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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of interest (1)

「핀치가 만들었다는 그 기계엔 확실히 문제가 있어」

거칠어진 호흡을 가파르게 몰아쉬던 리스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달랑 SSN(사회보장 번호) 하나만 내뱉고 그 다음의 일은 일절 나 몰라라 하는 건 지구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기계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그 번호의 주인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정도는 구분을 해줘야 맡은 바 임무를 잘 처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예금 기록도 인출과 입금으로 나뉘어져 구분되는 법입니다, 핀치. 숫자만 나열된 상태에서 이게 계좌로 돈이 들어온 건지 나간 건지 한 번 알아 맞춰 보라며 고객을 기만하는 은행은 없습니다.」
이쪽에서 나름 불만을 토로하자 핀치는 불편한 기색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들놈의 성적표가 바닥을 기고 있다 지적을 받으면 대다수의 아버지들은 얼굴색이 달라지는 법이다.
「그거야 예금 잔고가 얼마 남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핀치는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고용인에게서 짐짓 등을 돌렸다. 백 도어로 기계에 몰래 접근해서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에둘러 설명한 그는 사서 전용 등받이 의자에 구부정히 앉은 자세 그대로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깍지 꼈다.
자세만 봐선 느긋하게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단 표정을 봐야 한다. 19세기에 유명 장인이 제작된 가구를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어버렸다는 식인데 스트레칭 어쩌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100만 달러가 입금된 계좌의 잔액이 10 달러로 표기되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죠?」
짐작한 바 그대로다. 리스로부터 억지 동의를 구하는 걸 보아 핀치는 자신이 만든 기계가 살짝 모자른 반푼이라는 걸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핀치...」
「내가 뭐 틀린 소리 했나요?」

리스가 넌더리를 내든 말든, 반푼이 기계는 반복하여 특정 번호를 뽑아내리라.
그 숫자가 말해주는 개인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조만간 위기에 처할 - 혹은 위기를 조장할. 젠장맞을. 미국 전역에서 CC-TV 녹화 확보, 전화 감청, E메일 및 트위터 검열 등등으로 천문학적인 정보를 수집했으면 거기에 걸맞게 최소한「이쪽이 골칫덩이」라고 정확히 찝어주는 수고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처럼 헷갈려선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마누라 죽이러 간다던 사내가 왜 사제 폭탄 옆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거지.』
아파트 현관의 잠금 장치를 두 서너차례의 가격으로 가차없이 뜯어내고 재빠르게 내부로 진입한 리스는 이를 갈았다.

애덤 캔들러. 45세. 백인. 전자 제품 물류 운송업에 종사. 쉽게 말해 트럭 운전사. 미국 전역으로 에어컨이니 냉장고니 하는 것들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부인은 헬렌 캔들러, 38세. 슬하에 6살 아들이 있고 얼마 전까지 마트에서 시간제로 근로.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계단에서 넘어지는 나쁜 버릇이 있음. 3개월 전 2층에서 굴러 왼팔 상완부 골절. 전치 6주. 16개월 전에는 안면부 협근 타박상 및 광대뼈 골절. 9개월 전에는 갈비뼈에 금이 갔고 액와에 주먹으로 맞은 것이 뚜렷해 보이는 상처가 남음. 구륜근 손상과 치아 일부 손실... 성 카트리나 병원에서 찾아낸 기록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전형적인 매 맞는 아내였다.

《미스터 리스? 그 부인이 남편에게 습관적으로 폭행당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온라인 상태로 대기하던 핀치가 커다란 의문형 부호를 그려냈다.
리스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죠.』
《아들과 같이 짐을 꾸려 달아난 부인을 캔들러 씨가 추적해 곧 살해할 것 같다고 했죠?》
『맞습니다.』
《그 남편이 며칠 전 등록되지 않은 길거리 총기를 구입했고요.》
『그랬죠.』
《그런데 지금 그 남편이란 작자는 부인을 죽이러 외출하기는커녕 폭탄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고요?》
리스는 테가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는 간략한 동작만으로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핀치를 떠올렸다.
실제로도 그는 모니터 앞에서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뭐랄까... 음. 틀려요, 핀치. 이 사람은 앉아 있는게 아니라 그 옆에 기절해서 누워 있어요.』

