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46

제8장 어린아이는 사고를 쳐야 어른이 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의 가장 적절한 반응은 사람 살려 울부짖으며 우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바라는 것도 그거였다.

금목현의 시선은 하늘로 올라간 연이 아니라 내 얼굴을 향해 있었는데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아무리 의젓한 척해도 아직 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이 몸뚱이는 눈물샘이 고장 나 울지를 못한다. 게다가 뇌신경 프로세서가 엉겨 붙어 울음이 나와야 하는 순간에 웃음이 터진다.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여러 번 죽고 되살아난 탓에 맹독성 화학약품 통에 빠지고 난 뒤에 훼까닥 돌은 DC 빌런처럼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 듯하다. 금목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아냐, 너 비웃은 거 아냐. 자존심 긁으려는 의도 아냐.
마음의 외침이 닿지 않은 탓에 금목현의 격려(?)에 따라 화살 재장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이번에야말로 연을 떨어뜨리겠다며 서둘러 화살을 쐈다. 마음이 급했으니 조준은 더 엉망이었고 애먼 화살에 얻어맞을 위기에 처한 나는 말 그대로 연의 줄을 쥔 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연의 움직임은 거의 미친 망아지 수준이었고, 소년들은 독이 바짝 올라 거의 폭발 일보직전까지 이르렀다. 무리 중 활을 가장 잘 쏜다던 금목현도 연을 맞춰 떨어뜨리는데 실패하자 울컥하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게 내 탓이냐고! 나 또한 울컥했다.
고함과 야유가 터지는 와중에 금목현이 승부욕을 보이며 활 두 개를 한꺼번에 줄에 끼웠다.
“그래! 날려버려!”
“본때를 보여줘!”
그들이 노리는 게 연이 아니라 꼭 나인 것 같아 줄을 놓고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랬다간 화살이 내 등짝에 꽂힐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아까부터 귀 따가워 죽겠네. 누가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거야!”
누군가 짜증을 내며 시끄럽다 타박을 하는 것과 동시에 금목현이 당겼던 줄을 놓았다.
찰나의 순간 약간의 삑사리가 난 것 같았지만 어쨌든 화살 하나가 성공적으로 연을 꿰뚫었다.
나머지 하나는... 음, 담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
“진짜 못 쏘네.”
화려하게 장식된 화살 통을 메고서 날아가던 화살의 궤적을 지켜보던 소년이 밥상 위로 올라온 국이 짜다는 투로 툭 내뱉었다.
금릉이 하던 말을 듣고 있던 금목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호기롭게 두 개의 화살을 걸어 한 번에 쐈는데 그 중 하나만 명중했으니 그렇게 안 하니만 못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기에 금목현은 남 탓을 했다.
“저 하인 놈이 연을 제대로 날리지 못해서 그래.”
멈추지 않고 광역 스킬을 걸어 공격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이 방법으론 활쏘기 수련이 잘 되는 것 같지도 않아. 우리가 잘 아는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길, 운몽 제자들은 연을 맞추는 걸로 활쏘기를 배운다고 해서 따라 해봤더니 우리 금씨에겐 영 안 맞는 것 같단 말이지. 방식이 별로야. 후져. 역시 금씨에겐 금씨의 방식이 있고, 강씨에겐 강씨의 방식이 있는 거겠지. 뭐, 누구는 금씨 방법은 내버려두고 강씨 방식으로 수련하는 걸 좋아하지만 말이야... 난 관둘래. 나랑 맞지 않아. 연습을 해도 실력이 안 늘잖아.”

