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judgment 18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거 휴방이 계속되는 3주동안 이놈의 형제들이 왕왕 우는 걸 곱씹으면서 지내야 되는 건가요. 으앗?! ※


딘이 스케치북에 그린 성냥곽 소녀와는 어디를 봐도 닮지 않았다. 아니, 그걸 닮으면 오히려 큰일이다. 자로 잰 듯한 네모난 몸통과 젓가락을 닮은 팔 다리라는게 인류에게 가능하다면 화성인의 조상이 문어라는 주장도 신빙성을 얻게 된다. 샘은 맘 편하게 Delete 키를 눌러「네모네모 스펀지송」이미지를 삭제했다.
그렇다면 오겐 맥콰드가 만든 예술적 카메오 조각과는 닮았던가. 샘은 냉정하게 이 또한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동차 뒷자석으로 기절해 누운 여자 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노틀담 성당 담벼락으로「숙명」이란 단어를 낙서하게 만든 집시 여자 에스메랄다의 비극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헐렁한 점퍼 차림새에 진 바지, 할인 판매점 바구니에서 건져올렸을 면 블라우스, 대충 묶은 머리 고무줄 장식, 파란색 스니커즈 신발. 지금의 이 아이는 엄마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고 가출을 결행한 비행 청소년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말라붙은 코피와 볼록 튀어나온 혹까지 더해져「아주 막 나가는 중입니다」라는 훌륭한 광고판이 되어 주었다. 이마에 생긴 생채기에 일회용 반창고를 붙여주자 배경음으로 껌을 짝짝 씹는 소리가 들려왔을 정도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탓에「불량」의 이미지는 곱절이 되었다.
오겐이 지금의 그녀를 봤다면「나의 천사를 돌려줘! 이건 배반이야~!」를 외쳤을지도.
샘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 받침 대용품으로 사용할 목욕 타올을 세 번 반복하여 접었다.

『으으...!!』
베개를 깔기 위해 머리를 살짝 들어올리자 헤더가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걸 조심스럽게 도로 누이며 자세를 편하게 바로잡아 주었다.
어쨌든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켰을게 분명하다. 남이 애지중지하는 귀한 자동차에 손가락 사이즈의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언정, KO를 당한 아픈 사람에게 더 이상 잔인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가 한참을 아래를 내려다봐야 하는 사이즈의 소녀라는 점이 - 호적상 실제 나이는 그렇다치고 - 샘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래서 목이 아프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가방에서 꺼낸 옷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그녀가 권총을 들고 덤볐다는 사실은 이미 흐릿해졌다. 대신 가출한 이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했다가 집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야 한다는 어른의 의무감이 무럭무럭 솟구쳤다.

『누가 가출을... 아이고, 머리야. 했다는 거냐.』
헤더가 투덜거리며 한쪽 눈을 빼꼼 올려떴다. 그러다 기운이 다했나 보다. 맥 풀린 소리와 같이 하여 떠진 눈이 도로 감겼다.
『너... 바보라는 소리를 곧잘 듣곤 하지? 내 추측이 맞지? 윈체스터.』
바보라니. 억울한 오해다.
『설마.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까지 받았는 걸.』
『그래? 요즘 대학엔 바보를 응원하기 위한 장학금이라는 것도 있는가 보군.』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묘하게 딘을 닮았다. 그래서 샘은 화를 내기는커녕 빙긋 웃었다. 이건 흡사 열 네 살의 형과「누가 내 티셔츠를 입었어!」를 두고 말다툼을 벌이는 기분이다.
『왜... 웃어?』
킥킥 소리에 헤더가 어렵게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내심 불안한 눈치다. 도발은 자기가 먼저 해놓은 주제에 겁 먹은 여자들이 흔히들 그러듯 시트에 누인 두 무릎을 단단히 붙였다.
뭡니까, 누가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기라도 합니까. 딘이라면 짜증스럽다는 식으로 냉큼 이렇게 쏘아붙였을 거다. 브래지어도 착용 안 한 아이에게 무작정 덤빌 만큼 나는 안 굶주렸다고.
하지만 샘은 딘이 아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대신 농담을 따먹었다.
『글쎄. 내가 받은 장학금이「포레스트 검프*」재단에서 나왔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님 나만 모르고 있었나?』
나치 헌터도 영화는 본다. 상냥함을 품은 이 농담엔 헤더도 픽 소리를 내고 웃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를 움직일 수 없었던 것 같다. 목소리도 잔뜩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멍했다.
『어째서...』
『응?』
『사람이 총으로 쏜다고 하면 잠자코 만세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너처럼 대책 없이 구는 건 처음 본다.』
『미안.』
『나에게 사과할 일은 아니지, 윈체스터.』
『뒷자석에 숨어있던 사람이 갑자기 덤비면 그렇게 하라고 아버지에게서 배웠어.』
『뭐?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내라고 배웠다는 거야? 잘못 배웠어. 그랬다간 다치기 쉬워. 무모한 사내였다고 진작에 소문은 들었지만 존 윈체스터라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군. 아들을 어떻게 가르친 거야. 그치만... 뭐, 인정을 안 할 수는 없겠어. 아주 쓸모 없는 것도 아니야. 실제로 멋지게 적을 제압했으니까.』
샘은 무어라 대꾸할지를 몰라 마냥 어색한 손바닥만 비볐다.
그런 샘을 꿰뚫어 본 것처럼 헤더가 뒷말을 덧붙였다.
『나를 다치게 만든게 정답인 거야.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머뭇거리는 1, 2초에 목숨이 좌지우지 되는 법이니까. 네 아버진 널 자랑스러워 할 거야.』
『그래도 여자를 때렸는데...』
샘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 그 머리의 붓기는 모르긴 몰라도 쉽게 안 가라앉을 거야.』

