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 14 : Next »

낙서-일상생활32

※ 낙서 형식으로 짧게 이어가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잘 모르는 내용들은 어슬렁 지어냅니다. 그러니 언냐 옵화들은 이게 진짜야 그러지 말긔. ※


만남의 장소를 별이 세 개 붙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정한 건 뜻밖이었다.
남의 이목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었나 - 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단 별이 붙은 호텔은 보안이 철저하다. 도둑을 예방한답시고 사방에 감시 카메라가 붙어 있다. 기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장 차림새의 보안 요원이 곳곳을 돌아다닌다. VIP 고객이 투숙하는 날엔 똥파리처럼 달려드는 파파라치를 솎아내기 위해 검색을 강화한다. 덕분에 양복 안쪽으로 권총집을 차고 다니는 위험분자들은 정문을 뚫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카메라를 숨기고 로비를 어슬렁거리는 인간을 단숨에 채어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는 실력자들은 당연히 불법 반입 무기에도 반응한다.

『그래도 선생은 뒷주머니에 베레타 한 자루는 차고 있을 거라 믿고 있소만.』
『아니라고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리스는 명함 한 장을 꺼내어 식탁 정 중앙에 올려놓았다.
앞면은 순수한 백지. 뒷면 또한 순수한 백지.
백발이 성성한 신사의 눈썹이 활처럼 구부러졌다.
『이거 참. 이런 명함은 제법 오랜만에 보는데. 한 8년 만인가?』
신사는 지금 누구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거냐,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에 앞뒤로 뒤집어보던 백지 명함을 양복 안주머니에 곱게 집어넣곤 상징적인 의미로 심장이 뛰는 부위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재밌게도 남자의 그러한 행동에 반응을 보인 건 식탁 반대편에 앉은 리스가 아니라 이웃한 테이블에 앉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었는데 보디가드가 분명한 그들은 테이블보 아래로 감추어둔 소음총을 거두고 그 즉시 주의 및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자, 그래서 존 스미스 씨?』
『존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어차피 가명이니 상관없다 이건가요. 뭐, 좋아요. 존이라고 불러드리죠. 하지만 선생은 나를 미스터 갬브럴이라고 불러줬음 하오. 나보다 스무 살 연하의 사내가 친한 척하며 올리버, 올리버 이러고 부르는 건 용납할 수 없거든.』
『알겠습니다, 미스터 갬브럴.』리스는 좋을대로 하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올리버 갬브럴은 영국인이다. 하지만 국적과는 아랑곳없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의 집은 - 가족이 살고 있다는 의미로 보자면 싱가폴에 있다. 나이는 예순 일곱, 아직 은퇴하지 않은 베테랑 무역 상인이다.
하지만 무역 상인이라는 건 국가에 납세를 하기 위한 위장 신분이고, 실제로는 다국적군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특정 지역으로 비밀 요원을 보내는데 필요한 민간 항공편을 제공한다던가, 불법으로 체포된 특정 인물이 수용된 컨테이너를 배편으로 부친다거나, 부패한 장군과 짜고 분해된 전투기를 다른 국가로 빼돌린다거나... 근래에는 전직 군인들과 비밀요원들을 고용해 여론을 의식하는 정부를 대신하여「작전 대행」서비스 팀을 파견, 공개적으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더러운 일들을 일사분란하게 해치우고 있다.
이른바 그는「검은 정부, 검은 군대」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다 그렇지 뭐. 앞구멍이 점잖은 표정으로 밥을 먹으면 뒷구멍은 똥을 싸고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사람이 없으면 세계가 붕괴해버려.』
갬브럴은 세상이 내리는 평가에는 큰 관심이 없다며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창백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로 리스를 꼼꼼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봐선 오랫동안 밀리터리 훈련을 받은 건 분명하고... FBI? 글쎄.』
『제가 누구인지 궁금합니까. 미스터 갬브럴.』
『사실 그렇게 많이 궁금하지는 않다네. DIA(국방정보국) 직원이라고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인가. 다만 오랫동안 내가 알고 싶어 하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접촉을 시도했다는게 중요하지.』
그렇게 말하고 갬브럴이 가래 끓는 비참한 소리로 목을 울려댔다.
『그래서 그건 누구였던 거지.』

