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 55 : 56 : 57 : 58 : 59 : 60 : 61 : Next »

[S☆N-fanfic] repentance 08

※ 형님 모에가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저도 어느덧 딘 총수의 길로 접어들고야 말았습니다. 샘이 형님을 덮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이랬던 제가「키스하기 딱인 각도야」호들갑을 떨며 둘을 나란히 세워두는 공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샘의 손은 딘의 턱을 잡고 있고... 이하 생략입니다. 모쪼록 축하해 주세요. (그게 아니잖아!)
그래도 전 형제들이 응응하는 것보단 말다툼하면서 아웅다웅 하는게 좋아요. 샘이 화내고, 딘이 약올리고, 그러면서 둘이서 티걱거리고... 2시즌으로 접어들어 드라마의 흘러가는 내용이 워낙에 심각해져서 요즘엔 이런 묘미가 줄어들었지만「내가 멀더고 네가 빨간 머리 아줌마(스컬리)야」이러면서 계속 싸워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답니다.
간혹 본문에 작은 별표(*)가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타가 난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라면 주석이 붙을 자리입니다. 귀찮아서 전부 그냥 넘어가곤 하지만 말예요. ※


손가락으로 토옥 건들여봤다. 불도저로 힘껏 밀어붙여도 꼼짝도 않을 것 같던 출입문이 마른 소리를 내고 움직였다. 경첩이 고장났는지 이번엔 되려 고정이 되질 않았다. 문을 닫으려 해도 도로 틈새가 벌어졌다.
흡사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이다. 지상은 쑥대밭인데 하늘은 파랗다. 방파제를 부수고 2층 건물을 도로 건너편까지 밀려보낸 거대한 파도는 잔잔한 물결로 가라앉았다. 모든게 마술사의 속임수 상자 같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유리창도 금 하나 가지 않은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창틀 프레임의 조임쇠가 달아난 것만 빼면「언제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다. 커튼도 얌전히 내려졌고, 불꽃을 뿜었던 전등도 조용하다. 손등으로 코피를 닦아내는 딘이 없었다면 방금 전의 난리법썩은 순전히 머릿속에서 꾸며낸 난잡한 환상이었다고 믿어버렸을 거다.

샘은 팔을 벌리고「대단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휴우! 하여간 분도패가 수중에 남아있어서 천만 다행이었어. 그건 건물만 아니라 사람도 수호해주거든. 그게 비록 일시적인 거라고 해도 성 베네딕트에게 빚을 졌어.』
딘이 꽥 하고 반응했다.
『임마! 내가 의식을 다 끝마쳐서 수중에 메달이 하나도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나는 바보가 아니야, 형. 그랬다면 이런 식의 거창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나올 리 없지. 그리고 형은 일부러 마무리를 하지 않고 뭐가 나오지는 않을까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잖아.「가둬버릴테다」협박을 하려 했다고 본인 입으로 떠들어놓고 지금에 와서 뭔 소리?』
형을 향한 샘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딘? 이참에 확실히 해두자. 난 이중 플레이가 싫어. 일에 관해 숨기는 것이 있으면 안돼. 우린 형제이고, 파트너잖아.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랑 새벽까지 신나게 놀고 돌아와선「멀리까지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고생 좀 했어」라고 속 보이는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건 괜찮아. 내 휴대폰 메시지를 몰래 훔쳐보곤「그냥 버튼만 눌러봤어. 내가 워낙에 폰맹이잖냐」딴청부리는 것도 다 용서해줄게. 하지만 우리 일에 대해선 솔직해져야만 해. 왜 나에게 숨겨. 유령을 떠보고 싶다면 그렇다고 말을 해. 내가 반대를 하겠어, 아님 훼방을 놓겠어.』
『에... 그러니까 그게...』
『딘? 시선 피하지 말고 날 똑바로 봐.』
『워워, 진정해, 샘. 무서워지려 한다. 너 지금 꼭 바람 핀 마누라 야단치는 것 같어.』
『마누라였으면 두고 볼 것 없이 이혼 도장 찍자고 했어.』
플러스 막대한 위자료 소송이 붙는다.
샘의 표정이 위협을 담아 더욱 굳었다.

『꽉 막힌 녀석! 알았어, 알았다고. 자식, 정색하며 화내긴. 다음부턴 안 그럴게. 그럼 되잖여!』
동생에게 혼났다.
딘은 손사레를 치며 척척해진 겉옷의 단추를 풀렀다. 몸에 끼얹져진 것이 아무리 성수였다고 해도 이래선 급성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정수리에선 여전히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지, 젖은 옷깃에선 희미한 딸기향까지 풍겨... 악 소리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넘긴 뒤, 스스로의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이다. 사타구니까지 젖어 꼬락서니가 꼭 술에 취해 오줌을 싼 몰골이었다. 뼈 마디가 아픈 건 둘째고 얼굴이 화끈거려 못 살겠다. 얼레리꼴레리. 비틀거리며 벽에다 등을 기댔다.

