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repentance 06

생리통, 생리통, 망할 생리통... 내 허리 돌려줘, 아놔.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픽션입니다. 카톨릭 종교를 믿는 분들, 모쪼록 웃으면서 넘어가십시다.


『자, 착한 새미 어린이? 두 손으로 이거 받으세요. 딱지가 하나, 딱지가 둘...』
『이건 딱지가 아니잖아, 형.』

샘은 형이 자신의 손에 쥐어준 물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1개에 1달러 20센트밖에 안 하는 주석 재질의 성 베네딕트 메달이 모두 4개였다. 어디까지나 열쇠고리 장식용으로 판매되는 물건인지라 두께도 얇고 크기도 아담한게 엄지손가락으로 잡고 힘을 주면 휘어지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딘은 어린이용 감기약 시럽을 담아두기에 딱인 소형 찍찍이 물통도 하나 건네주었다. 사전에 솔로 깨끗하게 닦았음에도 혼합 딸기 향이 희미하게 풍겨났다. 약국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걸 적당히 주워온 것이 분명했다.
최근 들어 포커 게임으로 돈을 못 벌었다고 해도 그렇지. 샘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부드러운 플라스틱 재질의 물병을 흔들었다. 이물질이 들어가 있지 않은 투명한 액체가 출렁 소리를 냈다.

딘이 킬킬 웃음을 삼켰다.
『반응이 왜 그래. 보면 몰라? 그건 성수야. 비눗물이 아니란다.』
『성수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지금 장난해?』
그건 섭섭한 말씀이시다. 딘은「가엾어라. 넌 장난이 뭔지도 모르는구나」라고 말한 뒤,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만 해서 동생의 뒷통수를 찰싹 후려갈겼다.
『아욱!』
『샘? 바로 이런게 장난이야. 성수는 장난이 아니지. 이제 알겠어? 하여간 이 녀석은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꼭 어디 하나가 부족하다니까. 자, 마지막으로 이거나 받아. 나침반이다.』

샘은 어금니를 빠득 갈아대며 형을 힘차게 노려봤다. 뒷통수가 욱씬거리는 건 둘째다. 아니, 첫째인가. 왜 이렇게 손이 매운 거냐. 머리통이 활활 달았다.
아무튼 7개의 분도패를 쓰는 건 반대다. 폐렴인지 독감인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돌팔이 의사처럼 독한 항생제부터 처방해서야 쓰나. 그러니까 이성에 입각하여 어리석은 딘의 행동을 어떻게든 말려야 할 것이다.

『딘? 우리에겐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으흥.』
『상대의 정체에 따라 대응법도 달라져야 해. 생 초보들도 이렇게 무식하게 일 하진 않아.』
『그래, 그래.』

성 베네딕트 메달을 허공에 던졌다 받았다 하며 손장난을 치던 딘은 대답마저 시원찮게 했다. 뿐만 아니라 가벼운 휘파람까지 입에 달았다. 끝장의 메탈리카 허밍이다. 귓구멍만 막지 않았을 뿐이지 그 의미는 분명하다.「아, 동생의 짬짜 소린 진짜 듣기 싫어」다.