빠르게 대꾸하며 휴대용 알루미늄 캔에 둘둘 걸쳐진 전선을 흝었다. 캔에는 디젤류와 질산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콜라캔처럼 생긴 그것은 모두 세 개였다. 이 정도의 질량이라면 건물을 붕괴시킬 정도의 위력까진 갖추지 못하겠으나 캔들러의 머리를 몸통에서 분리해 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가정용 인터폰 따위의 일반적인 통신장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섯 가닥의 구리선이 덜 다듬어진 새둥지의 조잡한 모양새로 일회용 선불폰과 연결되어 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엉성하다. 그냥 기폭장치에서 잡아뜯어도 될까, 머뭇거리던 리스는 흰색의 선에서 도로 손을 거두어 들였다. 비전문가의 조잡함은「범인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결말로 치달을 때가 많다. 무선 신호를 받고도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터지기도 한다.
안 되겠다. 리스는 관찰을 위해 굽혔던 무릎을 도로 폈다. 이런 건 군용 C-4보다 더 흉폭하다. 핸드폰의 전원을 차단하는 것조차 모험에 가깝다. 만지지 말자.

『토론은 나중으로 미루고 캔들러를 서둘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겠어요.』
목덜미 맥이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걸 봐선 아직 죽지는 않았다. 누군가 둔기를 들어 뒷통수를 세게 가격한 모양새로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에 피가 묻어 있다. 의식이 없어 목덜미를 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을 적에도 사내는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댁은 체중을 좀 줄여야겠어, 친구.』
던지다시피 해서 폭력 남편을 밖으로 끌어냈다.
위험, 위험, 위험.
머릿속에서 사나운 말벌떼가 광분하며 날갯짓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폭탄 테러리스트인 부인의 행적을 추적해야 하는 건가요.》
뒤집어 쓴 파편을 툭툭 털어내던 리스는 핀치의 질문에 짧게 코웃음쳤다.
『양복이 불길에 그슬렸으나 저는 무사해요, 핀치. 물어봐줘서 감사해요. 아, 그리고 캔들러 씨도 죽지는 않았어요. 병원에 가서 몇 군데 꿰매긴 해야 하겠지만요.』
물론 이 정도 핀잔을 듣고 귀가 가려울 핀치가 아니다. 직구를 사랑하는 이 남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어느 부분을 놓쳤던 걸까요, 리스?》
예민한 리스의 귀로 발을 바닥에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핀치는 아마 인상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는 사소한 동작만으로도 그는 못 견디게 허리가 아픈 것이다.
《세상에, 여섯 살 아들이 있는 애 엄마가 폭탄을 쓸 생각을 하다니.》
이어지는 짧은 신음은 남편의 폭력을 더 무서운 폭력으로 갚으려 한 여자에 대한 비난인지, 아님 아픈 허리에 대한 호소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어쨌든 존 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을 죽이려 한 헬렌의 행동도 유감이고, 낫지 않는 핀치의 허리병 역시 유감이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했습니다, 미스터 리스. 서두르는게 좋겠군요.》
『압니다.』
그의 귀로도 앵앵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있었음이다.
리스는 대자로 뻗은 캔들러를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방치한 채 재빨리 골목 어귀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현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 어쩐지 불편한 기분에 흘깃 뒤를 돌아다 보았다.
괜찮을 거다. 불을 끄러 온 소방차가 그를 보지 못하고 실수로 깔아뭉개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캔들러는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흰색 팬티를 입고 있었고,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속옷 한 장만 입고 있었다. 그리고 캔들러는 125kg의 거구였다.

Posted by 미야

2012/04/23 21:01 2012/04/2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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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슈퍼내출혈의 끝없는 추락 이후 선호하는 특정 드라마 없이 "삶의 낙이 없음" 상태로 표류한지 벌써 몇 년이다. 그런데 윈체스터 형제는 아직도 살아는 있는 감? 듣자하니 카스티엘은 죽었다던데.

