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권연벌레가 나온다

간염백신 예방주사를 맞고 사흘이 지났을 즈음에 심한 피부 가려움증을 느끼고 난감함에 처하게 되었다.
거울을 보니 등이 온통 붉은 반점 투성이었다.
하루가 지나자 배에 붉은 자국이 생겨났고, 다음은 가슴으로 번졌다.
체질이 엄청 괴랄하기 때문에 백신 알레르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사흘이 지났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진드기? 옴벌레? 붉은 반점과 가려움에 나는 패닉상태가 되었다.
이불을 세탁하고 하루에 두 번 샤워를 했다. 그리고 목에 반점이 올라왔다.

이마와 턱을 긁다가 옴벌레는 아님을 깨달았다. 옴은 얼굴 피부를 못 건드린다. 두꺼워서.
낯가죽이 두껍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려움에 미칠 것 같아 약국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약을 구입해서 이틀 복용했다.
병든 닭처럼 졸았지만 가려움은 가라앉았다.
피부병변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피부병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씨발. 방에서 작고 검붉은 벌레를 잡았다.
폭풍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권연벌레라고 하는 놈이다. 면역력이 약한 나는 이놈이 물어서 아토피에 걸린 것이다.

청소를 시작했다.
과자... 아니다. 몸이 기하급수적으로 약해져서 과자를 먹지 않은지 3개월이 지났다.
허나 모를 일이다. 잊어먹고 먹지 않은 과자봉지가 나올 수도... 아니다. 나의 과자에 대한 집착에 맹세고 결단코 그럴 리 없다. 과자를 남겨? 훗.

이제 자기 전에 잡히는 권연벌레의 숫자가 10단위가 넘어갔다. 여덟... 아홉. 열 하나.
일부러 침대에 흰색 시트를 깔았다. 덕분에 기어다니는 권연벌레가 선명하게 보인다. 미친.
녀석은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놈들의 서식처를 찾느라 정신이 절반은 나갔다.
땀띠 로즈향 파우더에서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롸? 얘네 화장품을 먹어?
파우더 성분에 옥수수 전분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알게 뭐람. 망설임 없이 화장품을 통째로 버렸다.

막대걸레로 마구 쑤시자 침대 아래서 작년에 먹던 초코렛 한 조각이 나왔다.
설마, 이게 범인일까. 주변에서 알이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이녀석들의 서식지를 알 재간이 없다.

비오킬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독일제 트랩도 하나 샀다.
다행히 피부 가려움은 가라앉았다. 대신 모기가 뒤를 이어 나를 물어대고 있다.
부기를 가라앉히려고 냄새 고약한 안티프라민 연고를 발랐다. 사람이 싫어하면 곤충도 싫어한다. 만고의 진리다.
아무튼 권연벌레에 물린 자국들이 빨간 점으로 눈에 띈다. 피부병처럼 보인다. 상당히 보기 싫다.

잠을 잘 수가 없다. 불을 끌 수가 없다. 나는 벌레를 대단히 무서워한다.
온 집안으로 벌레가 퍼졌다. 오래된 콩과 밀가루, 국수, 조미료등을 정리해서 버렸다.
하지만 서식지는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굿이라도 하고 무당을 부르고 싶어했다는 인터넷 글이 떠올랐다.
나에게 예언을 내려줘. 도대체 얘네 어디서 나오는 걸까.

Posted by 미야

2019/08/27 17:25 2019/08/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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