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전화기가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먹다 남은 과자봉지와 초콜릿 포장지가 소심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흘깃 보니 고구마 맛탕 과자다. 행정직 직원은 화재경종을 듣고 대피하면서 까먹던 간식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금방 돌아올 거라고 여겼는지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과자봉지 입구를 개어두지도 않았다.
그 태평스러움에 어쩐지 맥이 풀리려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과자봉지를 시선에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전화기 숫자 버튼을 눌렀다.
「리쓰 할아버지가 한 번에 전화를 받아야 할 텐데.」
생활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 이이지마 리쓰는 핸드폰 충전하는 일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먹거리를 구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제 날짜에 공과금 내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모두가 핸드폰을 쓰는 시대에 이이지마 리쓰는 고집을 부리며 가정용 집 전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모르지 않았기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핸드폰이 아니라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거실에 있는 전화기가 때릉때릉 울리면 서재에서 일을 하던 리쓰가 전화를 받으러 나오기도 전에 제멋대로인 성격의 사역마가 튀어나와 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는 거다. 벨 소리가 거슬린다는 게 이유였다.

신호가 다섯 번 갔다.
제발, 이러고 기원의 말을 중얼거리는데 신호가 뚝 끊어졌다.
「망할! 식충이 파충류 사역마가 이번에도 또!」
주먹질로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뚜우, 하고 죽었던 신호음이 다시 이어졌다.
학교 행정실에서 쓰는 공용 전화기는 집 전화와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들끓던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여보세요? 리쓰 할아버지?』
다행이다. 별 문제없이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졌다.
《무슨 일이니, 하나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듣자마자 기분이 시궁창에 처박혔지만.

『카이 삼촌?』
《하나에.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네 삼촌이 아니야.》
남자는 상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정한 것도 아닌 모호한 어투로 관계부터 재정립하고 보았다.
사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는 리쓰의 작은아버지로, 건너건너건너 먼 핏줄로 태어난 하나에와는 사실상 타인이나 마찬가지라서 하나에가 그를 삼촌 호칭으로 부르는 건 맞지 않았다.
그렇다한들 그녀가 카이를 삼촌으로 부르는 건 일종의 버릇이었고, 그때마다 카이가 나는 네 삼촌이 아니다, 지적하는 건 온전히 습관이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리쓰와 카이는 데면데면한 관계다. 아니, 이이지마 카이가 일방적으로 조카 리쓰로부터 거리를 두는 편이다. 명절을 맞아 본가로 찾아오는 일도 없고, 안부전화를 걸어오지도 않는다. 초대를 하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 끝내 거절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어진 사이도 아니다보니 뭐랄까.., 비유하자면 늘그막에 이혼한 부부처럼 건조했다.
다시 말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손님으로 놀러온 카이가 거실에서 여보세요 이러고 수화기를 든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어째서 리쓰 할아버지 집에서 카이 삼촌이 전화를 받는 건데?!』
《무슨 소리니, 하나에. 번호를 헷갈렸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끊지 마세요.』
비유하자면 퀴즈 프로그램에 나간 참가자가 외치는 전화 찬스 같은 거다. 연결이 잘못되었다고 바로 끊어버리면 정답을 맞힐 기회는 영영 날아간다.
《급한 일이라서... 설명하자면 길지만 도움이 절실해. 학교에 문제가 생겼는데... 부해가, 제기랄, 이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침착하렴.》
『지금 느긋하게 굴 때가 아니야, 삼촌. 그러니까..., 고쿠로쿠치나와님은 죽어서 부해만 남은 거 아니었어? 아니면 죽은 신은 좀비로도 변할 수 있는 거야? 여기, 우리 학교 지금 지랄 났어!』

어떤 말이 지뢰 포인트가 되었는지 몰라도 이이지마 카이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지랄이 났다 라... 흠. 과연. 큭! 게다가 좀비라니, 그럴 리 없잖아. 잘 생각해봐, 하나에. 고쿠로쿠치나와님이야. 이름 그대로 머리 넷 검은 뱀님이라고.》

잘난 주술사들은 신을 조복하겠다며 떠들어댔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풍이 상륙하는데 거센 바람을 막아보겠다며 나무판자를 세우고 모래주머니를 산처럼 쌓아봤자 쓸려 나가는 건 크게 변함이 없다.
실제로도 이름을 날리던 술사 후지와라 오오모리노, 아베 나타, 하루하라 나쓰미, 아라후네 마시즈 등이 죽었다. 멀쩡한 자기 손가락을 하나 자르고 주물을 대신 상처에 붙이고 갔던 카리야세 사치코는 각오했던 바 그대로 뼈조차 안 남기고 장렬하게 산화했다.

