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나라카(地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언젠가 부터인지 혼자 걷고 있는 게 아니라 옆에 한 명이 따라붙었다.
사실 한 명이라기보다는 한 귀신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오른쪽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왼쪽 눈으로 봤을 적엔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어린 소녀가 보였으니까. 병원에서 시력검사 할 때처럼 잎맥이 넓은 나뭇잎으로 한쪽씩 눈을 가려가며 시험도 해보았으니 착각은 아니다.
예쁘장한 아이였다. 그리고 너무 작아 덜컥 겁이 났다.
‘귀신이라도 부모가 있을지 모르는데, 이러다 약취유인 유괴범 취급 받는 건 아니겠지.’
아이는 가끔씩 콧노래를 불렀고 옹알옹알 알아듣기 어려운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바짝 붙어 날 따라왔다.
“도와줘, 온서염!”
온서염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흉살스런 종류도 아니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내버려 두라는 의미인 듯했다.
그것보단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아니, 그런데 이건 많이 억울했다. 왼쪽 눈에 비친 나루터의 모습이 더러운 마포걸레가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라 저리로는 가지 않겠다고 한 것뿐이다. 척 봐도 그건 좋지 않은 것들이었다. 세탁기 속에 넣어두고 30년 동안 존재를 잊어먹은 가발 느낌인데 그게 사람에게 이로운 존재일 것 같진 않았다.
어차피 배 삯도 없고, 그래서 돌아 나왔다.
그런데 온서염은 엄마와 살던 집에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일종의 태업 중이었다.
이쪽에서 세 번 부르면 한 번 대답하는 걸로, 그것도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있는데 진짜 찌질한 성격이었다.
그가 걸람이고 내가 온서염이니 누워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이긴 한데, 아무튼 찌질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내면의 짝꿍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건 포기하고 왼쪽 눈으로 어린애를 관찰했다.
아이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입에 담기도 역겨운 흉악한 일을 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외모로 보아 굶어 죽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베시시 웃자 윗니가 없었다. 이갈이 중이었다.
“아니, 이렇게 어려서 귀신이 되면...” 성불은 언제 하는 거냐고.
따라오지 말라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며 턱에 힘을 주고 으음! 소리를 내었더니 웃기만 한다.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알아듣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며 따.라.오.지.말.라.고. 모양을 잘 보라 설명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쟤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애기야. 나랑 여기에 있음 안 돼. 엄마 어딨어, 아빠 어딨어?”
물어봐도 장난을 치며 마냥 노느라 바빴다.
죄 지은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쨌든 나는 결백하다. 나는 맛있는 거 준다한 적 없고, 같이 놀자 꾀지도 않았다.
턱을 괸 자세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수풀 속에 주저앉자 애기도 따라 옆에 앉았다.
“뭐야, 이번엔 소꿉장난이야?”
풀을 잘게 조각내고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흙과 섞더니 그걸 나뭇잎에 넣고 만두를 빚었다.
그 모양이 하도 웃겨 나뭇잎 만두를 집어 들어 입에 넣는 척하고 냠냠 소리를 내었더니 까무러치며 좋아했다.
그래, 음식 솜씨가 좋구나. 나중에 만두장사를 해도 대성을 하겠어.
아이의 웃는 모습이 좋아 만두를 하나 더 집어 입에 넣는 척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정말 다행이었다. 남들이 이런 내 모습을 봤음 단단히 실성했구나 여겼을 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도 내가 미쳤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입안으로 흙 맛이 돌고 어금니 틈새로 풀이 끼고 있는데 귀신을 부추겨 만두 하나만 더 달라고 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닌 거 맞다.
《저걸 궁기도까지 데리고 갈 거야?》
온서염이 성가신 걸 끌고 다닌다며 잔소리를 했다. 도와달라며 내 쪽에서 애원했을 적엔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다.
“얘기가 안 통하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나는 분명 쟤더러 따라오지 말라고 말했다.”
나 또한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다.
소꿉장난에 심취해 있던 아이가 재빨리 반응하며 벌떡 일어나 내 옆으로 가까이 붙었다.
마음대로 하라지. 어깨에 올라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궁기도는 지명으로 찾으면 나오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상고시대부터 궁설, 혹은 궁기도라고 불린 옛길로 그런 이름이 붙은 연유는 궁기라는 괴물이 살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궁기(窮奇) 괴물 이름에 길 도(道)를 붙여 궁기도가 되었다.
궁기가 뭐냐는 내 질문에 온서염은 개의 울음소리를 내는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했다.
‘또 호랑이냐. 지긋지긋하게 호랑이가 얽히네.’
궁기는 불효를 조장하고, 악한 사람에게 보물을 선물하며, 착한 사람을 잡아먹는 악신이라서 고대의 영웅이 무려 여든하루 일에 걸쳐 퇴치를 했다고 한다. 그 궁기를 죽이고 천제께 제사를 드린 곳이 궁설이고, 몇 백 년 전까지는 일종의 관광명소처럼 인식되었던 듯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농사가 불가능한 척박한 지형이라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
온서염의 말로는 바위와 자갈이 가득인 곳이라고 했다. 땅이 그 정도로 척박해진 이유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궁기의 독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서염 오빠가 하는 말 들었니? 거긴 꽃이 없대.”