『Stop. 야단맞은 건 한 번으로 족하니까 아무 말 하지마.』
얼굴색이 좋지 않은 그를 향해 동생이 무어라 말 하려던 찰나. 손가락을 하나 들어 제지했다.
『내가 잘못해서 다친 거니까 넌 신경쓰지 마.』
『그래도...』
『여기서 뭐라고 하면 나중에 숟가락으로 때려줄거야. 아프냐고? 당연히 아파. 괜찮냐고? 전혀 괜찮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한다고?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동생에게 부축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죽어도 싫어. 이제 됐지? 얘기는 끝.』
동생의 손길을 거부하고 딘은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삐그덕 소리를 내며 관절마디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움직이고는 있다. 얼굴 표정을 가급적 밝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허리를 똑바로 폈다. 아니, 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걷는 폼이 고릴라 사촌이었다.

『그 아줌마, 분명 전갈좌의 여자야.』
뒤뚱거리는 이상한 동작으로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 딘이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반드시 그럴 거라는 확신에 찬 형의 발언에 샘은 고개를 흔들어댔다.
딘은 자기가 만났던 여자들이 화를 내거나, 심통을 부리거나, 침대 위에서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하면「저 여자는 전갈좌야. 분명해」라고 단순하게 믿어버리곤 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전갈좌의 여성들이 폭동을 일으키고도 남을 사고 방식이다. 상대방 여성이 10월 23일부터 11월 22일 사이에 태어났다는 증거도 없으면서 뭘 믿고 그렇게 주장하는 건지 모르겠다. 완전히 선입관이다. 그것도 잘못된 방향이었다.

샘이 어처구니 없어하자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며 딘이 우기기 시작했다.
『표정이 그게 뭐야, 샘. 40달러 내기를 해도 좋아. 전갈좌라니까.』
『사수좌나 게자리의 여자일 수도 있고.』
『말도 안돼. 어떻게 게자리가 되냐. 성격을 봐. 거지 같잖아.』
『딘? 우린 그 여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어. 성격이 거지 같은지 어떤지 알게 뭐야.』
『그래. 네 말대로 성격까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짚고 넘어가자. 난 그 아줌마 이름이 뭔지는 알고 있다고.』

의외의 발언이었다. 벽쪽으로 바짝 붙어 아래층의 이상 유무를 눈대중으로 확인하던 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처럼 조심해서 걷다 말고 뒤를 휙 돌아다 보았다.
『아는 여자라고? 설마... 형의 옛날 여자 친구?』
기가 막혔던 것 같다. 딘의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스트레스에 반응, 검게 변했다.
『실례의 말씀! 가는 여자 안 잡고, 오는 여자 안 막아도 난 반지 낀 유부녀는 안 건드려. 내가 지금까지 여자 문제로 말썽부리는 거 봤어? 어떤 대가리에서 그딴 추측이 막 나오냐. 앙?!』
『스탠포드 대학에서 장학금 받고 공부한 머리에서.』
샘의 목소리도 냉랭해졌다. 여자 문제로 말썽을 피운 적이 없으시다? 그거야 희망 사항이지.
샘이 기억하기만도 칼부림 비슷하게 간 적만 세 번이었다. 특히나 열 일곱 살 되던 해의 형은 그야말로 동네 난봉꾼으로, 카사노바가 형님하자며 악수를 청할 지경의...

멎적었던 것 같다. 딘이 헛기침을 해가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너도 열 일곱 살이 되었을 때가 있으니까 잘 알 거 아니냐. 하루종일 그거 생각만 나는 성욕 왕성한 10대 철부지에게 뭘 바래. 그럴 수도 있지.』
『그 10대 철부지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10리 바깥까지 죽어라 도망쳤던 경험이 있는 나야. 그럴 수도 있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면 슬퍼져.』
『그때도 미안하다고 사과했었잖어. 내가 아끼던 셔츠도 줬는데 아직까지도 원한이 안 풀렸니?』
『땀에 절은 셔츠 한 장으로 때우려 한 형이 더 미웠다고 말하면 이해가 가려나.』
『왜 이래, 새미. 1년 내내 그 셔츠만 입고 좋아 죽는다고 했던 건 죄다 거짓이었어?』
『거짓이었어.』
샘은 눈 딱 감고 거짓말했다.
애꾸눈 해골 잭이 프린트 된 짙푸른 색 T-셔츠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형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은 옷도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 고등학생으로부터 쫓김을 당하며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났던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했다. 양다리를 걸쳤던 것도, 남자 친구 있는 여자를 둘이나 빼앗아 먹은 것도 다 형이 저지른 일이다. 그런데 왜 다들 형에게 직접 복수할 생각은 않고 엉뚱한 동생에게 화풀이를 하려 했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형은 강하고 동생은 약해서? 표범처럼 생긴 딘 윈체스터는 건드리기 무섭고, 샘 윈체스터는 만만해 보이니까? 짜증 나는 얘기다. 매일 1리터의 우유를 마시고, 1시간씩 달리기를 하며 몸을 단련시켰다. 형과 레슬링 씨름을 해서 대등소이하게 싸울 자신도 -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만 -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자신을 쉽게 잡아 나무에 매달아 놓을 수 있는 일종의 동네 북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맹렬히 꿈틀대는 분노를 느꼈다.

쫓아오던 남학생 중 하나가 딘 윈체스터의 유일한 약점 어쩌고 떠들었던 것도 같긴 한데.
커다란 확성기에 대고 우주 밖에서 지구인 전체가 다 들을 수 있도록 버럭 고함을 질러대고 싶다.
내가 어떻게 약점이냐, 이 망할 것들아. 나는 장점이다, 장점!

