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100 : 101 : ... 658 : Next »

뉴스를 읽어보니 임시 공휴일엔 관공서와 은행이 휴무하고 일반 기업체는 휴무 여부를 알아서 결정하는 거라고...
해서 우리는 아마 해당이 없을 것 같아요. 좀 짜증스럽네요.
뭐, 집에 있어봤자 좋은 점 하나 없지만... 나가서 놀 능력도 되지 않고.
그래도 남들 놀 적에 근로해야 한다고 하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이...

오늘도 스기타상의 "더 매달려 봐" 음원이나 들면서 욕구불만을 풀어야지. T^T

Posted by 미야

2015/08/04 17:23 2015/08/04 17:23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970

Leave a comment

말에 태워져 우리가 향한 곳은 부유한 상인이 애용할 법한 여관으로 시설이 무척 고급스러운 장소였다.
이름은 부용관이라고 했다.
멈춘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니 직원인 듯한 자가 바깥까지 나와 깍듯이 인사하며 마중을 했다.
이라벽치의 군장을 보고 놀라고, 다시 피투성이 옷차림의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숨을 들이킨 걸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결례는 없었다. 어지간한 상황은 죄다 겪어봤던 걸까. 다급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라고 묻는 대신 말고삐를 쥐고 앵무새처럼「어떤 방을 준비해드릴까요」정해진 대사만 늘어놓았다.

『이 아이를 씻기게.』
이라벽치의 주문에 직원의 뺨이 딱 한 번만 실룩 움직였다.
둔한 사내인 이라벽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는데 사실 눈여겨 관찰하지 않는 이상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묘한 움직임이긴 했다.
그래봤자 직원이 숨을 죽인 까닭을 짐작해버린 내 입장에선 낯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음... 직원은 비교적 신분이 높은 적룡군 병사가 그다지 순종적이지 않은 어린 남창과 잠시 유희를 즐기려고 한다 착각하고 있었다. 남창은 뺨을 맞았고, 옷이 매우 더러웠는데 분명 여기에 오기 전 한바탕 치정 싸움을 벌였다 - 역사책 두께의 장대한 두루마리 이야기가 상상의 세계에서 화려하게 펼쳐졌지만 그래봤자 훈련된 직원은 사연을 캐묻는 대신 우리와 시선이 마주치는 일 없게끔 고개를 숙였다.
신분과는 별개로 그런 목적으로 잠시 방을 빌리려는 손님은 늘 있어왔다. 수도 루은에선 매춘은 합법이었다.
다만 납치와 강제추행은 다른 문제라서 직원은 눈물자국이 남은 내 얼굴을 눈치껏 살폈다.
신고해야 할까. 하지만 상대가 적룡군이다 보니 신고를 하지 말자는 쪽으로 저울이 급격히 기울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안마사도 같이 부를까요 묻는 목소리가 물을 잔뜩 머금은 잎사귀처럼 나긋나긋했다.
『안마사가 왜 필요해?』
이라벽치는 역시 못 알아들었다.
『안마사는 부르지 말고. 목욕 후 이 아이가 입을 새 옷이 필요하네. 적당히 준비해주게.』
『알겠사옵니다. 그럼 도련님을 욕탕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직원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말하며 나를 꽤 깊은 안쪽까지 데려갔다.