《머리가 네 개. 자른 건 세 개.》
산수는 할 줄 알지? 넷 빼기 셋은 얼마 게.

목덜미가 서늘했다.
이이지마 카이는 주술사다. 본인은 어쭙잖은 잔재주를 부리는 정도라며 스스로의 능력치를 비하하지만 이이지마 하나에의 몸에 고차원의 봉인술식을 새겨 넣은 사람도 카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부의 사역마를 부리며 주술로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닌데 그냥 알 수 있었다. 카이는 이단(異端)이다.

부근은 토지신이 부재하여 덕분에 부해가 들끓는다고 했다.
8백만 신들에게 맛있는 잔칫상 음식으로 노림을 받고 있는 이이지마 하나에가 숨어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라고 했다.
몇 가지 꼼수를 더하면 완벽할 거라고 속삭였다.
주력을 담은 팔찌를 만들어 주고, 가서는 안 되는 장소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장소들을 알려줬다.
고쿠로쿠치나와님의 사당을 청소하라며 참배 길을 올라가게 만든 사람도 카이다.
콧쿠리님을 모시라고 아이들에게 암시를 걸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다.
매번 잔소리처럼 너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잘라 말하는 사람이었다.

전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음의 고저 없이 차분했다. 어쩐지 독이 든 사과인양 달콤하기까지 했다.
《왜 말이 없니, 하나에. 듣고 있단다.》
이이지마 하나에의 목소리도 덩달아 낮아졌다. 떨림을 감추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다.
『있잖아, 카이 삼촌... 카이는 왜 나더러 카제야마 중학교에 가라고 했어?』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나에게 그게 좋을 거 같아서야, 아님 카이 삼촌에게 좋을 거 같아서야?』
《너를 위한 건 결코 아니었어. 그렇다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어.》
『그건 무슨 뜻?』
《리쓰를 위해서.》
『뭐야 진짜... 그거 무슨 뜻인데.』
《인간은 신을 죽일 수 없어. 네가 너에게 손대지 못한 까닭이지. 신을 죽이는 건 신이다. 그러니까 이제 이 지긋지긋한 광대 짓을 멈추고 거기서 얌전히 잡혀 먹히라는 얘기야, 하나에. 틈만 나면 심기 여린 내 조카에게 달라붙어 살려 달라 애원하는 짓은 그만 하고, 이 양심도 없는 계집애야.》
하나에는 숨을 들이켰다.
『야, 이 미친놈아! 나는 아직 미성년이라고! 어른이면 도와줘야 하잖아! 사지로 몰아넣는 게 아니라!』
《소리 지르지 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 이대로는 8백만 신들에게 잡아먹힐 거라며 도망쳐온 게 3년 전이야. 무려 3년이라고. 어리니까, 약하니까, 앞으로도 계속 도와줘야 한다고? 그동안 조카 녀석이 몇 번을 손을 내밀어줬는지 기억은 하고 있나.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것만으로도 부족해 앞으로도 쭉 목숨까지 구해 달라? 어리광이 심하잖아. 너무한 건 너다.》
『카이 삼촌!』
《항상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너의 삼촌이 아니야. 하나에.》
냉정하게 잘라 말하고 카이가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오리라고 어딘가로 짐작하고 있었던 건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 이이지마 카이는 부의 주술사입니다. 주술회전 설정으로는 주저사가 되겠군요.
백귀야행도 후반부를 보지 못했고, 주술회전은 만화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건 아닌데, 라는 부분이 당연히 많습니다.
주술회전 설정이라면 식신인 아오아라시가 인간의 말을 한다는 건 무리죠. 그래서 아오아라시의 등장도 뺐습니다. 후시구로가 옥견을 부르는 것처럼 이이지마가 아오아라시를 불러내면 제법 멋질 것 같지만... 네, 삭제.
다음부터 후반부 들어갑니다. 업로드 속도는 많이 느려질 예정입니다.

Posted by 미야

2021/04/08 13:42 2021/04/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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