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쌍둥이 형제처럼 보였다.
여기서 부연설명을 좀 해야겠다. 일부 일란성 쌍둥이들은 부모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생겼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이고 대다수의 일란성 쌍둥이들은 미묘한 차이를 보여 개인 구분이 가능하다. 동생 쪽 눈썹이 더 처졌다던가, 형 쪽의 입술 아래로 점이 있다는 식이다. 턱에 살이 더 붙은 것만으로도 인상이 달라진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을 뿐인데 웃는 모습이 다르다. 보조개 위치가 정 반대인 경우도 있고, 입가 주름 깊이가 차이 나기도 한다.
『우리 둘은 같은 모델입니다. WS-GL645 시리즈입니다.』
도넛 모양의 LED 링이 파랗게 반짝반짝 빛났다.
여기서 제임스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같은 모델의 안드로이드들은 붕어빵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이 생겼다. 실제로 그들은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종류였고 따라서 나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주근깨의 위치까지도 전부 똑같았다. 설정 변경으로 머리카락 색에 변화를 주고 긴 생머리를 정수리까지 올려 묶는 식으로 차이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스티커를 표면에 붙여봤자 대량생산된 물건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모델명이 같은 안드로이드는 개체 구분이 안 된다.
이 둘은?
구분이 잘되었다.
홈디포 철물점 로고는 보다 얼굴선이 둥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콧대가 뾰족하고 눈매가 도톰해서 말 안 듣는 고양이 인상이었다. 단지 입맛에 맞지 않은 간식을 내놓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종아리에 시뻘건 오선지를 마구 그려대는 얄미운 고양이 말이다.
뻗어버린 제임스의 뺨을 찰싹 쳤던 쪽, 그러니까 어린 동생의 옷을 억지로 빌려 입은 쪽은 광대뼈가 더 도드라졌다. 눈매도 깊어서 음영이 또렷했다. 아주, 진짜, 진짜, 조금의 차이였지만, 그런 사소한 차이가 한데 모여 남의 옷 빌려 입은 쪽이 더 억센 인상이었다.
안면 커스텀은 어디까지나 불법이 아니다.
자동차를 튜닝하듯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성형해도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는다.
단, 안드로이드의 외모는 저작권 등록을 모두 마친 상태라 개인 취향에 맞게 코나 입을 고치려면 일단 제조사인 사이버라이프사의 동의부터 먼저 구해야 했다. 이를 다시 풀어 적자면 귀찮은 법적 전자문서 작업과 그에 따른 변호사 고용 같은 부가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는 얘기다. 그저 얼굴을 약간 손보는 일에 말이다.
돈이 남아돌다 못해 썩을 지경의 부자들이 돈 지랄의 의미로 안드로이드 안면 성형을 잠깐 유행시켰지만... 북극해에 작은 인공 섬을 띄우고 그 위에 땅콩 별장을 짓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유행은 빠르게 잦아들었다.
그 북극해 별장 만들기도 지금은 인기가 식어 우주관광 산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달의 분화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야 한다며 다들 난리다.
이 마당에 같은 모델이면서 인상이 다른 얼굴을 가진 안드로이드 두 대라니.
남의 옷 주워 입은 쪽이 자기소개를 했다.
『조지입니다.』
뒤편에서 철물점 로고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마이클.』
맨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제임스가 웅앵댔다.
『제임스 무어입니다.』
희극이 따로 없었다.
『거실 유리창이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보안에 더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벽을 타고 기어 올라와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입장에서 할 말이던가.
제임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음에도 조지는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많은 분들이 높이가 있으면 침입이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만, 피지컬이 좋은 도둑들은 경이로운 절도행각을 종종 보여주곤 하지요. 12층 높이까지 가스배관을 타고 기어 올라간 경우도 있으니 앞으로는 외출 시 창문의 걸쇠를 잠그고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무단침입을 감지하는 센서를 별도로 설치하여...』
『잠깐만요.』
『전자기적 장치인 만큼 해킹의 위험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 거주지의 보안환경을 고려하자면 몇 가지 안전용품을 추가 설치할 것을 권고....』
『저기요?』
『아, 그렇군. 사과하겠습니다.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군요. 아무래도 찬 바닥에 오래 누워있으면 몸에 부담이 되지요. 늦게 알아채서 미안합니다.』
『일으켜달라는 게 아니라... 저기, 갑자기 팔을 그렇게 잡아당기면! 아악!』
『어지럽습니까? 그렇다면 의자에 앉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이클? 가서 식탁의자를 가져와.』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의자에 앉으니 느낌이 더 안 좋았다.
안드로이드 마이클과 조지는 제임스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컸다. 그 상황에서 키 작은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으니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머리를 박박 민 조직 폭력배가 교도소에서 새긴 해골 문신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걸 억지로 지켜본다는 그런 느낌... 형님, 문신이 현대 예술이네요 입 발린 칭찬을 하며 다른 한편으론 도망칠 구멍을 찾아 눈동자를 도록 굴리는 풋내기가 되어 의자에서 주춤주춤 엉덩이를 움직였다.
말로 합시다.
제가 가장 못 하는 일이 말 하는 거긴 합니다만.
『변명이 아니고, 저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감합니다. 안드로이드의 인권이나 이번 해방운동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벌어진 사건에 보탤 제 개인 의견이 없습니다. 존엄성과 권리, 희망 이런 거 필요하시면 마음대로 가져가시고, 부탁이니 그냥 돌아가 주셨으면.』
진짜 싫었지만 무릎 꿇고 빌 의향도 있었다.
『아니면 제가 가방 들고 나가겠습니다. 처음부터 나갈 작정이었고요. 그러니 두 분은 여기 그냥 계시지요.』
천박하게 웃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를 노예처럼 부린 적 없습니다. 제가 직접 공과금 납부하고, 청소하고, 세탁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쓰지 않습니다.』
횡설수설하는 와중에 마이클이 도중에 말을 끊었다.
『그런 것 같더라. 개수대 주변이 엄청 지저분했어.』
아무래도 마이클의 주인은 안드로이드의 말투를 「양아치」로 세팅한 듯하다.
『당신이 제 머그컵을 만졌군요.』
『맞아. 처음엔 내버려둘까 했는데 거슬려서 그냥 닦았어.』
『꼭 그러지 않았어도 됐어요. 집에 돌아와서 치우려고 했습니다.』
『바퀴벌레 생겨.』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화의 초점이 자꾸 비켜간다는 느낌이다.
제임스는 양아치로부터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조지를 쳐다보았다.
『저는 안드로이드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혹시... 누군가 저더러 안드로이드를 때린다고 주장하던가요? 그래서 확인 차 찾아오신 건가요? 그랬다면 모함입니다.』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조지의 대답에 제임스는 충격을 받고 헐떡거렸다.
『예?! 제가 안드로이드를 때렸다고요? 아닌데요!』
『오, 그게 아니라.』
조지가 입매를 끌어올렸다.
『당신은 안드로이드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죠. 당신은 안드로이드를 일종의 야생순록처럼 대하는 사람이라고 캐머런 님으로부터 익히 전해 들었습니다.』
순간 사레가 들었다.
『켁. 뭐요?! 캐머런?!』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