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32

제6장 구름 위의 무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치료를 이유로 들었지만 다른 두 사람과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건 눈치껏 알 수 있었다.
불타는 부적에 찔려 눈을 다친 남자는 진작에 피리 불던 사나이와 같이 다른 곳으로 끌려갔는데 화상 자리가 덧나 고름이 올라왔어도 약은 감히 바랄 수도 없었고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 취조를 받은 모양이었다.
횡설수설하여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불평을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와 비교하면 나는 천국행이었다.
좁았지만 깨끗한 방에 머물렀고 하루에 두 번 밥이 나왔다. 나물 반찬 두 가지에 밥이 전부인 소박한 상이었어도 죄인(추정)에게 매번 따뜻한 밥을 넣어준다는 점은 의외였다.
물론 약간의 심술은 없지 않아 내게 밥을 넣어주던 심부름꾼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시체를 구해와 값을 받고 팔아치운 일당이 잡혔다. 몸에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어 마을에서 추방하는 낙인형에 처했다. 그렇게 추방이 되고 나면 사사롭게 물건을 사고팔거나 남에게 고용살이를 할 수가 없어 법률상 무능력자인 금치산자가 되어버린다. 사실상 굶어 죽으라는 처벌이다.’
그렇게 ‘굶어 죽는 처벌’ 운운하면서 나더러 밥풀 하나 남기지 말고 싹싹 긁어먹으라 했다.
분명 꼽 주려고 하는 말이었다.

감시는 느슨했다. 소지품 검사도 하지 않았으며, 손을 묶은 포승줄은 헐렁하여 요령을 부리면 팔이 저절로 쑥 빠져나오곤 했다.
몇 번은 풀린 밧줄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딴청을 부렸는데 절상과 찰과상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그걸 못 알아차렸을 리가 없었다. 몇 번 반복되자 치료를 맡은 수사는 아예 줄을 풀어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치료에 방해가 되어 귀찮다는 게 이유였다.
“상처가 낫는 동안엔 열이 나는 법인데 너는 반대로 몸이 비정상적으로 차구나.”
그러더니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어 혀를 내밀어 보라고 시켰다.
부끄러워 싫다고 하였더니 꿀밤이 날아왔다.
두 번 맞기는 싫어 혀를 내밀었다. 몰랐는데 내 혀의 색은 붉은색이 아니라 거의 파란 빛깔이었다.
“하루에 소변과 대변은 몇 번을 보지?”
나도 모르게 화장실은 전혀 가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확 달라지는 수사의 안색을 보고 서둘러 거짓말이었다고 둘러댔다. 밥을 하루에 두 번이나 먹으면서 용변을 전혀 안 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몸의 시스템은 완전히 고장 나 위장으로 들어간 음식이 소화과정 없이 가루로 변하는 느낌이었다. 나야 세상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수사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밧줄로 꽁꽁 묶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또 의외였다.

한 번은 금릉이 강아지 꼬마 선자와 같이 근처로 (쳐들어)온 적도 있었다.
“내 하인이니까 구린내는 내가 데려가겠다!”
멋대로 굴지 말라며 금릉을 내쫓으러 온 남경의가 화를 냈다.
“솔직히 네 하인이 아니잖아. 왜 그렇게 고집하는 건데?”
“그거야 구린내가 건방지니까. 그래서 내 하인으로 데려갈 거다.”
“뭔 소리야? 알아 들을 수가 없네. 단계가 너무 여러 번 건너뛰잖아.”
“건방지게 날 금릉, 금릉, 이러고 이름을 부르잖아. 걘 바보라서 고개도 빳빳하다고. 심지어 자기가 형인 척 굴어. 그러니 정식으로 내 하인이 되면 제 분수를 알고 공손해지겠지. 흥!”
“그게 이유야?!”

벽에 귀를 대고 두 소년의 말다툼을 엿듣고 있던 나는 이마를 때렸다.
다음에 만날 일이 있음 ‘아이고 금 공자님! 그새 강녕하셨습니까!’ 허리를 접어 정중하게 인사해야겠다. 재벌 3세에게 밉보여서 좋을 거 하나 없다. 애기가 귀엽고 예쁘장해서 나도 모르게 살갑게 대한 모양인데 본인이 싫다면 관두는 게 옳았다. 빨리 어른대접을 받고 싶어 하던 아이라서 내 태도가 곱절은 더 싫었나 보다.
그런데 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떼를 쓰는 버릇부터 고쳐야 할 텐데.
기어코 내 얼굴을 보고 가겠다는 걸 남경의가 뜯어 말리느라 애를 썼다.

그렇게 며칠인지 몇 주인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 날, 밥 넣어주던 수사가 곧 나도 추문을 받게 될 거라고 알려왔다.
눈을 다친 사내와 피리 불던 사내는 사마외도와 주시현살(現撒) 죄목으로 이미 무서운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네가 생각하기에 제일 무서운 형벌이 무엇일 거 같아?’ 질문을 던져 절로 목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이쪽의 표정이 썩어가자 ‘그 답은 사형(死刑)이 절대 아니다.’ 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완전 소시오패스였다. 내 안색이 나빠지자 수사의 얼굴은 반대로 달덩이처럼 환해졌다.
고소 사람들은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사람을 괴롭히길 즐기는 것 같았다.
추문을 받으러 가기 전에 수의를 강제로 입히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절대로 안 입는다고 발버둥을 쳤는데도 그들은 완강한 태도로 내게 무늬 없는 흰옷을 입혔다.

