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을 잡힌 채 비틀비틀 끌려갔다.
걷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머리의 절반이 방금 전 충격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두개골은 박살났고 좌뇌의 전부와 뇌량 일부가 소실되었다. 남은 뇌조각도 밖으로 노출되었기에 색이며 냄새가 빠르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충격으로 뽑혀나간 안구는 시신경이 끈 역활을 해줘 턱 아래까지 늘어져 매달렸다가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하나 남은 눈은 눈꺼풀이 뜯겨나가 싫든 좋든 앞을 봐야 했으나 망막에 투영된 사물은 죄다 흐리멍덩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피부는 연기에 그을렸고, 몸 안 장기는 오그라들었고, 인생은 풍비박산.
이것이 몇 번째 맞이하는 죽음이던가. 차근차근 헤아리다 지쳐 금방 포기했다.

『똑바로 걸어. 그러다 넘어진다.』
시체가 되고 나서도 신기하게도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신 나간 소리 하고 있군. 안 죽었어. 기력이 약한 탓에 잠시 기절했을 뿐이야. 설마, 눈 뜨고 자는 거냐. 안즈!』
그 이름은 생소하다. 내 이름은 안즈가 아닌데.
『자기 이름도 모른댄다. 환장하겠네.』
가볍게 뺨을 톡톡 치고 피부를 꼬집어댔다.
『정신차려! 자꾸 이러면 현선당 앞 못 안에 처박는다? 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린청은 나를 연못 안에 거꾸로 집어던지는 대신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물가로 내려가 손을 충분히 적신 후, 물기가 뚝뚝 흐르는 손바닥을 가져와 내 이마를 덮어주었다.
차가움도 차가움이지만 거슬리는 물비린내에 저절로 코가 실룩거렸다. 썩어가는 식물 뿌리 냄새와 살아있는 잉어의 비늘 냄새가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찌는 무더위가 며칠 계속되면서 수량이 줄어 못의 수질이 나빠진 모양이다.
『우어... 구려.』
그래도 싫은 냄새를 맡자 후각과 촉각을 포함해 여러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주변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이름은 지리가 안즈다. 올해 열 살 계집아이로 고향은 빈사국 남리향 천의. 아버지는 지리가 위복천, 모친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이복동생 이름은 리세리, 내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곳은 제국 이사실의 수도 루은, 사친 대상으로 뽑혀 이곳으로 공부하라고 보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먹물이나 붓은 구경도 못한 채 남의 집 마굿간을 청소하고, 귀신 나오는 창고도 청소했다...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도로 폈다.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입안에서 소금 맛이 났다. 뒷통수를 만져보니 여전히 둥글었고, 신발을 잃어버린 왼발은 발바닥에 상처가 생겨 쓰라리고 아팠다.
발가락을 꼬물거리다 말고 이마를 찌푸렸다.
머리가 박살났을 그 당시에는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이 정도의 피부가 베인 상처엔 콕콕 쑤시는 통증을 느껴야 하다니.
발을 살짝 뒤집어 보니 상처 입은 곳으로 가볍게 피가 베어 나왔다. 편모암의 일종인 암강석을 돌로 깨어 만든 편돌은 눈으로 보기에 좋은 장식재지만 맨발로 밟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종류다. 내리막길을 정신없이 걸어오면서 아무래도 튀어나온 모서리를 잘못 밟았던 모양으로 뒤꿈치로 길게 붉은 줄이 그어졌다. 가볍게 상처부위를 누르자 핏물이 다시 올라왔다. 따가움은 배가 되었다.

