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28

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같은 자리를 더 맞으면 바보가 될 지경이었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빌었다.
“성장기 청소년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에요. 왜 밖에 나와 계시는 거예요, 공자님들. 밤에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키가 크지 않습니다.”
“이 낯짝 두꺼운 거 보라지. 그러는 너는 다 큰 어른이라서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고?”
야무지게 찰싹 소리가 또 한 번 났다.
남경의의 손바닥 맛은 상당히 매워서 맞은 자리가 후끈후끈했다.

의외였다면 착한 경찰, 나쁜 경찰 역할 중 착한 경찰 쪽을 맡은 남사추가 불쌍하니 때리지 말라며 말릴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속눈썹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얻어맞고 있는 나를 빤히 관찰했다. 그러고 보니 시장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에도 이릉노조의 초상화와 부적을 사고 있던 나를 저런 식으로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더랬다.
괜히 찔렸다. 그래요! 자백할게요! 저 사람인 척하는 흉시예요!

“누구와 닮았다는 느낌인데 잘 모르겠어. 저번에도 그러더니 생각이 날 듯 말 듯 안 나네.”
입속으로 혼잣말을 굴린 남사추는 계속해서 인상을 쓰며 나와 눈을 맞췄다.
하지만 비루먹던 고아인 나와 구름 위에서 사는 현문 세가의 자제 사이에 무슨 접합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기억도 흐릿한 걸람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쩌다 높으신 분들 집에서 하인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고 쳐도 저들 남가 소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걸람의 부모가 죽었으니 시간상으로도 맞지 않았다.
남사추가 내 얼굴을 보고 도대체 누굴 떠올린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거울이 귀한 관계로 나도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니 막연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좋습니다. 그건 그렇고 도령, 이 늦은 시간에 무슨 까닭으로 무덤가를 어슬렁거린 겁니까.”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따져 묻는 남사추의 표정은 상냥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별 거 아닙니다. 낮에 떨어뜨린 물건을 찾고 있었어요.”
“해가 없어 어두운데 어떻게 찾으려고요.”
“손으로 더듬어서요.”
“그렇게까지 해서 급히 찾아야 했던 물건이 무엇이었지요?”
“돈주머니요.”
거짓말은 디테일에서 나오는 법이다. 나는 급히 허리춤을 뒤져 예전에 노잣돈으로 쓰라며 받은 보라색 돈주머니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동전 하나 안 들어가 있었지만 지금 수중에 있는 물건 중 핑계로 써먹을 값나갈 종류라곤 그거 하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 돈주머니를 본 몇은 자기에게 팔 생각이 있느냐 물어본 적도 있다.

“양심도 없는 놈! 입만 열면 그냥 술술 거짓말이 나오는구나. 누가 속을 줄 알아?!”
제법 그럴 듯한 변명이라 여겼건만 남경의가 욕을 하며 또 내 머리를 때렸다.
“어검을 하여 진작부터 따라와 전부 보고 있었다! 그냥 머리통에 ‘수상한 짓을 할 겁니다, 앞으로 사고를 또 치겠습니다.’ 써 붙이고 있는데 두고만 있을 거라 생각했나! 이래서 애들이 제일 싫다니까!”
저 어린애 아닙니다만. 댁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습니다만.
어쨌든 머리 꼭대기에서 전부 보고 있었다는데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치지 않고 남사추가 한숨을 푹 내쉬며 굳은 표정으로 훈계했다.
“도령. 사술을 익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근골 없는 몸으로 태어나 영력을 가질 수 없다고 사마외도로 관심을 돌려봤자 결과가 좋게 끝나지 않아요. 효과가 빠르고 자질의 제한이 없어 유혹적으로 보이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릉노조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보세요. 수련자 정신과 신체의 근본이 망가집니다.”
그 양반 최후가 어땠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완전 오해를 샀다. 이릉노조에게 관심을 보이고, 가짜 부적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사술에 집착하여 도사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걸로 완전 찍힌 모양이다.
그럼 한밤중에 내가 이리로 몰래 와 무덤을 뒤진 것도... 아이구야.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묘지에서 사술에 쓸 원기를 박박 긁어모으는 중이라고 착각하고 저리 화를 내는 거였다.

