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47

제8장 어린아이는 사고를 쳐야 어른이 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선자는 매우 똑똑한 개였다.
인간의 지능으로 치자면 일곱에서 여덟 살 어린아이는 될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어떤 사고를 치고 다니는지를 곱씹자 치미는 울화가 약간은 가라앉았다.
밀가루 포대를 뜯어 주방 바닥을 어지럽히고 본인은 손가락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 아기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딱 그거다. 신문지 뜯어놓고, 소파 갉아먹고, 꽃병 깨뜨리고, 현관에 똥싸놓고, 이어폰 줄 씹고, 휴지통 뒤엎고, 냉장고 문 열어놓고, 액자 떨어뜨리고, 거울 박살내고, 빨랫감 어지럽히고, 침대 위에 쉬하고. 개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네 죄를 알렸다 눈빛으로 쏘아보자 선자는 하품을 하는 척하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종아리를 노렸다.
얘는 진짜 날 깨무는 걸 너무 좋아해서 문제다. 아무래 무는 힘을 조정한다고 해도 날카로운 이빨로 물면 피를 보는 건 순리다.

“선자야. 이것아!”
씹는 장난감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부드러운 나무토막을 골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 적이 있다.
가대와 달리 반응이 대단히 시큰둥했다.
버리기가 아까워 나무토막으로 멀리 던지고 다시 가져오기 놀이를 했는데 얘가 덩치로 사람을 치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니까 재앙이 따로 없었다. 마치 볼링 핀들을 쓰러뜨리는 것 같았다.
다시는 나무토막 물어오기를 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다친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하고 다녔다.
그동안 선자는 모란을 가꾼 화단 한 가운데로 질펀하게 똥을 싸는 것으로 나에게 엿을 먹였다.

“우리 진짜 잘 해보자. 제발.”
애원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하품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응, 그래. 니 똥 굵어.”
돈을 억만금을 줘도 아무나 못 키운다는 영견은 똥 치운다고 쭈그리고 앉은 내 등에 대고 뒷발차기를 하며 흙을 덮는 시늉을 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PD에게 제보하고 싶다.

밥을 챙겨주는 것도 까다로웠다. 이 세계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사료가 있겠냐고.
그 말인 즉, 주방에서 식재료를 따로 얻어 선자가 먹을 밥을 직접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다.
사람이 먹다 남긴 잔반을 섞어 대충 만들어주면 당연히 먹지 않는다. 그리고 털을 세워가며 진심으로 화를 냈다. 애가 은근 입이 고급이었다.
그 먹는 문제로 사고를 치는 일도 있어 골치가 아팠다.
애초에 ‘닭을 잡아먹지 않도록 잘 감시하라.’ 지시를 왜 했겠는가.
닭고기를 좋아해서 라기 보다는, 순수하게 사냥본능을 일깨워 닭을 쫓아다니는 걸 즐기는 눈치였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축사가 뒤집어졌다.
그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나는 분노한 인민 앞에서 자아비판 시간을 가져야 했다.

“불쌍한 닭들은 내버려두라고 그랬잖아.”
때린다고 말을 잘 듣는 건 아니니까 귀한 영견에게 주먹만 보여줬다.
버르장머리가 개판이라 내가 뭘 잘못했냐며 선자가 왕왕 짖었다.
“시끄러! 사고는 네가 쳐도, 축사 담당자에게 혼쭐이 나는 건 나라고!”
개의 양쪽 귀를 잡고 이리저리 비틀어대면서 나도 같이 울부짖었다.
개와 사람이 동격으로 싸우는 거냐며 금릉이 어이없어 했지만 평소 예뻐해 주기만 하고 관리는 전혀 하지 않은 도련님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거다.
“네 개는 진짜 사람 말을 안 들어, 도련님.”
“당연하지. 얘는 내 말만 듣거든. 꼬마 선자야, 앉아.”
으이그, 선자 저 못된 것.
밥 한 번 준 적 없는데도 제 주인이라며 금릉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대는 걸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 분통을 터뜨리는 날 보고 선자가 씩 웃었다.

