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70

※ 내일이면 휴방 끝이다~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시원하게 벗겨진 대머리... 운동을 게을리하여 약간은 펑퍼짐한 체격.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마주칠 것 같은 그런 인상의 남자다.
등을 구부정히 하고 지급된 점퍼 주머니에 손을 꿰고 있는 자세가 어찌나 평범하던지「당신이 찾는 맥주는 이쪽이 아니라 반대편 냉장고에 있어요」이러고 말을 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웃긴 착각이다. 사내의 이름은 칼 일라이어스, 이 교도소의 실제적인 지배자다.

시력 교정용 안경을 쓴 왕이 다가오는 서튼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그의 좌우편을 둘러싼 보드가드 역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두목과 달리 몸집이 크고 단단해서 전설에 나오는 야만족 용사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도끼를 쥐고 불을 뿜는 용들의 머리를 베어냈던 그런 사람들 말이다. 물론 현대사회에 드래곤이라는 판타지 생물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잡아다 족쳤던 건 보다 현실적인 종류다. 이를테면 무장한 러시아 마피아라던가, 부패한 경찰들이라던가...
서튼은 일부러 걷는 속도를 줄였고, 보디가드 중 한 명이 이에 반응하여 몸을 돌렸다. 이름이 후안이라는 자다. 일라이어스를 보좌하기 위해 일부러 무장 강도짓을 저지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나이는 서른하나. 복싱을 잘 한다. 소문으로는 주먹만으로 사람을 때려죽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후안의 리스트에는 폭행, 무단침입 등등이 나열되어 있었어도「살인」은 없었다. 물론 운이 좋아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것일 수도 있으니 단순 헛소문으로 치부하기는 아직 이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에 멈추어 선 제임스 서튼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혹시라도 날아들 주먹에 대비했다.
그걸 본 후안이 재밌어 했다. 서튼이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교도관이 죄수를 두려워한다라 - 사실은 아니었지만 오해를 애써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오? 교도관 나으리.』
후안의 목소리는 저음인데다 울림이 강했다. 역시 야만족 용사다.
『자네 보스에게 손님이 왔네.』
『그 손님이 누구라고 전할까요.』
『쓸데없어. 자네가 그 사람이 누구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상대에 대해 알아.』
후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왕에게로 돌아가 귓속말로 몇 마디 단어를 속삭였다.
부하로부터 얘기를 전해 듣자마자 일라이어스의 눈빛이 순간 확 바뀌었다.
안경으로 감추고 있어도 서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즐거움.
유감스럽게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의.
지옥에나 가버려, 이러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댔다.

처음에 서튼은 그 남자가 전문 회계사일 거라고 짐작했다. 마피아들의 사업을 합법적인 것으로 위장해주고 자금을 세탁해주는 그런 머리 좋은 사기꾼 인간 말이다. 남자는 키가 자그마했고 옷차림이 좋았다. 종류를 잘 몰랐지만 그가 신고 있는 구두가 엄청나게 비싼 브랜드 상품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행을 살짝 비켜간 넥타이도 고급품이었다. 그가 결혼식 날에 착용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종류이리라. 그러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엔 악당이 너무나 많고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기세가 등등하다.
『라인이 그려진 가운데로 걸으시오.』
방문자 기록에는 해밀턴이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다. 허나 그게 가명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일라이어스는 친근함을 표현하며 그를「해롤드 핀치」라고 부른다. 본인은 이름이 불려지는게 싫은 눈치지만 상대는 알 카포네 다음가는 실력으로 암흑가를 장악했다던 일라이어스다. 짜증이 나니 그러지 말라 차마 말은 못 하고 쓰윽 한 번 노려보곤 그걸로 끝, 서튼이 될 대로 되라 기분이 되어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와는 사뭇 반응이 틀렸다.
「소지한 가방은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해롤드 핀치 씨.」
「착각하셨습니다. 제 이름은 해밀턴입니다.」
그 노려보는 눈초리라니.
마피아에게 빌붙어 먹고 사는 인간인 주제에 무척이나 오만한 태도라 생각되어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다.

『이쪽으로 오시오, 선생.』
해밀턴 - 해롤드 - 아무려면 어때 - 안경을 쓴 절름발이에게 눈짓했다.
일라이어스와 이 회계사 양반은 교도소의 지정된 면회장소가 아닌 교도소장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마련해준 개인적인 장소에서 미팅을 갖는다. 바로 그 점이 서튼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돋구었다. 두목이 감옥에서 썩어도 바깥에선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모양이다. 부아가 치민다.
가만있자... 서튼은 속으로 달력의 날짜를 헤아렸다. 마지막으로 이 자가 찾아왔던 것이 화요일이었다는 건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게 어느 화요일인지는 헷갈렸다. 한 20일 전인 것도 같은데. 아님 한 달 전이었나...? 물론 이쪽에서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번으로 세 번째 뵙는군요, 해밀턴 씨.』
서튼을 따라오던 절름발이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 그래서요? 제가 교도소를 방문하는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 하지만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 따지며 화내지 않았다. 게다가 이어지는 건 교활하게도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절 안내해주시는 분도 매번 같은 분이네요.』
『우연이라고 보시오?』
『우연인가요.』
『속담에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이라 합디다. 그렇다면 이건 필연이겠지요. 사실 당신의 보스가 댁을 안내하는 걸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게 막았소.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말고.』
『잠시만요. 일라이어스는 제 보스가 아닌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회계사 선생.』
『전 회계사도 아닙니다!』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당신이야말로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회계사가 아니오?』
『아닙니다.』
『그의 부하도 아니고?』
『......』
아니면 마는 거지 그 째려보는 시선이라니.

턱받침을 한 자세는 언제나와 같았지만 체스의 말을 움직이는 동작에 여느 때와 달리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테이블에 체중을 기대어 흑백으로 나눠진 64개의 칸을 즐겁게 바라보던 일라이어스는 짐짓 눈을 들어 뚱한 표정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서로 체스 게임만 즐길 뿐, 대화를 나누는 일은 극히 적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치기로 했다.
『E7에서 여왕을 E4로 옮길 겁니까? 해롤드, 여왕이 직접 움직이면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위협에 노출될 수 있어요.』
『어쩌겠어요. 그게 제 플레이 스타일이라서요.』
일라이어스가 혀를 끌끌 차며 룩을 들어 다음 칸으로 이동시켰다.
『그게 당신의 단점이죠. 그래서 존하고 싸우게 되는 거예요.』
『우린 안 싸웠어요.』
『존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도 같은 대답일까요?』
『존은 상대가 당신이라고 알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을 거예요.』
『흐음... 싸웠다는 얘기네.』
핀치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래봤자 상대방 또한 천 년을 산 이무기라서 핀치가 아무리 냉기를 뿜어도 까딱 안 했다.
『체크.』
흰색의 기사를 무참히 쓰러뜨린 일라이어스는 나아가 여왕까지 노리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13/01/31 14:11 2013/01/3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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