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죄송합니다. 고딕풍 내장 파이 이야기가 될 거라는 쥰쥰의 예고는 순전히 허풍이었습니다. 아직도 피가 안 나오고 있음! 찢어진 뱃가죽도, 말뚝 박힌 머리도, 잘려진 젖꼭지도 없음! ※


이후로도 침묵으로 사람 목을 윽죄이는 전화가 세 번 정도 왔다.
그때마다 딘은 땅을 쳐다봤고, 하늘을 두리번거렸고, 제발 참으라 애원하는 샘의 눈빛을 씹어 뭉개며, 마침내 스팀이 올라「이따위로 종용하지 않아도 이 엄.마.는. 무지 노력하고 있어!」라고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크악! 이놈이나, 저놈이나! 아직 장가도 못 간 남자에게 이게 무슨 행패야?! 사람 귀로는 들리지도 않는 돌고래의 목소리로「엄마, 엄마」노래를 불러대는 건 짜증 난단 말이야!』
딘의 얼굴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촛불 조명을 턱 아래로 놓은 것처럼 변했다.
핸드폰을 길바닥에 팽개쳐 박살을 내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만 했다. 그가 무시무시한 결심을 한 것을 눈치챈 샘은 과자가게 아저씨가 던져주는 사탕을 두손으로 공손히 받아내는 동작을 취했다.
비싼 물건에 화풀이는 하지 말아주세요. 정 던지고 싶다면 이리로.
다행이다. 묘한 뉘앙스로 뺨 근육을 실룩거리고 있는 동생의 모습에 제정신을 찾은 그의 형은 이 마당에 캐치볼 놀이는 사절이라는 걸 분명히 하며 귀신 붙은 핸드폰을 호주머니 속에 도로 넣었다.
『여기서 샐샐 웃기만 해봐. 정강이를 걷어차줄테다. 닥치고 공구 박스나 챙겨, 샘.』
『네, 엄마.』
『지금... 무시라?』
『알았으니 그만 노려봐. 무서워서 심장마비 걸리겠다.』
『조심해, 샘. 형에게 자꾸 기어오르면 네놈 명줄이 획기적으로 확 줄어들 수 있어.』
유선방송 서비스 센터 직원의 유니폼을 쫙 빼입은 딘은 유명 케이블 회사의 로고가 박힌 모자를 눈썹 아래까지 깊이 눌러썼다.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의 복장을 입은 동생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화가 끝까지 치민 것이 확실한 딘의 날카로운 눈빛에 위축된 샘은 어린 강아지에게 명령하는 듯한 형의 동작에 이번만큼은 별 군소리 없이 따랐다.

날씨가 맑았다. 봄 같지 않게 더워서 아스팔트 지면에서 아지랑이가 활활 피어올랐다. 남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쓸데없는 망치며 드라이버 같은 걸 잔뜩 집어넣은「가짜」공구 박스를 오른손에 든 샘은 두꺼운 자켓을 걸친 등이 덥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가방에 집어 넣은 듯했다. 그래서 불평하며 자꾸만 미끌어지는 손잡이를 힘주어 고쳐 쥐었다.
『딘. 여기에 커다란 돌이라도 넣었어?』
『그렇게 무겁냐. 하여간 우리 동생은 보기와는 달리 몸이 허약해서... 형이 대신 들어줘?』
『됐어.』
잘라 말하며 괜찮은 분위기의 2층 벽토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을 방문하기에 앞서 이들 형제는 이미 사전 탐색이라는 걸 해치운 뒤다.
담장을 따라 고장난 케이블 선을 수리하는 척하며 두 명의 주부와 대화를 나눠봤다.

「캐빈 쉐퍼드 씨요? 무슨 세일즈를 하는 사람 같던데... 하여간 괜찮은 이웃이예요. 댁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케이블을 몰래 연결해서 도둑 시청을 하는 몰염치한 사람은 절대로 아녜요.」
「그 집엔 디즈니 아동 채널은 안 필요할 거예요. 그는 부인과 단 둘이 살아요.」
「잘 모르겠군요. 우린 만난 적이 없어요. 그 집 부부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거든요.」
「우린 툭하면 잔소리 하랴, 싸우랴, 누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거냐 다투느라 늘 시끄러운데 그 집 부부는 소리를 내는 적이 없어요. 하하하, 얼마나 조용한지 밤에도 소리를 일절 안 내더군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죠?」