그 어색한 사과를 일부러 한쪽 귀로 흘려 듣고 헤더가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왜 혼자서 있는 거니? 네... 파트너는? 딘 윈체스터는 어딨어?』
파트너라는 단어의 맛이 대단히 멋졌다. 동시에 듣는 순간 기운이 좍 빠졌다.
『저어, 형은 단독 행동에 들어갔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몰라. 연락도 되지 않아.』
『설마.』
『놀란 것 같은데 진짜야. 그러니까 말인데, 총을 들고 위협해봐도 나에게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샘은 더러운 머리를 긁적였다.
『네 추측과는 달리 딘은 날 파트너라고 생각을 안 하거든.』
그렇고말고. 파트너로 생각 안 한다.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부하, 내지는 짜증나는 심부름꾼, 신통치 않은 조수, 말썽쟁이 동생, 젖 먹여 키워야 하는 아기... 마침내 키가 쑥쑥 자라 같은 눈높이로 서게 되었을 적부터 샘은 딘과 나란히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늘 앞장 서서 걸었고, 동생의 키가 훨신 커졌다는 걸 깡그리 무시했다. 그런 딘의 등을 눈으로 쫓을 적마다 샘은 늘 커다란 벽을 느끼곤 했다. 아무리 바둥거려도 딘의 눈에 비친 샘은 여전히 어린애다.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을 날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아, 하고 탄식 섞인 굵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딘이 보기엔 내가 영 믿음직스럽지 않은가봐.』

확실히 그럴지도.
하지만 본인에게 그 말을 했다간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이다. 헤더는 속으로만「맞아. 넌 믿음직스럽지 않아」라고 긍정했다. 그리곤 자신의 몸을 덮은, 어쩐지 홀애비 냄새를 풍기고 있는 남성용 겉옷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보통은 권총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위협한 상대에게 이런 식의 친절은 베풀지 않는다. 밧줄로 꽁꽁 묶거나, 수갑을 채워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법이다. 때로 어떤 자들은 비닐 봉지를 씌워 뒷 트렁크에 감금하기도 했다.「어지럽거나 토할 것 같진 않아?」라고 물어보면서 오랜 여행에 지쳐 멀미를 일으킨 어린 조카 대하듯 이러는 건 처음 겪는다. 그것이 어쩐지 한심스러워 헤더는 끙 신음했다.

『내가 무섭지는 않나.』
일어나 앉으려 해봤다. 욱씬, 머릿속으로 둔한 통증이 내달렸다. 그 감각이 너무나 강렬해 도로 무너져 내렸다. 조금은 더 쉬어야 한다는 걸 마지못해 인정하며 이마를 짚었다.
『내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잖아, 윈체스터. 나는 살인자야. 몬스터야.』
샘의 눈이 커졌다.
『저어... 그래도 코피는 잘도 터지던 걸.』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이 겨우 코피가 터졌다는 정도로 뒤집어졌다는 건가. 이건 걸작이었다. 하여 헤더는 시트 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샘은 위가 무거운 돌로 꾹 눌리는 기분을 맛보았다. 간헐적으로 짧은 경련을 일으키는 좁은 어깨만 보고는 그녀가 울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건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뭐, 좋게 그녀가 웃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바보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썩 유쾌하지 않았다. 풀 죽은 소리를 내며 샘은 콧구멍을 벌릉거렸다.
『그래, 맘대로 비웃어. 이런 나를 바보라고 신나게 비웃으라고.』
『틀려... 비웃고 있지 않아, 윈체스터.』
『좋아. 그럼 확인해보게 고개를 돌려 나에게 네 얼굴을 보여봐.』
헤더는 얌전히 시키는대로 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샘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이고. 괜히 이쪽을 보라고 그랬다. 샘은 자신의 실책을 저주하며 혀를 깨물었다.