입고 있는 옷은 모두 벗어 내놓으라 했다. 부정을 탔으니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태워버릴 거라고 했다.
『속옷까지 모두?』
되묻는 질문에도 직원의 표정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흡사 진흙으로 만들어 붙인 가면 같았다.
『잃어버리면 곤란한 물건이 있으시면 따로 맡겨주십시오. 그럼 시중을 들 아이를...』
『혼자 할 수 있네.』
『알겠습니다. 그럼 물의 온도가 맞지 않으면 꼭 말씀하여 주십시오.』
희고 붉은 화려한 부용화 그림으로 장식된 개인 욕탕은 세 명의 어른이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사치스럽기도 하거니와 성인의 남녀가 목욕을 핑계로 성적인 욕구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라 옷을 전부 벗고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기가 싫어지려 했다. 여관 사람들이 알아서 관리를 잘 했겠지만 또 아나, 어젯밤 이 속에서 정분이 난 연인이 한바탕 난리를 쳤을 수도 있다.
넓직한 욕탕에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았지만 결국 나는 욕조 바깥에 앉아 대야로 물을 끼얹는 걸 선택했다. 좍좍 물 끼얹는 무식한 소리에 혀를 끌끌 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겠지만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흙과 먼지를 전부 지웠다 판단하고 욕실 밖으로 나오니 이런 일엔 이골이 난 직원이 끈으로 여미어 입는 속옷인 겨우기리를 대동하고 서서 발가벗은 나를 입혀주려 했다.

『크, 읍.』
그가 침을 기관지로 잘못 넘긴 소리를 낸 까닭은 달릴 것이 달리지 않은 내 아랫도리를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조화래. 옷을 벗기 전까지는 소년이었는데.」
덕분에 주변이 다소 분주해졌다.
『바깥손님에게 일러 여자 옷을 준비하리까, 아님 사내 옷을 준비하리까 여쭈어라.』
내 판단엔 쓸데없는 일이었다. 질문을 들은 이라벽치는 근육이 와르르 무너진 이상한 표정으로「그 녀석에게 여자 옷을 왜 입혀! 그건 누구 취미냐!」화를 냈다.
서로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직원은「그렇군요. 취향이 아니시군요.」공손히 대답하곤 뒤편을 향해 가만히 눈짓했다. 순식간에 이라벽치는 유녀(幼女)기호를 가진데다 침실 시중을 들 어린 소녀에게 남장을 시키는 변태스러운 인간으로 낙인이 찍혔다. 돌아가는 상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손님은 왕처럼 모신다던 부용관 사람들은 변태적 취미에 최대한 부응하여 나를 흡사 사무월 축제 최종 우승자처럼 꾸며놓았다. 뜨개바늘로 뜬 얇은 무늬장식을 덧댄 화려한 저고리에 나풀거리는 천으로 주름 장식을 최대한 넣은 마고를 입혔다. 마고는 통이 넓은 바지로 매듭으로 발목을 조이면 흡사 부풀어 오른 꽃송이 모양의 치마처럼 보이게 된다. 뭐, 기능성과 활동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사실 제국 사람들은 안방마님의 속바지라고 폄하하며 손가락질하는 의상이기도 하지만... 나는 무표정을 가장하며 천장을 응시했다. 이 옷의 장점은 틈새가 많아 옷 안으로 손을 넣기가 아주 쉽다는 점에 있다. 꿀이 나는 꽃술은 어디에 숨었는가, 이러고 손을 깊숙이 넣어 사타구니를 주물럭거리기엔 더도 말고 딱이랄까. 대놓고 말해 천박한 종류다.

『뭐가 좀 이상한데. 이게 뭐냐.』
마고의 쓰임새는 몰랐어도 이라벽치는 인상을 썼다. 보는 눈은 없었어도 이건 잘못된 거라는 인식은 있었다.
『요즘엔 이런 옷이 유행이냐? 하지만 이건, 이건. 그러니까 이건...!』
어휘력 부족으로 이라벽치가 말을 더듬자 부용관 사람들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하니 다른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이건 좀 아니다. 평범한 걸로 해, 평범한 걸로. 내 아들이 저러고 나타나면 나는 울음을 터뜨릴 거야.』
나는 다시 직원들 손에 이끌려 뒷방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그럭저럭 얌전한 분위기의 옷이 나와서 나는 안심하고 소매춤에 팔을 쑤셔 넣었다. 다만 옷의 크기가 좀 커서 손등을 덮는 소매의 시접을 접어야 했다. 덕분에 바보처럼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와.』
『의원도 부를까요.』
부용각 직원의 질문에 이라벽치는 내 쪽을 보았다.
『혹시 이가 흔들리거나 피가 나는 곳이 있니?』
나는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의원은 됐고, 대신 얼음을 좀 준비해주게.』
『예.』
그동안 나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피곤함에 등을 구부정히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시장하냐. 배가 고프다면 식사를 주문해주마.』
식욕 따윈 멀리 달아난지 오래다. 나는 괜찮습니다, 라고 짧게 말해주고 다시 등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그걸 화가 나서 그런 모양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라벽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나를 다독이려 했다.
『하은 그 녀석은 원래부터 좀 막무가내지. 맞은 곳이 많이 아프니?』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야 사내 대장부지. 얼음으로 식혀주면 금방 열이 빠질 거야. 주머니를 대고 있으렴. 하지만 너무 오래 대고 있으면 피부가 상한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예.』
『대답도 잘하고. 착한 아이구나.』
평범한 아이라면 칭찬에 기뻐하며 수줍게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몸이라서 피곤한 미소만 짓고 말았다.
 