소독도 할 겸 침이라도 발라둘까 하여 손가락을 입에 무는데 린청이 자기 머리카락을 묶은 푸른색의 당지를 풀어 내게 주려 했다.
『이걸 써.』
나는 깜짝 놀랐다. 고급 비단에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금박을 입힌 당지는 그 가격이 매우 비싸다. 상처가 난 발을 묶는 일에 써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물건이라 나는 손을 어지럽게 휘저으며 극구 사양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던 물건이다. 비유하자면 모자를 신발로 쓰겠다고 하는 격이라서 나는 직설적으로 거절의 말을 건넸다.
『아서라, 나에겐 갚을 능력 없어.』
『그걸 누가 모른대?』
올려 묶었던 머리를 어깨 아래 길이로 늘어뜨린 소년은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도 내가 한참을 주저하자 차라리 본인이 직접 해주겠다며 허리를 낮추고 자리에 앉았다.
민폐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나에게 잘 대해줘서 그저 미안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부끄럽기도 하여 상처가 난 왼발을 짐짓 뒤로 감추었는데 그 모습에 짜증이 치솟았는지 버럭 대마왕은 도망간 발목을 움켜쥐고 자기 쪽으로 휙 잡아당겼다. 진짜지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섬세한 구석은 요만큼도 없는 녀석이다. 덕분에 균형을 잃은 나는 뒤로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수그리고 앉은 린청의 어깨를 붙잡아야 했다.
남들이 이런 우리를 보면 뭐라고 그럴까. 암만 생각해도 모양이 그다지 보기 좋을 것 같진 않았다.

『발이 참 작군.』
그 비싼 당지를 붕대처럼 사용하여 칭칭 감으면서 린청이 쓸데없는 말 한 마디를 흘렸다.
『꼭 여자아이의 발처럼 생겼다.』
말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걸 얼른 정정했다.
『별 뜻은 없어. 네가 여자 같다는 건 아니고. 어... 그건.』
나는 얼굴이 시뻘개졌다. 새삼스럽게 깨달음이 와서 우리들의 관계가 남자와 남자아이가 아닌, 남자와 여자아이라는 걸 떠올리자 걷잡을 수 없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을 깨닫는 순간처럼 그 심장의 고동이 귀여웠겠구나 착각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보다는 몰래 단맛 나는 조청을 핥아먹고 뚜껑을 다시 닫아놓았을 때의 두근거림이었다. 아니면 길고양이 새끼를 방에 숨겨두고 어른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심정이었다. 이제 귀까지 열이 올라 화끈거렸고, 죄인이나 다름없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여자아이인데.
한 살 많은 남자아이에게 맨발을 아무렇게나 보여주고.
반성하도록 하자.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 말투도 소녀처럼 조신하게 바꿔야지.

매듭을 꼼꼼하게 묶은 뒤, 이만하면 다 되었다는 신호로 가볍게 툭툭 쳤다.
『문제는 네 발이 작아 내 신발이 너에겐 맞지 않을 거라는 점이지. 남는 걸 한 켤레 주려고 생각했는데.』
『그거 참... 마음을 써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옵니다.』
『으응? 갑자기 말투가 왜 그래. 목소리도 간드러지게 내리깔고.』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갑자기 여자애처럼 말하는 건 영 어색하다. 아니면 입고 있는 옷 탓일까, 색깔부터가 소년다워서 무의식중에 남자 어린이의 말투가 툭툭 튀어나간다. 발은 여자아이의 것이지만 - 글쎄, 이러한 성정체성의 혼란이 보다 깊은 부분으로 그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만... 모르겠다. 것보다 만사 귀찮다. 다시 손목을 잡힌 채 억지 걸음을 강요당하면서 나는 아래로 주저앉으려는 무거운 눈꺼풀을 손등으로 비볐다. 정신적 피로감이 드디어 육체의 피로감으로 성격을 바꾼 듯하다. 두통도 생겼다.

『송주는?』
『네 상태가 좀 이상해지자 북어포를 앞세우고 재빨리 도망쳤어.』
『아이고.』
『어떤 의미에선 크게 출세할 녀석이야. 나는 새삼 녀석의 약삭빠름이 존경스러워졌어.』
돌아보는 린청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화가 치미는 단계를 한참 지난 나머지 그저 헛웃음만 나오게 되었나 보다. 그런데 그게 잘 생긴 미소라서 바보처럼 나도 모르게 헤실거리고 따라 웃고 말았다.
『성공할 거야.』
『성공하겠지.』
『저... 그런데 열쇠는?』
『나더러 반납하라며 던져주고 가던데.』
『진짜 약아빠졌어... 어쩔 수 없군. 그럼 돌아가서 숙희 님 방부터 들려야겠네.』
『물론.』
소년은 이를 드러내며 또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맹세했다.
『두고 봐, 안즈. 나, 지금 각오를 다지고 있어. 이 열쇠로 숙사감대부의 콧구멍을 뚫어버릴 거야. 기대하라고?』

Posted by 미야

2015/06/24 21:40 2015/06/2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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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6/25 11:40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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