과거로의 추억 여행의 여파로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고 있는 동생을 향해 딘이 어색한 웃음을 팔았다. 당시에 샘이 어떤 곤란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아무래도 저자세다.
『동생아, 셔츠 한 장 더 필요해?』
정말로 필요하다고 해도 줄 것도 아니면서.
게다가 형이 입는 옷의 사이즈는 지금의 그에겐 작아서 맞지도 않는다.

샘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셔츠 이야긴 그만 하자. 그것보단 형이 이름은 알고 있다는 그 유부녀 씨는 도대체 누구야?』
『너도 알고 있는 여자야. 이 보는 눈 없는 남자 같으니. 그녀의 이름은 줄리 먼치야.』
『에? 거짓말!』
거짓말이고 말고. 샘의 눈이 땡그래졌다.
『줄리 먼치라면... 리들리 먼치의 부인?』
『빙고. 9년 전 이 집의 계단에서 굴러 목을 부러뜨린 리들리 먼치의 마누라 님 되신다.』

신문 스크랩 사진을 떠올랐다.
샘은 어렵지 않게 병석에 누운 채 간호사와 눈빛만으로 인사하던 리들리 먼치를 기억해냈다. 그의 선행에 박수를 보내며 소아암 환자 후원회 결성을 축하하는 내용이었다. 분명 먼저 죽은 부인의 이름을 따서 후원회의 이름을 지었다고... 샘은 작게 앗 소리를 냈다. 신문의 한쪽 구석에 작은 동그라미 모양으로 부인의 흑색 얼굴 사진이 실렸었다.
여자의 이름은 줄리.
맙소사. 새파랗게 질린 입술의, 허공에서 안개처럼 떠오른 그녀가 맞다.
샘의 얼굴로 다양한 감정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당혹감에 놀라움, 의혹과 궁금함...

『왜 아줌마가 유령이 되었지? 남편에게 살해당한 걸까.』
『샘? 네가 거기서 의문형을 붙이면 어떻게 하냐. 이미 다 조사해 봤을 거 아냐. 부인은 어떻게 죽은 거지?』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아귀가 안 맞아. 이건 이상해, 딘.』
고릴라 걸음으로 1층까지 무사히 내려온 딘은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는 동생을 향해「뭐가 이상한데?」하고 질문했다.
『모든게 다.』
샘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남편이 부인을 살해해서 그녀가 귀신이 되었다?
권투 경기장에서나 울릴 법한 맑고 영롱한 땡~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아까 2층에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었을 적에 줄리 머리가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지? 그럴 수밖에. 그녀는 1996년에 친구들과 미드 호수로 보트 여행을 갔다가 실족해서 익사했어. 술에 취해 있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모양이야. 이틀 뒤에 수색 팀이 시신을 건져 올렸다고 해.』
『미드 호수? 후버 댐?* 라스베가스?*』
딘이 눈썹을 찌푸렸다.
『친구들이랑? 그거 이상하다, 샘. 남편은 냅두고 친구랑 같이 라스베가스에서 띵가당? 라스베가스라 함은 죽어도 죽지 않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동네잖아. 그런 곳에서 남편은 빼고 여자 혼자 재미를 보러 갔다고?』
『줄리와 리들리는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어, 형. 친구들 말로는 이혼 수속을 준비 중이었다고도 해. 언성을 높여 서로 싸우는 것도 목격이 되었고... 그래서 기분도 전환할 겸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친한 여자들 두 명과 같이 즐기러 갔다더군. 여자들끼리 말이야.』
샘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보였다.
『줄리까지 셋이야. 잭 팟도 터뜨리고, 남자도 낚고, 배도 타고, 고기도 굽고, 쇼핑도 하고...』
『그렇다면 뭐야, 남편이 미드 호수로 부인을 집어 던져 넣지는 않았다는 거 아니냐.』
『응. 정말로 그랬다면 경찰이 남편을 체포해서 살인죄로 감옥에 가둬두었겠지?』
『집에서 굴러 자기 목을 뎅겅 부러뜨리기 전에 말이지, 샘.』

좋다. 남편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라 경찰 말대로 순전히 본인 실수로 물에 빠져 죽었다고 치자.
딘은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사고로 죽은 사람이 원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고속도로에서 죽은 사람이 10년이 지나도록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하잖아. 납득했어. 그런데 미드 호수가 아니라 왜 여기에 나타나는 건데? 물에 빠져 죽었으면 물귀신이 되는 거 아니었어?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되어야 하잖아. 주를 넘나들며 자기 집까지 돌아와「용서할 수 없어~」이러면서 사람들 혼을 빼놓는다는 건 어색하잖냐.』
『나도 그걸 모르겠어, 형.』
샘은 당혹스러워하며 머리를 만졌다.
『거기다 더 끝장의 사실이 뭐냐면 말이지...』

리들리 먼치는 물에 퉁퉁 불은 모습으로 돌아온 부인을 매장하지 않고 화장시켰다.