『것보다 원래 자리로 서둘러 돌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라벽치 님.』
『신경 쓸 거 없어.』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빨리 돌아가 보았자 뭐가 좋다고」다.
하긴, 루은의 대로를 걷고 있는 자손을 보좌하고 있을 뿐이니 하품이 나오는 한가로운 업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게다가 자손의 실력은 일당백이라서 도중에 불온한 자가 죽자 살자 덤벼들어도 걱정을 해야 할 대상은 적의 목이지 자손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라벽치가 해야 할 일은 자손이 퍼붓는 불평을 가까운 곳에서 들어주고 때때로 달래주는 것에 불과해서 자리를 보다 오래 비우고 싶은 욕구가 솟는 것도 지극히 당연했다.
『매년 같은 일을 하시는 건가요?』
『보통은.』
『힘드시겠어요.』
『괜찮아. 그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알던 시절에는 이런 거 안 했거든요? - 얼음주머니의 위치를 바꾸고 이를 다르게 질문했다.
『무슨 까닭이라도 있는 건가요? 고귀한 분을 모시고 친히 대로를 걷다니.』
『아, 그건... 고귀한 핏줄을 이은 분께서 신룡 님의 힘을 빌려 결계를 보다 튼튼하게 만드는 거란다. 사악하고 나쁜 것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도록 하는 거지. 이게 다 제국의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란다.』
알아. 그건 나도 눈치 챘어. 하지만 그건 원래 신룡의 은혜로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 적룡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리면 될 걸 가지고 사람이 구태여 나서 결계를 튼튼하게 만들고 자시고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Posted by 미야

2015/08/04 16:21 2015/08/04 16:21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969

Comments List

  1. 비밀방문자 2015/08/04 21:06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Leave a comment