오래전 이야기다.
아직 그의 사업이 제 궤도에 올라가지 않았던 무렵, 몸값을 요구하는 인질범들이 그의 딸과 아내를 파리에서 납치했다.
『마누라는 내놔라 하는 유명 모델 출신으로 나에겐 세 번째 재혼한 여자였다네. 스텔라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냐. 그래도 납치범들에게 손가락이 잘린 정도로는 내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 하지만 어린 내 딸은... 이야기가 달라. 달라도 아주 다르지.』
딸이 납치되자 갬브럴은 눈이 뒤집혔다. 아내는 맘대로 해도 좋으니 딸은 무사히 돌려달라고 구걸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대단히 지저분하게 돌아갔다. 아내의 손가락이나 귀를 잘라봤자 협박이 되지 않는다는 걸 학습한 그들은 대신 어린 딸을 강간하며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아버지에게 보냈다.
호흡이 흐트러진 신사는 가만히 자신의 중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씹었다.
『평생을 그놈을 잡기 위해 애썼지.』
갬브럴이 전직 군인들과 우수한 국가 요원들 수집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것이 방아쇠였다.
정당한 수단만 가지고는 범인을 과녁으로 매달아놓고 총질을 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가 자세를 약간 바꿨다.
『나는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제보를 해오고 있네.』
『하지만 여전히 범인을 찾지 못하셨죠.』
『이제는 지겨울 정도야. 그러니까 존, 경고하는데 현상금을 노리고 거짓부렁으로...』
『말을 도중에 끊어 죄송하지만 저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미스터 갬브럴.』
『음?』
『제가 필요한 건 정보입니다.』
『정보?』
『당신이 고용한 전직 CIA 요원 중 베타 팀이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데요. 특히 현장 수습 쪽으로 소개를 해주셨음 합니다.』
『알파 팀도 아니고 베타?』
되물었다가 도중에 멈추고 항복의 의미로 손바닥을 활짝 펴보였다.
이런다고 대답이 돌아올까. 그가 상관할 일이던가.
게다가 듣자하니 소문으로는 AAA급 알파 팀은 자기 맘대로 은퇴도 못 한다고 한다. 뒷일을 두려워한 국가에서 몰래 죽여 버린다나.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요원들 전부가 베타라는 말이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갬브럴 수하의 전직 CIA 요원들은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된 이력과는 달리 전부 B급이라는 얘기다.

『잘 나갔던 현장 수습 요원이었던 자를 안전한 장소에서 몇 명 인터뷰하게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미스터 갬브럴.』
무표정한 얼굴의 리스는 이것이 답례라며 사진 한 장을 백발의 신사에게 내밀었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손이 그 즉시 굶주린 짐승처럼 사진을 낚아챘다.
『그런데 이게 진짜라는 건 어떻게 알지.』
『어렵지 않죠. 붙잡아 그의 입안을 면봉으로 긁어보면 되니까요.』
『..........』
『당신이 딸의 몸에서 범인의 체모를 찾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음.』
『그리고 따님이 자살한 건 정말 유감입니다, 올리버.』
정정하던 노인의 몸에서 기력이 전부 빠져나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Posted by 미야

2012/11/30 10:38 2012/11/30 10:38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756

파던 놈이 판다는 옛말대로

책이 잘 읽히질 않고 흥미가 떨어져 인터넷 사이트에서 로맨스 소설 카테고리를 뒤져봤지욤.
.......... 덕력 부족으로 뭘 고르면 될지 판단이 서질 않음. 추리소설은 이거! 저거! 요거! 이러고 팍팍 찝어 카트에 던져넣는데 이 부분은 고개만 갸웃거리게 만듬.
판매자 설명은 "잘 씌여진 베스트셀러" 이고 독자평은 "이따구 글을 누가 싸질렀냐" 이러고 있지를 않나.
결국 파던 사람이 파야지 옆으로 고개 돌리면 망하나 봅니다.
주인공이 잘 생겨서 사랑스럽다는 거, 무지 질색이거든요.
그런데 이건 무슨 로맨스의 법칙인가. 죄다 잘 생겨서 왕자야.
싫다, 이놈들아.

미쳤다고 내가 왜 세계대전Z를 읽고 있는 것인가.
그래도 어떻게어떻게 중간 부분까지 왔는데 많은 인터뷰 인물 가운데 드디어 흥미를 끄는 사람이 한 명 나타났습니다. 폴 레데커라고 하는 인물인데요. 실존 인물인가 검색까지 해보는 만행을...;; 과거, 올리버 데이비스 박사의 논문을 찾아보겠다고 허푸덕거렸던 촌극이 떠올랐습지요. 넹. 고스트 헌터의 그 올리버 데이비스 박사요.