『오우!』
멈칫한 딘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화장했다고.』
『응. 태웠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리들리 먼치가 먼저 처리했단 말이지.』
『응. 처리했어.』
『이봐, 샘? 혹시 줄리 먼치가 혹시 일란성 쌍둥이라는 얘기는 없냐.』
『없어.』
『그거 엿이네.』
『진짜 엿이야.』

윈체스터 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짧고 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Posted by 미야

2006/12/16 22:28 2006/12/16 22:28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11

Comments List

  1. Yuri 2006/12/18 03:49 # M/D Reply Permalink

    아이고, 뜬금없지만 갑자기 리플달아요// 폭설내린 강원도 속초에서부터 16시간의 주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자기 전에 잠깐 컴을 켜보니 서관에 글이 좌르륵 ㅡㅠ 안읽고 잘 수가 없네요 ㅠ-ㅠ 항상 정성을 다해(?) 읽고 있습니다 호호 고럼 안녕히 -

Leave a comment

[S☆N-fanfic] repentance 07

Supernatural 팬픽으로 (아직까지는) 건전 지향입니다. 그래봤자 사랑은 모두 형님의 것. 임팔라 부릉부릉까지 모두 형님의 것. 새미는 당연히 형님의 것.


현관 문을 거의 때려부수다시피 해가며 집안으로 진입했다.
그런 샘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창틀과 문지방을 따라 소복히 뿌려진 하얀 가루... 소금이었다.
『이건 또 뭔 수작이야?!』
분도패를 배치하면서 소금을 쓴다는 이야긴 금시초문이다. 사제들이 의식을 행하면서 소금을 뿌려댄다? 돼지 고기 염장할 일 있느냐며 바티칸 교황청에서 웃음 소리를 낼 거다.
순간 머리 꼭대기로 엉덩이 빨간 원숭이 다섯 마리가 올라가 노래방 템버린을 신나게 두둘겼다.
『나에겐 이렇다 말도 없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었던 거야?! 딘~!!』
이에 호응하듯 윗층에서 나무 판자 부러지는 와지끈 소리가 들렸다. 딘의 비명 소리도 같이 해서 들렸다. 맙소사, 샘은 숨을 멈춘 채 한 걸음에 다섯 계단을 한꺼번에 밟았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축축한 땀으로 젖은 겨드랑이가 추워지려 했다.

하느님, 오버하셨습니다. 제가 딘의 머리통을 때려달라고 기도했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닙니다. 그치만 살짝 때리는 것과, 뼈 부러지도록 두둘겨 패는 건 달라도 무지 다르지 않습니까.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원한 건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기도 같은 걸 하나 봐라. 딘이 다치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 가는 것도 취소할 겁니다.

침실 문은 안에서 잠겨져 찰칵 소리만 내고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주먹으로 문을 두둘겼다.
『딘! 무사해?!』
대답 대신 와장창 소리가 또 들렸다. 야구 방망이로 전등이라도 때려 부순 기색이다. 샘은 신경이 극적으로 곤두선 나머지 어지럼증을 느꼈다. 가구도 치워졌을 방구석에서 도대체 뭐가 박살나고 있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문가에서 약간 떨어진 다음, 이를 악물고 문짝을 세게 걷어찼다. 한 번, 두 번... 머리털까지 찌릿거린다. 발이 먼저 부숴지던가, 아님 문짝이 먼저 부숴질 거다. 글쎄다. 어쩌면 양쪽 다 사이좋게 망가지는 걸로 이야기가 끝날지도? 샘은 눈에서 불이 나가는 걸 느꼈다.
『으아아아~!!』

잠시나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딘은 샘이 지르는 고함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동생이 울부짖고 있다! 찬물을 확 뒤집어 쓴 기분이다. 놀라 허둥대며 고개를 들자「고질라 대 괴수 가메라」리메이크판 영화가 고스란히 다가왔다. 1954년도 원작 영화보다 당연히 특수 효과가 뛰어난지라 딘은 자신도 모르게 질겁했다. 평소엔 똥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곤 하는 동생이 티라노사우루스로 변신하는 걸 보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것도 쿵쾅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사냥 중인 T-렉스다.
딘은 바닥을 기어서 동생에게로 갔다. 그리고 팔을 벌렸다.

『샘?! 임마! 어디 다쳤냐? 이리 와!』
『아냐! 난 안 다쳤어!』
동생이 말짱하다는 말에 딘은 희미하게 웃었다.
『좋아. 잘 됐네. 그런데 왜 그렇게 소리 지르고 그래.』
『형이 다쳤어~!!』

그제서야 깨달았다. 코피는 쌍으로 터졌지, 눈두덩이는 부었지... 입술도 찢어져 찝질한 피 맛이 났다. 시야도 흐릿해서 동생이 지금 신들린 것처럼 연기하고 있는게 고질라인지 아님 가메라인지 판단이 힘들었다. 짜증이 나서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려 했다. 그러다 짜릿한 통증에 이크 하고 손을 치웠다. 젠장이다. 바늘로 꿰매야 할 정도의 상처만 아니었음 좋겠다. 훤칠한 얼굴 한 가운데로 바느질 자국이 남는 건 딱 질색이다. 여차하면 흉터를 가리기 위해 길게 기른 앞 머리를 내려야 하는데, 그랬다간 촌뜨기 분장을 한 것처럼 정말 웃길 거다. 깻잎 머리 스타일에 5:3 가르마... 차라리 그냥 죽게 해줘.

