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

※ Alice님의 팬픽을 읽고 덩달아 슝슝... 급조한 탓에 제목도 없고 엉망입니다. ※


아무래도 사람인데 시선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포트 작성을 위해 동네 도서관을 찾은 새내기 대학생 리처드는《G-008》번 서가 앞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멈칫거렸다.
예쁘장한 얼굴에 포동포동한 뺨, 화사한 금발, 콱 깨물어주고 싶은 고사리 손... 더하기 더러운 콧물, 플러스 왕방울 눈물.
엄마 치마 폭에 싸여《마이크와 붕붕 꼬마 자동차》동화책을 읽으면 딱일 법한 코흘리개 꼬맹이가 새카맣게 변한 더러운 주먹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홀로 짊어진 꼬마 예수는 훌쩍훌쩍 숨을 삼켜가며 무지 서럽게 울고 있는 중이었다.
분주한 쇼핑 센터도 아닌데 어린애가 보호자를 잃어버렸다? 그런 멍청한 일이.

대출을 하고자 옆구리에 꿰고 있던《19세기 서양 미술사》책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슬픔에 잠긴 아이와 얌전히 눈을 맞췄다.
『곤란에 처한 모양이구나. 무슨 일이지? 꼬맹아.』
『나는 꼬맹이가 아니예요.』
당돌하다. 게다가 아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모르는 사람이 사탕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 - 아이가 제대로 교육을 받았음에 리처드는 한층 더 깊은 수수께끼를 느꼈다. 이런 아이들은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리처드는 선의로 손을 내밀어도 주의 깊은 이 아이가 자신의 팔을 결코 잡으려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건 나름대로 대단히 섭섭한 일이었지만, 아동 성추행범이 우굴거리는 오늘날의 미국을 생각한다면 올바른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네 이름은 뭐지?』
『샘.』
『좋아, 샘. 여기가 도서관이라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런데 넌 책을 읽으러 온 것처럼은 안 보이는구나. 왜 여기서 혼자 훌쩍거리고 있는 거지?』
순간 아이가 훅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구 맙소사, 리처드는 재빨리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으앙~!』
아니나 다를까, 참았던 울음보가 터졌다.

샘은 결코 크지 않은 두 손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가며 흐느꼈다.
『형을 잃어버렸어요. 우, 우리 형은 말예요. 수퍼맨이예요. 뭐든지 잘 하구요. 진짜, 진짜, 멋진 형이예요. 그, 그런데 없어졌어요!』
그렇군. 리처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형과 같이 도서관에 놀러왔는데 화장실에 간다거나 해서 서로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그래서 놀랐고, 당황했고, 어쩔 줄 몰라 울음이 터진 것이리라.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리처드는 환히 웃기부터 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책을 정리 중인 할아버지 사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랬구나. 형이 없어졌구나. 잘 알았다. 그러니 울지 말고 내 얘기를 잘 들어보렴. 그렇다면 저기 있는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하는 건 어떻겠니. 네가 부탁을 하면 기꺼이 같이 형을 찾아주겠다고 할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이 도서관 대장이란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히 꿰고 있지. 그러니까 아마 네 형도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자, 어떻게 생각하니?』
나름대로 멋진 제안이었다. 25년 경력의 유능한 사서이자 지역 도서관 자원 봉사자인 노먼 영감님은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억력 하나는 젊은이 못지않게 짱짱하다. 영감님이라면 이 꼬맹이와 동행했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재빨리 기억해내곤「파란 셔츠에 뉴욕 양키즈 모자 쓴 인간, 빨리 와서 잃어버린 애새끼 데려가!」라며 방송 마이크에 대고 마구 호통을 칠 것이다. 그리고 놀란 아버지가 헐레벌레 달려오면 엉덩이를 걷어차는 시늉을 하리라. 잡지의 책갈피를 일부러 찢은 상식 이하의 여고생을 상대로「터미네이터 - 심판의 날」영화를 찍은 분이다. 노먼 영감님은 믿을 수 있었다.
『어떠냐, 샘. 나랑 같이 저분에게 가서 도와달라고 그럴까?』

리처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참 떨어져 공상과학 소설을 읽던 한 소년이 읽던 책을 탁 소리가 나게끔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그래, 내가 없어졌구나, 새미. 나도 미처 몰랐던 걸 가르쳐주어 대단히 고맙다! 흥!』
머리를 짧게 다듬은 소년은 눈물 투성이의 꼬마를 무섭게 쏘아본 뒤, 볼멘 표정으로《불타올라라, 불타올라라, 미래 영웅 마틴!》책을 머리 꼭대기까지 들어 올렸다.

