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01

「이 녀석은 네덜란드어밖에 못알아 먹습니다.」
리스는 간단한 (여행자용) 회화집이 도움이 될 거라며 손바닥보다 작은 책자를 내밀었다.
이 나이에 네덜란드어로 앉아, 일어서, 엎드려, 착하지, 이런 말을 배워야 한단 말이냐 - 자유의 여신상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볼 정도로 절규했지만 그 절망의 토로는 은밀한 화장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리스는 자신의 고용주가 변비에 걸렸다고 오해했다. 어쨌든, 용무를 끝마친 뒤 손을 씻고 밖으로 나왔을 적에는 감정을 추슬러 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어른이었고, 성숙한 어른이었고, 지성은 그를 다독였다. 힘내자.

하지만 베어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지 이틀째 저녁이 되자 네덜란드어가 굳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령으로 인식하지만 않을 뿐, 영어로 말해도 잘 알아들었던 것이다.
『착하지? 베어. 목욕을 할 시간이예요.』
순간 개껌 대신으로 실크 넥타이를 씹어대던 녀석이 귀를 세우고 그를 쳐다봤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었다. 아울러 그 일그러진 표정이라는게 가관이었다.


진짜? 진심이야? 내가 그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것보다 마음을 바꿔 산책을 하러 가지 않겠는가, 토실토실한 양 친구. 궁댕이를 이 훌륭한 이빨에 물어 뜯기기 싫다면 그러는게 좋을 것 같은데.

거부의 의사는 의외로 명확해서 욕실 문을 열고 저리로 들어가라 손짓했을 적에 베어는 바닥에 엎드려 꾸벅꾸벅 조는 척했다.
『베어.』
이름을 불러봤자 한쪽 눈만 살짝 뜨고 귀찮다는 투로 반응한다.
『네놈의 사료 값을 대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니. 응?!』
열이 뻗쳐 개의 엉덩이를 밀어봤지만 몸집 커다란 수캐를 힘으로 어쩌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는 수 없이 핀치는 전화기를 들어 애견 미용실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다행이었다. 돈은 썩을 정도로 많다. 불알을 먹어치우는 사나운 개라고 설명하고 다섯 배의 이용 요금을 제시하자 수화기 저편의 전문가는 그렇다 아니다 일절 말을 삼갔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부자에게는 욕을 하지 않는다.
《고객님. 그러지 마시고요. 최근 전자동 애견 목욕기라는 기계가 발명되었다는 건 아세요? 고가이긴 하지만 고객님께 필요한 건 우리 서비스가 아닌 것 같아서요.》
세상이 많이 편리해졌다. 인터넷으로 찾아낸 카달로그 속의 물건 사진이 세탁기를 닮았다는게 큰 부담이긴 했지만... 동물 학대가 결코 아님을 강조한 광고의 붉은색 글자를 믿어주어야 할 것이다.

『베어. 천천히 걷자꾸나. 나는 다리가 안 좋아요.』
목걸이에 줄을 채우고 앞장서라는 시늉을 했다.
개는 알겠다며 총기 있는 눈으로 거리를 응시했다. 그리고 옆에서 몸을 붙이고 걸었다. 앞장서는 법은 없었다. 특이하게 베어는 가끔씩 경고 신호를 주려는 것처럼 다리에 몸을 부딪쳐왔는데 그때마다 개의 표정이... 표정이...

위를 쳐다보고 걷지 마, 위험하다고. 너, 바보냐? 차가 오잖아. 오케이. 이제 길을 건널 거야. 한 눈 팔지 말고 따라와, 이 퉁실퉁실한 양아. 그리로 가지 말고 이리로, 오케이.

림보엔 리스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또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고 책을 보는 척했다. 커피는 이미 다 마신 후였다.
『굳모닝, 핀치.』
대답은 베어가 더 빨랐다. 개는 쏜살같이 달려가 리스에게 아양을 떨어댔다.
양을 무사히 데려왔쪄욤. 뿌잉뿌잉. 나, 참 잘 했죠?
이쪽의 복잡한 심정도 모르고 리스는 칭찬의 의미로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 * * 노아드롭은 연중 관련으로 2편 부분은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본격적으로 자판을 다다다닥 눌러봅시다, 신호가 오면 그때 가서 다시 풀겠습니다
.

Posted by 미야

2012/10/15 12:41 2012/10/1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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