『딘! 지금은 망상 극장에서 혼자 놀고 있을 때가 아니야!』
샘은 넋을 완전히 놓아버린 형을 부축하고 빨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렇게 몇 발자국 옮기려던 찰나, 쾅 소리를 내며 발로 걷어차 망가진 문이 도로 닫겼다. 그는 경악했다. 언제부터 미국의 일반 가정에 자동문 사용이 보편화 되었던고.
뿐만 아니다. 이번엔 팟, 하고 천장 등에서 노란 스파크가 튀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낮춘 샘은 팔을 뻗어 딘을 보호했다. 누전이 되는 것도 아닌데 불꽃이라니. 거기다 전등엔 전구도 안 끼워져 있다.
『아이고, 맙소사. 폴터가이스트?*』
파라락 소리를 내며 커튼이 거꾸로 뒤집혔다. 아니, 뒤집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뽑혀나가려 했다. 창문이 덜컹거리며 조임 나사 하나를 총알인양 튕겨냈다. 이거 제법 아찔하다. 나사는 퓽~ 하고 벽을 뚫어버렸다.

샘은 두 손으로 딘의 옷자락을 잡았다.
『딘? 빨랑 설명해. 집안에서 혼자 뭘 하고 있었어?!』
『뭘 하긴. 특수 와이어 하나 없이 원더랜드의 피터팬 영화를 찍고 있었지. 날아다니고, 벽에다 내동댕이쳐지고... 스턴트맨 없이 주연 배우가 직접 열연했단다. 진짜야. 볼래? 이 멍자국.』
『장난하지 말고!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아아, 글쎄다. 아무리 얌전한 유령이라도「철창에 가둬버리겠다」고 협박하면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어. 왜 있잖아. 뺨 맞으면 발끈하는 거. 그래서 분도패를 들고 위협했지. 형은 그게 약간의 도발이라 여겼는데... 와우! 그쪽은 선전포고라고 여겼나봐. 이렇게 과격하게 반응할 거라고는 미처 몰랐...』

딘의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와들와들 경련을 일으키던 창문이 마침내 풍선처럼 부풀었다. 유리가 깨질 거라고 판단한 샘은 재빨리 딘의 머리통을 감싸안고 바닥으로 넙죽 엎드렸다. 엉겹결에 터치 다운 당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딘의 눈 앞으로 아동용 만화에서나 나옴직한 노란 별똥별이 튀었다.
『윽!』
딘은 고통에 겨워 눈물을 찔끔 흘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럭비공이냐. 일부러 그런 거라면 이 자식을 절대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머리를 찧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샘은 끙끙 신음하는 딘을 다시 붙잡아 일으켰다.
『집밖으로 당장 나가야 해!』
『어떻게. 문은 닫겼고 창문은 너무 높아. 아님 지붕으로 올라갔다가 다리 몽둥이야 부러져라 이러면서 점프할래?』
『정 뭐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알았어, 새미. 넌 그냥 점프해. 말리지 않으마. 하지만 난 안 그럴 거야. 왜냐면 난 멍청한 동생과는 달리 무쟈게 똑똑하니까. 대신 녀석을 한방에 잡고 현관으로 당당히 걸어서 나갈 거야.』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곳곳을 관찰하며 특수 탄환이 장전된 권총을 꺼내들었다. 주택가에서 총질하는 건 썩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랬다간 5분 안으로 경찰이 달려와 확성기에 입을 대고「너희는 포위되었다! 두 손을 머리에 얹고 당장 밖으로 나오도록!」라고 떠들게 된다. 하지만 텔레비전 만화 주인공처럼 입으로 초강력 레이저를 뿜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니 경찰 걱정은 나중에 하자. 투덜거리며 안전 장치를 풀었다. 당장에라도 사격할 수 있도록 조준 자세를... 젠장. 딘은 발을 구르며 욕을 퍼부어댔다. 오른쪽 팔이 위로 안 올라간다. 한바탕 구르면서 어깨를 다친 모양이었다. 식은 땀 나는 일이다. 왼손으로 사격은 진짜지 형편 없다. 유령을 맞춘다면서 동생을 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행운을 빌며 오른팔을 들었다 놓았다 다시 해봤다. 틀렸다. 역시나 일정 높이 이상은 안 올라간다.

『우왓?! 나왔다!』
검은 연무 같은 것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와 사람의 형상으로 뭉쳤다. 더러운 먼지처럼도 보이고 새카만 곰팡이를 빗자루로 쓸어다가 한꺼번에 뭉쳐놓은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게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샘은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딘을 바깥으로 힘껏 밀쳤다. 윽 소리를 내며 그가 벌러덩 넘어졌다. 동시에 기다랗게 늘어진 손가락이 - 또는 손가락일 거라 짐작되는 그 무언가가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할퀴고 지나갔다.
샘은 벽쪽으로 두 바퀴 구르면서 형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딘!』
『몰라... 꼴사나워 죽겠다, 야.』
대답하는 딘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배를 쭉 깔고 넘어진 모습 그대로에서 이제는 총까지 놓쳤다. 흘깃 보아하니 뱀처럼 쉭쉭 소리를 내는 연무는 천장까지 단박에 올라갔다가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다. 딘은 자신이 꼼짝 없이 올빼미 발톱에 걸린 개구리 신세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해부대 위의 개구리다. 클로로포름으로 마취된 개구리다. 교수대의 밧줄을 눈으로 본 죄인처럼 몸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허공으로 새카만 여자가 둥실 떠올랐다.
딘과 샘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여자다! 여자가 집에서 죽었다는 기록은 못 봤는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만하면 젊은 측에 속하는 여자였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입술이 파랗다. 피부가 건조해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머리카락은 방금 전에 샤워하고 나온 사람처럼 곰삭 젖어 있다.

