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52)

많은 책에서 총에 맞은 감각은 이러하다 수려한 문장으로 묘사하곤 한다.
숯불에 데인 것처럼 뜨겁게 아팠다던가, 얼어붙은 바다 한 가운데 빠진 것 같았다던가, 악마가 와서 어금니로 살점을 뜯어먹은 것 같았다던가... 그런데 작가들은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었다. 뇌가 수용할 수 없는 고통이 닥치면 과부하가 걸린 신경 세포는 정보를 제 위치로 전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다 주입된 정보를 엉뚱한 곳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러한 신체의 방어 작용 탓에 위기에 처한 사람들 다수가 순간적으로 고통을 잊는다. 때로는 무아지경에 가까운 황홀경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는 듯한데 이를 두고 의학은 신경전달 물질의 교란 탓이라고 해석한다. 요점은 쇼크에 빠지기 전, 아픔을 느낄 경황따윈 없다는 거다.

핀치가 제일 먼저 깨달은 건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는 거였다. 모르는 여자가 그를 향해 팔을 휘저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핀치는 그녀의 무례하고도 과장된 몸짓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래된 영화「사이코」속의 샤워 씬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공포와 두려움, 놀람, 흥분, 그리고 흑백의 아우라가 그녀의 코 언저리 주변에 가득했다.
「어랍쇼. 지금 내가 소리를 검정과 흰색으로 인식했어. 까닭이 뭐지.」
사물이 뿌옇다. 그림자들이 잔상이 남기며 어지럽게 움직였다.
콧잔등이 허전하다는 것과 같이하여 쓰던 안경을 잃어버렸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방금 전까진 이렇지 않았는데. 안경이 없어졌어.」
납득이 가질 않는다. 얼굴 반쪽이 얼얼했다. 핀치는 흠, 하고 숨을 크게 내뱉었다.

『해롤드!』
내포된 다급함이 헷갈리게 만들긴 했으나 분명 익숙한 목소리였다. 핀치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안경이 없으면 사람들의 얼굴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자갈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체격이라던가, 머리모양새가 리스와 비슷하게 보인다는 생각은 들었다.
「존, 당신이에요? 여기서 뭘 하고 있어요? 것보다 왜 그렇게 산만하게 뛰고 있어요? 신호등을 잘 살펴요. 그러다 다치겠어요.」
입은 벌렸는데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엄, 이라는 소리를 냈을 뿐이었고, 그나마 백색 신음에 가까웠다. 그런데 소음이 흑백으로 나뉘어 들리는게 가능한가?
「내 귀. 뭔가 잘못되었어.」
그의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전력을 다해 뛰었지만 군중과 거리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핀치가 흘리는 피를 보고 흥분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일은 더 고약해졌다. 그를 서둘러 보호해야 했지만 날뛰는 사람들을 밀치고 가까이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기랄.』
두 번째 장전된 총알이 날아올 즈음이라고 판단되자 저절로 몸이 움찔하며 반응했다.
회피, 주의, 방어. 몸의 안전을 추구하려는 본능에 욕지기가 솟구쳤다. 동시에 그의 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두 번째 저격 성공, 핀치는 죽는다. 닿을 수 없다. 이 거리에선 몸을 날려봤자 저격범으로부터 그를 지킬 수 없다. 이 얼마나 무능한. 입술을 깨물었다.
『해롤드!』
기능을 잃었던 초침이 순간 딸각 소리를 내고 움직였다.
예상과는 달리 두 번째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끝도 없이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수라장.
리스는 가까스로 핀치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움직여요!』
핀치는 멍한 눈빛이었다. 그는 리스와 눈을 맞추는 동작마저 힘들어했다.
『이리와요!』
그의 보스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세를 낮추고 재빠르게 움직인다는 동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리스는 핀치를 거의 짐짝처럼 취급하며 - 그렇다고 해도 성인 남성을 들쳐 메고 옮기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그의 오른팔은 예의 부상이 다 낫지 않았다 - 빠르게 이동했다.

핀치는 질질 끌려왔다. 오른발로 간혹 체중을 디디기도 했으나 말썽을 부리는 왼발은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당연히 미칠 것처럼 무거웠다. 리스는 상처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부득이 오른팔로 핀치의 등허리 옷자락을 붙잡았다. 왼팔은 위로 들어 핀치의 목덜미를 잡았다. 양팔에 핀치의 몸무게가 실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자세로 10미터 이상을 뛰었다.

『리스 씨.』
과부하가 걸렸던 신경전달 회로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이었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건 이쪽인데 헐떡거리는 신음은 핀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것도 심상치 않은 헐떡거림이었다.
『우리가... 우리가 총에 맞았어요.』
그의 고용주가 내가,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핀치는 다시 한 번 더 외쳤다.
『우리가 총에 맞았어요!』
리스는 침착해지려고 기를 쓰며 목소리를 낮췄다.
『방금 당신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자꾸 잡아당기지 말아요. 셔츠가 바지 밖으로 빠져 나와요.』
『해롤드. 진정해요.』
『알아요! 난 안경을 잃어버렸어요!』
『핀치. 안경은 다시 구하면 되요.』
『내 귀는요. 귀도 없어졌어요. 그들이 내 귀를 가져가 버렸어요!』
리스는 너덜너덜 헤어진 귀의 잔해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부 없어지진 않았어요. 제대로 꿰매기만 하면 당신 귀는 곧 괜찮아질 겁니다.』
절반은 과장이었다. 하지만 핀치는 솜씨가 뛰어난 성형외과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막대한 돈을 가지고 있어서 수술비와 의료보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핀치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쇼크 증상이다.
『어... 어떻하지. 제가 곧 기절할 것 같습니다, 미스터 리스.』
당연한 반응으로 몸 떨림이 나타났다.
리스는 재빨리 판단했다. 그가 정신을 잃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차를 한 대 훔치자.

핸드폰이 울린 건 훔치기 좋은 차를 막 물색하고 있을 때였다.
수신자 번호는 감춰져 있었다.
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맹세코 널 죽여버릴거야.』
《...》
『널 찾아내어 죽일거야, 존슨 클라이너.』
리스는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때 변조된 기계음으로 클라이너가 말했다.
《나는 경찰은 죽이지 않소.》
『??』
누가 경찰인데?
이쪽에서 되묻기도 전에 통화가 끊겼다.

Posted by 미야

2012/08/13 19:55 2012/08/13 19:5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578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612 : 613 : 614 : 615 : 616 : 617 : 618 : 619 : 620 : ... 197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1962
Today:
316
Yesterday:
324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