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츄파춥스라는 정체가 발각되어 도주했다고 여기는 편이 적절할 터였지만 구석 어딘가에서 그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른 가능성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몰래 심어둔 위치 추적기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확인해본 결과 10분 안팎으로 마이클은 고작 300미터 가량 이동했다. 이는 승용차나 바이크와 같은 탈 것을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두 다리만을 사용해서 장소를 옮겼다는 의미로, 일반적인「도주」와는 양상이 달랐다.

그렇다면,

- 자의적으로 걸어갔을 경우
누군가와 접선 중인 건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동업자라던가, 아니면 부하라던가.
가능성 있다. 하지만 2인1조로 행해지는 경찰업무 중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영 부자연스럽다.

- 강제로 끌려갔을 경우
혼자 있는 것을 노려서 납치를 시도했다.    
다만 그런 것치고는 멀리 가지 못했다. 겨우 300미터.

판단을 유보한 채 곤봉을 단단히 쥐었다.
『......』
잠시 머뭇거린 그는 이윽고 결심했다며 손전등은 바닥으로 던지고 곤봉을 하나 더 꺼내 양손으로 쥐었다.

바로 그 시각, 시커먼 자루를 머리에 뒤집어쓴 마이클은 죽어라 버둥거리며 온몸을 비틀어댔다. 양팔을 모두 결박당하기도 했거니와 자루가 벗겨지지 않도록 목 아래로 단단히 매듭을 지어놓은 상태였기에 그 움직임은 격렬하면서도 동시에 억압된 상태였다.
《우우우웃~!!!》
커다란 자루를 뒤집어씌운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탓에 하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고, 더하여 서서히 숨이 막혀와 완전히 진이 빠졌다.
흙과 감자의 냄새가 나는 자루는 두꺼운 면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데다 올과 올 사이가 제법 촘촘한 편이었다. 입과 코를 활짝 벌리고 최대한 숨을 들이마셨지만 충분한 공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뇌로 공급되는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판단력도 덩달아 흐려졌다.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대신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버둥거리고만 있는 건 그런 탓이었다.

붙잡힌 팔을 뿌리치려 하자 옆구리에 주먹이 꽂혔다.
갈비뼈가 욱신거려 끙끙거리고 있자니 이번엔 구둣발이 날아왔다.
일부러 고통을 주기 위한 의도가 다분한 게 같은 위치를 반복해서 걷어찼다.
무릎이 꺾이면서 나동그라졌다. 아픔을 호소하는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숨을 쉬는 게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마이클은 격하게 헐떡거렸다. 저항하던 움직임이 작아지자 사내들은 다시 마이클의 양팔을 잡고 무슨 짐짝이라도 되는 양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 부위가 닿자 쓸린 바지가 엉망이 되어갔다.

『그런데 이거 제대로 잡아온 거긴 한 거야?』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사내가 근심하며 물었다.
제복 차림새의 경찰관을 붙잡고 린치를 퍼붓는 건 재미로 노숙자를 폭행하는 것과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판사들은 원래 집단 폭행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편인데 여기서 그 피해자 신분이 경찰이 되면「너그럽지 않다」라는 표현도 더는 쓸모가 없다. 무조건 최대 형벌을 때린다. 보석 허가도 안 내준다. 가석방 신청도 거절한다.
그나마 그가 이번 일에 끼겠다고 수긍한 건 상대가 악질적인 부패경찰이라고 해서다.

『엉뚱한 사람을 데려온 거라면 입장이 곤란한데.』
주변이 어두웠기에 경찰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저놈 잡으라고 하니까 잡았고, 묶으라고 하니까 묶긴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래도 되는 건지 자신이 없었다.
『헤이, 대답해봐. 당신이 진짜 미스터 츄파춥스야?』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봤자 상대방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도 못했다. 들리는 건 으, 혹은 어어, 정도로 하나같이 발음이 뭉개져 제대로 된 단어들로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려. 지금 뭐라고?』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마이클이 두 팔을 힘을 줘서 허우적거렸다.
자루 속의 외침도 커져갔다. 짐작하자면 아마도 풀어달라거나, 놓아달라는 뜻일 것이다. 목을 세우고 바르작거리는데 알아듣진 못해도 절반이 욕이라는 건 이해가 갔다.

『애원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무리 중 하나가 손바닥에 퉤퉤 침을 뱉더니 각목으로 마이클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그 충격으로 마이클이 한쪽 무릎이 반으로 접혔고, 사내는 다시 각목을 휘둘러 어깨를 때렸다. 따악, 따악 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미스터 츄파춥스.』
소환하는 주문을 다섯 번 외우고.
『할 수 있으면 내 뒤에서 까꿍 인사해봐라!』
진심을 다하여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하늘을 보는 자세로 벌렁 쓰러진 마이클의 몸뚱이가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좋지 않게 얻어맞았던지 어느새 뒤집어씌운 자루에 시뻘겋게 핏물이 묻어 나왔다. 손가락조차 까닥이지 않자 무리 중 하나가 겁을 먹었다. 비록 일생토록 갈취와 협박을 일삼기는 했지만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야... 루모. 이러면 계획했던 것과 틀리잖아. 그냥 몇 대 때려서 본때만 보여주고 죽이진 않을 거라며.』
『시끄러.』
『곤란해, 진짜야. 이러면 곤란하다고.』
『닥치라니까! 이 겁쟁이들아!』
아드레날린 분비가 최고치에 이른 루모는 각목을 야구배트처럼 들고 동료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뒤로 빼는 거야?! 이 새끼들아. 이놈은 우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슈퍼맨에게 넘기려고 했단 말이다. 슈퍼맨! 메트로폴리스! 그런데 뭐? 곤란해? 지금 곤란하다고 했어? 어따 대고 한심한 소리를 지껄여.』
붕붕 소리가 나도록 각목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이놈이 안 죽으면 우리가 죽어. 정신들 차려! 이건 생존의 문제라고.』

과학자들이 아무리 심각하다 강조했어도 오존층 파괴는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았지만 이건 달랐다.
슈퍼맨이 제아무리 대중적으로 예의바른 신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쳐도 그 정체는 외계인이다.
루모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컴퓨터 오작동으로 잘못 발사된 핵미사일을 우주 밖으로 냉큼 내던졌다던 슈퍼맨의 활약상을 떠올렸다. 이 신과 같은 위대한 존재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구상 반경 70km 어딘가는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 어딘가는 그가 살고 있는 스타 시티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재앙을 비켜갔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그조차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어느새 그림이 바뀌어 슈퍼맨이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우주를 날아가고 있었다.
《지구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영웅은 코딱지만큼 작은 소행성 저 너머로 자신을 던지고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그렇게 되고 싶냐, 엉?! 되고 싶냐고!』
『하지만 슈퍼맨은 불살주의잖아.』
『그래서 뭐. 편의점 털다 슈퍼맨이 나타나면 내 등짝에 멋지게 싸인 해주세요~ 이러려고?』
『싸인 좀 받으면 어때서. 나, 슈퍼맨 좋아해.』
『어이고! 환장하겠네. 범죄자 주제에 팬이셨어요? 어이고!』
화가 치민 루모는 이 어리벙벙한 친구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다.
덕분에 숨이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대자로 누운 채 꼼짝을 하지 않던 마이클이 어느새 몸을 스윽 일으켜 세우고 앉는 걸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Posted by 미야

2016/07/06 15:53 2016/07/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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