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게임 자체가 몇 주에 걸쳐 일어날 일을 하루에 다 처리해버립니다.
큰 가지는 평화루트 줄거리를 따라갑니다. 마커스는 평화행진을 했고, 불량품이 된 코너는 행크와 절친이 되었고, 카라와 앨리스, 루터는 버스가 아닌 배를 타고 캐나다 밀입국을 시도했습니다. 게임의 주축을 담당했던 셋을 주인공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을지도...
『마빈에게로 그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동료를 혼자 두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녀석의 이름은 마빈이 아니고 마이클입니다. 걱정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만, 마이클은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이가 아니니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할 겁니다.』
졸졸 따라오지 말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했더니 조지는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캐나다로 입국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 해도 따라오려나, 싱거운 생각을 하며 쌓인 눈을 피해 걸었다. 예상 밖으로 도로가 미끄러웠다. 운동신경이 둔한 제임스는 균형을 잃고 몇 번 비틀거렸다.
『하지만 손상이 심해 보였는데요.』
『겉 표면에 절상이나 열상, 자상과 같은 손상이 발생하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래도 대단히 치명적인 것처럼 보이죠. 그렇게 보여도 사이버라이프 기술자의 전문적인 처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수준은 아닙니다.』
『총에 맞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22구경 대인용으로 쏘더군요.』
『그게 아니라... 총에 맞았는데 괜찮다고 할 수 있는지 물은 건데요.』
『예. 그래서 22구경 대인용이었다고 답변 드린 겁니다.』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제임스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가만히 생각에 잠겼고, 아주 한참 뒤에야 그 뜻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원 샷 원 킬의 무지막지한 화력을 가진 놈이 아니라 따당 따당 쏘는 인간 제압용 권총에 맞았다는 거였다. 경갑무장한 군인이 안드로이드 수용소의 통제권을 전부 가져가기 전까지, 시간으로 따지면 약 4시간 정도 민간 사설업체 용역직원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탄약을 사용했는데 창고 털어가는 도둑을 막기 위해 쓰는 그런 종류였다.
『운이 따랐군요.』
『뭐라고요?』
생각을 너무 길게 한 탓에 둘 사이의 박자가 맞지 않았다.
조지는 고개를 들어 상가 전면에 낙서된 구호를 보고 있었고, 22구경 대인용 총알에 대한 건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한참 입 다물고 있다가 뜬금없게 운이 좋았다고 입을 뗀 제임스가 미친 사람처럼 여겨졌다.
자유!
어둠속에서도 푸르게 발광하는 특수 전자도료로 적혀진, 사이버라이프 기본 그래픽체 형식의 글자는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지나치게 반듯해서 광고판의 문구 중 하나처럼 보였다. 공중으로 번쩍 날아오른 프로 농구선수의 사진 뒤로 「자유!」라고 적으면 고가의 브랜드 운동화 광고가 된다.
하지만 저 글자가 운동화 광고가 아니라는 건 조지도 알고 제임스도 알았다.
불량품 안드로이드가 자신들을 인류와 동등한 생명체로 존중해 달라면서 구호를 새겨놓았다.
이쯤해서 조지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자유!」라는 구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푸르게 발광하는 자유라는 글자 위로 붉은 페인트를 사용해 다음의 낙서가 덧칠되어 있었다.
안드로이드를 죽여라!
줄줄 흘러내린 안료가 핏자국처럼 보였다. 글자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문제는 바닥으로 진짜 피도 흐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짐짓 자세를 낮춘 조지는 웅덩이를 이루다 빠르게 증발한 푸른 피의 흔적을 보았다. 벽면에는 고속으로 튄 점 모양의 자국도 남아 있었다. 티리움이 흩뿌려진 모양으로 봐선 누군가 이 장소에서 처형식으로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날렸다. 무릎을 꿇린 뒤 가까이에 대고 두 발을 쐈다.
안드로이드는 벽을 바라본 채로 최후를 맞이했는데 가엾게도 생애 마지막으로 두 눈에 담았을 것이 「자유!」였다는 점에서... 뭐랄까.
안드로이드를 죽여라! 붉은 페인트로 벽을 덮은 건 처형을 마친 뒤다.
미친 슬로건이다.
저들은 안드로이드들을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그 발악을 떨고 있던 게 아니었나.
그러면서 안드로이드를 죽이자 선동을 한다?
어째서 저들은 파괴하라, 또는 없애자, 그것도 아니라면 부수자, 이런 표현 대신 죽이자는 말을 고른 건가. 애초에 생명체가 아닌 걸 죽일 수는 있는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폭도들은 작동이 중지된 안드로이드를 밧줄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질질 끌고 갔다.
여러 명의 발자국에 뒤섞여 끌린 흔적이 주행도로 한 가운데로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조지는 버럭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어졌다.
여론은 안드로이드가 펼친 평화적 시위에 그럭저럭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부가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파괴적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사람으로 강성 기독교 우파 파벌에 속한 로버트 휴이 목사를 꼽을 수 있다. 목사는 케이블 방송에서 악마, 불지옥, 예수의 이름으로 심판, 안드로이드는 지옥으로 갈 지어다 아멘 아멘을 외쳤다.
설교에 동조한 이들은 붉게 칠해진 십자가 장신구를 목에 걸었다. 몇은 「우리는 주의 십자가 군단병」 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마네킹 사지에 밧줄을 걸어 질질 끌고 다니는 야만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를 수호할 최후의 전사라고 주장했다.
끌려 다닌 마네킹의 팔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나갈 적마다 환호가 터졌다.
오체분시 된 마네킹 잔해가 던진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해서 이들의 집회 장면을 뉴스로 내보내던 방송국은 화면을 전부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했다.
조지는 끌린 흔적을 쫓아 빠르게 달렸다.
가서 어쩌려고.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없잖아. 굳이 눈으로 확인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런데도 뛰는 속도가 느려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르면서 제임스도 따라 달렸다. 사실 달린다고 하기엔 뭔가 애매한 수준이었지만 어쨌거나 뛰었다.
이 앞으로 뭐가 있더라, 미친 듯이 숨을 헐떡거리며 아는 걸 곱씹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편의점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코인 세탁방, 패스트푸드 음식점이 차례로 기억났다.
햄버거 가게 주인은 40대 남자였는데 더운 계절이 오면 간이 판매대를 세우고 과일 맛 얼음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위생 점검을 나온 공무원이 벌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아이고, 선생님!!」 우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꼭 가벼운 배앓이를 했던 제임스는 이 햄버거 가게를 싫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인쿠폰은 반드시 모아뒀었다.
지나치면서 보니 가게는 판자로 입구와 유리창이 모두 막혀 있었다.
안드로이드 시위가 시작되면서 당분간 영업을 포기한 눈치다.
입구를 막은 판자 위로 방금 전 봤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안드로이드를 죽이자!
그로부터 두 블록을 더 지나쳐 조지와 제임스는 3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사이버라이프 서비스 센터.
누군가 자동차로 매장 안까지 돌진이라도 한 모양새다. 출입구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부는 천장까지 주저앉았고 거기에 불까지 질러서 검게 그을린 외벽에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가 빙 둘러졌다.
그리고 아마도 간판이 있었을 자리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두 팔을 벌린 안드로이드가 매달려 있었다. 목에는 올무가 걸렸고, 공구를 사용해 손바닥에 대못을 박았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던지 몸통은 거의 녹아내렸다.
『씨발!』
보다 못한 조지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