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42

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물결에 일렁이는 태양을 본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음을 깨닫는 건 거의 동시였다.
주변에서 큭큭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가 허벅지 정도밖에 오지 않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바나나를 밟고 넘어진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발생한다. 웃음이 터지는 거다.

한참을 허푸거리며 몸을 세우자 높이가 낮은 점방 다리가 보였다. 큰 비가 오면 쉽게 떠내려가도록 설계된 점방 다리는 허름한 모습과 달리 지나가는 통행인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 이 근방의 물살이 약하고 물의 깊이가 낮아 먼 길을 돌아서라도 구태여 이쪽으로 건너가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다리 위를 걷다 아무래도 발을 헛디디고 떨어진 것 같다.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에 취했냐? 아하하!”
짐을 지고 가던 지게꾼이 내 꼬락서니를 보곤 배가 터지도록 웃느라 바빴다. 여인들도 마찬가지로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어지간히도 모양 빠지게 굴렀던 모양이다.

귀에 들어간 물을 빼기 위해 머리를 탁탁 소리 내어 때렸다.
웃긴 건 웃긴 거고,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여.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구경꾼들의 웃는 소리가 요란한 중에 물살을 가르며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옷을 입은 채로 물기를 쥐어짜고 있자 그제야 사람들이 구경을 멈추고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필름 중간이 깨끗하게 잘려져 나갔는디?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거?
‘금린대로 가는 길에 습격이 있었고, 눈을 베였고, 납치를 당했고, 고문을 당했고...’
강가 주변을 두리번거려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이었다.

그도 그렇지만 시선의 높이가 평소보다 높아 뭔가 잘못된 듯해서 걱정스럽다.
입고 있는 옷의 소매 길이가 졸아든 연근처럼 짧았고 바지도 발목이 드러났다. 이래선 동생 옷을 잘못 입고 나온 몰골이다. 운심부지처에선 튼튼하고 좋은 옷감을 쓰는 줄 알았는데 물에 젖으면 확 줄어드는 성질이 있었던 걸까, 혼방이 아닌 면 재질의 옷을 잘못 빨면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햇볕에 말리면 지금보다 더 줄어드는 거 아냐? 그럼 곤란한데.’
근처 나뭇가지에 겉옷을 잘 펴서 널어두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앉고 나서도 시선의 높이가 예전 같지 않아 어쩐지 어색했다.

“어이, 거기! 다리에서 떨어진 덜 떨어진 놈!”
가죽 보호구를 착용한 남자 둘이서 손을 깔대기 모양으로 만들어 입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물 많이 먹었냐? 다친 곳은 없고?”
방범대원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군사훈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치안조직 소속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옆구리에 소박한 모양의 칼을 하나씩 차고 있었고, 소속감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멋을 내기 위함인지 감청색 망토 같은 걸 두르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팔을 흔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자기네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지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통제를 할 필요가 있겠어. 다리도 너무 흔들려.”
“괜찮아. 점방 다리는 원래 흔들리는 법이니까. 균형을 못 잡고 떨어지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염곤 나루터에서 수신귀가 나타났다고 해서 다들 이쪽으로 몰려오는데 통제까지 하면 더 혼란해져.”
“상황을 더 두고 볼까나. 그래도 다리에서 떨어진 사람이 있다고 보고는 하는 게 좋겠어.”
“보고를 하는 김에 확실히 하자고. 어~이. 거기 홀딱 젖은 놈! 누가 밀어서 떨어진 건 아니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났다. 어쨌든 다들 웃었으니 남들과 시비가 붙은 건 아닐 거다.
나는 재차 팔을 흔들어 걱정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고 표현했다.
누가 밀어서 라기 보단 눈이 흐릿해서다. 상처는 거진 나았어도 시력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발을 헛디뎌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나마 빠진 곳의 깊이가 얕아 다행이었다. 최근 비가 내린 적이 없는 거다. 청수오는 평소 수량이 적었지만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엔 수위가 급격히 올라...

“잠깐. 이건 내 기억이 아닌데?”
쓰게 웃으며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는 요령으로 머리통을 툭툭 쳤다. 라디오 채널이 엇나가 잡음이 잔뜩 섞인 느낌이었다. 옆에선 간첩들이 난수방송 중이고 바늘을 미세하게 조정하자 라디오 DJ의 말소리와 음악소리가 겹쳐서 들려오는 거다. 이쪽에서 클래식 음악을, 저쪽에선 성인 가요 타임이다.
이를 어쩐다.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아니었고,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곳과 가까운 장소라 잘 아는 것뿐이야.》
“저기요? 온서염 씨?”
《왜.》
“진짜로 온서염이네.”
완전 망했다. 도대체 무엇부터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지 짐작도 안 갔다. 사실 전부 잘못되었다.
콧물인지 강물인지 모를 국물을 들이마시고 침착함을 가장했다.
그래봤자 온서염이 나고, 내가 온서염이다.

“차근차근 하자고. 일단 여기가 어디야.”
《형주.》
강원도라고 하면 내가 알아 듣냐고! 삼척, 동해, 강릉, 이런 식으로 압축해줘야지!
“보다 자세하게 안 되겠어? 정신을 차렸는데 장소도 모르겠고, 날짜도 모르겠고,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황당하잖아. 눈치껏 보아하니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잘만 돌아다닌 눈치인데 이거 전부 네 짓이지?”
《그럼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다리 뻗고 누워 있으라고? 열흘이나?》
“열흘?!!! 그럼 깨웠어야지!”
《항의는 저쪽에다 해. 깨우고 싶어도 깨울 수 없었어. 초혼을 한답시고 네 혼을 들었다 놓았거든.》
“초혼?”