금목현이 지목한 그 어느 분이 아무래도 금릉인 것 같았다.
금릉의 예쁜 얼굴이 왈칵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시비가 늘상 있던 일인지 금릉의 대응은... 음, 소인배 그 자체였다.
시비에 비아냥으로 대응했다는 얘기다.
“그런가? 평소에 시시덕거리며 연습을 하니 실력이 안 느는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뭐라고?”
“뭐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네 수준으론 방식이 안 맞았던 거야. 고정된 과녁으로 연습을 해야 하는 단계인데 움직이는 연을 무슨 재주로 맞추겠어. 내가 생각이 짧았어. 평소에도 실력이 좋다 하도 과시하기에 그만 착각했지 뭐야.”
응, 이러면 맨주먹으로 싸우자는 거 맞지.
키 큰 소년들이 저보다 작은 금릉을 둥글게 에워쌌다.
그리고 우리 금릉은 참지 않았다. 다수를 상대한다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일련의 망설임 없이 자기가 먼저 주먹을 날리고 보았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한 마리 치와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했느냐고?
연줄을 감아 정리하고, 떨어진 연을 줍고, 땅바닥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높으신 도련님들끼리 싸울 적에 천한 것이 함부로 끼어드는 거 아니다.
자기들끼리 바쁜 것 같으니 알아서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아니, 뜨려 했다.
“야! 도중에 가긴 어딜 가려고!”
금목현이 내 목덜미를 덥석 쥐었다.
소동을 눈치 챈 어른이 싸움을 말리려고 여기까지 달려오면 금릉이 먼저 주먹질을 날렸노라 확인을 시켜줄 목격자가 필요하단다.
그런데 내가 왜?
나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모두 앞에서 얼굴에 빨갛게 세로줄 그어진 소년을 지목했다.
줄을 제대로 당길 줄 몰라 화살 한 번 쏘아보지 못했던 소년은 분함과 억울함에 뒤로 넘어가려 했다.
그게 뭐. 내 얼굴에 붕대 감은 거 안 보여? 마무리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눈을 다쳐 사물이 흐릿한데다 전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계시니 감자바위 같고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나 빼고 자리에 모인 감자바위 전원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야!”
“예, 도련님. 따로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턱 아래가 벌겋게 부어오른 금릉이 의원에게 치료받으러 간다면서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너, 구린내 맞지.”
“아닌데요.”
“어쭈? 이것 봐라. 맞잖아, 구린내. 얼굴 절반을 붕대로 감았어도 내 눈은 못 속인다. 네가 죽었다고 남씨네 것들이 광광 울던데 전부 거짓말이었네?”
길을 가로막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덕분에 넘어질 뻔했지만 그보다 금릉은 내 눈을 가린 붕대에 관심이 쏠린 상태였다. 하지 말라는데도 계속 손을 가져가 풀려고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도 아닌데 붕대 끝을 잡은 손끝이 집요했다.
“뭐야, 뭐야. 어째서 그따위로 변장까지 한 거야? 붕대는 영 아닌데. 야, 왜 자꾸 피해.”
“제 이름은 구린내가 아닌데요.”
“그래. 오늘은 몸에서 냄새 안 나네. 그런데 네 이름이 뭐더라.”
“안선준입니다.”
“이게 누굴 속이려 들어. 걸람이잖아, 너.”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면서 괜히 한 번 찔러본 거냐, 홧김에 붕대 끝을 쥐고 있는 손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치와와는 참지 않는다. 금릉도 지지 않고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얼마나 맵고 따가운지 맞은 자리를 세게 문지르며 신음했다.

“아오, 아파라. 얘가 은근히 손맛이 맵네. 맨날 싸워서 단련이 잔뜩 되어 있구먼.”
“그래서 뭐. 너도 다른 애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설교하려고?”
“미쳤냐? 그런 싸가지들과 뭐 하러 친하게 지내. 그런 놈들은 이쪽에서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호구 잡을 것들이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너나 엿 많이 잡수세요 해야 뒤탈이 없다고.”
금릉이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까지 싸우지 말라는 말만 들었지, 나처럼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나보다.
“어... 그렇지.”
“그리고 너처럼 다굴 당하면 안 되는 거야. 그게 싸움의 기본 원칙이라고.”
“다굴이 뭔데?”
“아까처럼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거.”
“그럼 거기서 꼬리를 내리라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딱 한 놈만 골라 줘 패. 이놈도 때리고, 저놈도 때리고, 힘들게 노력해봤자 피해가 분산되잖아. 그러니 딱 하나만 노려.”
골목대장 놀이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조언이라고 떠들고 앉았으니 내 얼굴 두께도 참 두껍다.

