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짬나는 대로 끄적이는 자급자족 습작입니다. 연재주기는 불규칙합니다. ※
미인은 그 발을 소제한 물도 달다더니... 순 공갈.
충격을 받은 나머지 사고가 정지했다. 몸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미나가스트의 산적떼로부터 도끼로 머리를 찍어 죽이겠다 살해 위협을 받았을 적에도 손가락 하나 떨지 않던 그였지만 토사물 공격만큼은 얘기가 달랐다. 뭐, 지금도 눈썹 하나 깜빡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긴 하다만...
미인의 입에서 쏟아졌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악취가 진동하는 토사물을 머리위로 잔뜩 뒤집어쓴 탓일까.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등을 떠밀리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치우듯 광장 바깥쪽을 향해서 말이다.
완전히 귀신 장난이었다. 방금 전과는 달리 거짓말처럼 행렬 뒤편으로 너무나 쉽게 밀려났다. 어, 어,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누가 안아들었다가 내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광장에서 밀려나 한적한 골목 어귀 부근으로 안착했다.
『오남!』
태영은 오남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손을 흔들며 그에게로 뛰어 왔 - 다가, 코를 움켜쥐고 두 발자국 물러섰다.
여전히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꼬인 그가 막 입을 떼려던 찰나, 괘씸하게도 태영은 저 남자는 자기 일행이 아니라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고양이에게 줄 쏘시지를 사러 가야지.』
『야!』
비타아른 공왕국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생겼다.
『동티가 났구먼.』
더러워진 머리를 닦으라며 수건을 건네던 마을 노인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동티가 났다고 할 수 있을까.
동티란 원래 예부터 건드려선 안 되는 걸 잘못 건드려 스스로 재앙을 사는 걸 일컫는다. 쉽게 예를 들자면 마을 어귀의 수호 목을 잘못 베고 나무꾼이 열을 내며 앓아누우면 그걸 가리켜 동티가 났다고 한다. 여신에게 바쳐진 공물을 탐을 내던 사제가 은전에 손을 대자마자 신전 대들보가 빠지면 그게 바로 동티다.
『미인대회에 출전한 가마 가까이 서있었던게 전부인데 제가 재앙을 샀단 말인가요.』
『그러니까 동티지.』
일흔 살은 족히 넘겼을 것처럼 보이던 노인이 별안간 심각한 표정으로 이 빠진 입을 안으로 오므렸다.
오목하게 홀쪽 들어간 노인의 뺨을 보자 오남은 지레 겁을 먹었다. 재앙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건 아닐지 염려스러웠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번갯불에 튀겨지기라도 하나.
그런 속도 모르고 노인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응? 손을 마주 잡자고? 그건 아닐텐데.
무슨 의미로 내민 손인가 싶어 오남은 잠시 눈을 꿈뻑거렸다. 그러다 퍼득 깨달았다.
『심하네!! 새 수건도 아니잖아요. 헤어져 구멍도 뚫렸는데 물건 값을 달라고요?! 그냥 재수 옴 붙은 나그네에게 공짜로 친절을 베풀면 안 됩니까. 영감님... 진짜지 그렇게 각박하게 살면 안 돼요.』
『야 이놈아. 요즘 세상에 공짜가 어딨누. 늙은이 저승길 노잣돈에 보탠다고 생각하고 수건 값을 내.』
요즘 세상엔 친절에도 값을 매긴다.
입을 앙 다물고 동전을 건네주자 인상을 구기고 있던 노인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돈으로 손주에게 과자라도 사줄 생각인가 보다. 싱글벙글 웃으며 노인이 안주머니 깊숙이 돈을 찔러 감췄다.
그 망할 호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뻥 뚫려라, 속으로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눈을 흘 -
겼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럴 짬도 없었다. 그 동티라는 거, 아무래도 제대로다. 이번에는 삿대질을 하는 여자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그를 향해 돌진해왔다. 저놈 잡아라, 쩌렁쩌렁 울리는 대사가 판에 박힌 듯 전형적이었다.