“빗자루 같은 머리도 가지런히 만지고 가세요.”
거울을 볼 수 있었다는 점 하나는 만족스러웠다.
다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크게 실망스러웠다. 속으로 쌓인 화가 많아 보이는 소년은 피부가 거칠었고 이마와 콧날이 펑퍼짐했다. 쌍꺼풀이 없는 눈은 평범했고 눈썹은 얇았다. 일주일 연속으로 철야한 안색이었고 몰랐는데 뺨 가운데 점이 W, A, S, D 키보드 방향으로 네 개나 있었다.
‘걸람은 이렇게 생겼구나.’
얼굴을 이리저리 잡아당기며 신기해하자 수사가 강제로 거울을 빼앗았다.
“늦는 건 결례입니다.”

추문한다는 거, 일일이 따져 물어가며 죄를 문초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소에선 좀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손톱을 튕기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전생에선 경찰서에 가본 적도 없어 신호위반 범칙금 딱지를 끊은 게 전부다. 나는 치킨에 맥주를 배달시켜 먹는 걸 삶의 행복으로 여기던 소시민이었고, 폭행이라던가, 사기라던가, 성추행 같은 범죄는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뉴스로만 접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사고를 치고 다니기엔 담이 작았다.
현생도 그럭저럭 비슷했다. 나는 그다지 욕심이 없는 편이고, 시키는 일에 얌전히 잘 따랐다.
그래서 추문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상대방을 흘깃 곁눈질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1시진 넘게 가만히 앉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다. 아까부터 발가락이 저려와 미칠 지경인데 자세를 편안히 바꾸지도 못하고 추문을 받고 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진짜로 추문 맞기는 하고?
마주보고 앉은 남자는 입도 뻥끗 안 했다. 그저 뚫어져라 날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냥 눈빛으로 날 건조 오징어로 만들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경우엔 이름이 뭔지 묻고, 출신을 따지고, 지은 죄가 무엇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낱낱이 파헤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저 함광군이라는 사내는 나에게 수의를 입혀 어두컴컴한 방으로 따로 불러내곤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이러다간 분위기에 말려 ‘제가 전부 잘못한 겁니다!’ 인정해버리고 말 것 같다.
매우 고단수의 심리적 압박이었다.

‘그렇군. 이게 남씨 가문의 추문이라는 거군.’
신음을 삼키며 저려오는 종아리를 손톱으로 꼬집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달려라 하니 주제가를 속으로 백번 쯤 부른 뒤라 찌릿거리기는커녕 감각 자체가 흐릿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함광군이 빈틈없는 자세로 그런 날 응시했다.
눈빛만으로도 꾸중을 들은 기분이 들어 울적해졌다.

참다못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요.”
함광군이 눈썹을 찡그렸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그의 눈썹이 더 일그러졌다.
“그렇게 찡그리면 눈가에 주름 생겨요.”
내 충고에도 아랑곳없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감각을 잃어가는 발가락에 몰래 침을 바를 궁리나 했다.

그때 통 통, 이러고 밖에서 문고리를 치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망기야. 안에 있지?”
물어보는 목소리에 함광군은 못 내켜하며 대답했다.
“예, 형장.”
“아무래도 객은 내가 데려가야겠다.”
“......”
“대답을 해야지. 망기야?”
“예, 형장.”
“너는 거기서 잠시 마음을 다스리고 있거라. 객은 내가 데려가마.”
함광군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생긴 남자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복장도 비슷하고, 체형도 비슷하고, 심지어 머리 묶은 모양도 똑같아서 붕어빵 틀로 찍어낸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고소 사람들이 함광군과 이 사내를 헷갈려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눈의 색상이 더 짙었고, 분위기가 따뜻했다. 저쪽이 살얼음이면 이쪽은 봄날의 햇볕 냄새가 났다. 지금의 이 상황이 매우 곤란하다는 표정이었음에도 입가에 미륵반가사유상의 불가사의 미소가 머물러 우아하고도 여유로웠다.
“저어, 죄송하지만... 제가 다리가 저려서.”
당장은 일어나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며 배려까지 해줬다.
필요하다면 손을 빌려 주겠다고도 했다.
이것저것 저울질하고 그렇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나는 콧잔등에 침을 바르고는 스스로 일어나선 후들거리는 다리로 문지방을 넘었다.
입고 있는 수의의 자락이 길어 하마터면 밟고 넘어질 뻔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금방 균형을 바로잡아 만장하신 가운데 엎어진다는 참사는 면할 수가 있었다.

“왜 수의라고 생각한 거지? 그건 고소의 문하생들이 입는 옷이다.”
그가 난처하게 웃으며 신발을 신는 걸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런데 길이가 맞지 않는군. 소매도 길고. 공자의 체격이 작아서... 아! 실례.”
“키가 작은 건 사실이니 실례라고 할 건 아닙니다만, 문하생이 입는 걸 왜 저에게 입힌 건데요?”
“글쎄. 망기가 그 옷을 입은 공자의 모습이 보고 싶었나 보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난처한 미소가 더 난처해졌다.
뜻을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어색하게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Posted by 미야

2021/11/25 13:58 2021/11/2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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