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솔직히 저도 내용을 다 까먹었습니다.

인적이 드믄 장소를 찾는다고 했지만 때와 장소를 염두에 둬야 했다.
이래서는 휴가철 행락객들이 잔뜩 모여든 모래사장에서 빈 파라솔 찾기다. 축제 탓에 어디에고 사람들이 넘쳐났다.
게다가 어디를 봐도 외지인으로 보이는 그들은 잡아먹기에 안성맞춤인 존재였다. 잘게 썰어 적당히 물기를 뺀 사과를 꿀물에 버무린 간식거리를 파는 어린 소녀가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여행객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엿보이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 뒤로는 파로 국수를 파는 장사꾼이 손바닥을 비볐고, 그 다음으로는 쭉정이 같은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이, 그 다음으로는 갈증을 해소해줄 시원한 음료수를 파는... 그 다음으로는.
이래서는 끝이 나질 않겠다 판단한 오남은 슬그머니 손바닥을 펴 보이며 건물 위로 흘끔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펄럭이는 빨랫줄 틈새로 새가 푸드득 날갯짓을 하였다.
동시에 뭔가가 쏜살같이 내려와 오남의 소매 속으로 숨었다.

『웩. 몇 번을 봐도 기분 나빠.』
『그럼 보지 않은 셈 쳐.』
오남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을 갈무리하며 감추는 것과 동시에 생명 징후를 잃은 새가 발치로 뚝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원래부터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날개를 퍼득이며 움직임을 보이던 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혹처럼 달려 있던 것이 죽은 새로부터 떨어져 나와 살아있는 사람인 오남에게 들러붙은 것이냐 - 그의 설명으로는 아니라고 한다. 그가 다루는 정령은 원래 살아있는 생물에 기생하는 종류도 아닐뿐더러 가진 힘으로는 고등동물을 조정하는 건 무리라나.
『그 고등동물이라 함의 기준이 뭐지? 오남.』
『밥 먹고, 잠자고, 배설하고, 성생활 이외의 걸 할 줄 아는게 고등동물이지.』
『엇? 그럼 위험하잖아. 너에게 기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어.』
『야, 인마.』
기분이 상했던지 오남이 발길질을 시도했다.
태영은 살짝 다리를 들어 피했다.

어쨌든 태영은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흡사 뽑혀 나온 눈알처럼 생긴 걸 소매 속에 감추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협박해도 거절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달라붙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말해줘도「어디서 약을 팔아」대꾸할련다.
게다가 그 눈알은 터진 주둥이도 없는 주제에 말도 했다.

《중중입니다.》
『그랬나. 하지만 중중이라 하기엔 미스트 자네가 여기까지 뚫고 들어오는데 시간을 좀 잡아먹은 듯한데.』
여기서 중중은 상, 중, 하의 중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 중을 다시 세분화해서 상, 중, 하 단계로 다시 나눴다. 총 아홉 단계다.
《어... 흠, 그런가요. 그럼, 저. 중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걸렸나요?》
그것이 말을 더듬었다는 부분이 중요한게 아니다. 중중이든, 중 대가리든, 문제는 지나가는 여인의 미모를 품평하는 것도 아니고 시내 유명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맛 품평 또한 아니라는 거였다.
이들은「결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세계에는 결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태영은 그 부분이 희한했다. 마법사라 부를만한 종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엔 결계가 있단다.
「결계?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 같은 건가?」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매우 튼튼하여 뚫고 지나가기가 불가능한 천막을 상상했더니 비웃음 당했다. 오남 왈, 어린애도 그런 깜찍한 상상은 하지 않는단다.
「결계라며.」
입을 삐죽이며 불평했더니「그러니까 내 말이.」라며 더 비웃었다.
흡사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을 모르는 사람에게 텔레비전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만한 크기의 네모난 상자가 있는데 전기로 작동하고요, 전원을 켜면 화면에 실물과 흡사한 그림이 빠르게 지나가며 춤도 추고 얘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럽니다.
전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 앞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물건에 대해 설명해봤자.

「굳이 상상하지 말고 머리로 받아들여, 텐. 국경선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될 거야. 저 어딘가로 넘지 말라고 약조된 선이 있는 걸세. 그게 결계야.」
제대로 된 설명도 아니었다. 국경선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만 결계는 인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눈으로 볼 수도 없다. 결계를 넘나들어도 기침 한 번 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지도 않다. 그걸 넘는다고 벌금을 무는 경우도 없다. 체포당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결계의 존재가 왜 중요한가.

『여기에 바다가 있어. 그리고 바다 속에는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어. 그 중엔 얕은 물에 사는 물고기도 있고, 깊은 물에 사는 물고기도 있겠지. 더운 바다에서 사는 녀석도 있고, 반대로 더운 바다에서 살고 있는 녀석도 있어. 서로가 사는 공간이 나눠져 있는 걸세. 그런데 알고 있나? 바닷물은 찬물과 더운물이 층을 이룬 채 서로 잘 섞이지 않아. 미묘하게 구분되지. 결계는 그런 거야.』
『지금 무어라?』
『그러니까 더운물에 사는 생선과 찬물에서 사는 생선을 나눠놓은 거라고. 자네와 나는 더운물에 사는 생선이야. 그리고 내 손에 있는 이 미스트는 일종의 찬물 생선이고. 이제 좀 이해가 가나?』
『전혀.』
『...... 닭대가리.』
『누구더러 닭이라는 거냐, 이 개새끼. 설명을 거지처럼 해놓은 주제에!』
더운물 생선은 왈칵 화를 냈다.

이를 갈면서 동시에 태영은 생각했다.
예전부터 오남은 시장조사를 핑계로 대륙의 결계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다녔다. 때로는 그 일에 황제가 직접 끼어드는 일도 있었다. 자세한 건 모른다. 다만 그 문제로 오남이 황제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찻잔과 물병이 신명나게 날아다녔다는 소문이 있다. 심지어 오남이 먼저 던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랬다간 모욕죄로 목이 달아났을 터이니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던진 건 역시 황제 쪽이 먼저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지지 않고 대응했다는 부분에서 오남은 역시 보통 사내가 아니긴 하다.
「황제로부터 경쟁 국가의 결계를 약하게 만들라는 주문을 들었던 걸까? 오남은 그걸 거부하고?」
파도물결 잔잔한 깊은 바다에서 생선들이 저마다 지느러미를 흔들어가며 헤엄을 쳤다.

『중상이면 나빠?』
『그다지.』
『흠... 그래도 상 레벨로 올리는게 네 목표겠지?』
『전혀.』
『어? 그래? 찬물 생선과 더운물 생선이 한곳에 섞이면 안 좋은 거 아닌가?』
『좋을 건 없지.』
『뭔 대답이 그리 민숭민숭하누.』
타박하는 말에 오남이 슬그머니 태영을 쳐다봤다.
동시에 그의 손바닥 안에서 미스트가 제멋대로 빙글 돌아 손등으로 위치를 옮겼다.

Posted by 미야

2016/01/18 16:57 2016/01/18 16:5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007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249 : 250 : 251 : 252 : 253 : 254 : 255 : 256 : 257 : ... 1972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88973
Today:
201
Yesterday:
106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