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71

※ 사장님의 두툼한 턱살조차 사랑스러워라.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손글씨가 적혀진 메모 한 장을 내어민다.
「나는 강도다. 가지고 있는 돈을 가방에 모두 넣어」이런 종류인가 싶어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뭐죠? 미스터 리스.』
『나쁜 거 아니니까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빠~빠빠~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응? 이거 뭡니까.』
『지금 쓰는 모닝콜이 영 지겨워서요. Thank you.』
버튼을 눌러 핸드폰 녹음을 종료한 리스는「내가 뭘 잘못했나요?」이러고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풀어나갈 이야기는 유감스럽게도 리스의 새로운 모닝콜에 대한 것이 아니고... 장소를 바꿔보자.

초등학생들도 질겁할 정도도 촌스러운 모양새의 시계가 귀청 날아가는 굉음을 냈다.
그 소음에 안 일어나곤 못 버틴다. 그런 의미에선 썩 괜찮은 물건이다.
허겁지겁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던 라이오넬 푸스코는 아침밥 차릴 걱정부터 했다.
아내와 진작에 이혼한 관계로 학교에 가는 아들을 챙겨 밥을 먹이는 일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솔직히 말해보랴?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주고 빨아먹는 비타민 알약을 챙겨주는 일도 벅차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아이는 신통찮은 식단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불행하게도 푸스코가 보기에도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은 호랑이 캐릭터가 그려진 시리얼 박스는 너무 구렸다. 그래서 손수 계란프라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알람을 평소보다 15분 빠르게 조작을 해두었으나... 그까짓 15분,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만다.
『이런 젠장. 망할 놈의 시계!』
여전히 씩씩하게 찌롱찌롱 소리를 내는 시계를 주먹으로 퍽퍽 두드렸다. 초조해서 그런지 소리를 끄는 버튼이 어디에 달렸는지 생각이 안 났다. 충격을 받았음에도 엿 같은 소음은 그치질 않는다. 견디다 못한 우리의 형사는 빌어먹을 시계를 베개 아래로 찔러 넣었다.
다행이다. 귀 따가운 소리가 약간은 줄어들었다.
『좋아 좋아. 그럼 오늘 아침은 라이오넬 특제 팬케이크다.』
손바닥을 마주비비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랑하는 아들은 지금 엄마네 집에 가있다.

넋이 1/3 가량 나간 상태에서 침대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간밤에 어디론가 떠나버린 영혼이 여전히 집밖 어딘가에서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속상한 마음에 주먹으로 시트를 움켜쥐었다. 무기력증에 우울증까지 덮치자 꼼짝도 하기 싫어졌다. 활기찬 아침 좋아하시네. 그저 끔찍스런 어제의 연장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끔찍함은 배가 되고 있다.
「방금 전화로 익명의 제보를 받았어요, 푸스코. 행방불명된 데이비슨이 사실은 경찰에게 살해당한 거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어리둥절해 하던 카터와 다르게 푸스코의 등줄기로 차가운 얼음 알갱이가 흘러내렸다.
그래요? 그 익명의 제보자가 다른 말은 하지 않던가요? 드디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났군요. 발신자 번호 조회부터 해보시지 그래요, 카터 -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썼지만 입에 발린 말도 거기까지였다.
책상으로 시선을 내리깔기가 무섭게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위장이 콕콕 아파오면서「이제 끝장났다, 이제 끝장났어」신호를 보내왔다.
누가 봐도 복통환자로 보였기에 결국 동료 경찰들의 시선을 끌었다.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끙끙거리고.》
《아무래도 먹은게 잘못된 것 같네.》
《혹시 맥스 영감의 가판대에서 소시지 빵을 사먹지 않았나? 거기 위생상태가 영 엉망이던데. 식중독이라 생각되면 빨리 병원에 가보게.》
《아냐, 아냐. 그 정도는 아니야. 금방 괜찮아지겠지.》
소원 한 번 거창하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니. 이후부터 사실상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그게 내 잘못이라고?》
《카터에게 전화를 걸었잖아! 그건 선을 넘은 행동이었어!》
화가 나서 비난을 퍼부었으나 듣고 있던 시몬스의 표정은 차가웠다.
《틀렸어, 라이오넬. 데이비슨의 시체를 야산에 파묻은 사람은 내가 아니야. 화낼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한심한 부패경찰 라이오넬 푸스코... 결국 끽 소리도 못 냈다.
손바닥으로 한참동안 마른세수를 했다.
「데이비슨을 처형한 건 존 리스라는 사람이고, 그는 스틸스도 죽였고, 인사부를 궤멸의 지경으로 몰아넣은 장본인도 알고 보면 그 사람이고... 이런 얘기는 죽어도 못 하지. 증거도 없는데다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
반대로 모든 증거가 범인으로 지목하는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푸스코다. 출입이 엄중히 금지된 기록 보관소에 몰래 들어갔다가 데이비슨에게 발각되어 밖으로 끌려나오는 장면이 찍힌 영상이 있다. 그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푸스코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감추기 위해 데이비슨을 무참히 살해했을 거라 생각할 거다. 그러면 밤낮으로 취조가 이어질 것이고... 시몬스가 장난을 쳐서 데이비슨의 혈액이 묻은 삽이 어딘가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다. 실력 좋은 내사과 경관이 스틸스의 시체를 파낼 가능성 또한 있다. 그러면 빼도 박도 못 한다. 스틸스의 몸속에 박힌 총알은 라이오넬 소유의 권총에서 발사된 거다. 그렇다면 뻔한 결말 아닌가. 동료 경찰을 살해한 경관으로 신문에 그의 찐빵 같은 얼굴이 대문짝하게 실릴 것이다.
「아들이 날 뭐라고 생각할까...」
울고만 싶다. 아니, 이미 여러 번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었다.

