눈이었다.
나는 바짝 엎드렸다. 이승이 아닌 곳에서 외눈박이 거인을 만나도 문제가 큰데 숫자가 더 많아져 네 개의 눈이면 제법 심각했다. 전자가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면 후자는 무려 저주의 왕이다.
『거짓을 고한 것은 아닙니다. 이시야 히로시, 지금은 그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긴 시간이 제법 흐르긴 했지.》
『송구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나의 생득영역이다. 여기까지 무슨 행차이신가, 그대?》
『어. 그게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이것저것 상품 설명이 길어지면서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져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가게 이미지와 맞지 않는 네덜란드산 수입품 화이트 본차이나 세트를 고집하던 주인을 만류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인의 뜻대로 일본식 도기가 아닌 네덜란드산 그릇을 주문하기로 결정을 봤다만... 버스는 4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고, 지금부터 번화가로 나가 숙박업소를 찾다 보면 까딱하다 노숙을 할 수도 있을 거라며 백발의 료칸 주인이 입을 가린 채 호호 웃었다.
‘어차피 이곳도 숙박업소잖아요?’ 료칸 주인의 호의에 제일 싼 가격의 1인 룸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하루 머물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식사는 미리 하고 왔기에 잠만 자고 아침 일찍 택시를 부를 생각이었다. 내 월급으로는 이곳에서 요리를 주문하는 건 무리다. 한 끼에 3만엔을 쓰는 사치를 부리기엔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았다. 신축 빌라로 이사를 하면서 저축한 돈의 절반을 써버렸다.
기차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기 전에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는지 졸음이 오려 했다.
씻고 싶다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조작하여 텔레비전을 켰다. 늦었지만 회사에 미팅 결과를 알리기 위해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 순간 천장이 꿀렁거렸다.
『아니, 지금 생각해도 빡치네. 영업 중인 고급 료칸에 왜 주령이 돌아다니는 거냐고.』
긴장을 풀고 침대에 늘어져 있던 상황에서 공격당해 곧장 머리가 부서졌다.
『방 천장에 시체라도 숨겨놨나.』
주룩 흘러내린 그것이 한 입에 가슴 윗부분까지 씹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뭐, 그렇게 해서 사고로 숨이 끊어졌습니다만.』
해골을 쌓아올려 만든 산의 높이가 제법 되는 관계로 이쪽에서 양면 아수라의 표정까지 읽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저주의 왕은 프라이드가 높아 함부로 용안을 쳐다보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면 기분이 언짢아진 분이 손짓 하나로 2차로 내 목을 날려버릴 거다.
시선을 내리깐 모양새에서 다시 영업용 접대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니고요.
『폐를 끼쳤습니다.』
님의 생득영역에 제가 왜 들어왔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니다. 이건 내가 사과해야 할 부분 같군.》
저주의 왕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나긋했다.
하지만 나는 저 고양이를 어르는 목소리 너머로 부드러운 카스타드 크림이 아닌 맵고 톡 쏘는 고추냉이가 알차게 들어 있다는 걸 잘 안다. 맛있게 생긴 과자라며 덥석 베어 문 날엔 입안에서 붉은 지옥이 펼쳐질 거다. 1에서 10까지 번호를 매기면 9번 정도의 맵기다.
10이 아니라서 다행 아니냐는 한가로운 소리는 하지 말자. 저 양반, 지금처럼 섹시한 목소리로 ‘죽으렴.’ 소곤거리고는 해일처럼 밀려드는 주술사들을 가루로 빻은 경력이 있으시다.
《주물로서 료칸에 숨겨둔 내 손가락을 주태가 겁도 없이 집어삼킨 모양이야. 그대는 운이 나빴어.》
『에?』
《들은 적 있을 거야. 저주가 심한 장소에 저주를 물리친답시고 식을 써서 주물을 배치하는데 이곳에 자리 잡은 주물은 내 잘린 손가락일세. 가끔 실력 처지는 주술사가 게으름을 부리면 지금처럼 역효과가 나기도 하지. 아아, 진짜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니까.》
투덜거리던 저주의 왕이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끔 튕겼다.
《벌레는 서비스로 내가 처리를 해줌세. 그러니 그대는 그만 현세로 돌아가 보아. 오랜만에 얼굴을 보아 반가웠네, 불생자여.》
『에?』
료칸에 주물이 안배되어 있었다던가, 그 주물이 아수라의 손가락이라던가 하는 건 스치고 지나갔다.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아니, ‘서비스’ 라는 현대 용어를 천 년 전에 스러진 양반이 어떻게 알고 쓰는 거래? 실화냐.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