화살 통을 메고 가는 내 옆에서 도련님이 뒷짐을 지고 걸었다.
“구린내, 너도 사촌들과 자주 싸웠어?”
“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 자주 왕래를 안 했거든.”
내뱉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건 온서염이 아닌 안선준의 기억을 토대로 나온 이야기였다.
온서염은 소산 거리에서 발견된 이후 고아처럼 자랐으니 왕래고 뭐고 친척 자체가 없었다.
안선준의 가족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만 왕래했는데 사촌과는 연령대도 맞지 않고 서로 교차점이 없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했다. 한선준이 중학생이었을 때 사촌은 대학생 졸업반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에 장례식장에서 담배 심부름을 시켰던 기억이 났다. 그 정도뿐인 얄팍한 관계였다.
“뭐야.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싸우는 요령에 대해 날 가르치려 들어?”
내게서 화살 통을 도로 빼앗아 들면서 금릉이 어이없어 했다.
음,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이곤 금릉에게 얼른 의원에게 가보라고 했다. 붓기가 빠지기도 전에 멍이 들 텐데 위치가 또 애매하게 턱 아래라서 밥 먹을 적마다 쑤실 거다. 그러니 약초든 뭐든 미리 잔뜩 발라놓는 게 좋았다.

“어쨌든 내가 먼저 주먹질한 거 아니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별 말씀을.”
“그런데 그 자식들 나중에 보복하러 올 수도 있어. 그... 뭐냐. 금목현은 꽤 치사해.”
“내가 봤을 적에도 그럴 것 같더라. 하지만 괜찮아. 그래봤자 애들이잖아?”
“웃기고 있네. 너도 애거든?!”
여기까지만 하고 우리들은 헤어졌다. 서로 길게 대화를 나눌 처지도 아니었고, 나만 보면 짜증을 내는 유수관이 날 발견하자마자 아까부터 계속 놀고만 있을 거냐며 내 귀를 잡아 뜯으려 했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과녁 역할을 하다 화살에 맞을 뻔했어도 유수관 입장에선 놀이에 불과했다.

“너를 어디다 써먹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설거지, 물 길어오기, 청소하기, 짐 나르기, 가리지 않고 힘든 일은 다 시키더라.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일주일이 금방 흘러갔다.

이 와중에 금릉이 은밀하게 손을 쓰기라도 한 건지 개 한마리를 돌보는 일이 내 앞으로 떨어졌다.
“귀한 개다.”
압니다. 그리고 내 종아리 씹는 걸 대단히 좋아하는 놈이기도 하죠.
꼬마 선자는 ‘꼬마’ 타이틀을 붙이고 있기가 민망하게 커다랗게 자랐다. 처음 봤을 적엔 주먹밥 크기였던 선자는 대형견 아프간하운드보다 덩치가 더 커졌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움찔하게 될 크기랄까, 털은 촘촘했고 짧은 편이었다. 목덜미에 검은 갈기가 있어 늠름한 수컷의 위용을 보였는데 사실 얜 암컷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거기로 불알이 안 보이니까 아는 거지 그게 뭐 대단한... 음.
주인을 닮아 처음부터 시비조다. 이번에도 선자는 어김없이 내 다리를 와앙 물었다.
썩을 놈의 유수관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아무 것도 못 본 척했다.
“밥을 주고, 털을 빗겨주고, 똥을 치우고, 닭을 잡아먹지 못하게 지켜보면 된다. 참 쉬운 일이지.”
“그보다 식자재를 운반하고 싶습니다만. 그냥 포대자루 옮길게요.”
“안 돼!”
선자를 돌보는 일이 설렁설렁 해치우는 종류가 아니라 일종의 벌칙수행이라는 건 유수관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Posted by 미야

2021/12/23 13:47 2021/12/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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