아이가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나는 무당이 아니라서 귀신과의 대화에는 소질이 없었다. 절대 상대가 여자아이여서가 아니다.
“풀도 자라지 않아 아까처럼 소꿉장난 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어쩔래. 그래도 따라올래?”
아이는 빠진 이를 자랑하듯 헤실 웃기만 했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제풀에 지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그보다는 지도에도 안 나온다는 곳을 온전히 온서염의 오래되어 빛바랜 기억에 의존하여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솔직히 내 생각으론 미션 성공 확률은 바닥이었다.
“차라리 배를 타고 외국에 가보고 싶다.”
이 시대에도 해상무역은 있을 거다. 이 세상이 역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은 없어도 – 좀비가 있으니 내가 아는 실제 역사가 아니라 십중팔구 판타지다 – 외국으로 소금이나 도자기를 팔러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담이 작은 탓에 거상이 된 내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았고, 침침한 눈으로 물건의 개수와 포장된 상자를 하나하나 세고 있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배 멀미를 하면 어쩌지.
서른네 살 회사원 안선준은 멀미를 안 했다. 멀미를 했다면 그토록 장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하지 못했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탔을 적에도 괜찮았다. 하지만 걸람은 얘기가 다르다.
“서염은 혹시 바다를 본 적 있어?”
《없어.》
그렇다면 버킷 리스트로 만들어두자. 해변에서 모래장난도 하고 배도 타야지. 이 시대에 해상으로 유럽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말레이시아나 베트남이라면 가능할 - 여기까지 생각하다 의식의 흐름이 뚝 끊겼다.
어떤 의미에선 장관이었다. 그러나 억새풀이 장관인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비비면 덧난다는 걸 알았어도 눈을 세게 문질렀다. 그런들 사라질 종류는 아니었다만, 어째서인지 들판 가득 혼백들이 바다 거품처럼 일렁였다. 마치 무허가 공장들이 오염수를 무단으로 방류하여 강이 포말로 뒤덮였다던 해외토픽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오래되어 부서지고, 그러다 바람에 떠오르고, 마지막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가라앉고.
물결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메슥거렸다.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격하게 동감한다.
허공에 밧줄이 늘어져있고, 그 밧줄마다 시커먼 인영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숫자가 서른을 넘어갔다. 그들의 정체가 무고한 사람들인지, 붙잡혀 벌을 받은 도적들인지는 알 재주가 없다. 너무 오래 전에 죽었고, 마냥 곱씹고 있기엔 세월이 길었다. 나무조차 뿌리가 썩어 쓰러졌건만 나뭇가지에 묶인 몸은 계속해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것들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안달을 내며 공중에 매달린 것들에게 팔을 뻗는 여자아이를 향해 지지는 만지는 거 아니라고 주의를 주고 길에서 벗어났다.
Take me home, Country roads.
옛날 노래 가락을 흥얼거리며 저무는 해와 노을이 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집에 가고 싶다.”
내게는 집이라고 떠올릴만한 곳이 없는데도 막연히 그리웠다. 이 드넓은 천하에 누울 곳 하나 없다.
“누나 보고 싶다.”
택배로 김치 보냈다고 전화해주던 누나가 그립다. 돈은 언제 모을 것이며, 여자 친구는 언제 만들 거냐고 윽박지르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데 코가 고춧가루 버무린 것처럼 맵다.
“국물 떡볶이 먹고 싶다.”
기왕 코가 매운 거, 혀가 얼얼한 정도로 뜨끈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고춧가루 한 스푼에 고추장 한 스푼, 설탕 세 스푼에 진간장 두 스푼. 양배추에 소시지 넣고.
지금처럼 땅속 암반 500미터 아래로 추락한 기분일 적엔 맛있는 걸 상상하면 괜찮아진다.
이참에 버킷 리스트 하나 더 추가다. 어떻게든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먹어본다. 여기서 고추를 재배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만약 없음 남방으로 배를 타고 내려가 직접 찾아보자. 고추는 더운 지방이 원산지라서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부 쓸데없다.
옆에서 풀깍지를 만들며 놀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환히 웃었다. 꼭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굴었다. 그러더니 다섯 걸음 뛰어가 멈춰 서서 손짓하고, 다시 세 걸음 뛰어가 멈춰 서서 손짓했다.
하는 동작이 따라오라 하는 것 같아 아이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러다 귀신에게 홀린다.》
온서염이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간만에 듣는 웃긴 얘기였다. 누가 누굴 조심하라는 건지.
한참을 앞서 나가던 아이가 얼마 후 제자리에서 종종 뛰었다.
잔뜩 신이 난 것도 같고,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도 보였다. 미리 꺾어둔 꽃을 흔들며 나를 가리켰다.
그런 아이의 앞에 영하 20도 냉동창고에서 금방 빠져나온 것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커다란 고금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가 앞니 빠진 입을 열어 무어라 종알거리자 고금의 줄이 디잉, 딩 하고 높은 음으로 울렸다.
찾는 귀신. 여기.
문령으로 아이의 말을 알아들은 함광군이 연주를 하도 오래해서 빨갛게 변한 손가락을 줄에서 천천히 떼어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