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예술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대상이 "눈으로 보는 것 이상" 이라는 느낌은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에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략) 키리코는 자신의 자화상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그리고 수수께끼가 아니라면 내가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
키리코는 이른바 피투라 메타피시카(형이상학 회화)의 창시자다.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대상은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측면과, 오직 소수의 개인들만이 투시의 순간이나 명상의 순간에 보게 되는 유령 같은 형이상학적 측면이다. 예술작품은 그 눈에 보이는 형태에 나타나지 않는 어떤 것과 관련을 가져야만 한다."
키리코의 작품들은 사물의 이러한 "유령 같은 측면"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현실의 꿈 같은 전위로서 무의식의 비전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형이상학적 추상화는 공포에 찌들린 엄격함으로 표현되며, 그림들의 분위기는 악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한 분위기다. (중략)
키리코가 무시무시한 공허를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전위시키는데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의심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의 그림들 가운데 일부는 극히 혼란스럽다. 많은 그림들은 악몽처럼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키리코는 공허에 대한 예술적 표현을 찾느라고 노력하는 가운데 현대인의 실존적 딜레마의 핵심까지 파고들었다.
저자가 구스타프 융의 이론까지 들먹거려서 골치가 아픈데 간단하게 서술해도 되는 걸 무척 어렵게 적어요, 이 망할 사람들은... 하여간 미술사적 배경이 전쟁 전후 내지는 직후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해요. 세계는 붕괴된 거죠. 그래서 익숙한 사물들이 뒤틀리고 왜곡되고, 인간미가 줄어들고, 심지어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입체파까지 나오는 겁니다. 소피치라던가 아폴리네르가 무어라 말했든간에 - 저것은 탑, 저것은 광장 이렇게 사물의 모습이 명확하지만 르네상스적 원근법이 아닌 위태로운 공간들은 멜랑콜리를 너머 혼란과 공포감을 자아내지요.
그래서 사실 키리코의 회화는 그레이스에게 어울린다기 보다는 핀치에게 어울리는 화풍입니다. 묘사된 사물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꿈처럼 어딘가 이상하게 잘못되어 있어서 보는 이들을 조바심나게 만들죠. 그걸 삐딱선을 타는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까지 동원해서 제작진은 그레이스가 아닌 "엇나가버린 기울어진 핀치" 를 과장해서 보여줬어요.
한글자막까지 무사히 나와줘서 정말 재밌게 감상했습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