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40

※ 휴방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내래 음란마귀에 빙의되어 보게써. 0.1% 정도만. ※


2008년, 그루지아 내전으로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여자의 애비된 자는 모아놓은 재산을 전부 털어 아들과 같이 안전한 친척집으로 달아났다.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 손을 잡고 산으로 올라갔다. 유엔이 임시로 세운 천막에 들어가 몸을 누이자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눈물은 말라 나오지 않았다.
운명은 웃기게 돌아가 부친과 형제는 러시아군에게 죽임을 당했고, 할머니는 병사했다. 당시 17세였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우편배달 신부가 되어 미국으로 들어왔다.
말이 신부였지 창부와 다르지 않았다. 서류상 남편이었던 미국인은 아내와 다른 남성과의 데이트를 주선하고 돈을 챙겼다. 그녀의 고향인 오세티아에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포주와 마찬가지였던 남편이 생판 모르는 남자를 끌어들여 세 명이 한 침대에서 잠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다. 하나의 자궁으로 두 개의 페니스를 동시에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웠다. 얼마나 거칠게 취급을 당했던지 하혈이 심해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야, 여보.》
기회의 땅이고말고.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남편의 목으로 칼을 들이댔다.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언제나처럼 여자를 제압하려 했지만 아담스 애플 바로 위쪽으로 칼날이 2cm정도 박히자 안색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과 그만 이혼하려고요.》
즈베스따는 괴력을 발휘, 남편 목에 박힌 나이프의 손잡이를 옆으로 강하게 밀며 움직였다. 성대와 경동맥이 동시에 절단되면서 입을 벙긋거리던 남편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수법이 지나치게 잔혹했거든요. 뼈까지 자르지는 못했어도 목을 거의 가로로 절단했다고요. 아내는 병원에서 막 퇴원한 몸이었는데다 몸집이 작고 약해보였어요. 처음부터 경찰은 여자를 용의자에서 제외시켰죠. 남편이 주먹질을 제법 하던 자라서 원한 관계로 수사가 진행이 되었고... 조직폭력 전담반에서 사건을 가져갔어요. 여기서 세 명의 용의자를 추려냈는데 안토니오 바랄레스는 두 달 뒤에 다른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고, 다른 두 명은 조직간 총격전에서 사망했다고 나오는군요. 흠...!』
《즈베스따는 어떻게 되었죠, 카터?》
질문하는 리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래서 카터는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디보자. 국외로 추방되지는 않았고... 운전면허도 없고... 뭐지. 이 여잔 공기만 마시고 사나. 뭐로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 퀸즈에 주소지가 있군요. 그런데 번지수가 좀 이상하네.』
《다리 아래나 바닷가 한 가운데는 아닙니다. 세탁소더군요.》
『뭐예요, 존. 벌써 다 찾아본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그거잖아요. 그리고 카터?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즈베스따는 더 이상 금발이 아니네요. 머리를 짙은 갈색으로 염색했...》
리스와의 통화는 거기서 돌연 끊어졌다. 찰나와 같은 순간에 비명을 닮은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카터는 인상을 쓰며「통화 종료」상태가 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일부러 그런 거라면 버르장머리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만나면 엉덩이를 뻥 걷어 차주마 화를 내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그랬을까봐 염려가 되어서다.
『핀치나 존이나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 잘도 버티고 있는 거군.』
싫어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혼잣말을 궁시렁대며 호주머니로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언뜻 보기엔 강도로 의심하기 쉬웠다. 즈베스따의 몸집은 작은 편이어서 후드를 눌러쓰고 껄렁껄렁 움직이자 마약에 중독된 10대 불량 청소년처럼 보였다.
『가방을 이리로 던져.』
줄리엣 프라이스는 강도의 요구대로 움직이며 두 손을 위로 들었다. 귀중품은 목숨보다 중하지 않다. 그래서 몸을 숙이고 강도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목격자 진술이 없어도 경찰관들은 CCTV 녹화기를 가져가 강도의 인상착의를 확인할 것이다.
『지갑은 가방에 있어요. 가져가요.』
강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지만 지갑 말고 다른 걸 가져가도록 하지.』
강도는 떨어진 가방을 줍는 대신 총을 꺼내어 줄리엣의 머리를 겨누었다.