습격이 있었다고 보고가 올라갔을 거고, 하인들 대다수가 살해당했다. 나는 실종상태였다. 아니, 시체만 못 찾은 상태였다. 나 홀로 살아남았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혼백이라도 불러 사연을 들어보자며 운심부지처 사람들이 걸람을 부르며 초혼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어두운 방안으로 택무군과 남계인 선생님, 함광군, 그리고 세 명의 다른 수사들이 기괴한 음률로 고금을 튕기고 있었다.
‘나 아직 안 죽었거든요?! 빈사상태이긴 한데 안 죽었거든요? 당장 멈추라고, 멈추라고! 이 개새끼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택무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혼의식을 서둘러 중단시켰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철썩 때렸다. 그것도 꿈이 아니었다는 거지, 미치고 환장하겠네.
욕설을 듣고 남계인 선생님 거품 물었겠군. 그것만으로도 이미 사형 확정이다.

“그래서 열흘 동안 의식불명이었다고?!”
물이 줄줄 흐르는 바지를 쥐어짜며 물어보았더니 온서염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 혼이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혼자 남은 온서염은 도주를 결심, 예전에 어머니와 같이 숨어 살던 집을 떠올리고 거기로 찾아가려 했단다.
“거기가 어디인 줄은 알고?”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초혼의 실패로 내가 안 죽었다고 밝혀진 셈이니 고소에서 수사들을 풀어 내 행방을 미친 듯이 찾고 있을 텐데 얘는 엄마와 살던 집에 가겠다고 제멋대로 딴 짓 중이었다. 도중에 강에 빠져 물이나 먹고. 자~알 한다.
《시끄러. 너도 고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지. 고소로 잡혀가면 죽어. 거기 사람들이 사술을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데.”
꿈이라고 여겼지만 주시를 잡아먹은 기억이 있다. 어쩌면... 산 사람도 먹은 것 같다.
토기가 올라오려 했다. 실제로도 헛구역질을 했다.
《먹지 말라고 했을 적에 말을 듣지 않은 건 너야.》
“됐고요. 그만 꺼지세요.”
혼선된 주파수를 어떻게든 고쳐놓던가 해야지. 졸지에 이중인격자가 되어버렸다.

제대로 마르지 않아 쉰내가 진동하는 겉옷에 팔을 꿰었다.
외지인의 몸으로 물가에 앉아 혼잣말을 하고 있음 사람들 눈에 너무 띈다. 지금도 점방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다수가 내가 있는 방향을 흘끔거리고 있다. 일단 다리는 안 건너는 것이 좋겠다. 고개를 숙여 땅만 쳐다보며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옛날 숨어 살던 곳이 어디라고?”
《꺼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온서염이 단단히 삐진 투로 말했다. 나는 살살 달래는 목소리로 산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죽은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냐며 재차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옛날에도 숨었으니 지금도 숨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리 말했다.

온서염의 어머니는, 그러니까 내 어머니는... 이쯤해서 혀를 깨물었다.
어머니는 이릉노조 위무선처럼 일종의 마법사였던 것 같다. 아들이 병사하자 남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음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어쩌면 ‘훔쳐내어’ 주시로 되살려냈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 아들을 숨겨뒀다.
사실을 캐묻자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아들이 있는 방에 밀어 넣었다.

앞만 보고 걷는 속도가 나도 모르게 빨라졌다. 다리가 엉킬 지경이었지만 속도를 줄이진 않았다.
남편을 죽이고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도 여러 가문의 수행자들을 잡아 아들에게 먹였다. 당시는 전쟁 중으로 – 나도 모르게 나뭇잎을 잡아 거칠게 비틀었다. 엿본 기억이 전부 망상이나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온서염이 먹어치운 사람은 두 자리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그래서 병사를 풀어 모자를 잡아 죽이려한 거다.
신음이 터져 나왔다.
쫓기고 쫓겨 어머니는 결국 죽었다.
여자는 자신의 최후를 짐작했던지 도중에 아들을 흙속에 파묻었다.
‘기혈을 눌러 반 가사상태로 만들기는 개뿔...’
직접 온서염을 죽여 묻었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자신의 얘기지만 객관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여섯 살로 추정되는 걸람은 지저분한 모습으로 소산 거리를 방황하다 사람들 눈에 띄었다.
채소 가게 아들이 이거나 처먹으라며 썩은 과일을 던졌다.
걸람은 과일을 먹고 탈이 단단히 났다. 열이 펄펄 끓었고 의식이 없었다. 그 상태로 의장에 던져졌다.
그래서 죽었다. 아마도 그랬을 거다. 탈수증이 왔는데 자연치유가 되었다고? 그럴 리 없다.
그렇게 몇 번이나 죽고, 몇 번이나 되살아나고, 다시 죽고, 다시 살아나고... 자리에 우뚝 서서 원망을 담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기는 지옥이다.
나는 이 세계에 갇혀버렸다.

Posted by 미야

2021/12/14 16:18 2021/12/14 16:18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239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 1947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52380
Today:
2
Yesterday:
30

Calendar

«   2022/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