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전개가 매우 느립니다. 원작만화와 궤도가 다릅니다. 노트북 사고 싶다. (응?)


이시즈미 루미는 자신이 어디까지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수업시간에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 라는 걸 배운 적이 있다.
한 사람의 무게만을 견딜 수 있는 판자에 조난당한 두 사람이 동시에 매달리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매달리면 가라앉는다. 둘 중 하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강제로 판자에서 떼어낸다면 나는 무죄인가, 유죄인가.
이시즈미는 친구 하시모토와 같이 바다에 빠진 장면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갈아가며 널빤지를 잡는 건 어때? 내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리코가 널빤지를 잡는 거야. 한 3분 정도? 그 뒤에 교대하고 내가 널빤지를 잡는 거지.」
「그랬다간 금방 기진맥진해져 둘 다 죽어버릴 걸.」
하시모토는 자신의 팔을 주물러 근육의 단단함을 짐작해보고 이내 이시즈미의 물렁 팔뚝을 주물럭거렸다.
「아무래도 판자는 루미 네가 붙잡아야 할 것 같아. 헤엄을 치는 건 내가 하는 게 좋겠어.」
물에 빠져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은 누구 팔뚝이 더 굵네, 알통이네, 이러고 한참을 다퉜다.

21세기 현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한다는 개념은 낯설었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인간이 맞서 싸우기 힘든 천재지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대피소라던가, 긴급 구호활동, 비상식량 같은 것들이 제공되었다.
하시모토 리코는 교과 과정 -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를 무시하고 바다에 빠졌을 적에 바지로 구명조끼 만드는 법을 알아 와 모두 앞에서 발표를 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라는 원래의 수업 내용과는 100만년 정도 거리가 떨어진 내용이었지만 구명조끼를 얻기 위해 살인도 불사한다는 결론을 유추해내기 싫었던 아이들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 아이들은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기 전에 배를 탈적엔 만약을 위해 스커트를 입지 말자 입을 모으는 것으로 기원전 2세기 그리스의 안타까운 난파 사고를 정리했다.
하필이면 그리스 사람들은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리스의 기본 복식은 키톤으로 장방형의 천을 몸에 둘러 핀으로 고정시켜 입었다. 비극은 바지를 입지 않아서 벌어졌다.

그런데 지금 출렁이는 바다에 펄럭이는 키톤 복장으로 빠졌다.
「큰일이야. 저 아래로 집어던져지면 끝이야.」
개구리 모습의 괴물이 나카소네를 삼키는 모습은 뇌리에서 금방 사라졌다. 대신 널빤지가 아른거렸다.
판자는 오직 한 사람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커터 칼을 쥔 3학년이 칼날을 길게 빼들고 남은 1학년들을 돌아봤다.
곧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자 스트레스성 토가 나오려 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커터 칼은 이시즈미가 아닌 스가와라 쪽으로 향했다.

『다음은 너다. 내려가.』
그 말을 들은 스가와라 미즈키는 편의점에 간 귀가 어두운 노인처럼 행동했다.
커터 칼을 쳐다봤다가, 선배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소비세 계산을 실수한 노인과 거스름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편의점 점원 같았다.
내려가라고? 스가와라의 머릿속에서 판자가 떠올랐다. 이시즈미가 떠올린 카르네아데스의 판자와는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해적의 판자였다.
망망대해를 향한 판자의 끝, 그리고 후크 선장은 갈고리가 달린 팔을 흔들며 판자를 걸으라고 위협한다.
3학년생이 드륵 소리를 내며 칼날을 길게 빼냈다. 위협적인 몸짓도 했다.
계단을 내려가지 않으면 얼굴에 흉터가 남을 상처를 내주겠다는 협박도 했다.
문제는 스가와라 미즈키의 눈에는 아직까지도 주령이 보이지 않아서 상어 밥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위협이 딱 절반만 유효했다는 거다.

그랬다. 그녀의 눈에는 상어가 보이지 않았다.
저 너머로 어쩐지 소란스런 기척이 들려왔다. 그 기척은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와 흡사해서 몹시 거슬렸다. 하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시야가 물결치며 흔들렸다. 눈을 비비자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게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서 다시 눈을 비볐다.

『질질 짜봤자 소용없어.』
우는 거라고 착각한 3학년이 비아냥거렸다.
『울면 봐줄 거 같았어? 그리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1학년들. 왜 지금은 조용하지? 코쿠리님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다시 말해보지 그러냐. 계단 아래로 던져버리면 저주가 내릴 거라고 떠들어야지 어째서 입 다물고 있는 건데.』
감정을 담아 반장 하시모토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시즈미 루미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너, 다음은 저 녀석이라고 찍었을 때 속으로 안심했지? 표정에 다 보이더라. 아주 웃겼어. 배꼽이 빠질 지경이야. 코미디가 따로 없었어.』
웃음이 나왔노라 말을 했어도 3학년은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하여간 이놈의 학교는 처음부터 재수가 없었어. 전부 밥맛이었다고.』
그렇게 말한 3학년은 스가와라 미즈키를 힘주어 계단 아래로 떠밀었다.
양심의 가책 이런 건 없었다. 두 팔에 힘을 잔뜩 주고 밀었다.
얼마나 세게 밀었는지 스가와라 미즈키의 몸은 계단을 구르는 게 아니라 허공을 날았다.

