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Happy Birthday 03

보육교사의 잔소리도 한쪽 귀로 흘렸던 놈이니 징징거리는 내 말 쯤이야 밟히는 껌이었다.

『나는 사람 많은 곳이 싫어, 마철아.』
《어, 그래.》
『싫다고~!!』
《응, 그래.》

마철의 생일파티는 항상 북적거렸다.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녀석의 꿈은 생일날 커다란 체육관을 빌려서(...) 친구들과 다 같이 전국구 규모의 대 운동회를 여는 것이다.
유치찬란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이 있는 이 소원은 나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동시에 불안의 원인이기도 했다. 디테일이 확실해서 슬비는 변신 마법소녀 복장을 한 응원단장으로「생일 축하해, 장 마철~♡」플래카드를 들고 관중석을 들었다 놓았다 해야 했고, 나는 중앙 단상에 올라 만장하신 가운데 개회식을 선포하게 되어 있었다.
씨발. 낯 뜨거워서. 제22회 장 마철 군의 생일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승리를 향해 뜨거운 땀을 흘림으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인류화합의 장을 만들어 나갑시다, 이딴 말을 내뱉으라는 거지. 씨발.

핸드폰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마철의 경제력으로는 체육관 대여는 아직까진 무리라서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올해는 카페를 통째로 빌렸다고 했다. 허나 배경음만 들어선 커피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그런 가게가 아니었다.
쿵쾅거리며 뭔가가 날뛰었고 누군가 소리 질렀다. 구와악 구와악 미친 것들이 뿔난 짐승의 언어로 환호했다.
나는 질려서 핸드폰을 귀에서 약간 떼어냈다.

『슬비는.』
《옆에.》
『바꿔줘.』
《음... 무리.》
『어째서?』
《우리 지금 그거 하려고.》
『야! 이 미친놈아!』
그거?! 그거가 뭔데! 그거가 뭔데 왜 갑자기 목소리 내리깔고 소곤거려.
소금물로 눈을 씻은 기분이다. 사람들 잔뜩 모아두고 애인이랑 둘이서 뭘 하려고?! 너희 두 사람이 이런 짓 저런 짓을 해도 돼는 성인이라는 걸 나도 아는데 말이야...
내가 꿀꺽 침을 삼키다 못해 버럭 화를 내자 저편에서 마철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우리 나기. 너 지금 야한 상상했지.》
『안 했어. 하나도 안 했어.』
《두 번 반복해서 부정하는 건 긍정이라고 하더라.》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마철은 껄껄 아저씨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부터 슬비랑 듀엣으로 노래 부를 거야. 다 부르기 전까지 후딱 와. 더 늦으면 1분에 5,000원. 오케이?》

7부 청바지 차림에 삼선 슬리퍼,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인데다 양손은 텅 비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죽마를 같이 타던, 아니. 죽빵을 날려대던 친한 친구의 생일축하 파티인데 립스틱 정도는 바를 걸 그랬다고 후회하며 약도에 그려져 있던 장소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카페 베브 론 (BeV loan)
베브는 10억 전자볼트인데, 그걸 대출해준다 라.
통통 튀는 소립자들이 나노사이즈 커피를 마시는 이미지라서 그런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파짓 하고 팔뚝으로 독특한 아픔이 느껴졌다. 따끔한 정도가 아니라 쓰라릴 정도다. 어둠 속에서 봤으면 새파랗게 불꽃이 튀었으리라. 아무래도 기분 좋은 느낌일 수가 없어서 양 미간을 왕창 찌푸리며 자극을 받아 털이 곤두선 팔뚝을 쓸어내렸다.


『여, 이게 누구신가. 나기 님 아니신가. 이걸로 우중충 시리즈가 모두 납시었군.』
출입구를 정면을 바라보는 좌석으로 환영의 박수를 치는 인간이 앉아 있었다.
근데 이게 짝짝짝 리듬이 아니라 중앙위원회 당 간부 짝, 짝, 짝 리듬이다. 이것만으로도 재수가 털리는데 녀석은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수컷 공작새처럼 좌우에 여자들을 끼고 온갖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부채질은 기본이고 – 냉방 중이다 이년들아 - 손질한 과일 조각을 꽂이로 집어 입에 넣어주려는 여자애도 있었다.

『창연?』
아는 얼굴이다. 사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화려해서 잊어먹기도 힘든 얼굴이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영화관에도 나온다. 그래서 자동반사로 이름이 툭 나왔다.
『실례야, 나기. 나는 널 성으로 부르지 않았어.』
어미 새처럼 그의 입에 사과조각을 물려주고 싶어 기를 쓰는 여자애를 가볍게 옆으로 밀면서 그가 말했다.
몰라, 몰라, 오빠 몰라,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을 것처럼 생긴 여자애가 장난처럼 앙탈을 부렸다.
어째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고민하며 고쳐 불렀다.
『민.』
그제야 녀석은 고개를 쓰윽 치켜 올려 조공으로 받쳐지는 과일을 얌전히 받아먹었다.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로 고정한 채 말이다. 과즙 탓에 녀석의 입술이 번들거렸다.

닭살 돋았어. 돋았다고.
부지런히 팔뚝을 어루만지며 어딘가에 있을 슬비와 마철을 눈으로 찾았다.

어쩌다 우연히 용변이 급한 사람이 화장실을 찾아 가게 문을 열었더라도 마철은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생일파티 장소로 대여가 되었다는 걸 모르고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이라 해도 괜찮았다. 인류화합의 대 운동회를 꿈꾸는 마철은 지갑을 분실했다며 차비를 핑계로 약간의 돈을 뜯으려는 사기꾼마저 자신의 생일파티로 아무렇지도 않게 끌어당겼을 것이다.

하지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창연이라면 얘기가 좀 달랐다.
녀석은 마철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아니, 우리 우중충 시리즈 세 명 중 아무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은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창연 가의 일원이고, 태어나 울음을 터뜨릴 때부터 개화를 한 진성 알파다.
깍두기 취급을 받다 결국에는 시설에 버려진 우리들 짝퉁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간격이 있어「친구」라는 단어로 관계를 정의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어느 누가 사자와 토끼가 친구 먹을 수 있다고 하겠는가. 그런 세계는 허구다. 구렁이와 쥐가 베프라면 먹이사슬이 붕괴한다.
지금도 우월종 알파라는 걸 숨기지도 않고 제왕처럼 의자에 앉아 하찮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저 녀석을 보아라. 만약 민이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안에 있는 사람 전부가 파리 목숨이다.

다시 파직, 하고 정전기 아닌 정전기가 튀었다.
썅! 절대로 부러 그랬어. 질색하며 피부가 노출된 양팔을 감쌌다.

『하지 마! 아프다고!』
『너는 늘 딴 생각을 많이 해서 탈이야, 나기. 사람이 얘기하면 좀 들어. 아까부터 앉으라고 하고 있잖아.』
어느새 그 많던 계집들이 사라지고 성질 나쁜 공작새 하나만 4인용 소파 한 가운데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19/01/10 15:42 2019/01/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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