알다마다요. 딘은 능글맞게 맞장구치며 웃어주었다.
잘 생긴 서비스 센터 직원과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떠는게 즐거웠던지 여자들은 까르르 소리를 내었다. 반대로 샘에겐 영화 채널이 더 많은 서비스에 가입을 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져 그의 혼을 절반은 빼놓았다.「저는 진짜 직원이 아니라서 그런 것까진 몰라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적당히 둘러대는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여자는「그런 것도 모르고... 진짜 케이블 방송국에서 나온 거 맞아요?」라며 꼬치꼬치 묻는 대신, 같이 자리한 딘에게 추파를 던지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어깨를 으쓱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녀는 간소하게나마 커피를 대접하고 싶으니 같이 집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딘은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감사하다고 낼름 말했고, 샘은 이를 말리느라 형의 발을 세게 밟아야 했다.

『차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샘.』
발잔등에 하얗게 찍힌 신발자국에 식겁하며 딘이 투덜거렸다.
『미안하게 되었군요, 카사노바 씨.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일 하는 중이야.』
『커피 마시는게 두 시간이 걸리겠니, 세 시간이 걸리겠니. 넌 너무 여유가 없어.』
『아이와 남편이 있는 여자들이야. 딘? 그만 불평하고 초인종을 눌러.』
『쳇... 오키토키.』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걸까 초인종을 누르기에 앞서 딘이 헛기침을 했다.
케빈 쉐퍼드는 이미 직장으로 출근하고 집에 있진 않을 것이다. 차고 문은 굳게 내려져 있었고, 현관문으로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이집 식구들은 사생활이 겉으로 드러나는게 싫은가 보다. 전반적으로 붕대로 꼭꼭 싸맨 분위기다. 1층 유리창은 한 장도 빼지 않고 모조리 불투명 효과를 넣어 뿌연 우유색이었다. 누가 망원경으로 안을 살펴보기라도 한다는 건가. 이 정도라면 거의 헐리우드 유명 배우의「파파라치따윈 질색이야~!!」수준의 알레르기 반응이다.

샘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창문 너머를 기웃거리다말고 다리를 떨었다.
『인기척이 없네. 부인도 어디 외출한 건 아닐까.』
『2층 창문이 열려져 있어, 샘. 안에 사람이 있다는 얘기야.』
『그런 것치곤 지나치게 조용한 걸. 이거, 이거...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터뷰처럼 전형적이다 싶지 않아? 얌전하고, 보수적이고, 남의 눈에 안 띄고... 그거 알아? 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도 동네에서 이웃 사람들과 다정하게 살았대. 퍼스트 레이디인 로잘린 카터와 같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민주당 열혈 후원자여서 그의 체포 소식에 지미 카터도 까무라쳤지. 사업가적 기질도 있었는데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평판까지 들은 사내였어. 직접 광대 분장을 하고 병원을 찾아다니며 아픈 아이들을 상대로 자선 공연까지 했다는 거야. 그런데 알고봤더니 33명이나 죽인 새디스트였더라, 라는 결론이었지.』
『그래, 네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이 형은 잘 알겠어. 이 세상의 모든 광대는 박멸해야 마땅한 존재라는 거지?』
광대라면 질색인 동생의 습성을 잘 아는 딘은 엉뚱하게 응수하고 초인종을 한 번 더 눌렀다.

사실 누구보다 선량하다 생각했던 조용한 이웃이 알고 봤더니 연쇄 살인마였다는 얘기는 신문에 종종 나오곤 한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외톨이고, 존재감이 희미하다. 도무지 피비린내 나는 참극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뚜껑을 열어봤더니 이건 완전 개자식이다. 냉장고에서 잘려진 사람 팔뚝이 나왔더라 식의 흉악한 뉴스를 접한 이웃들은 그제야 눈이 휘둥글 벌어진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린 그런 사람이었는지 전혀 몰랐어요. 눈치도 못 챘고요.」
이것을 일컬어「착하고, 평범한」이웃집 연쇄살인범의 법칙이라고 한다.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는 건 은밀한 곳에서라는 얘기다. 밖으로 보이는 지킬 박사는 신사적이고, 학구적이며, 예의바르다. 안색이 파리하다는 것만 빼면 모든게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는, 악수를 청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눠야 할 우리의 이웃이다.