《라이오넬? 만약 문제가 생기면 내가 네 뒤를 봐줄 거야.》
원더보이가 모처럼 든든한 소리를 해주었다.
《더 가까이 접근해. 뒤를 파봐. 그들을 따라가. 그리고 뒤집어봐.》
하지만 라이오넬은 속이 불편했다. 찌푸드한 그의 표정을 보고 리스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여 이번에도 역시 상한 핫도그가 핑계로 거론되었다.
《별 거 아니오. 뭘 잘못 먹은 것 같아.》
리스를 믿어도 될까. 라이오넬은 필사적으로 계산했다.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적에 저 흉악한 사내는 과연 현장으로 나타나 줄 것인가.
솔직히 반반의 가능성이었다. 군소리를 제법 하기는 해도 의외로 의리가 있어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사람 살려, 이러고 외쳤을 적에 리스가 바람처럼 나타난 적이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으니 이걸 과연 고마워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병 주고 약 주고 - 더도 말고 이를 빗대기에 아주 훌륭한 표현이다. 그나마 나타나주면 고마운 거고 -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나에겐 가족도 없어. 친구는 한 명밖에 없어.》
존 리스가 친구라고 표현한 자는 핀치라는 이름의 남자다.
라이오넬은 그를 똑똑이, 교수, 안경친구, 만능사전 등등으로 별명으로 불렀는데 정체는 존의 보스다. 가까이 하기 어려운 타입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취미는 펜타곤 해킹.
하여 라이오넬은 묻고 싶었다.
「친구가 딱 한 명이라고? 핀치만 친구야? 그럼 나는? 나는 당신의 뭔데. 혹시 딱가리야?」
병딱가리는 한 번 쓰고 버리면 된다.
어둡고 냄새나는 곳에서 다른 사람 모르게 죽어가도 아무도 관심 안 가져주는게 바로 딱가리다.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가장 좋은 속옷을 입도록 하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노란색 줄무늬의 트렁크 팬티를 꺼냈다. 그러다 너무 튀는 색인가 싶어 초록색 땡땡이로 다시 골랐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실밥이 터진 곳은 없는지, 구멍이 나지는 않았는지 세심하게 확인했다. 의사나 검시관이 보더라도 놀림이 대상이 되지 않는 그런 종류여야 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오늘도 나는 괜찮을 거야.』

욕실로 가기 전에 기함을 멈춘 자명종 시계를 베개에서 도로 꺼냈다.
이제 아침 7시 16분이다.

Posted by 미야

2013/02/01 16:19 2013/02/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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