그녀의 눈은 창백한 달빛처럼 보였다. 동시에 검은 구름처럼도 보였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 샘은 이 모든게 혹시 환청이 아닐까 염려되었다.
『그거 알아? 필사적으로 기도해도 하느님은 너무 바쁘신 분이라 이쪽의 간절한 목소리를 쉽게 알아듣지 못 하셔. 대신 그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악마가 응답하지. 그리고 상투적인 목소리로 이러는 거야.「네, 유료 상담 서비스 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댓가로 제일 소중한 것만 내놓으세요. 그럼 무엇이든 기꺼이 처리해드리겠습니다.」싫든 좋든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선 물불을 가릴 형편이 아니잖아? 그래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정말로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거예요?」라고 확인하여 물어보게 되는 거지.』
한 방울의 맑고 투명한 눈물이 다시 뺨을 적혔다.
『나는 우리를 살려달라고 했어. 너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겠지?』
악마와 계약했구나.
샘은 켜지도 않은 라디오 채널을 만지작대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때마다 먼 바다로까지 떠밀려간 구명정에서 조난 신호등이 하얗게 점멸했다.
『죽고 싶지 않았어. 그때까지도 난 그게 무서운 죄라는 걸 몰랐어... 정말 몰랐어.』

꿈을 꾸었다. 환상인지 착각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생생한 꿈이었다.
『숙소로 전염병이 돌고 있었어. 엘리베스는 열이 심했어. 키마야는 기침을 멈추지 않았고. 그들은 그게 다 우리가 더러워서 그런 거라고 단정을 지었고, 다 같이 샤워를 해야 한다고 했어. 몸을 정결하게 만들면 나면 앓던 병도 깨끗이 사라질 거라고 큰소리를 쳤어.』
여러 번 반복해서 꿈을 꾸었다.
일렬로 서서 이동했다. 명령대로 옷을 모조리 벗고 발가벗은 채로 뛰었다. 창고 같은 커다란 방으로 몰려갔다. 노인과 어린이, 여자애들이 추위에 벌벌 떨며 시린 팔꿈치를 비볐다. 무척 추웠기 때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짬도 없었다. 어서 모든 일이 끝나 숙소로 돌아갔으면 하고 바랬다.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맞물렸다. 어린 마리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손을 잡아왔다.
어른들이 웅성거렸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불안한 눈초리로 사방을 살폈다. 천장에는 샤워 꼭지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고, 바닥엔 거칠거칠한 촉감의 타일이 깔려 있었다. 눈을 아래로 내려 아무 무늬 없는 회색의 타일을 보았다. 물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 짐짐했다.
철문이 굳게 돌아가는 소음이 들리면서 밖에서 독일군이 무어라 외쳤다.
1월 17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거라곤 한 줌의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기꺼이 마리아의 연약한 몸을 밟고 올라탔다는 거였다.

『독가스는 일반 공기보다 무거워서 바닥에 깔려. 키가 작은 순서대로 죽어갔지. 우아한 죽음이라는게 있었을 것 같아?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밟고, 또 밟고 올라섰어.』
찢어지는 비명이 심장을 갈가리 헤집는 가운데 출입구쪽에 난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누군가 샤워장 안을 들여다 보았다.
화사한 꽃과도 같은 연보라색이었다.
웃고 있다.
재미있어 한 것도 같다.
그제서야 헤더는 자신이 마리아를 발로 밟아 죽였음을 깨달았다.
절망에 빠져 목 놓아 울었다.
그런 그녀를 누군가 다시 밟았다.
뺨이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졌다. 수 차례 밟힌 머리가 마침내 와지끈 부숴졌다.
눈과, 코와, 귀와, 입으로 피를 뿜으면서 헤더는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아. 이렇게는 죽고 싶지 않아.

『서른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그 꿈을 꾸었어. 그래서 나는... 나는...』
샘은 자학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으니까 더 말 하려 하지 마.』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걸로는 변명이 되지 않아. 역시 난 심판받아야 마땅해.』
『헤더.』
『나는...!!』
『헤더.』
당혹스러워하는 샘을 향해 그녀는 눈물로 애원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죽고 싶지 않다고 했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아! 부탁이다. 오쿠림바의 주문을 나에게 넘겨줘! 나에게 줘! 부탁할게, 부탁할게! 이렇게 빌게! 난 이제 죽고 싶어! 부탁해! 부탁할게! 이제 죽어도 된다고 해줘!』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덜덜 떨리는 여섯 개의 손가락이 샘을 붙잡았다.

Posted by 미야

2007/03/24 23:34 2007/03/2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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