『무슨 일이시죠.』
재니스 쉐퍼드는 깡마른 체구의 여자였다. 금방에라도 반으로 뚝 부러질 것처럼 말라서 샘은 그녀가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가 방금 전에 회복된 것으로 여겼다. 눈빛도 어두웠고 무척이나 허무해 보이는 여자였다. 조금이라도 빛을 쬐면 드라이아이스처럼 녹아서 송두리째 사라질지 모른다. 존재감이 약해서 여러 사람들 틈새에 서있으면 아예 없는 것처럼 무시당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색도 엹고 그림자도 엹다. 피부색이 너무나 하애서 뒤쪽에 있는 벽이 그대로 비칠 지경이었다.
『신고를 받았어요. 댁의 TV는 잘 나오나요? 근방으로 노이즈 현상이 극심하다고 해서 확인차 점검을 나왔어요. 괜찮으시다면 이 집의 케이블 선의 정상 유무를 확인하고 싶습니다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산 덕분에 거침 없이 지어낸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재니스는 그런 딘을 멍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어딘지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그녀는 따스한 바깥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나 어울릴법한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저어, 뭔가 잘못된 것 같군요. 우린 신고를 하지 않았는데요.』
『예, 그러시겠죠. 사실은 서비스 불량 원인을 몰라 여러 곳을 확인하는 중이예요.』
『그렇담 다른 집을 살펴보세요. 우린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요.』
딘은 깜짝 놀랐다.
『에?』
『TV는 바보 상자예요. 그렇지 않나요.』
한 방 멋지게 맞았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라고? 텔레비전을 하나도 안 봐? 당신 미국인 맞아? 미국인이 아니라 원시인 아냐?
그렇다고 해도 차마 생각한 그대로를 입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 당황했을 적의 버릇 그대로 콧망울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그거... 농담이죠? 뉴스도 안 본단 말예요?』
『왜 농담이라고 생각하시는 건데요. 뉴스는 신문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만 실례했으면 하는데요.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요. 아님 제가 계속 방해받아야 할 까닭이라도 있을까요?』

더 무어라 하면 경찰을 부를 기세다. 딘은 비우호적인 분위기를 읽고 재빨리 발을 뺐다.
『실례 많았습니다, 부인. 저희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던게 아니었음 좋겠...』
채 말을 끝맺지 못한 까닭은 눈치도 없이 전화벨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어랍쇼 하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샘이 눈빛으로만「누구야?」라고 물어왔다.
글쎄올시다. 딘은 궁금해하는 동생에게 무어라 해줄 말이 없었다.
발신자 번호 없음.
나쁜 예감에 얼굴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귓가로 바짝 가져갔다.
순간 세 명의 안색이 싹 달라지고도 남을 소리가 들려왔다.

《저 년을 죽여버려.......... 저 흉악한 년의 각을 떠버려..........》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박쥐의 노래가 아닌, 엉망으로 늘어진 테이프에서 억지로 재생시킨 듯한 괴상한 목소리였다. 싸구려 공포 영화에서 악마가 내는 목소리라며 영화 관계자가 특수 효과로 지어낸 것 같았다. 유괴범이 돈 내놓으라 사람을 협박할 적에 써먹는 변조 장치를 사용한 모양이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빴다.
딘은 눈을 부릅뜨고「당신 누구야!」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재니스도 찢어져라 악을 쓰기 시작했다.
『악마! 내 집에서 당장 나갓! 사라져!』
당황한 샘이 잠깐만 기다리라 애원하기도 전에 벼락이 떨어졌다.
『주여! 아버지! 사탄으로부터 우릴 구원하소서! 아멘, 아멘!』
졸지에 지옥에서 온 사자가 되어버린 형제들을 향해 십자가 성호가 그어졌다.
『이, 이건 진짜 아니야! 오해예요~!!』
그래봤자 재니스는 흉흉한 눈빛으로 샘을 노려보며 현관문을 쾅 닫아버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닫겨진 문 저편에서 큰 목소리로 주기도문이 암송되고 있다는 건 딘도 잘 알 수 있었다.
살인범으로 누명도 뒤집어 썼고, 사기꾼 취급에, 재수 없는 악당으로 오해도 받아봤다. 그치만 사탄 취급은... 이미 끊겨버린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딘은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우리더러 왜 사탄이라는 거야! 아줌마! 억울해! 억울하다고! 다시 나와봐요! 아줌마!』
그런다고 재니스가 딘의 요구에 응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환장하겠네.
딘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개미의 행렬을 구경했다.

『재수 없어!』
이번만큼은 샘도 말리려 하지 않았다.
그의 형은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 부숴뜨렸다.

Posted by 미야

2007/04/29 16:08 2007/04/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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