얼랍쇼. 이건 또 무슨 전개란 말입니까.
설마, 이 꼬맹이의... 형?
그러고보니 둘 다 금발에 초록색 눈을 가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같은 분위기에 비슷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요모조모 뜯어보지 않아도 한 핏줄이다.

확인을 위해 여전히 울고 있는 꼬맹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 동생이니?』
『yea.』
『하지만 이 녀석은 형이 없어졌다고 했는데.』
『그래요? 흐음... 그럼 없어졌나 보죠.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동생이 없어졌거든요. 내 동생은 말예요, 어른 말을 잘 듣고, 얌전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고, 씩씩하고, 영리한 녀석이예요. 그런데 갑자기 투명 인간이 되서 없어졌어요.』
심드렁하게 그렇게 말한 소년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읽던 책의 낱장을 넘겼다.
『그러니까 피장파장인 거죠.』

그 말에 징징 울던 샘이 발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없어지지 않았어! 딘!』
『그러냐.』
『투명 인간도 되지 않았어!』
『그래. 내 눈에도 잘 보이니 투명 인간은 되지 않았구나, 새미 보이. 하지만 대신 나쁜 말썽쟁이가 되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난 나쁘지 않아!』
『도서관에선 조용히 책만 읽는 거야, 이 바보야. 너처럼 소리를 지르는 건 나쁜 얘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러니까 넌 나쁜 아이이고, 말썽쟁이인 거야.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덧붙여 머리 나쁜 바보도 되는 것이고. 어디 보자. 그러니까 말썽쟁이에, 바보에, 훌쩍거리는 계집애까지 되겠군.』
『우욱!』
『내 말이 틀려?』
『틀려!』
『좋아, 동생아. 기회를 주지. 지금부터 숫자를 1부터 10까지 셀테니 나에게 뭐가 틀렸는지를 설명해봐. 하나, 둘, 셋...』
『딘은 바보!』
『그걸 설명이라고 하고 앉았냐. 지나가는 새가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땅바닥에 떨어지겠다.』

말다툼이 한창인 형제들을 넋 놓고 쳐다보았다. - 사실은 어린애들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말다툼을 하는게 너무나 재밌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애들 싸움은 코미디 시트콤이다.
리처드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고는 정의로운 심판관 내지는 관중이 되어 한 발 뒤로 뺐다. 사태가 훨씬 악화되면 그때 가서 끼어들어도 큰 무리는 없을 터, 지금은 두 아이들이 왜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족하다.
하여 어디 계속 해보라는 시늉을 하며 팔짱을 꼈다.
뭐가 문제지? 너희 둘.

『샘, 네가 링컨 대통령이라고 해도 내가 학교에 가는 걸 막을 수는 없어. 싫든 좋든 나이가 들면 학교에서 공부라는 걸 해야만 해. 너랑 하루종일 놀아주지 못 해서 나 또한 유감이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게 규칙이야.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 나나 아빠나 곤란하기만 할 뿐이야. 넌 네가 규칙을 무시해서 아빠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만 해.』
『알게 뭐야! 그런 규칙은 난 몰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형이 나랑 같이 있어줬음 좋겠어. 학교에 가지 말아. 아님 나도 딘과 같이 학교에 갈래!』
『나이가 좀 더 들면 싫다고 해도 억지로 끌려가게 되어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냐! 나도 학교에 갈 수 있어! 나이 들었어!』
『충분하진 않아. 엊그제 밤에도 천둥 친다면서 내 침대로 몰래 기어들어 왔잖아. 넌 아기야.』
『아기가 아니야! 이젠 혼자서 머리도 감을 수 있어! 아빠가 이제 우리 막내가 다 컸구나,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난 글자도 읽을 줄 알고, 산수도 할 줄 알아. 난 아기가 아니야.』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일백 더하기 다섯이 몇이지?』
『우욱!』
『그래. 거기서 죽도록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헤아려라. 그런다고 답이 나오겠냐. 한심해서...』

조금 차갑다 싶게 쏘아붙인 소년은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읽던 책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미래 영웅인 마틴이 충견 스파르탄과 같이 어두컴컴한 지하도로 내려가는 장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악당들이 지하철 역에 폭탄을 설치했다. 마틴이 나서 멀잖아 발생할 끔찍한 참사를 막아야 했다.
한참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어려서 그 책을 읽어봤던 리처드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년은 줄거리에 푹 빠져 동생을 무시했다.