군장이 아닌 평복 차림새를 하고 있던 그는 옷깃을 엉망으로 풀어헤친 채 소금꽃이 핀 머리 꼭대기로 목을 축일 물을 붓고 있었다. 그래봤자 불쾌감을 주는 더위는 가시지 않아 눈빛이 난폭했다. 체온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그저 습도만 높아졌을 뿐으로 피부에 물 먹은 옷감이 진득하게 달라붙자 더 못 참아 했다.
누가 저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데다 옷차림도 흐트러진) 남자를 위대하신 황제의 고귀한 핏줄이라 여기겠는가. 금관을 쓰고 높은 가마에 앉은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에서 물방울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한결 더 야수 같았다.
그런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옆에서도 병사들은 다행스럽게도 그럭저럭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추측하자면 시체더미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자들이니 더위를 잡순 야수 정도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무리 중 그나마 지위가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자가 공손히 아뢰었다.
『자손. 이곳에서 지체하시면... 일정이 지체되옵니다.』
『닥쳐. 네가 감히 나에게 설교를 할 작정이냐.』
언젠가 땀투성이가 되어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 요구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이런 식으로 모두로부터 강요를 받아가며 바둑판 모습의 도시를 죽어라 걷고 있었던 걸까.
이것이 꽃으로 장식을 한 화동이 모두의 환호를 받아가며 마을 한 바퀴를 돌아 제대로 죽지 못한 것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결계를 만든다는 의례의 재현이라면 나는 그냥 배를 잡고 웃어버릴 테다. 여기엔 꽃도 없고 환호하는 인파도 없다. 당연히 화동도 없다. 입이 찢어진다 해도 스물 셋이나 먹은 사내더러 미동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잘 생겼어도 겨드랑이에 털이 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미동이라 부를 수 없다고, 나는 그렇게...
『이 머리에 구멍 뚫린 놈. 네가 지금 날 측은한 시선으로 쳐다볼 입장이라 생각하느냐?! 응?!』
기시감이 휩쓸었다. 자손은 나와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나를 한 팔로 붙잡아 허공에 대고 마구 털었다.
대롱대롱 흔들리며 나는 산산조각 나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해 발밑으로 빠져나가려 하는 영혼을 수습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차이라면 먼젓번에는 독기를 뿜어대던 그가 이번엔 엄청난 짜증을 퍼부어댔다는 점이랄까, 둘 중에 뭐가 더 괜찮고 낫고의 차이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 아무튼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사내는 눈이 반쯤 뒤집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화가 나.』
『그거 참 황송하옵게도.』
『더워!』
『불평하신들... 날씨는 제 힘으로는.』
『신경질 난다!』
『항의는 돌아가셔서 내전관들에게 하심이.』
『했다고했다고했다고! 그것도 한 두번 했을 줄 아느냐! 하지만 녀석들 귓구멍은 꽉 막혔단 말이다! 창리궁 마마에게도 자식이 둘이나 있잖아! 그 녀석들을 시키란 말이다. 귀찮은 일까지 전부 나에게 떠넘기고 이게 무슨 짓거리야! 좌로 걸었다, 우로 걸었다, 방향을 정해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만 하는 건 재미가 없엇! 피곤한 건 둘째고 지루해서 기절할 것 같다고! 악령이 나와? 그럼 제령을 해! 요괴가 나와? 그럼 단칼에 베어버려! 그러는 편이 간단하고 좋잖아! 차라리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라고 시켯! 적병의 머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잘라다 바치겠다! 제발~ 이렇게 빌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매년 이러는 거 진짜 싫어, 싫다곳!』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지른 그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들고 있던 내 몸뚱이를 예고도 없이 뚝 떨어뜨렸다.
『후아! 소리를 질렀더니 조금은 풀리는군.』
대신 내던져진 이쪽은 엉덩이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파 열심히 궁둥이를 문질렀다.

소리를 질렀더니 개운해졌다는 건 빈 말이 아니었나 보다. 한층 표정이 편안했다.
『좋다, 그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네가 왜 내재원이 아닌 여기에 있는 거냐, 좁쌀?』
좁쌀? 그건 도토리보다 더 작잖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말이죠. 본국에서 증서가 도착해 이곳 상은에서 돈으로 바꾸려고 했는데요.』
『호오, 이제 거지 신세 면했군. 그랬는데?』
『갑자기 손님 오셨다 소리를 지르더니 식칼을 들고 덤벼들더라고요.』
『얘네들이?』
너희가 그랬어? - 라고 지적당한 포박된 무리들은 부리나케 도리질했다.
『아닙니다아닙니다우리가아닙니다!우리는강도가아녜요!우리도피해자라고요진짭니다믿어주세요!』
그들의 합창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던 자손은 뒤편으로 신호해 또 물을 요구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시려는 건지. 것보다 체력이 보통이 아닌 자가 심한 갈증을 느낄 정도로 걸었다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될지 돌연 궁금해졌다. 상상 외로 엄청난 강행군이었을 수도 있다. 혼자서 루은의 여덟 대문을 기준점으로 정방돌음(오른쪽)과 정외걸음(왼쪽)을 말을 타지 않고 순전히 걸어서 돌려 했다면 살인적이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 된다. 성문 안 면적만 무려 2,750란호립에 이르기 때문이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닌 황족인 남성이 그런 걸 몸소 하려 했을 리가...
추측하기를 그만두고 다시 좁은 계단에서의 타평과의 싸움을 설명할 단어를 골랐다.
에, 하고 입을 여는 것과 동시였다. 갑자기 생각도 못한 물벼락이 나에게로 좌악 떨어졌다.

