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도로를 가득 메운 안드로이드를 보여주었다.
헬리콥터에 올라타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를 연거푸 외치던 채널16의 기자는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뜻으로 백만이라는 숫자를 거론했다.
하나하나 세어보진 않았지만 실제로 그 정도 숫자는 되었을 거다.
사이버라이프 조립공장 지하에서 출시를 기다리고 있던 안드로이드 집합체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던 앤더슨은 백만이라는 숫자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파트너였던 코너는 벨섬의 지하 49층에 있던 건 백만 대가 아닌 수천 대였다고 오해를 바로잡아 주었지만 워낙 인상이 깊었던 탓에 한 번 인식된 백만의 수는 제대로 정정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바닷가 모래와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음과 동의어였다.
워렌 대통령이 전례 없는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려줄 것을 상원에 요청하겠다며 성명을 발표하고 꼬리를 내린 것도 숫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여론이야 얼마든지 흔들어댈 수 있다. 워싱턴 정계 사람들은 조작의 달인이다.
그러나 거리를 가득 메운 안드로이드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터다.
대통령은 텔레비전 생중계 화면을 보며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모두 걸기엔 도박판이 너무 커졌다는 걸 깨달았을 거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카드를 테이블에 얌전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만이란 숫자는 그런 힘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오늘. 앤더슨 경위는 혀 위로 의문부호를 굴렸다.
『그 백만 지금 다 어디로 갔냐고~!!』
대통령이 공을 넘기자 상원은 작정하고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때마침 주말이라 핑계도 좋았다. 공화당 계열의 오하이오, 노스다코타, 텍사스 상원의원은 이럴수록 서두르지 않는 게 좋다며 느긋한 걸음걸이로 상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올해 나이 일흔 아홉의 루이즈 매디슨 의원은 기자들을 향해 손도 흔들어 주었다. 전직 헐리우드 영화배우여서 레드카펫을 걷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매디슨 의원의 상의에는「미국이여 단결하라!」구호가 새겨진 배지가 달려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 배지를 클로즈업 했다.
상원 모임은 월요일에 재개될 예정이다.
그동안 그들은 집에서 발 뻗고 쉬고만 있지는 않을 거였다.
안드로이드의 지도자 마커스는 뻔히 보이는 인간들의 행태에도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는 별도의 성명을 내지 않았고, 결집을 호소하는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이번 평화시위를 지지하는 정치적 소모임과의 만남도 유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효과적인 압박 행위다.
행크 앤더슨 경위는 그가 제대로 된 무서운 놈이라는 걸 그래서 알았다.
하트 플라자에 한데 모여 있던 안드로이드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긴급조치 71조 발동으로 도심에서의 헬리콥터 비행이 금지된 관계로 해당 모습은 촬영이 되지 않았지만 몇몇 작동중지 이전의 CCTV 영상은 남았다.
어떤 의미에선 대단히 기분 나쁜 영상이었다. 안드로이드들은 입은 뻥끗도 안 하면서 서로의 팔을 잡았고, 동시에 데이터 교환을 완료했다. 그리고는 일사분란하게 광장을 떠났다.
의외였던 건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진 동료의 시신... 아니, 잔해를 고스란히 길바닥에 내버려두었다는 거다.
죽음에 대한 접근법이 인간과 달라서인가?
안드로이드는 정원학파 (* 에피쿠로스 학파) 의 사상을 계승했나?
그들이 동료의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충격적이었을 테지만.
뭐, 좋다, 이거야. 그 부분은 차후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고.
어렵게 분기점을 넘은 이 마당에 길거리에서 매 맞는 안드로이드라는 게 말이 되냐고.
눈이 뒤집힌 앤더슨을 옆에 두고 제임스와 조지가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갔다.
『반팔 티셔츠가 낯이 익어서 그러는데... 마이클 맞습니까?』
『전혀 모르는 안드로이드라고 발뺌하고 싶은데 안 되겠네요. 그리고 변명하려는 게 아니고 쟤는 진짜로 남의 말 안 듣습니다. 저는 분명히 보충용 블루 블러드를 구하기 전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저어, 그런데 원래 안드로이드도 욕을 할 줄 압니까? 방금 마이클이 애미 뒤진 것들이라고 고함을...』
『언어 패키지 선택 옵션입니다. 그 부분은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쑤까 블럇, 이러고 욕하는 이국적인 안드로이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가격도 이상해서 1달러 29센트에요.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 한 개 가격도 되지 않습니다. 사이버라이프의 의도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Asshole 이라 외치라는 건 아닌지 의심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덧붙였다.
『저는 욕하는 거 안 좋아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조지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재빠른 손동작으로 앤더슨 경위에게 핸드폰을 되돌려주고 대신 탄창을 가져왔다.
『무슨 짓이야!』
『급소를 노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끼어 넣고, 안전장치 해제, 슬라이드를 당긴 뒤, 무작위 테스트 1점 발사하기까지 1.5초.
『관리가 엉망이어서 그런지 오차 각이 크군요. 왼쪽으로 쏠렸어요.』
다리를 벌려 자세를 잡고, 각도를 재조정, 목표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까지 2.2초.
200미터 떨어진 앞에서 사람 하나가 오른쪽 귀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조지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3mm 비껴갔습니다.』
사람이 안드로이드에게 총을 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도 사람을 총으로 쏘면 안 된다.
야, 인마 욕하며 멱살을 움켜쥐려 시도하는 앤더슨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면서 조지가 말했다.
『전언입니다. 저쪽은 더블액션 다연발 자동권총으로 무장했답니다.』
제임스와 앤더슨의 몸이 뒤로 밀쳐졌다. 그리고 한참 떨어진 지점으로 아스팔트 조각이 팟팟 튀어 올랐다.
『다행히 명중률은 형편없군요.』
조지의 눈꺼풀이 빠르게 깜빡깜빡 움직였다.
짐작하자면 근거리에서 마이클과 정보를 주고받는 중인 듯했다.
『상대는 마약밀매업자들입니다. 총 여덟 명입니다. 아니, 아홉입니다. 무장 수위가 높습니다.』
『그 마약밀매업자에게 누가 총을 쐈더라... 늙어서 그러나 기억이 나질 않네.』
『접니다, 경위님.』
『자랑하듯 말하지 마!』
화가 치밀어 오른 앤더슨 경위는 조지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려 했다.
의도는 그러했고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헛스윙 했다.
이 와중에도 조지는 앞으로 세 걸음 나가 연속으로 두 발을 더 쐈다.
덕분에 넘어졌던 마이클이 빠져나갈 기회를 얻었다. 마이클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일어서더니 뭐라고 욕을 했다. F자로 시작하는 찰진 욕이었다.
폴딩형 잭나이프로 마이클의 뱃가죽을 가로썰기 하려던 자가 욕설에 반응하여 삿대질을 했다. 어쩌면 삿대질이 아니라 신호였던 것일 수도 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든지, 죽이라든지, 끝장을 내라든지. 그리고 사내는 뒤돌아 조지를 향해서도 손가락질을 했다.
하여 저기에 좋은 표적이 있습니다, 식으로 총 맞을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 근데 거기를 날린 건 아니지? 그치?』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나 죽는다 뒹구는 건 다른 사람인데 식은땀은 왜 본인이 흘리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앤더슨 경위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