「역시 꿈이구나.」
무서워서 질끈 눈을 감기는커녕 스가와라의 눈은 뒤집혀진 창밖의 풍경을 향해 있었다.
여기는 이상한 나라다. 엘리스가 있고 모자장수와 토끼가 있는 꿈속 세계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램 수면? 아닌 것도 같고.
스가와라는 멍한 눈으로 어둠이 짙어지는 하늘을 응시했다.
어스름이라고 하는 것들이 산을 넘어오는 중이었다. 저녁이 내려앉은 땅의 모양은 낯설었다. 매일 등교하면서 보던 현대식 건물도, 편의점 간판도, 가로수도, 신호등도 사라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매우 오래되었고, 낡았으며, 지저분했다. 먼지와 잡초만 잔뜩 있어 멋대가리 하나 없었다.
「저런 학교 밖 풍경, 난 몰라. 모르는 곳이야.」
이윽고 단단한 계단 표면에 어깨가 닿았고 내동댕이처진 몸뚱이가 반동으로 절반쯤 더 돌아갔다.
꿈인데, 꿈이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충격으로 팔이 부러진 것 같았다.
머리 위로 3학년 선배들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반장, 그리고 토할 것처럼 보이는 이시즈미가 보였다.
그리고 스가와라 미즈키의 의식이 뚝 끊어졌다.

반면 이쪽의 의식은 천천히 돌아오는 중이었다.
몸이 두 번 뒤집어진 느낌이었다. 쭉 빨려간다는 기분도 들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 바퀴 빙 돌았을 적에 맛보았던 현기증 비슷한 감각이 몸을 흔들었다.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린 이이지마 하나에는 자신이 차가운 바닥에 뺨을 대고 대자로 뻗은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신음하며 두 팔로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후들거리는 팔이 체중을 이기지 못한 탓에 얼굴이 다시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몸이 무거웠다. 중력이 1이 아니라 4인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우주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면 프라이팬에서 요리되고 있는 오코노미야끼 같았다.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 그렇게 나눠서 새긴 다섯 개의 봉인술식 중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땅바닥에 붙어 움직일 기력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속이 메슥거렸다.

『정신이 들어? 기분은 어때, 중학생.』
『물어봐줘서 정말 고맙네. 우욱...! 답을 하자면 개떡 같... 욱.』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원망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던 이이지마 옆에서 고죠 사토루는 보는 사람 무안하게 냄새가 지독하다며 코를 움켜쥐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달한 복숭아 향과 섞여 술 냄새가 진동했다.
『토지신이라더니, 으웩. 술주정뱅이 신이었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세상에, 술독에 빠졌다 나온 냄새가 나잖아! 어우. 냄새만 맡아도 취할 것 같다.』
『그게 내 탓이야? 내 탓이냐고!』

말과는 달리 바닥에 누운 채 바르작거리는 모양이 취객의 그것과 너무 흡사했던지라 보고 있던 게토 스구루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며 붉어진 눈빛이며, 이마에 넥타이를 두르고 새벽 택시를 부르는 샐러리맨과 너무나 똑같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전봇대와 다투려 할지도 모른다.
옆구리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우자 농밀하게 익은 과일주의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알코올에 면역력이 없는 고죠 사토루가 코를 쥐고 저만치 달아날 법도 했다. 자칭 우주 최강 주술사는 육안과 무하한의 상전술식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 대단한 몸뚱이에는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었다.
『설마, 내가 한 일이 봉인술식 해제가 아니라 100년 묵은 술독의 봉인을 푼 건 아니겠지.』
그래서 질색하며 얼굴을 구겼다.
   
미성년의 신분으로 숙취의 고통을 진작부터 경험 중인 이이지마는 닥치라는 의미로 가운데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뇌가 바글바글 끓는 중에도 감각은 기민해져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을 소음이 들려왔다.
수백만의 생명체가 제각각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고, 물이 사방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건물은 뒤틀렸고, 하늘은 위로부터 닫혔다. 쏟아지는 정보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잘 됐다. 손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도와주지 않겠니?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가 커다란 뱀의 머리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1학년인 스가와라 미즈키가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리고 뱀의 머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따라갔다.
네 눈엔 이게 무엇으로 보이니?
검은 뱀의 커다란 머리를 들고 있던 다나베 고우지가 자세히 보라며 앞으로 내밀었다.
몸통에서 잘려나간 뱀의 머리는 크기가 너무 커서 진짜라는 느낌이 나지 않고 모형물 같았다.
잘린 머리의 뱀이 눈을 흡떴다.
검고 검은 눈.
그러자 기모노 차림새의 젊은 여인이 손도끼를 들어 뱀의 머리를 내리쳤다.
소원을 빌어라. 머리가 잘린 뱀이 외쳤다.
칼을 차고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공양물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검게 변한 눈을 하고 그 남자가, 그 여자가, 그 무리가, 뱀의 쉭쉭 소리를 흉내 내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신이여,

외치자 바닥이 검게 변한 피로 물들어갔다.

Posted by 미야

2021/05/06 16:01 2021/05/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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