『어?!』
벌써 심문 들어간 거에요? 물고문인 거에요? 그러니까 설명하려고 했다니까요!
자손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나를 쳐다봤다.
『생각처럼 깨끗해지질 않는 군. 끼얹은 물이 부족했던 걸까.』
영문을 몰라 입만 뻥긋 벌리고 있자니 보다 못한 이라벽치가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었다.
『어험! 그래선 안 됩니다, 자손. 더러워진 옷은 벗어서 세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물을 끼얹어봤자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피 얼룩은 원래 잘 안 지워지는 것이고... 그리고 저어, 당하는 사람 기분도 그다지... 이건 선의를 보여주는게 아니고 모욕을 주는 거라고요.』
뭐?! 이게 다 내 옷의 더러움을 지우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였어?!
선무당식 세탁 방법을 지적당한 자손의 동공이 흔들렸다.
오늘의 교훈 하나. 물을 끼얹는다고 옷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이 남자는 뻔뻔하다.
『그렇군, 물을 끼얹어봤자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군. 허나 팥알의 기분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어차피 내 의도는 모욕을 주려던게 아니니. 그러니 이라벽치, 네가 이 녀석을 책임지고 세탁해.』
좁쌀에서 팥알로 격상되었으나 하나도 안 기쁘다.
나를 깨끗하게 만들라는 주문에 이라벽치 또한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접니까. 이 애를 책임져야 하는 건 또 저인 거에요? 그의 표정이 그리 묻고 있었다.
반복하여 말하게 만들지 마. 이에 대응하는 자손의 눈빛은 엄격했다.

그제야 나는 포박된 무리에서 떨어져 이라벽치의 손에 이끌려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돌아보니 이미 어디론가 치워져 락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할 말이 있다며 이라벽치의 두꺼운 손을 힘주어 잡아당겼지만 그 또한 민간인이 아닌 군인, 내가 보내는 신호는 일절 무시한 채 다른 병사더러 자신이 탈 말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에휴. 단순히 강도를 당한 건지, 아니면 네 나라에서 암살자를 보내온 건지 아직은 모르겠다만.』
그래도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걱정해주었다.
『이렇게 소동이 크면 이사실에서 널 사친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려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을 듣고서야 줄곧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한꺼풀 벗겨져 나갔다는 기분이 들었다.

「빈사국으로 돌려보내질 수도 있다고?」
얼마나 사람이 이기적이면 그 즉시 락연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앞으로의 내 처우다.
물에 젖은 발잔등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 뭐. 본국으로 돌려보내진다고 해도 딱히 지금과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긴 하니까 땅이 무너졌다는 식의 기분은 들지 않지만... 그러는 수가 있었군.」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왕위계승 다툼에 휩쓸린 타국의 왕족이 사친으로 왔는데 내재원에서 떡~ 하고 암살당하면 이사실에서도 책임 문제가 불거지니까 제국 입장에선 사단이 나기 전에 반품 -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50동을 쓰지 않았다고 한 번 가정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 정체가 누구든 어지간히 내가 이사실에 머무는게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하라지. 상관없어. 차라리 잘 되었지. 나라고 여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야.」

분위기가 어두컴컴해졌다고 느낀 이라벽치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밀었다.
딴에는 위로를 해보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덩치가 남산이라는 걸 고려했어야만 했다.
힘에 밀쳐져 벌러덩 넘어지는 입장에선 그건 결코 위로가 아니었다.

Posted by 미야

2015/08/01 21:06 2015/08/01 21:06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968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100 : 101 : ... 658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23831
Today:
72
Yesterday:
147

Calendar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