그것이 대단히 분했던 것 같다. 어린애의 목소리가 곱절로 날카로워졌다.
『딘은 우리 형이 아니야! 우리 형은 내가 하는 말은 뭐든지 다 들어줘! 학교 같은 곳에 가지 말고 나랑 놀라달라고 하면 놀아줄 거라고! 딘은 내 형이 아니야! 아니야!』
지지 않고 소년이 고함을 쳤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네 형이 아니야. 그리고 덧붙이자면 너도 내 동생이 아니야.』

꼬맹이는 펄쩍 뛰었다.
듣고 있던 리처드도 약간 놀랐다.
『뭐?』
『정확하게는 내 동생이 아니게 될 거야. 왜냐하면 저번 겨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답장을 받았거든. 마음에 들지 않는 남동생은 북극으로 데려가고 대신 귀여운 여동생을 주마 약속받았어. 난 좋아서 고맙다고 인사했고, 산타클로스는 내가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올 수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잘 들어둬. 나의 새 여동생 이름은 샌디가 될 거야.』

그것은 잔인하다 싶은 거짓말이었다.
리처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줄 필요성을 느꼈다. 샘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놀란 까닭도 있지만 공포감이 더욱 큰 원인이었다. 꼬마는 북극으로 끌려갈 수 없다며 얼른 자리에 납짝 주저앉았다. 안색도 새파랬다.

『저, 전화 했어?』
묻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응.』
『나, 나쁜 놈!』
『잘 가, 샘. 북극에서 새 친구를 많이 사귀기 바라. 펭귄이랑 북극곰을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우, 우욱! 우욱...!』
『왜 울어? 넌 펭귄 좋아하잖아.』
『응...』
『북극곰도 좋아하잖아.』
『좋아해...』
『그런데 왜 울어?』
『그치만... 딘이 더 좋아. 펭귄보다, 북극곰보다 훨씬, 훨씬, 좋아...!!』
『어랍쇼? 나는 네 형이 아닌데?』
『아냐! 우리 형이야!』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른 꼬마는 한걸음에 달려가 형을 붙잡았다. 뺨을 비비고 가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누가 뭐래도 나는 초강력 접착제다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다시 전화해. 응? 전화 다시 해! 전화할 거지! 그렇지!』
『흐응. 네가 고집을 안 부린다면 생각해보지. 어떠냐, 샘. 형이 학교에 가도 안 울거냐?』
『우!』
『안 운다고 약속할 거야?』
못 이기고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울게.』
『오케이. 그럼 당장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여동생 샌디는 필요 없다고 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으이그! 누구 동생 얼굴이 이렇게 더러운 거야. 화장실 가자, 화장실!』
능숙한 태도로 소년이 동생의 손을 잡았다.

『대출 기간은 일주일이다, 리처드.』
『예.』
『공부는 잘 되고 있니?』
『힘들어 죽겠어요.』
『젊은 놈이 늙은이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노먼 영감님이 카드에 도장을 찍는 동안 반대편 유리창 밖으로 아는 얼굴 둘이 지나갔다.
고개를 길게 빼고 보니 예의 아이들이었다.
언제는 산타클로스에게 공짜로 줘버린다더니.
꼭 붙들고 있는 모양이 누군가 동생을 달라고 하면 이빨로 물어뜯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저번에 빌려간 책은 반납을 아직 안 했구나.』
『앗차!』
『잘 되었다. 애들이 볼 새 책을 사게 연체료 두둑히 내놔. 특별히 과태료 10배로 해주마.』
『으악! 그런게 어딨어요!』
『그럼 주말에 여기서 서가 정리를 할텨?』

너무 울어대서 졸린 모양이었다.
꼬맹이가 두꺼워진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하품을 했다.
소년이 그런 동생을 등에 엎었다.

『낙찰~ 잘 되었다. 요즘 내가 허리가 영 신통치 않아서...』
『할아버짓!』
『딱 5시간만 봉사 혀. 그럼 합의 본 거다?』
당황하여 머리를 긁는 짧은 사이에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럼 딱 3시간만...』
거기까지 약속했음에도 리처드는 지갑을 열고 있었다.

《불타올라라, 불타올라라, 미래 영웅 마틴!》시리즈의 2권은 배경이 달 기지다. 정말 흥미롭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이 있다. 아쉽게도 이곳 도서관엔 들어와 있지 않다. 뭐, 당장 점심 먹을 돈이 궁진해도 애들 동화책 한 권 정도야... 어깨를 으쓱이며 리처드는 도서 기증 프로그램에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이름을 적어 올렸다. 그리고 종이 여백으로《딘과 울보 꼬마, 그리고 북극에서 계속 살게 된 불쌍한 샌디를 위해》라고 가볍게 웃으며 메모했다.

Posted by 미야

2007/05/04 22:52 2007/05/0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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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야*쥰쥰 2007/05/05 05:38 # M/D Reply Permalink

    그리고 샘은 아빠에게 <아빠, 산타클로스를 사냥해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성묘 다녀올게요.
    저두 울 아빠 만나고 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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