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축해드릴까요.』
『하여간 요즘 것들은 영화도 안 보지. 소설 읽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영화 정도는 봐야할 거 아냐. 비상사태일 적엔 야밤에 움직이면 죽어. 하여간 뒈지려고 환장한 것들.』
경관은 안드로이드를 싫어하는 쪽이었다.
손을 내민 조지는 보고도 안 본 듯이고, 툴툴대며 얘기를 붙여본 건 제임스 쪽이었다.
안드로이드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기계가 말을 걸어오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 심하면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고 어쩌다 몸에 닿기라도 하는 날엔 질겁한다.
조지는 요령껏 물러섰다.
『잠깐. 그 총 집어 올리는 날엔 귀싸대기가 석 대야.』
남자는 구석에 떨어져있던 총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수그리던 제임스에게 묵직한 경고를 한 방 날린 다음, 본인이 직접 무기를 회수하고 재빠르게 탄창을 분리시켰다.
실루엣만 봤을 적엔 노인이라고 착각했지만 목소리도 그렇고 아직은 젊은 사람이었다.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고 새치가 많은 탓에 열 살은 족히 늙어 보였어도 50대가 맞을 거다. 운동 좀 하고, 숙취로 고생하는 간을 잘 달래주고, 헤어숍에서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만 해도 퇴물 노인네로 오해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어지간히 자기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입고 있는 셔츠의 깃에도 진한 갈색의 얼룩이 묻어 있었다. 사람의 피는 당연히 아닐 테고, 짐작하자면 칠리맛 양념 소스였다. 그걸 알아차린 까닭은 톡 쏘는 매운 냄새가 나서다.
『그래도 상대가 잔챙이들이어서 다행이었어. 그치?』
직업적 버릇인지 제임스의 얼굴을 자세하게 뜯어보던 사내가 쉰 소리를 했다.
『잔챙이... 입니까?』
그가 가리키는 잔챙이의 기준을 알 길 없었던 제임스는 뭐라 대꾸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복경관의 기준에는 길거리에서 베레타 총을 쏘는 정도로는 거물의 반열에 오르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디트로이트의 전체 범죄발생율과 검거율을 따져봤을 적에 과연 잡범 취급이 맞는지는 논외로 하고, 그러고 보니 이런 말도 했다. 이 새끼도 총질, 저 새끼도 총질, 애들 장난도 아닌데 총질 – 미국은 일반인 무장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국가이다.
『어수룩하게 황야의 총잡이 흉내를 내는 것들이니 잔챙이지. 자세가 되어있지도 않고, 겉멋만 잔뜩 들어선 뒷마당에 세워둔 알루미늄 맥주 캔 맞추듯 조준하고 앉았는데 그게 잔챙이가 아니면 뭐겠어. 진짜지 한 손으로 총 쏘는 놈들은 대가리를 땅바닥에 처박아야 한다니까. 반동이 제법 있으니 멋 부리면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해도 뒷등으로도 안 듣지. 그러니까 옆 사람의 불알을 실수로 날려버리는 거 아냐.』
『총알이 앞이 아니고 옆으로도 날아갑니까.』
『뒤로도 날아간다. 그런 등신짓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걸.』
『그런데 경관님.』
『경위다. 앤더슨 경위.』
『아... 예, 경위님. 그런데 왜 제 눈앞에서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고 계신 건지요?』
『걍 확인하는 거야.』
의사가 뇌진탕 환자를 앉혀두고 그러는 것처럼 손가락이 좌우로 천천히 왕복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단은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약 먹는 놈은 눈동자 움직임이 달라서 말이지. 부스터 장치를 단 탁구공처럼 휙휙 튕기거든.』
경위가 언급한 약이 소화제나 진통제, 종합감기약 같은 종류는 분명 아닐 것이다.
제임스가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경위는 살짝 친절해졌다.
『항상 약쟁이들이 문제야.』
그래봤자 메추리알 정도 크기의 친절함이었지만, 어쨌거나 분노를 씹어 삼킨 것 같던 말투가 다소 누그러졌다.
『내전이 일어나느냐 마느냐의 상황에 약 찾아다니는 놈들이야. 아님 팔러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하여간 구제불능이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갔는데 따당, 베개 베고 누웠는데 따당... 그러면 우리 집 개가 밖에 나가 보라면서 짖는다고. 이름이 스모인데 집 지키는 일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라 믿는 놈이거든. 아주 완벽한 생명체지.』
그런 개가 어째서 완벽한 생명체냐고 묻기도 전에 앤더슨 경위가 조지를 향해 빙글 돌아섰다.
『일단 묻자. 쟤는 뭐냐.』
화살이 본인에게로 향하자 조지는 예의바르게 자기소개를 했다.
『조지입니다. 반갑습니다, 앤더슨 경위님.』
『인사는 집어치우고.』
거기까지 말한 경위는 탄창을 분리해둔 권총을 마누라에게 자동차 열쇠 건네듯 가볍게 던졌다.
뜬금없이 공 던지기 놀이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봤냐?』
『무엇을요.』
앤더슨 경위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혀를 끌끌 찼다.
원래 안드로이드는 총기류를 직접 만질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다. 케이스에 든 경우만 예외가 적용된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앤더슨 경위가 탄창이 빈 권총을 슬쩍 던졌을 때 안드로이드는 이에 반응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던져진 무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지는 걸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아니면 일단 손으로 받았다가 행동제어 시스템에 따라 바닥에 내려놓아야 한다.
조지는 손에 쥔 권총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모종의 이유로 행동제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류의 행동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저치는 불량품이야?』
『저는 불량품이 아닙니다.』
『그럼 군용 안드로이드란 소리인데, 부대에서 탈주했어?』
『아니오.』
『불량품도 아니고, 군용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하는 짓을 보면 말이 안 되는데.』
날카롭게 추궁하는 시선이 조지로부터 제임스에게로 넘어갔다.
『네 녀석 소유의 안드로이드가 아니라는데 1달러를 건다. 어디서 주웠어.』
제임스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조지는 우리 집 붙박이 장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와. 이 새끼 말 지어내는 거 보소... 아니면 뭐야. 진짜로 커밍아웃 (* coming out of the closet 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이야? 둘이 커플이라서... 같이 붙어 다녔어? 너희들, 사귀냐?』
눈치가 없는 제임스는 상대가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걸 못 알아챘다.
『안 사귑니다. 조지와 교제를 하기엔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어?』
『그리고 교제를 하려면 그 전에 데이트를 해야 하는 법이지 않습니까. 저희는 데이트를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경위님의 판단과는 별개로 조지와 저는 커플로 인식될 수 없습니다.』
『......』
이 새끼 정체가 뭐야.
1분 정도 지나고 난 후, 앤더슨 경위는 빼애액 기함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