선자를 훈련시켜야 하니 금린대 밖으로 따라오라는 금릉의 명령에 하늘이 노래졌다.
여기선 개에게 목줄을 채우는 습관이 없다.
민가로 내려오자 선자는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가판대를 세워두고 만두를 팔던 상인이 기겁을 했다. 그래도 똑똑한 개라 만두를 먹겠다며 가판대를 뒤엎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녀석은 만만한 내 몸통을 장사꾼을 향해 밀었다.
“사탄 같은 놈!”
이러다간 만두 팔던 상인과 뒤엉켜 쓰러지게 생겼기에 원하는 걸 들어 선자의 주둥이로 넣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 만두 상인 또한 체념의 향기를 풍겼다.
“사탄 같은 놈!”
다 먹고 입맛을 쩝쩝 다시는 녀석을 향해 재차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상인은 개의 털이 검으니 가루석탄(沙炭)이라 부르는 구나 여겼지만 아무튼 쟨 사탄이었다.

“걸람~!!”
금릉과 사전에 언질을 주고받은 건지 남사추와 남경의가 나타났다.
“진짜로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예상도 못한 일이기에 깜짝 놀랐다. 택무군은 그렇다 치고 날 불량아 취급하던 남계인 선생님이 학생들과 내가 만나도록 허락을 했단 말이야?
기본적으로 결벽증을 장착하고 있는 남씨 사람이면서도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한 건지 남경의가 덥석 날 끌어안았다. 옆에서 사추는 감정이 벅차올랐던지 눈물을 글썽였고, 조금 지나자 코를 흘렸다.
쳐다보는 시선들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길 한복판에서 이러는 거 아니라며 금릉이 서둘러 우리들을 음식점 안으로 떠밀었다.

닭고기 요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인지 지지고 볶는 맛있는 냄새가 입구서부터 진동했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다며 웃으며 달려 나온 직원들이 준비된 장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하인인 내가 들어가서 공자들과 동석을 해도 되는 건가 걱정이 앞섰지만 포커페이스가 장기인 점원은 내 옷차림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움찔한 쪽은 다른 손님들이었다. 누가 봐도 신분이 낮은 내가 명가 출신 도련님들과 식탁에 나란히 앉으려 하자 표정이 굳었다. 빌어먹을 신분제 사회 같으니라고.
그 와중에 선자는 무료한 표정으로 마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금릉은 그러라며 자기 개를 내버려 두었다. 훈련을 핑계로 마을로 내려오면 늘 이런 패턴이었는지 꼬리를 세우고 걷는 선자의 뒷모습은 위풍당당했다.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습관대로 반말을 하다 살짝 눈치가 들었다.
“커, 흠! 두 분 공자님들, 여기까진 어떻게 오신 건가요?”
“솜털 곤두선다. 뭐라고 안 할 테니 평소 하던 대로 해.”
남경의가 소름끼친다며 팔뚝을 쓰다듬었다. 예절을 중시하는 남씨 가풍에 전면 위배되는 행동이었지만 나라는 존재가 워낙에 비일상의 연속이었기에 편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덕분에 마음 편하게 터놓고 반말했다.