아무튼 눈이 번쩍 뜨이는 글귀 발견.
"인류가 자신이 지닌 인간성만 버릴 수 있다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순간 전률.

이건 해롤드 핀치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경계선 너머가 지옥이 되어버릴지, 천국이 되어버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겠죠. 와 - 그리고 레데커 플랜을 읽는데 소름이 죽죽 돋더군요. 남겨진 사람들을 특별 격리 구역에 집단 수용하여 "그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 선전을 함과 동시에 맛있는 인간 미끼로 삼아 좀비떼를 그쪽으로 붙들어 놓는다... 다시 한 번 와 - 중요 군사적 거점 주위로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것과 뭐가 달라.
순간 기계에게 인간성을 가르친 핀치가 나무 고맙더라고요.

응? 그런데 나. 로맨스 소설 이야기 하던 거 아니었나?

Posted by 미야

2012/11/29 14:14 2012/11/29 14:1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755

Leave a comment

낙서-일상생활31

※ 낙서 형식으로 짧게 이어가고 있는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일부 원작 설정과 맞지 않습니다.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얼른 도망가긔. ※


오후의 환한 햇빛은 림보의 내부까지는 닿지 않았다.
일부러 늘어뜨린 폴리에틸렌 가림막과 비닐포장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건물 외벽을 두드린 빛은 먼지가 두껍게 쌓인 유리창이라는 복병을 또다시 만나 갈가리 찢겨나갔다. 그렇게 분산된 빛은 따스하지도 않을뿐더러 결코 밝지 않았고, 철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온 핀치는 그래서 습관적으로 조명등 스위치로 손을 가져갔다. 익숙한 윙- 소리가 울리면서 머리 위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낮임에도 어둑어둑한 실내로 인공적인 빛을 덧칠했다.
코로 먼지의 내음을 마시며 부드러운 갈색 캐시미어 겉옷을 벗었다.