샘은 단호함을 담아 나침반을 다시 형에게 돌려주려 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건 옳지 않아. 내가 협조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거야.』
『그려? 하지만 여기서 네 의견은 소용 없단다, 샘. 정 억울하면 뿅 하고 마술을 부려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나던가. 자, 일등병? 움직이도록. 안은 내가 처리하고 밖은 너에게 맡기마. 알고 있지? 북서남동 순서로 네 개의 메달을 땅에다 묻도록 해. 그러니까 시계 방향이야.』
샘은 물러서지 않았다.
『명령하지 마. 난 딘의 부하가 아니야.』
단호한 거부 의사에 딘의 눈매가 살짝 얇아졌다.
『맞~아, 부하가 아니지. 넌 내 동생이야. 나는 네 형이고. 여기서 100년이 지나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세상의 법칙 한 가지를 가르쳐줄까? 곧 죽어도 내가 위야. 알아 먹었어? 그러니 작작 투덜거려.』
그리고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복장 터지게 만드는 살인 미소를 슬그머니 덧붙였다.
『뭐야, 새미 어린이. 혹시 분도패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동생은 펄펄 뛰었다.
『새미 어린이라고 부르지 마! 내가 아직도 열 두 살인 줄 알아?!』
『알았어요, 새미 어린이. 라틴어 문구는 안 잊어버린 거 맞지요?』
『VADE RETRO, SATANA! (사탄아, 물러가랏!)』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일등병은 분기탱천하여 성큼 걸음으로 뒷마당을 향해 돌아갔다. 걷는 뒷 모습이 가관이다. 솟구치는 울분을 삭히느라 양 어깨가 위로 뾰족 솟아 있었다. 가뜩이나 키가 커다란 녀석이 들썩들썩 움직이자 없던 바람이 절로 생겨날 지경이다. 그것도 들판을 초토화시키는 토네이도급 돌풍이었다. 풀들이 알아서 비켜서는 걸 봐라. 대포가 터진 것도 아닌데 나뭇가지마저 휘고 있다.
『좋았어, 그럼 앞으로 15분... 서둘러야겠군.』
딘은 그런 동생을 냉정한 눈빛으로 지켜보며 시계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의식의 집행은 원래 카톨릭 사제들만 하도록 되어 있다. 나침반을 들고 이리저리 걷던 샘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의 움직임에 시선을 맞췄다.
성당에서 양초 한 자루 제대로 켠 적이 없는 주제에 참으로 잘 하는 짓이다. 그치만 민간인의 입장에서 꽤나 여러 번 엑소시즘을 성공시킨 적이 있으니「믿음으로 아멘」이라 주장하고 무난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어차피 하느님 입장에선 모두가 한 자녀들이다. 로만 칼라의 검은 옷을 입지 않았으니 당신의 영광을 허락하지 않겠노라 할 것도 아니잖는가. 샘은 마음을 굳게 먹고 성호를 세 번 그었다.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나니,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로다.』
기도를 시작하며 적당한 장소에서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으로 흙을 헤집고 메달 하나를 땅에 놓았다.
『이 메달 위에 악마의 힘과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베풀어 주소서... 뜻을 모아 기도합니다. 무한의 근원이신 하느님, 죽은 이를 불로써 심판하러 오실 주님. 청하오니 악마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우소서.*』
메달 위에 성수를 뿌리고 그 위로 정성을 다해 십자가를 그었다.
『아멘.』

하나의 패의 위치를 잡았으니 똑같은 행동을 이제 세 번 더 반복해야 한다.
무릎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면서 샘은 인상을 찡그렸다.
볼품 없는 찍찍이 물통에 든 성수가 그의 엿 같은 기분을 대변했다.
『자, 그럼 다음은 서쪽...』
고개를 돌려 흘끔 올려다본 집은 아무 일이 없다는 투로 조용하다.
샘은 집안에 매복해 있을 적군을 향해 캉~ 소리를 한 번 내곤 울타리를 넘어갔다.

『반복하여 기도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높게 두른 담장이 없으니 부근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행동을 죄다 지켜볼 수 있다. 남들의 눈에 이게 정상으로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아는 샘은 목이 비틀려 죽은 카나리아 시체를 정원에 파묻고 있다는 식으로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혀가 바짝 말라갔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아이가 보고「아저씨, 지금 뭐해요?」라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별 거 아니란다. 여기다 추억의 타임 캡슐을 묻고 있어」라고 대답하면 과연 믿어나 줄까.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니 십중팔구 안 속아 넘어간다는데 한 표. 대신 수상한 사람이 마약을 숨기고 있다며 부모에게 당장 일러 바친다에 한 표.
덕분에 정신을 집중해서 기도문을 외우는게 힘들어졌다. 진땀이 나려고 했다.
흙투성이로 변한 손을 허벅지에 문지르면서 찍찍이 물통의 캡을 땄다. 서두른 탓에 성수를 옷자락에 제법 흘렸다. 속옷까지 축축해지자 기분이 한층 더 우울해졌다. 크리스마스를 눈도 없이, 가족도 없이, 선물도 없이 지내야 한다고 해도 지금보단 차라리 나을 것 같다. 끌어안을 건 식상한 프로그램만 내보내는 텔레비전밖엔 없다고 해도 그렇다.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우소서...』
절망에 가득차 속으로 다음의 기도를 살짝 덧붙였다.
우리 형도 정의가 뭔지 깨달을 수 있도록 추가로 은총을 허락하소서. 딘은 저보다 4살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 의견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하려고 합니다. 4살이란 나이 차이가 정의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동생인 제가 그의 머리로 킥을 날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저를 대신하여 살짝 딘의 머리를 치사, 벼락과도 같은 강력한 깨달음을 내리소서.
『아멘.』
기도를 마친 후, 손으로 대충 쓸어모은 흙을 분도패 위로 덮었다. 이렇게 해야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까마귀가 행여라도 둥지로 갖고 날아가는 걸 막을 수 있다. 행여라도 누가 보지는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힘 주어 꾹꾹 흙을 눌렀다. 이것으로 4개의 메달을 모두 땅에 묻었다.