“우리가 걸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금릉이 힘을 써줬어요. 고마운 일이죠. 수살귀를 조사한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으니 돌아가서도 수살귀 보고서를 쓸 겁니다. 그런데 얼굴의 붕대는 왜 그런 건가요?”
남사추의 질문에 금릉이 대신 답했다.
“변장이야.”
그러면서 오늘에야말로 크리스마스 선물포장을 뜯어보겠다며 붕대 끝을 쥐었다.
왜 이런 거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다. 건들지 말라는 의미로 금릉의 손등을 찰싹 후려쳤다.
“왜! 말액도 아니잖아! 남씨에게서 이상한 것만 배워와서는.”
이번에도 금릉은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밥상 앞에서는 누구든지 변장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 말이 맞느냐며 남사추에게 물어봤더니 사추는 이렇게 대답했다.
“운심부지처에서는 식사 시 금언입니다만, 금린대에서는 변장풀기가 규칙인가 보죠. 한 번 속아준다 셈치고 풀어보세요.”
“의원 앞이면 모를까, 밥상 앞에서? 굳이?”
아웅다웅하는 와중에 요리들이 속속 도착했고 나는 젓가락을 들어 금릉을 찔렀다.
하지만 남경의와 남사추도 궁금해 하는 눈치인지라 결국 왼쪽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것 봐, 멀쩡하잖아. 내가 말했잖아. 다 변장이라니까.”
금릉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그렇게 말했지만 남씨 자제 두 명은 심각해졌다.
확실히 금릉보다 나이를 더 먹었더니 눈치도 귀신이었다.
“걸람... 그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나요? 잘 보여요? 어쩌다 그런 거래요? 치료는 제대로 한 거예요?”
“하나씩 물어봐. 다 말해줄게. 그런데 먹으면서 듣기엔 입맛 떨어질 텐데.”
맑게 끓인 닭볶음탕이 주 메뉴였다.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매콤하게 조리했음 풍미가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매운맛을 즐기지 않아 소금으로 간을 하여 단백하게 끓여냈다.
살을 발라내어 입에 넣으니 쫄깃하고 맛있었다. 국물은 마늘 향을 살짝 품어 시원했다.

“일단 재수가 없어 눈을 다친 거 맞고, 치료는 저절로 잘 되었고, 운이 좋아 여전히 앞을 볼 수 있어.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조리개라는 것이 있어 빛에 따라 동공이 커지거나 작아져서 눈을 보호하거든. 운이 나빠 내 경우 그게 잘 되지가 않게 되었어. 이러면 밝은 곳에서 눈을 다치기 쉬워. 그래서 붕대로 빛을 보지 못하게 가린 거야.”
남경의가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눈만 동공이 확 풀린 상태라 상당히 기이하게 보였을 거다. 거울을 봤을 적에 나조차 이상하다 여겼으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쩌다가? 진짜로 강도에게 당한 거야?”
“강도라면 강도겠지. 그보다... 금릉아. 닭 뼈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버리지 말렴.”
“어? 그럼 어디다 버려?”
“거기 접시에 모아둬.”
물론 중세시대 서양에선 먹고 남은 뼈를 바닥에 버리는 게 매너였다. 식탁에 쌓아두면 배우지 못해 무식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배운 자라면 무릇 뼈를 바닥에 버리고 국물이 묻은 손가락을 테이블보 모서리에 문질러 닦아야 했다. 꺼지라고 해라. 나는 그런 꼴 못 본다.

“방금 네 말은 강도가 아니라는 것처럼 들려, 걸람.”
“그럼 그게 강도겠냐. 어느 간덩이 부운 강도가 염방존이 타고 가는 마차를 노리겠어. 택무군이 마차를 타고 가는데 강도가 덤볐다고 하면 너네는 믿을 거냐.”
남경의가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칼처럼 부정했다.
“택무군은 마차를 타지 않아.”
부정하는 쪽이 거깁니까. 택무군에겐 강도가 안 덤빈다고 해야지!

“범인이 상주 허씨라던데.”
“응?”
“소문이 그래. 종주에게 반기를 들고 그 의지를 보인다며 금릉의 작은아버지 암살을 계획한 거라던데.”
뼈를 주섬주섬 정리하던 금릉이 자기도 들은 적 있다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응! 나도 들었어! 그래서 작은아버지가 상주 허씨를 전부 잡아들일 거라고 했어!”
이번 얘기는 좀 놀라웠다. 금릉은 이제 겨우 열셋이다. 염방존은 겨우 열셋 나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조카에게 자신이 암살당할 뻔했고, 그 범인인 상주 허씨에게 보복할 거라고 사실대로 말해줬다는 거다.
열다섯 살의 남경의가 술을 시켜도 되겠느냐고 물어볼 정도니 이 세계의 상식이 내가 아는 상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만, 피 냄새 진동하는 암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어린 녀석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는 질색했다.

Posted by 미야

2021/12/27 15:18 2021/12/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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