억울하다는 생각 이전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진계 사람들은 진짜지 내 인생에서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닙니다만.” 절로 말투가 딱딱해졌다.
“현장에서 걸렸는데 뭐가 아니라는 거야. 너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을 우리가 한 두 번 봤는 줄 알아?”
“목소리 높이지 마. 내가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어쭈?! 애기 도사가 이젠 대놓고 반말을 하네?”
남경의가 또다시 주먹을 들어 때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다고 쫄 거 같아?! 나는 까치발을 들고 언성을 높였다.
“애기 도사라고 하지 마! 분명히 말해두는데 나는 마법이나 도술 이런 거에 관심이 없어! 선입관을 가지고 멋대로 판단하지 마! 내 소원은 전국제패가 아니라 극락왕생이고, 무엇보다 나는 이릉노조의 추종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그러니 주제도 모르고 떠들지 말고 내 앞에서 썩 꺼져!”

남사추와 남경의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거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그러더니 발끈하고 진짜로 해보자며 남경의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멋대로 하라지. 무덤가에서 패싸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체면 때문에 개싸움을 못하는 건 그들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경멸의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흙먼지를 털고 돌아섰다.

해가 밝아오자 동네는 어수선했다.
식살귀를 잡겠다며 밤새 산속에서 날뛰던 선사들은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내려와 뜨끈한 국물에 만 국수를 먹으며 배를 채우는 중이었고, 나와 다퉜던 남가 소년들은 그새 동네를 떴는지 아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들 헛다리 짚은 거라니까. 있지도 않은 식살귀를 잡겠다니. 쯧쯧.”
부지런히 찐빵을 찌며 음식을 만들고 있는 가게 옆에서 어제까지도 이릉노조의 초상화와 부적을 팔던 가짜 도사가 당분간 업종을 바꾼답시고 나무를 깎아 만든 구슬장식을 가지고 좌판을 펼치고 있었다.
옷도 바꿔 입었다. 오늘은 콘셉트는 고도로 숙련된 조각 장인이어서 스님 비슷한 느낌을 내고 있었다.
그래봤자 초상화에 코를 안 그려 넣는 실력이 어디로 갈 리가 없어 팔 물건이라고 가져온 나무 구슬은 어린애도 안 쳐다볼 정도로 죄다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그건 둥글게 다듬어지지도 않았다.

“도사님 나오셨어요?” 
“입 조심해라. 누가 도사라는 거니. 선사님들이 듣고 오해하실라.”
야단을 치며 나무구슬을 색실로 묶어 진열했다.
장난감인가? 아님 열쇠고리? 용도를 물어보니 쓰고 싶은 사람 마음이란다. 내키면 방문 손잡이에 걸어두라나. 손에 쥐고 굴리면 지압이 되어서 좋다는 말도 했다.
“하나 살 겨?”
“지금은 돈이 없어서요.”
“그럼 남의 장사 방해하지 말고 비켜.”
“예이, 예이. 하나만 알려주심 얼른 비켜드리죠. 혹시 요 근래 야밤에 수레를 쓰는 사람은 없었나요?”
“응? 어느 미친놈이 수레를 밤에 써.”
“모른다는 말씀으로 듣죠. 그럼 많이 파세요, 저는 갈게요.”
수레자국이 있었다.
들기면 곤란한 걸 싣고서. 그러니 사람의 시선이 닿는 낮에는 움직이지 못했을 거다.