『멧돼지?』
불경하게도 오남은 일직선으로 공격해오는 빠르고 강한 날짐승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올렸다. 부릅뜬 눈에 눈물로 번진 화장, 땀으로 젖은 의상, 산발한 머리카락에 신경질적인 걸음걸이... 그런데 얼굴 생김새가 어디서 봤던 것처럼 익숙하다. 가만 헤아려보니 가마 위에서 그의 정수리 위로 토사물을 쏟아낸 바로 그 여자다.
이름 같은 건 모른다. 다만 어째서인지 저 여자가 판매사원으로 일한다는 사소한 것들이 떠올랐다.
지금의 모습만 봐서는 고객들에게 새로 입고된 물건을 보여주며 상냥한 목소리로 상품을 선전하는 아가씨를 상상하긴 힘들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일직선으로 돌격하는 멧돼지다. 게다가 맛도 약간 갔다. 뒤집힌 눈이며 하얗게 거품이 올라온 입가가 아무래도 싱싱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멧돼지에 싱싱하다는 표현을 써? 보통은 생선 아니야?』
태영의 질문은 과감히 씹었다.
아무튼 잡히기만 하면 오도독 소리를 내며 한 입에 씹어 먹겠다며 그 기세가 매우 흉흉하다.
『뭐 하나 젊은이. 안 도망쳐?』
헌 수건을 새 수건 값으로 팔아치운 노인이 손바닥을 비비며 싱글벙글 웃었다. 오남에겐 재앙이었어도 그에겐 놓치기 힘든 여흥거리다.
『제가 왜 도망을 쳐야 합니까?』
『그럼 여기서 저 여자에게 멱살을 잡힌 채 먼지 휘날리도록 얻어터지던가.』
『그러니까 어째서 제가 얻어맞는다는 겁니까.』
『참말로 답답한 사람일세. 동티라고 했잖는가. 동티가 났다고. 그러니 달려. 어서 달리게!』
정말 모르겠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일단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고 보았지만 영문을 몰라 답답했고,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다는 기분만 들었다. 축제라고 했는데. 미인대회라고 하던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흥분한 멧돼지에게 쫓기며 미로형의 골목길에서 행인들을 밀치며 전속력으로 달리기라는 걸 하고 있다.
『너! 거기 안 서!』
이제 멧돼지 여자는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양손에 쥐었다.
『너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어떤 각오로 왔는데!』
뾰족한 여성 구두가 돌멩이처럼 날아들었다.
『화가 났을 법도 하죠. 일생일대의 기회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날아갔으니.』
나름 증거물이랍시고 구두를 들어 구분된 봉지에 담던 경비원이 쓴 웃음을 지었다.
구두는 노리던 오남의 머리통을 박살내지는 못했다. 멀리 던지기에는 여자의 팔뚝 근육의 힘이 한참 모자랐다.
목표물을 빗나간 흉기는 대신 엉뚱한 행인을 맞췄는데 하필이면 사탕을 먹는데 열중해있던 여섯 살짜리 어린애였다. 정확하게는 아이가 먹던 큼직한 막대사탕을 명중시켰다. 애는 통곡했지만 하늘이 도왔다.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아이 엄마가 화가 단단히 났기에 구두의 주인은 소환당해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또 당신입니까.』
경비원 루안은 시커멓게 빛깔이 죽은 눈자위를 문질렀다.
좁은 침상에 누워 쪽잠을 즐기던 중 어린아이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에 놀라 눈곱도 떼지 않고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왔더니 피해자는 막대사탕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데 목격자는 아는 얼굴이다. 게다가 식초를 쏟기라도 한 것처럼 시큼한 냄새도 풍기고 있다. 악취는 루안의 참을성을 바닥으로 만들었다.
『듣자하니 가마를 마구 흔들어 우승 후보였던 여자를 떨어뜨려 탈락시켰다면서요.』
『그 무슨 무서운 말씀을!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말입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악당을 잡아들였는데 말이죠. 그때마다 빼먹지 않고 듣는 말이 있어요.』
『정말입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바로 그 말이었어요. 오늘도 변함없이 듣게 되네요. 거 참.』
치솟는 짜증을 감추지 않은 채 루안이 쏘아붙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