각설하고,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우연하게 보게 된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이틀 내내 수면 시간도 줄여가며 흝고 핥았다.
큰 골격은 전직 CIA 요원이 비밀스런 억만장자 프로그래머와 짝짜꿍하여 앞으로 위기에 처할, 혹은 위기를 조성할 사람들을 비밀리에 추적한다는 이야기로 "마이너리티 리포트" 와 흡사하다.
알게 뭐람. 줄거리따윈 닥치고 이 나이에 또다시 (미)중년 아저씨에게 헐떡거리고 있으시다...

존 리스 역의 제임스 카비젤, 이분 목소리 듣고 있음 그냥 녹는다. 진짜 마약 같다. 억양은 조용하고 톤도 일정한데 이어폰 꽂고 듣고 있자면 등골이 오싹오싹...;; 으아, 변태 인증.

충동이 심해져 존 리스와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도 두 권 질렀다.
20화 언제 나와.

Posted by 미야

2012/04/21 11:15 2012/04/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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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맥베인 - 경관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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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식 로우 앤 오더. 56권이나 씌여진 시리즈물의 기념비적인 그 첫 번째 권.
책 자체가 1956년도에 씌여졌다. 국내 출판일이 2003년이라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덕분에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움직이지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이를테면 핸드폰이 없다. 팩스가 없다. 손전등이 없다. (성냥불을 애용한다) DNA 분석이 불가능하기에 Combined DNA Index System(CODIS)에 조회하는 일이 없다. 으항항...
그러니까 범인과의 격투로 쥐어뜯긴 머리카락이 증거물로 나왔는데 상대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X, Y 염색체가 아니라 그 길이가 된다. 8CM 이상이면 여성, 아니면 남성... 다행인지 작가는 설명을 덧붙인다. 요즘에는 여자들도 남자같이 머리를 짧게 자르기 때문에 피해자가 범인 얼굴 살점을 할퀴지 않았더라면 머리카락만으로는 남녀를 식별할 수 없었을 거라고... 하여 1950년대 과학수사는 이렇게 전개된다.

"얼굴을 할퀸 것이 어떻게 참고가 됩니까?"
"덕분에 범인의 피부 본보기가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조금 검은 지방질 피부의 백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게다가 수염까지 손에 들어왔고."
"수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건 간단해. 현미경으로 보면 깎인 자국이 움푹 들어간 삼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수염뿐이라네. 지름도 0.1mm 이상이므로 간단하게 수염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남자임을 알 수 있었네."
"기계공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머리카락에 금속의 미세한 가루가 묻어 있었거든."
"높은 임금의 숙련공이라는 것은?"
"머리카락에 머릿기름이 묻어 있어. 그것을 분리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보기와 비교해 보았지. 그랬더니 그것이 아주 고급품이었네. 소매 가격으로 한 병에 5달러나 하는 것이었지. 면도한 뒤 사용하는 파우더와 한 묶음으로 10달러에 팔고 있는 것이라네. 범인은 두 가지를 다 쓰고 있었네. 그런 사치품을 쓸 수 있는 직공이라면 보수를 많이 받는 자가 아니겠나? 또한 보수를 많이 받는다면 숙련공일 가능성이 높지."

그리섬 반장과 하지스라면 이 대사에 어떻게 반응했을지가 무척 궁금하달까. 

책 자체가 오래되었고 고루한 번역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새는 큰 골격으로 보자면 오늘날과 많이 다르지 않다.
용의자를 찾아가고, 정보를 구하고, 특종을 원하는 언론과 충돌하고, 갱들은 그 당시에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도시는 지저분하고 경찰 조직은 썩 매끄럽지 않다. 매그넘을 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없다. 형사들은 조직 속에 속한 하나의 피스 조각으로서 너무 뛰어나지도 - 모자르지도 않게 범인 체포라는 상기 목적을 위해 밑창이 닳은 구두를 신고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

* 시리즈 전부가 번역되지 못했기에 난감하다. 로 앤 오더를 1편만 시청하고 관두라는게 어딨누.

Posted by 미야

2012/04/20 14:06 2012/04/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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