욕조 속에 처박힌 골동품 축음기에서 나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으릉거렸다.
《잘못했다고만 말하면 괜찮을 줄 알아? 후회한다고 말한다고 용서받을 거라 생각해...?》
여자가 악의를 드러내며 살벌한 미소를 흘렸다.

급한 마음에 더듬거리며 권총을 찾았다.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딘은 비굴하게 웃으며 뒷걸음질했다.
『저기... 잠깐만요, 아줌마. 우리, 그냥 말로 하면 안될까요.』
대답은 않고 여자는 다시 검은 연무로 돌아갔다.
『그러시겠죠. 물론 안 될 거라고 짐작은 했어요.』

갑자기 숨이 막혔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목을 조르면서 세게 눌러댔다. 딘은 어떻게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순수한 악의」를 손으로 잡고 떼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시에 몸이 또다시 둥실 떠올랐다.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어진다. 또다시 와이어를 몸에 감고 피터팬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자 아찔해졌다. 뜰채로 건져올린 물고기 취급은 짜증난다. 이리저리 뒤집고, 여차하면 내던지고... 감독 나오라고 해라. 당장 사표 쓰고 도망가련다. 아니, 그 전에 배우를 죽도록 혹사시킨 연출가를 뒷골목으로 불러내 평소의 원한을 해소하고저 주먹질을 약간만...

『커억!』
맞고만 있을 연출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연출가는 반격을 시도하며 딘을 무섭게 패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야...》
유령의 목소리가 더욱 스산해졌다. 동시에 해머로 배를 내려친 듯한 통증이 급습했다.
《용서하지 않아... 잘못했다고 빌어도 나는 절대로 용서 못해...》
등짝을 밟고, 걷어찼다. 뺨을 갈기고, 흔들어댔다.
멎었던 코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도와줘! 샘! 나 죽어! 이 아줌마를 어떻게 좀 해봐!』
굳이 애원하지 않더라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다. 샘은 딘이 떨어뜨린 권총을 집어들고 방아쇠에 검지손가락을 걸었다. 그런데 누굴 쏘라고? 검은 안개에 은과 소금으로 코팅된 총알이 과연 통하기나 할까? 샘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틀렸다, 자신이 없다. 연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한 총알이 딘을 그대로 꿰뚫어버리기라도 하면? 의심이 들자 더 이상 방아쇠에 손가락을 댈 수 없었다.
『샘! 쏴!』
『못 해!』
치명상을 입고 피 흘리는 형을 보는 건 사절이다. 차라리 내 심장을 쏘고 만다. 샘은 쓸모 없는 총을 도로 던져버렸다.
『샘~!!』
『포기한 거 아니야. 날 믿어!』
이거다 싶자 망설이지 않았다. 딘을 향해 달려가며 찍찍이 물통의 캡을 땄다.
그럼 간닷!
부드러운 플라스틱 표면을 힘껏 누르자 어린애 오줌줄기처럼 내용물이 찍- 하고 튀어나왔다.

『푸웁!』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딘은「어쩜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덟 살 이후, 물총 세례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든 말든, 샘은 가지고 있던 성수 전부를 딘의 머리에 부어버렸다.
『딘, 외쳐!』
『외쳐? 무엇을?』
『아멘!』
『뭐? 아멘?』
영문을 몰라 반문하는 것과 동시에 사악한 기운이 거짓말처럼 뚝 떨어져 나갔다.

Posted by 미야

2006/12/13 13:12 2006/12/13 13:12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08

Leave a comment

[S☆N-fanfic] repentance 06

생리통, 생리통, 망할 생리통... 내 허리 돌려줘, 아놔.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픽션입니다. 카톨릭 종교를 믿는 분들, 모쪼록 웃으면서 넘어가십시다.


『자, 착한 새미 어린이? 두 손으로 이거 받으세요. 딱지가 하나, 딱지가 둘...』
『이건 딱지가 아니잖아, 형.』

샘은 형이 자신의 손에 쥐어준 물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1개에 1달러 20센트밖에 안 하는 주석 재질의 성 베네딕트 메달이 모두 4개였다. 어디까지나 열쇠고리 장식용으로 판매되는 물건인지라 두께도 얇고 크기도 아담한게 엄지손가락으로 잡고 힘을 주면 휘어지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딘은 어린이용 감기약 시럽을 담아두기에 딱인 소형 찍찍이 물통도 하나 건네주었다. 사전에 솔로 깨끗하게 닦았음에도 혼합 딸기 향이 희미하게 풍겨났다. 약국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걸 적당히 주워온 것이 분명했다.
최근 들어 포커 게임으로 돈을 못 벌었다고 해도 그렇지. 샘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부드러운 플라스틱 재질의 물병을 흔들었다. 이물질이 들어가 있지 않은 투명한 액체가 출렁 소리를 냈다.

딘이 킬킬 웃음을 삼켰다.
『반응이 왜 그래. 보면 몰라? 그건 성수야. 비눗물이 아니란다.』
『성수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지금 장난해?』
그건 섭섭한 말씀이시다. 딘은「가엾어라. 넌 장난이 뭔지도 모르는구나」라고 말한 뒤,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만 해서 동생의 뒷통수를 찰싹 후려갈겼다.
『아욱!』
『샘? 바로 이런게 장난이야. 성수는 장난이 아니지. 이제 알겠어? 하여간 이 녀석은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꼭 어디 하나가 부족하다니까. 자, 마지막으로 이거나 받아. 나침반이다.』

샘은 어금니를 빠득 갈아대며 형을 힘차게 노려봤다. 뒷통수가 욱씬거리는 건 둘째다. 아니, 첫째인가. 왜 이렇게 손이 매운 거냐. 머리통이 활활 달았다.
아무튼 7개의 분도패를 쓰는 건 반대다. 폐렴인지 독감인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돌팔이 의사처럼 독한 항생제부터 처방해서야 쓰나. 그러니까 이성에 입각하여 어리석은 딘의 행동을 어떻게든 말려야 할 것이다.