며칠간 기계는 침묵했다.
셜록 홈즈의 불평이 절로 떠올랐다.
《범죄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애석하게도 모리어티 교수가 사망한 뒤에 런던은 유난히 지루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네.》
명석한 탐정의 말에 친우이자 조수인 존 왓슨은 이렇게 대꾸했었다.
《분별 있는 시민들 중에서 자네 말에 동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구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틀리다.
일단 뉴욕은 지루할 틈이 없다. 신문을 펼쳐보면 매일이 대형 사건과 사고의 나날이다.
뉴욕과 뉴저지 부근에서 판매된 우유 8천 갤런이 부적절한 살균 처리를 이유로 전량 회수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미들랜드 팜스와 저지 데이리 팜스 등의 인기 브랜드도 예외가 아니어서 텔레비전 아나운서들은 현재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우유가 어느 제품인지 꼭 확인하고 먹어야 한다며 주의를 주었다.
테리 존슨 목사가 코란을 불태워버리겠다고 선언, 이번에도 오바마가 골치를 싸매고 있다. 대통령은 이 정신 나간 목사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때렸으면 하고 내심 바랄지도 모르겠다.
십대 청소년이 포함된 아동 포르노 유통업자가 발각되었다. 검찰은 증거물로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성관계 동영상 1만여 건을 압수했다. 무려 1만 건이다.
핀치는 한숨을 내쉬며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작업용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뉴욕은 다섯 명의 모리어티 교수가 활약 중인 도시와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침묵하는 건 애시당초 기계의 설계가《사전에 계획된 범죄》만을 찾아내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노숙자가 플랫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선량한 시민의 등을 떠미는 건 안타깝게도 솎아내질 못한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돕지 못한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컴퓨터에 관리자 로그인 암호를 입력했다.
그 즉시 엄청난 속도로 화면이 바뀌면서 사전 프로그램 된 데이터들이 홍수처럼 닥쳤다.
핀치는 푸가를 연주하려는 피아니스트처럼 자판 위에 열 개의 손가락을 가만히 가져갔다.
『..........』
그러다 자판에서 손을 떼어내곤 어느새 흘러내린 안경을 콧잔등 위로 도로 올려세웠다.
오늘은 번호가 없는 날.
멍한 느낌으로 텅 비어버린 유리 보드판을 쳐다보았다.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날에도 도서관 출입을 열성적으로 하던 존은 오늘따라 소식이 없다. 고용주의 권고에 따라 오늘 하루는 그만의 사생활을 즐기기로 작정을 한 듯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1시 10분을 살짝 넘긴 시각,「날씨가 참 좋습니다, 핀치.」이러며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아울러「같이 브런치를 먹으러 갑시다.」이럴 리도 없다. 브런치를 먹기엔 너무 늦어서 차라리 굶고 말지 이러고 끼니를 포기한 사람들 빼고는 대다수가 식사를 끝마쳤다.
초침이 온전히 한 바퀴를 다 도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손목시계에서 눈을 떼었다. 그리고 앉았던 의자에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넋 놓고 있을 틈이 어디 있다고. 의외로 할 일은 많다.
『어디보자... 읏샤.』
게을렀던 자신을 나무라며 꺼내왔던 책들을 도로 서가에 꼽는 일을 시작했다.
병적인 정리벽이 있는 리스와는 달리 그는 책들을 읽고 제자리에 잘 치워두지 않는 편이다. 젊었던 시절엔 벽돌이 아닌 것들로 바벨탑을 쌓으려 한다며 지적을 받기도 했다. 수직으로 쌓아올린 더미가 아장아장 기어다니던 윌리엄 잉그램을 덥쳤던 적도 있어「나중에 다시 읽어야지」이러고 주변으로 책들을 배치하는 버릇을 고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습관이나 버릇이라는 건 잘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지금도 작업 테이블 주변으로 책으로 만들어진 고분이 다섯 개쯤 생겼다. 서둘러 치우지 않으면 베어가 씹는 장난감으로 착각하고 아작을 내게 된다. 취향이 고급인 개는 꼭 비싸고 희귀한 종류만 골라 이빨로 씹었다.
아시모프를 보내버렸을 적엔 눈물도 안 나왔다. 핀치는 끙끙거리며 품안에 다섯에서 여섯 권의 책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끌어안은 자세에서 허리를 펴자 등뼈가 우두둑거렸다.
『운동부족이야. 반성해야 해.』
혼잣말하며 서가를 향해 뒤뚱거리며 걸었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기분이다. 겨우 책을 들고 왕복을 했을 뿐인데 그새 거칠어진 자신의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죽어버린 공간은 어떠한 소음도 내지 않는다. 그 고요함은 스산함을 넘어 공포감까지 자아낸다. 제각각의 키를 가진 책들을 보다 가지런히 보이게끔 정돈하던 그는 일부러 팡팡 소리가 나도록 책의 표지를 두드렸다. 이렇게 하지 않음 무음(無音)에 질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쩐지 소름이 돋아 주변을 흘끔거리고 돌아보았다.
유령들, 유령들, 유령들. 그리고 또 유령들.
갑자기 뒷통수가 싸늘해졌다. 부랴부랴 몸을 돌려 그는 체온을 빼앗아가는 허깨비들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호흡이 한층 가파진다. 크게 상처를 입었던 과거를 가진 다리가 저릿저릿하다.
언제부터였을까.
혼자인게 마음 편하지 않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다정하게 그를 바라봐줄 사람. 기쁘게 웃어줄 사람.

『리스.』
갑작스런 연락에 존은 반사적으로 물어왔다.
《번호가 나왔나요, 핀치.》
『어... 아뇨.』
번호가 나온 건 아니라는 말에 존은 제법 놀란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핀치는 잡담이나 하자고 전화를 걸어올 인간이 아니다. 리스는 말 못할 곤란에 처한 고용주를 상상한 것 같았다. 목소리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그리고 급박해졌다.
《혹시 다쳤어요?》
『어. 그건 아니고요.』
《핀치?》
숨을 길게 들이마신 그는 변명조로 거짓말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번호를 실수로 잘못 눌렀어요. 미안합니다.』
《핀치? 왜 그래요. 무슨 일...》
다 듣지 않고 허겁지겁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핏기가 싸악 가시는 소리가 들렸다. 맙소사, 내가 방금 전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화끈거리며 귀가 달아오른다.
안경을 벗고 부끄러움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Posted by 미야

2012/11/29 10:41 2012/11/29 10:41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1754

« Previous : 1 : 2 : 3 : 4 : 5 : ... 14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1013114
Today:
140
Yesterday:
37

Calendar

«   2012/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