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03

납득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개인 블로그나 트위터 등의 온라인 활동으로 자신의 개인 사생활을 까발린다. 이래서는 포식동물 앞에서 궁둥이를 흔들며「나를 한 입에 꿀꺽 잡아먹어 주세요」애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 순진한 사람들은 그 점을 모른다. 친구와 같이 어디에서 식사를 했는데 맛이 어떻고 분위기가 이렇고, 핸드백을 새로 샀고, 누구와 싸웠고, 화해했고, 어디로 여행을 갈 예정이고, 살을 빼야 하는데 튀긴 닭고기를 야밤에 폭식... 창피함도 모르고 발가벗고 대로에 드러눕는 행위다.
문제는 심지어 이를 권장하는 부류도 있다는 거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기계가 보내온 번호의 주인 마이클 바렛의 심리상담의는 블로그 활동을 해봐라 조언했다.
『생활 통제와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온라인 활동이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걸까요?』
『저야 모르죠. 전 블로그를 만들어본 적이 없어요, 핀치. 트위터도 하지 않고요.』
바렛의 블로그 화면을 이리저리 클릭하던 핀치는 모니터에서 힐끔 시선을 들어 리스를 쳐다보았다.
태도가 그게 뭐냐 힐난하려는 건 아니었다. 리스는 딴데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대상이 며칠 전에 핀치가 들고 왔던 로맨스 책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애정을 갈구하며 포옹하는 건 백만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인데 마흔 살이나 된 성인 남성이 이런 건 참 낯설다는 식으로 뻘쭘거리며 반응하고 있으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리스는 핀치에게 이걸 읽어봤느냐 스무 번도 넘게 질문했고, 핀치는 꼬박꼬박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마다 리스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데 뭐랄까, 진흙으로 만든 얼굴 조각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것과 비슷해 보였다. 멈추지 않고 아이스크림콘을 땅바닥에 떨어뜨린 아이처럼 굴었다. 머리를 긁고, 손등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무어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바렛 씨는 심리상담의의 조언을 그다지 열심히 따르지는 않았군요.』
올린 글의 수가 일단 적었다. 방문자 수도 거의 없었다. 다만 포토로그 쪽으로 사진 몇 장이 올라간게 핀치의 시선을 끌었다. 딸각 소리를 내어 마우스를 클릭했다.
『흐음. 이건 흥미로운데.』
심리상담의가 아예 주제를 정해놓았던지 요리를 하는 장면을 찍어 올렸다.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은 듯하다. 그중에서 식자재를 냉장고에서 꺼내는 모습이 있었는데 - 하느님 맙소사. 이렇게까지 정돈된 냉장고는 처음 본다.
『그는 강박증이 심하군요.』
라벨을 붙여 똑같은 크기의 플라스틱 통에 모든 음식물을 저장했다. 음료수도 상표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정렬, 계란에는 1번부터 30번까지 숫자를 적어놓았다. 그는 적어놓은 숫자에 따라 계란을 꺼내어 먹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진 속의 계란은 1번부터 7번까지가 공란이었다.

『깔끔하네요.』
곁눈질로 모니터를 본 리스가 감탄했다.
깔끔하긴 뭐가 깔끔해! 이래가지고는 비정상이지!
라고 말하려다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리스는 찬장에 올려놓은 통조림을 각 맞춰 정렬하는 사람이다. 쇼핑해온 포장 그대로 꾸역꾸역 집어넣고 나 몰라라 했던 누구와는 정말이지 비교된다. 그 누구 탓에 냉장고 문을 열었을 적에 캔맥주가 와르르 굴러 떨어져 발등을 크게 다쳤던 적도 있다.
「네이슨! 아파! 네이슨! 이 멍청아~!!」
친구는 사과랍시고 일주일간 그를 업어서 목적지까지 배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놓고 딱 한 번만 서비스로 업어주었다. 그것도 거실에서 화장실까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적에 슬그머니.

『핀치?』
업혔을 적에 가까이에서 맡을 수 있었던 친구의 체취를 떠올리던 핀치는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평정심, 평정심.
『이 정도로 정리벽이 있는 사람이면 집과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했을 겁니다. 그의 책상 서랍과 사무실 컴퓨터 속에 뭐가 들어가 있을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미스터 리스.』
『그러죠.』
말 나온 김에 해치운다며 리스가 겉옷을 챙겼다.

Posted by 미야

2012/10/17 09:56 2012/10/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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