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침착함을 잃으면 평소에 안 하던 바보짓도 곧잘 저지른다.
『문이 열리지 않아! 이놈의 망할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이곳의 출입문은 안에서 잡아당겨야 한다는 걸 까마득히 잊어버린 송주는 실성한 채 울부짖었다.
『이건 분명 저주야~!! 살려줘~!!』
린청 또한 그 옆에서 눈이 뒤집힌 채 들입다 문짝을 걷어찼다.
그래봤자 두꺼운 나무문은 활처럼 휘어지지도 않았고, 경첩을 튕겨내지도 않았다. 겅중 뛰며 다리의 아픔을 호소해봤자 깃털로 코끼리 피부에 구멍 뚫기다. 정교한 방식의 열쇠까지 달아놓았는데 어린애 발길질 정도로 구멍이 나게끔 싸구려 합판으로 문짝을 달았을까. 기본적으로 왕궁의 건물 출입문은 2문(60미터) 거리에서 궁수가 화살을 쏘았을 적에 그 촉이 뚫지 못하는 걸 최소 규격으로 삼는다. 무게와 실용성을 고려하다보니 규격에 한참 미치지 못해 문짝의 두께가 얇아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그런 경우 단단한 물푸레나무 소재를 사용하여 약탈자를 방어하고 있다. 더하여 창이나 도끼 같은 물리적 공격을 고려하여 놋으로 만든 장식을 덧댄다.
그러니 발로 걷어차서 열겠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노력한들 가엾게도 발목뼈에 금만 갈 뿐이다.

만류하며 뜯어말리자 린청은 버럭 화를 냈다.
『그럼 어쩌라고. 여기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도 그럴 것이 불에 그슬리고 머리가 박살난 남자는 계단을 타고 느린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올려다보니 전체 윤곽은 어둠에 잠긴 상태이고 단화를 신은 발 정도는 그럭저럭 또렷하게 보였다.
마지못해 걷는다며 그것이 계단 하나를 어렵게 내려왔다. 좌우로 어지럽게 흔들거리는, 불안정한 행보였다. 걸음마를 갗 배운 아기처럼 아장거리더니 한참동안 제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다리 하나를 들어...
『꺄아아악!』
문에 등을 대고 돌아선 송주는 산 채로 끓는 기름 속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굴었다.

『당겨.』
『뭐?』
『그 출입구는 안에서 당기는...』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송주와 린청 두 사람은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겨 열었다.
그리고는 서로 경쟁하듯 어깨를 겹쳐가며 열린 문으로 허푸덕 탈출했다.
『닫아, 빨리 닫아! 열쇠는 어딨어!』
『소, 손이 떨려서 꽂을 수가 없어!』
『아니, 그걸 땅바닥에 떨어뜨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 병신아!』
버럭 대마왕이 화가 잔뜩 나 고성을 질러대자 송주는 더 허둥거렸다. 희한하게도 열쇠는 지느러미가 달렸다며 사람의 손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항 속의 금붕어를 뜰채로 떠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만 힘든게 아니었다. 겨우 붙잡은 열쇠가 또다시 손바닥에서 제멋대로 튕겨 올라 탈출을 감행했다. 잡으려 하자 주룩 미끄러진다. 아니, 그놈의 쇠붙이에 언제 누가 돼지비계라도 발라두었단 말인가.
보다 못해 내가 직접 나서 떨어진 열쇠를 집어 거침없는 동작으로 구멍에 꽂은 다음, 비틀어 돌렸다.
살았다... 찰칵 쇠 물리는 소리가 나자 안도감 이전에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엎어진 김에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나는 땅과 하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바, 방금 전의 그건 도대체 뭐였어?』
마찬가지로 주저앉은 송주가 넋 나간 소리를 하자 린청은 재차 격분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잖아~!! 어이, 송주... 슬금슬금 도망가지 마시고 이리 오게. 알고 있는게 조금이라도 있음 지금 전부 털어놓는게 신상에 좋을 거야. 너, 방금 전엔 무슨 까닭으로 2층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버틴 거냐.』
『왜 엄한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 보겠다고 한 너희들이 이상한 거지!』
『벌건 대낮에 저런 흉악한 것이 돌아다닐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으니까 그렇지! 너처럼 미리 알았으면 나도 저 위로는 안 올라갔어!』
『나도 나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던 건 아니야! 다만...!』
송주는 겁에 질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한 방 날리겠다고 주먹을 들어 보인 린청보다 훨씬 더 두려운 존재를 염려한 소년은 대드는 목소리도 더욱 작게 하여 거의 속삭이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나올 수도 있겠다 생각한 거지.』
캐묻는 린청의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졌다.
『뭐가 나오는데.』
『유령대부.』
『그게 누군데.』
바짝 마른 아랫입술에 침을 바른 송주는 영험한 북어포를 무기처럼 내밀었다.
『마흔 삼주 변방인 문장박사 시오재.』