세 발의 총성은 보다 먼 곳에서 들려왔다. 기겁한 줄리엣 프라이스는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풀썩 앉았다. 즈베스따는 대응 사격으로 방아쇠를 두 번 당긴 뒤에 주차장 건물 방향으로 달아났는데 출구가 아닌 건물로 도주로를 잡았다는 점에서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운동화를 신고 번개처럼 달리던 강도는 왼손으로 철제 방화문을 열고 안으로 몸을 던졌다.
「젠장. 미치겠군.」
총성이 들렸으니 경찰이 도착한다. 피해자인 줄리엣은 네 다리로 엉금엉금 기어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소지품을 되찾으려는게 아니라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많아봤자 10분. 전력질주로 달려 주차장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추적해 올라가면서 계단 모서리 부분에서 일시적으로 멈춰서서 적의 위치를 확인했다. 귀로 듣고 냄새를 맡는다. 공기에서 니코틴 냄새가 난다. 암살범은 담배를 피운다. 그것도 골초다. 인기척이 들렸다. 시선을 위로 향했다. 즈베스따는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엉뚱하게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도주용 차량을 세워뒀을지도.」
4층까지 올라왔다. 코너를 돌기 전 습관적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
순간 사각에서 웅크리고 있던 즈베스따가 낮은 자세로 기습을 해왔다. 그녀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고깃간에서 지방과 살을 발라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그런 종류다. 스프링처럼 일어서면서 권총을 내밀고 있는 리스의 팔을 잡고 겨드랑이 부위로 칼집을 깊게 넣으려 했다. 약한 힘으로도 신경과 근육을 자르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 - 하지만 즈베스따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리스는 양손잡이다. 따라서 권총을 쥐고 있는 손만 아니라 다른 손도 멋지게 휘둘러댈 줄 알았다. 상대가 여자라고 봐주는 법도 없다. 오히려 그는 루트가 연상되는 탓에 젊은 여성을 대단히 싫어한다. 그래서 아무런 연민도 갖지 않은 채 주먹을 단단히 쥐고 살기등등하게 덤벼드는 여자의 콧잔등을 향하여 펀치를 먹였다. 그것도 두 번 연속해서 먹였다.
『윽!』
콧뼈가 부러지는 감각은 둘째고 코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출혈부위가 눈보다 아래라서 시야가 피로 가려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다량의 피는 비강을 넘어 목구멍으로 흘러내린다. 깔딱깔딱 침을 삼키는 요령으로 넘겨보지만 금세 호흡이 막힌다. 코는 불편하고, 입은 피로 가득하고, 당연한 신체반응으로 즈베스따의 동작이 박자를 잃고 흐트러졌다. 덕분에 나이프를 고쳐 쥐고 상대의 옆구리를 노렸지만 그럴 줄 알았다며 텅스텐으로 만들어진 총구가 방패처럼 칼날을 튕겨냈다.
『오세티아 출신이라면서 하는 짓은 체첸이군. 겨드랑이로 칼이 박혀 총을 떨어뜨리면 그걸 주워 수색 중이던 군인의 머리통을 일격에 날려버리지. 흥미롭군. 누가 당신을 가르쳤지?』
휘둥그레 벌어진 눈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회색도 아니고 청색도 아닌, 냉혹한 빛깔의 눈동자였다.
『당신...』
『아아, 안심해. 죽이진 않아.』
비바 아메리카나.
리스는 방아쇠를 당겨 여자의 무릎을 날려버렸다.

Posted by 미야

2012/12/12 12:02 2012/12/12 12:02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776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452 : 453 : 454 : 455 : 456 : 457 : 458 : 459 : 460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9275
Today:
981
Yesterday:
133

Calendar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