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54)

실내등을 켜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현관문을 다급하게 노크했다.
톡, 톡도독, 톡.
매직미러에 눈을 대고 밖을 쳐다보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간 뇌가 날아가게 된다. 인기척을 내어 방안에 있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문짝에 대고 총을 쏘는 일은 제법 흔하다. 것보다는 장전된 권총을 든 채 측면에 바짝 붙은 자세로 거기 누구냐 물어보는게 더 좋다.
《나야, 존.》
리스는 재빨리 자물쇠를 돌려 문을 열고 상대방을 집안으로 들어오게끔 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뛰어왔네. 환자는?》
《침대에.》
《침대? 저런. 의식이 없어?》
《그렇진 않아. 다만 편한 의자가 없어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자는「의자가 없다」는 말에 콧잔등을 찌푸렸다. 머리는 짧게 잘랐고, 둥근 안경을 쓰고 있었다. 리스와 남자는 북경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눈치다.
《네놈에게 없는게 의자 한 가지 뿐이겠냐. 으이그.》
《이쪽으로.》
《그럼 실례하겠수다.》

쇼크 상태이긴 해도 낯선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는 인식은 할 수 있었다. 핀치는 긴장해서 침대에서 일어서려고 했고 - 기력이 모자라 그건 실패했다 - 여의치 않자 주먹을 쥔 두 손으로 방어하듯 가슴을 가렸다. 권투 선수의 자세라고 불리우는 동작이었다.
『이 사람은 리우라고 합니다.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에요.』
설명에도 불구하고 핀치는 드러난 적개심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은 필요가 없었다. 그저 죽일 듯이 노려보며 아픔을 참듯 짧게 숨을 토해냈을 뿐이었다.

리우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존, 통역을 해줘. 아저씨? 나는 가슴 큰 금발 여자가 취향이야. 댁처럼 나이든 영감은 트럭으로 줘도 싫어. 그러니 날 강간범 쳐다보듯 하지 말아줄래? 그렇게 쏘아보면 내가 막 몹쓸 짓을 하려고 그러는 것 같잖아.》
통역을 해달라고? 존은 부탁대로 영어로 그가 말한 내용을 옮겼다.
『지금부터 상처를 치료할 겁니다. 상당히 아플지도 몰라요.』
《아, 씨발. 그만 쳐다보고 눈 깔아.》
『다친 귀가 보이도록 고개를 돌려주세요.』
《마취는 못해. 대신 이따가 환으로 된 아편을 줄게.》
『진통제는 나중에 줄게요. 일단은 참아주세요.』
《그런데 존,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통역하고 있는 거 맞아?》
『맞아.』
핀치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리스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뭔가 좀 아니다 싶었지만 영어를 전혀 모르는 리우는 그런가보다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리우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소독된 일회용 장갑을 손에 끼었다.

《총탄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때문에 스치기만 해도 귀가 뿌리째 뽑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돼. 가까이에서 맞은게 아니라서 고막은 날아가지 않았어. 청력엔 크게 문제 없을 거야. 눈알을 다치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 소리를 듣는 기관은 머리 안쪽에 들어가 있어서 귓바퀴가 찌그러진 정도로 못 듣게 되는 건 아니거든.》
핀치는 까무라칠 지경이었지만 리우는 무너진 귀를 잡아당겨 바느질로 찢어진 부분을 적당히 이어나갔다. 바늘이 살과 연골을 뚫자 눈을 질끈 감고 있었음에도 눈물이 흘러넘쳐 허벅지를 적셨다. 그래도 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으니 지독한 사람이다.
《허어! 그렇게 울 것 없어, 영감.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FDA에서 허가가 난 메드포어라는게 있어. 합성 인조 뼈야. 여기에 연골 일부를 떼어내어 D-나이프를 만들어. 영구적으로 변형이 되지 않고 모양도 아주 예쁘게 나와. 병신 되었다고 자책할 거 없다니까. 옳지... 그런데 붕대를 자를 가위가 없군. 어이, 존! 가위!》
『가위?』
《맙소사... 너네 집엔 의자는 물론이거나와 가위도 없는 거냐.》

여전히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지만 리스가 영어로 반문한「가위」라는 단어에 반응한 핀치는 손가락을 들어 찬장 서랍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두 번째 서랍 안쪽에 들어가 있어요, 존. 가져오세요.』
『어, 그게. 가위를 본 기억이 없는데...』
『거기에 있어요.』
좁은 집구석이다. 가구는 침대와 서랍장 하나, 냉장고와 식탁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살림살이는 더더욱 없어 데운 음식을 담을 접시 한 장이 절실한 판국이다. 그렇다고 생전 처음 집안에 들어온 사람이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다는 걸 한 눈에 꿰찰 정도는 아니다.
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고, 핀치가 지적한 서랍을 열었다. 가위는 정확히 그곳에 있었다.
『흠.』
복잡한 기분이었다.

《소독과 응급조치는 이것으로 끝. 상태를 조금 더 지켜봐야하긴 하겠지만.》
리우가 벗은 일회용 장갑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둥굴게 만 장갑은 완만한 호를 그리며 쓰레기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핀치는 의식이 날아갔는지 옆으로 누운 자세로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어쨌든 이 사람 귀는 성형이 필요할 거야. 상처가 아물면 전문가에게 보여.》
《고맙네, 리우.》
《고맙긴. 우리 금룡회는 자네에게 빚을 진게 있으니까.》
순간 리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기왕 빚을 갚는 김에 더 크게 갚는 건 어때.》
《얼씨구?》
《가짜로 증언할 현장 목격자가 다섯 정도 필요해. 그리고 이 사람을 대신할 사람도.》
《뭐? 나더러 지금 귀가 날아간 사람을 가짜로 한 명 만들어 내라는 건가.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게다가 대신하려면 백인이어야 하잖아. 왕 웨이 어르신의 이름으로 차이나타운을 뒤져 가짜 목격자 정도는 수백 명도 만들어줄 수 있지만...》
《추적할 수 없는 금괴 다섯 개.》
《오케이. 귀 날아간 백인을 데려다 주지.》
리우의 주름진 미간이「금괴」에 반응하여 반반해졌다.

Posted by 미야

2012/08/15 21:29 2012/08/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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