말도 안 돼. 경악하여 손바닥으로 뺨을 감쌌다.
불에 탄 흔적. 망가진 두부. 맙소사... 저 흉칙한게 바로 나였어? 내가 원념이 되었다고?!
가만 있어봐.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잖아. 이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거야?

그 이름을 듣고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지금의 마흔 삼주 벽은은 원래 은이 채굴되던 작은 나라로 이사실의 주로 편입되기 전에는 왕이 다스리는 왜소한 변방국가 중 하나였다.
원래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나라였는데 왕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병환으로 세상을 뜨자 새로운 왕을 옹립하자는 독립파와 제국 이사실과 병합하자는 제국파 사이에 격렬한 내분이 벌어졌다. 내전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불온한 분위기 속에 하루하루가 지나고, 마침내 새해가 지나 열 칠일. 벽은국 부서고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다수의 서적 소실은 물론이고 문장박사 시오재가 변사했다. 불을 놓은 건 독립파였던 은서, 가명, 민정악 이 세 사람으로 후에 방화 혐의로 재판을 받은 후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 사건을 계기로 벽은국은 끝내 나라로서의 기능을 잃고 이사실의 마흔 세번째 주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잠깐만.』
맹세코 이건 내가 아는 줄거리가 아닌데.

『넌 무식해서 모르겠구나. 교과서에 나와.』
숨을 헐떡거리는 이쪽의 상태는 눈치 채지도 못하고 송주가 말했다.
『시오재는 황제폐하와 막역지간 관계로 사적으로 총애한 인물이었거든. 독립파에서 눈엣가시처럼 여겼지.』
『총애?!』
나는 이제 거의 울먹거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응. 그래서 유골을 수습하여 일부러 이사실로 가져왔어.』
남의 나라에 적룡군을 보내 부서고를 불질러놓고, 내가 죽자 그 뼈를 수습하여 여기까지 가져왔다고?
그런 주제에 총애?!
그리고 뭐? 방화의 죄를 물어 세 명을 교수형에 처했어?! 은서, 가명, 민정악 그들은 내 제자들이었다!

어느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피는 싸늘하게 식었음에도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없었던 눈물은 그 온도가 매우 뜨거워 나는 얼굴이 다 타버리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슬퍼하며 오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놓아버린 과거, 돌아봐서는 안 되는 나의 전생이 아니던가.
왜 오늘에 이르러.
원망 따윈 몰랐는데.
그런 꺼림직스러운 건 나와 관계없다 여겼건만.
지금 선명하게 되살아나, 저 아래에서 껍데기를 깨부수고 용암처럼 치솟는 이 불쾌한 감각이.
마구 소리쳐, 외쳐.
증오라 이름 붙을 이 생생한 감각이. 아아...

꽉 다물린 어금니 틈새로 인간의 말이 아닌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Posted by 미야

2015/06/19 15:13 2015/06/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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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6/19 17:07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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