『딘? 우리에겐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으흥.』
『상대의 정체에 따라 대응법도 달라져야 해. 생 초보들도 이렇게 무식하게 일 하진 않아.』
『그래, 그래.』

성 베네딕트 메달을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 하며 손장난을 치던 딘은 대답마저 시원찮게 했다. 뿐만 아니라 가벼운 휘파람까지 입에 달았다. 끝장의 메탈리카 허밍이다. 귓구멍만 막지 않았을 뿐이지 그 의미는 분명하다.「아, 동생의 짬짜 소린 진짜 듣기 싫어」다.

샘은 단호함을 담아 나침반을 다시 형에게 돌려주려 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건 옳지 않아. 내가 협조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려? 하지만 여기서 네 의견은 소용 없단다, 샘. 정 억울하면 뿅 하고 마술을 부려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나던가. 자, 일등병? 움직이도록. 안은 내가 처리하고 밖은 너에게 맡기마. 알고 있지? 북서남동 순서로 네 개의 메달을 땅에다 묻도록 해. 그러니까 시계 방향이야.』
샘은 물러서지 않았다.
『명령하지 마. 난 딘의 부하가 아니야.』
단호한 거부 의사에 딘의 눈매가 살짝 얇아졌다.
『맞~아, 부하가 아니지. 넌 내 동생이야. 나는 네 형이고. 여기서 100년이 지나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세상의 법칙 한 가지를 가르쳐줄까? 곧 죽어도 내가 위야. 알아 먹었어? 그러니 작작 투덜거려.』
그리고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복장 터지게 만드는 살인 미소를 슬그머니 덧붙였다.
『뭐야, 새미 어린이. 혹시 분도패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동생은 펄펄 뛰었다.
『새미 어린이라고 부르지 마! 내가 아직도 열 두 살인 줄 알아?!』
『알았어요, 새미 어린이. 라틴어 문구는 안 잊어버린 거 맞지요?』
『VADE RETRO, SATANA! (사탄아, 물러가랏!)』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일등병은 분기탱천하여 성큼 걸음으로 뒷마당을 향해 돌아갔다. 걷는 뒷 모습이 가관이다. 솟구치는 울분을 삭히느라 양 어깨가 위로 뾰족 솟아 있었다. 가뜩이나 키가 커다란 녀석이 들썩들썩 움직이자 없던 바람이 절로 생겨날 지경이다. 그것도 들판을 초토화시키는 토네이도급 돌풍이었다. 풀들이 알아서 비켜서는 걸 봐라. 대포가 터진 것도 아닌데 나뭇가지마저 휘고 있다.
『좋았어, 그럼 앞으로 15분... 서둘러야겠군.』
딘은 그런 동생을 냉정한 눈빛으로 지켜보며 시계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의식의 집행은 원래 카톨릭 사제들만 하도록 되어 있다. 나침반을 들고 이리저리 걷던 샘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의 움직임에 시선을 맞췄다.
성당에서 양초 한 자루 제대로 켠 적이 없는 주제에 참으로 잘 하는 짓이다. 그치만 민간인의 입장에서 꽤나 여러 번 엑소시즘을 성공시킨 적이 있으니「믿음으로 아멘」이라 주장하고 무난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어차피 하느님 입장에선 모두가 한 자녀들이다. 로만 칼라의 검은 옷을 입지 않았으니 당신의 영광을 허락하지 않겠노라 할 것도 아니잖는가. 샘은 마음을 굳게 먹고 성호를 세 번 그었다.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나니,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로다.』
기도를 시작하며 적당한 장소에서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으로 흙을 헤집고 메달 하나를 땅에 놓았다.
『이 메달 위에 악마의 힘과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베풀어 주소서... 뜻을 모아 기도합니다. 무한의 근원이신 하느님, 죽은 이를 불로써 심판하러 오실 주님. 청하오니 악마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우소서.*』
메달 위에 성수를 뿌리고 그 위로 정성을 다해 십자가를 그었다.
『아멘.』

하나의 패의 위치를 잡았으니 똑같은 행동을 이제 세 번 더 반복해야 한다.
무릎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면서 샘은 인상을 찡그렸다.
볼품 없는 찍찍이 물통에 든 성수가 그의 엿 같은 기분을 대변했다.
『자, 그럼 다음은 서쪽...』
고개를 돌려 흘끔 올려다본 집은 아무 일이 없다는 투로 조용하다.
샘은 집안에 매복해 있을 적군을 향해 캉~ 소리를 한 번 내곤 울타리를 넘어갔다.

