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51)

테러리스트 하부 조직을 잡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나머지 것들도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5시간을 고문해봐도 나오는 대답은「다른 사람은 몰라요, 정말입니다」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거짓말이 아니다. 내내 얻어맞는동안 방광이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면 사촌 누이 남편의 고모의 오라비가 누구인지까지 술술 털어놓는게 인간이다. 이때 모른다고 하면 정말로 모르는 것이다.
누구에게로부터 돈이 나오는 건지, 누가 작전을 지휘하는 건지, 다른 임무를 맡은 다른 조직원들이 누구인지. 정보는 차단되어 모두 비밀에 싸여있다. 그들이 아는 거라고는 특정 가방을, 어떠한 자동차를 타고, 어느 지역으로 가서, 이러저러한 주소까지 배달하라는 지령밖에 없다. 심지어 그 가방의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배달물 탓에 하마터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될 뻔했다고 알려주면 눈이 휘둥그레 커지기도 한다. 그러다 거짓말하지 말라며 손사레를 친다. 생물학적 무기를 운반했다는 용의자를 체포해도 이끌어낼 정보가 이 정도다.


자, 그런데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의 조직 운영 원리의 원조가 사실은 CIA라면 어떨까.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현장에서 암약하는 CIA 요원들은 자신들이 쓴 보고서를 누가 읽게 되는지 정확히 모른다. 심각해지면 월급을 누가 주는지도 불명확하게 된다. 다리 하나만 건너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워싱턴 정가에서 대통령과 독대하는 최고 책임자 인간이야 오픈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검은색 매직으로 찍찍 그어지는 자료들이다. 조직은 각각 단절되어 있으며, 연결 고리는 너무나 느슨하여 여차하면 끊어져 소실된다. 전체 그림은 절대로 알 수 없다.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매번 그 모습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크 생각이 나는군.」
도로가 내뿜는 아스팔트 열기를 피해 가로수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시원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수은주가 갑자기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여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플랑카드를 휘날리며 성급하게 반팔 옷차림으로 나온 사람들도 등장했다. 검정 코트 차림새의 리스와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웃고 있었고, 노래를 불렀으며, 강아지처럼 바빴다.
「마크는 저런 사람들 속에 있는 걸 대단히 싫어했지...」
우리는 전쟁 중이다.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 그게 마크의 입버릇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로운 거리의 모습에 진심으로 반발했다. 산책하는 개를 싫어했고, 어린아이가 웃으면 질겁했다. 공원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 모양이 가늘어졌다. 음료수를 마시며 걷는 사람들은 혐오스런 돼지와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들을 봐, 존.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나태하게 늘어져 지금이 평화 시기라고 믿고 있어. 저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그렇게 희생하며 싸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괴로워질 때가 있어. 조국을 사랑하지만 저 사람들까지는 사랑할 수가 없어.」마크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곁을 주지 않는 성품인 존은 마크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을 가진게 없다. 외모가 아름다웠던 캐라에 대해 감정을 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크는 연락책이고, 캐라는 같이 일하는 파트너였다. 그들을 서로를 알고 지낸게 몇 년이었어도 개인적으로는 아는 내용이 거의 없다. 그들의 가족? 생활수준? 종교적 가치관? 글쎄. 전부 불투명하다.

리스는 다시 존슨 클라이너라는 자를 생각했다.
비뚫어진 CIA. 저격 전문.
마크라면 그를 강제로 은퇴시켰을지도 모른다. 마크는 제멋대로 구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존슨 클라이너의 연락책은 누구였을까. 얼굴이라도 알던 사람일까. 그의 파트너는 누구일까. 여자일까, 아님 남자일까. 나이가 많은 사람일까, 아님 젊은 사람일까. 그는 파트너인 존슨 클라이너가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아마도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의 잘못을 묵살하고... 어째서 그런 짓을. 모르겠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해도 되지 않는다. CIA는 독자 행동을 묵인할 정도로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순간 흠칫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핀치다.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감청색 양복을 입었다. 검정색 서류 가방을 들고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밤엔 수면을 충분히 취했는지 오늘은 다리를 저는게 그렇게 심하지 않다.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다. 좌우를 살피는 것도 여전하다. 안경알은 먼지 하나 없이 반짝거린다. 또한 신사는 공단의 포켓치프를 잊지 않는다. 신호를 기다리다 말고 시계를 내려다본다. 그 까닭을 리스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손해보험사 사무실에 들려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전에 가판대에 들려 일본식 녹차를 살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있는 것이다. 입술을 가늘게 안쪽으로 빨아들이고 불편해 한다. 저런, 녹차를 사러 가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은가 보다. 마음을 굳혔는지 자세를 바르게 한다. 실망한 표정이다. 아니면 짜증을 내고 있다. 그리고 언짢은 얼굴로 군중들 속으로 몸을 숨긴다.

마음 같아선 녹차를 사서 사무실로 배달을 시켜주고 싶지만 리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핀치가 싫어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핀치가 화내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핀치의 시야각에서 벗어난 장소를 찾는다. 그는 계속해서 관찰만 할 것이다. 오늘은「좋은 아침입니다」인사가 없는 날이었고, 만남이 없는 날은 매번 이런 식이다.

신호가 켜졌다. 사람들이 보도에서 도로로 쏟아져 내려온다.
그들과 섞여 핀치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탕-

총성은 멀리서 들려왔다. 그것도 꽤 높은 것에서 들려왔다. 소음은 고층 건물에 몇 차례 반사되어 지면에 가까이 서있는 사람들 귀엔 공허하고도 아련하게 느껴졌다. 천둥인가? 커다란 가방을 옆구리에 멘 여자가 궁금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력이 난무하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녀는 총성이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전혀 몰랐다.
「그들의 순진함을 목격할 적마다 나는 증오를 느껴.」

핀치가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한쪽 뺨 가장자리가 매우 붉다.
왜. 어째서.
그의 눈썹이 활처럼 구부러진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다.

『해롤드!』
군중을 밀치며 달려나간다.
하지만 느리다.
너무 멀다.
닿을 수 없다.
재조준까지 1.5초.
『해롤드!!』

핀치가 뛰어오는 리스를 발견한다.
그는 웃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그저 넋을 잃고 멈춰 서있다.
정지.
시계의 초침이 움직임을 멈춘다.
『해롤드!』
핀치의 눈꺼풀이 깜빡인다.
영원에 가까운.
찰라?
설마.
핀치의 입 모양이 한 단어를 만든다.

존.

Posted by 미야

2012/08/10 14:18 2012/08/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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