『...?』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게다.
누군가의 시선을 깨닫고 고개를 들자 2층 창문으로 해서 형이 보였다. 그것도 창가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서 있었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어야 하나?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들어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에서도 할 일이 많을 거다. 한가롭게 바깥 경치나 구경하고 있을 짬은 없다. 집안에 분도패를 배치하는 일은 야외에서의 작업보다 훨씬 손을 타는 일이다. 벽속에 넣을 것인지, 마룻바닥 속에 감출 것인지를 판단하고 여차하면 마루를 뜯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딘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샘은 바지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다.

《딘 윈체스터입니다.》
저 너머로부터 날아온 딘의 목소리는 물결 잔잔한 호수 같았다. 그래서 더 바짝 약이 올랐다.
『지금 거기서 날 감시하는 거야? 사보타주 할까봐 감시하고 있는 거냐고!』
《아니.》
『거짓말. 아까부터 나만 보고 있잖아!』
《아아, 맨날 둘이서 붙어 있다가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까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서... 이렇게라도 널 보고 있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어.》
『뭐? 외로워? 말도 안돼! 교과서 읽는 말투로 그렇다고 해봤자 안 속아.』

동생의 비난에 딘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틀렸어, 샘. 방금 내가 읽은 건 교과서가 아니라 연극 대본이었어.》

쌈빡하게 혈압 오른다.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 뻥과자 굽는 기계가 폭발한다. 샘은 핸드폰을 노려봤다가, 2층 창문을 쏘아봤다가, 발광하며 다시 핸드폰을 붙들었다.
『그래서 그 연극 대본의 제목은 뭐야. 조지 오웰? 1984년? 빅 브라더*?』
《허허허. 무슨 빅 브라더 씩이나... 그렇게 말하면 내가 300kg의 뚱보라도 되는 것 같잖냐.》
『어쨌든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거든? 그렇게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형.』
《감시하는 거 아니야, 샘. 네가 나 만큼 일을 잘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아냐. 모르고 있는게 분명해.』
《왜 몰라. 똥 기저귀 찼을 적부터 널 키운게 나라고. 아, 잠깐만... 기다려.》
순간 유리창에서 사람 그림자가 지워졌다. 딘이 침실 안쪽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동시에 핸드폰에서 지지직 하고 그리 반갑지 않은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잡음이라니? 샘은 핸드폰으로 귀를 바짝 가져간 채 긴장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단순한 전파 방해 같지가 않았다. 뭐랄까,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EVP(전자음성현상 Electronic Voice Phenomenon)다.

『형? 형! 거기 있어?』
《아아, 듣...고 ...어. 샘? 4개의 분...패는 모두 제 자리... 둔 것 맞...?》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쁜 예감이 들었다. 샘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렸다.
『딘?! 거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어. 안에서 분도패를 다 배치하긴 했어?』
《뭘... 하... 일... 하... 있. 당연한 걸... 묻... 아냐.》
『딘!』
《왜? 내... 목...가 잘 안... 니?》
『딘! 제발 그러지 마. 나 지금 무서워졌다고.』

겁에 질린 동생 목소리에 반응, 형이 다시 창가로 나왔다.
건들건들 걷는 모양새가 아주 멀쩡해 보인다. 샘은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치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머리가 보인다 싶었는데 휙 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채고 뒤로 강하게 끌어당긴게 분명했다. 딘의 몸이 거의 날아가다시피 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장난이 아니다. 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안돼~!!』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집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06/12/10 23:40 2006/12/1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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