배고픔을 알아도 배고파 죽을 일 없고, 수면부족이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도 뇌가 망가져 죽을 일 없는 몸으로 한적한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이런 외진 곳에서 구걸을 하면 소득이 없어 곧 굶어 죽을 거라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간혹 만났다.
대다수는 무심하게 내가 있는 곳을 지나쳐 각자의 용무를 보러 갔다.
나는 가끔씩 ‘한 푼만 주세요, 나리.’ 운을 떼며 나무장대로 흙바닥을 툭툭 치곤 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한가로웠다.
우마차가 지나갔다. 여행길에 오른 과년한 여성이었는지 뒤로 덩치 큰 하인들도 붙어갔다.
행상인 무리도 지나갔다. 그들이 쓰는 수레는 크기가 컸고 바퀴의 폭도 넓었다.
밤이 되자 인적이 끊겼다. 나는 나무장대로 다시 바닥을 툭툭 쳤다.
다음날이 지나고, 다시 그 다음날이 지났다.
좀이 쑤셔 미칠 것 같아 장소를 바꿔볼까 고민하던 찰나, 하현달이 뜨던 날의 축시(※밤1시~3시)에 내가 기다리던 수레가 지나갔다.

두건을 눌러 쓴 두 명의 사내가 조를 이뤄 작은 수레를 끌며 바삐 갈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한 명은 수레를 끌고 가고, 다른 한 명은 등불을 들었는데 특이하게도 등불 한 면에 어두운 색의 종이를 덧붙여 빛이 사방으로 퍼지지 않게 세심하게 조절을 했다는 점이다.
싣고 가는 물건은 부피도 크지 않고 무게도 그리 심하게 나가는 종류가 아니어서 가끔씩 바퀴가 달각달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이들이 들고 가는 등에는 ‘질(疾)’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제법 그럴 듯하네.”
저러면 눈에 띄지 않는다. 설령 눈에 띈다고 해도 다들 보지 못한 척할 것이다.
사람들이 거지 행세를 하는 나를 눈에 담지 않은 척하며 지나간 것과 마찬가지다.
감탄하며 몰래 수레 뒤를 따라갔다.
병자의 시신을 구분하여 묻으러 가는 길이라고 하기엔 방향이 이상했고, 갈림길에 이르자 야산으로 올라가는 길 대신 교외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건물은 담장이 엄청 높았고, 크기만 컸지 외관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한창 때의 약양 상씨 저택과 비교했을 적에 급이 많이 떨어지는 건물이었다.
남자들은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달빛이 어두운 시간이었음에도 톡톡 문을 치는 소리에 빠르게 반응하여 뒷문이 열렸다. 이미 안쪽에서 사람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어둠에 숨어 주위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뒷문으로 다가가 귀를 대어보았다.
틀렸다. 내 귀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높이가 있는 담 안쪽을 기웃거릴 방도를 궁리하며 둘레를 조금 걸었다.
그때 뒷문이 다시 열렸고, 용무를 다 마친 건지 후련한 얼굴을 한 두건을 쓴 두 사람이 등불과 빈 수레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등불을 든 자가 수건으로 싼 걸 꺼내더니 즉석에서 둘로 나눠 수레를 끄는 자에게 건넸다. 받은 돈을 나눠가지는 듯했다.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러더니 왔을 때와는 다르게 등 돌리고 헤어져 각자 자기 갈 길로 떠났다.
“버크와 헤어 맞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고 다시 뒷문으로 접근했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귀를 문에 대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는지 잘 들어보려 했다.
누구는 이렇게 해서 옆집 사는 여자들 옷 벗는 소리까지 엿들었다는데 내 귀는 영 성능이 떨어지는지 아무런 소음도 포착을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잘 빗어 넘기고 다시 귀를 가져갔다.
돌연 묵직한 통증이 종아리를 강타하지만 않았어도 계속 귀를 대고 있었을 거다.

와앙.
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를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종아리를 콱 물었다.

Posted by 미야

2021/11/19 14:05 2021/11/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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