『반복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높게 두른 담장이 없으니 부근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행동을 죄다 지켜볼 수 있다. 남들의 눈에 이게 정상으로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아는 샘은 목이 비틀려 죽은 카나리아 시체를 정원에 파묻고 있다는 식으로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혀가 바짝 말라갔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아이가 보고「아저씨, 지금 뭐해요?」라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별 거 아니란다. 여기다 추억의 타임 캡슐을 묻고 있어」라고 대답하면 과연 믿어나 줄까.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니 십중팔구 안 속아 넘어간다는데 한 표. 대신 수상한 사람이 마약을 숨기고 있다며 부모에게 당장 일러 바친다에 한 표.
덕분에 정신을 집중해서 기도문을 외우는게 힘들어졌다. 진땀이 나려고 했다.
흙투성이로 변한 손을 허벅지에 문지르면서 찍찍이 물통의 캡을 땄다. 서두른 탓에 성수를 옷자락에 제법 흘렸다. 속옷까지 축축해지자 기분이 한층 더 우울해졌다. 크리스마스를 눈도 없이, 가족도 없이, 선물도 없이 지내야 한다고 해도 지금보단 차라리 나을 것 같다. 끌어안을 건 식상한 프로그램만 내보내는 텔레비전밖엔 없다고 해도 그렇다.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우소서...』
절망에 가득차 속으로 다음의 기도를 살짝 덧붙였다.
우리 형도 정의가 뭔지 깨달을 수 있도록 추가로 은총을 허락하소서. 딘은 저보다 4살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 의견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하려고 합니다. 4살이란 나이 차이가 정의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동생인 제가 그의 머리로 킥을 날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살짝 딘의 머리를 치사, 벼락과도 같은 강력한 깨달음을 내리소서.
『아멘.』
기도를 마친 후, 손으로 대충 쓸어모은 흙을 분도패 위로 덮었다. 이렇게 해야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까마귀가 행여라도 둥지로 갖고 날아가는 걸 막을 수 있다. 행여라도 누가 보지는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힘 주어 꾹꾹 흙을 눌렀다. 이것으로 4개의 메달을 모두 땅에 묻었다.

『...?』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게다.
누군가의 시선을 깨닫고 고개를 들자 2층 창문으로 해서 형이 보였다. 그것도 창가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서 있었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어야 하나?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들어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에서도 할 일이 많을 거다. 한가롭게 바깥 경치나 구경하고 있을 짬은 없다. 집안에 분도패를 배치하는 일은 야외에서의 작업보다 훨씬 손을 타는 일이다. 벽속에 넣을 것인지, 마룻바닥 속에 감출 것인지를 판단하고 여차하면 마루를 뜯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샘은 바지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다.

《딘 윈체스터입니다.》
저 너머로부터 날아온 딘의 목소리는 물결 잔잔한 호수 같았다. 그래서 더 바짝 약이 올랐다.
『지금 거기서 날 감시하는 거야? 사보타주 할까봐 감시하고 있는 거냐고!』
《아니.》
『거짓말. 아까부터 나만 보고 있잖아!』
《아아, 맨날 둘이서 붙어 있다가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까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서... 이렇게라도 널 보고 있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어.》
『뭐? 외로워? 말도 안돼! 교과서 읽는 말투로 그렇다고 해봤자 안 속아.』

동생의 비난에 딘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틀렸어, 샘. 방금 내가 읽은 건 교과서가 아니라 연극 대본이었어.》

쌈빡하게 혈압 오른다.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 뻥과자 굽는 기계가 폭발한다. 샘은 핸드폰을 노려봤다가, 2층 창문을 쏘아봤다가, 발광하며 다시 핸드폰을 붙들었다.
『그래서 그 연극 대본의 제목은 뭐야. 조지 오웰? 1984년? 빅 브라더*?』
《허허허. 무슨 빅 브라더 씩이나... 그렇게 말하면 내가 300kg의 뚱보라도 되는 것 같잖냐.》
『어쨌든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거든? 그렇게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형.』
《감시하는 거 아니야, 샘. 네가 나 만큼 일을 잘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아냐. 모르고 있는게 분명해.』
《왜 몰라. 똥 기저귀 찼을 적부터 널 키운게 나라고. 아, 잠깐만... 기다려.》
순간 유리창에서 사람 그림자가 지워졌다. 딘이 침실 안쪽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동시에 핸드폰에서 지지직 하고 그리 반갑지 않은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잡음이라니? 샘은 핸드폰으로 귀를 바짝 가져간 채 긴장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단순한 전파 방해 같지가 않았다. 뭐랄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EVP(전자음성현상 Electronic Voice Phenomenon)다.

『형? 형! 거기 있어?』
《아아, 듣...고 ...어. 샘? 4개의 분...패는 모두 제 자리... 둔 것 맞...?》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쁜 예감이 들었다. 샘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렸다.
『딘?! 거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어. 안에서 분도패를 다 배치하긴 했어?』
《뭘... 하... 일... 하... 있. 당연한 걸... 묻... 아냐.》
『딘!』
《왜? 내... 목...가 잘 안... 니?》
『딘! 제발 그러지 마. 나 지금 무서워졌다고.』

겁에 질린 동생 목소리에 반응, 형이 다시 창가로 나왔다.
건들건들 걷는 모양새가 아주 멀쩡해 보인다. 샘은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치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머리가 보인다 싶었는데 휙 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채고 뒤로 강하게 끌어당긴게 분명했다. 딘의 몸이 거의 날아가다시피 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장난이 아니다. 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안돼~!!』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06/12/10 23:40 2006/12/10 23:40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06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55 : 56 : 57 : 58 : 59 : 60 : 61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0621
Today:
78
Yesterday:
182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