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무려 5년이었다.
내가 말이지, 선반 위에 올려놓은 식초를 아쉬워하는 바람에 성불을 못 했다는 스님 이야기가 떠올라 그간 일부러 머리를 비우고 살아서 그렇지 아님 어쩔 뻔했어.
도끼로 쓸 돌을 갈 때 마음도 같이 깎으면서 ‘직지인심 견성성불’ 글자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 결말이 매번 다듬던 돌을 깨부수는 것으로 끝나 득도의 경지에 오름에는 실패했지만... 그게 내 잘못이겠냐고. 그 로빈슨 크루소도 난파선에서 식료품과 무기를 포함해 필요한 물자를 조달했다고! 갈아입을 옷 한 벌 없어 길 잃은 주시의 옷을 벗겨다 입은 나와는 하늘과 땅 차이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침착하자. 흥분할 때가 아니었다.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려는 잡념을 강제로 붙잡아 앉혔다.
지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 효성진 당신, 나한테 걸리면 죽어! – 이게 아니라.
일단 품안 아이를 제 일행에게로 안전하게 돌려보내도록 하자. 급할수록 코앞의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거다.
소년은 깨어났다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뭐라고 계속 웅얼거리는데 솔직히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웅얼거림 중에서 ‘냄새 나’ 이 건 알아들었다.
업은 상태에서 어깨 뒤를 돌아보니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아미 한 가운데로 붉은 점을 찍은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픈데 똥 구린내까지 맡아 표정이 절간 입구를 지키고 선 나찰 같았다.
“가까이서 보니 못 생겼구먼.”
툭 내뱉은 내 말에 아이의 뺨이 실룩였다.
그러든 말든 등에 업은 아이를 고쳐 안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끝나 이제 먼동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데려온 하인들과 수사들 숫자가 적지 않아 분명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있을 텐데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답답한 기분에 ‘이봐요, 여기 댁들의 아가 도련님이 있어요!’ 큰 소리를 쳐서 불러볼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난 밤 곰이 수사들을 사냥하던 걸 떠올렸다. 아직 안전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둥지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곰은 욕심이 많다. 집착도 강한 놈이라 사냥에 욕심을 부려 조용히 뒤를 따라오는 중일 수도 있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가 않으니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 옳았다.
‘아니면 이대로 되돌아가서 신호탄을 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이들 무리가 곰으로부터 습격을 받았을 때 수사 중 하나가 신호탄을 꺼내 터뜨리려 하다 곰에게 밟혀 죽은 걸 떠올렸다. 곰이 죽은 수사의 시체를 물어가지 않았다면 아직 제자리에 남았을 거다. 운이 나쁘면 진법이 터져나갔을 때 휩쓸려 고운 가루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 진짜 효성진!!
“앉고 싶어.”
업혀 있던 아이가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만 흔들어. 머리가 울린다고.”
그 말을 듣고 아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지럼증이 심하다면 간밤의 충격으로 뇌진탕을 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아이의 시선방향과 안색을 살피며 혹시 구역질을 하지는 않는지 체크했다.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구역질이 안 나겠냐! 도대체 얼마나 안 씻은 거야!”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 아이는 주둥이가 안 예뻤다.
“불쾌해. 날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다니. 더럽잖아!”
이야... 말본새가 재벌 3세다. 대기업 손자야. 삿대질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꿀 먹었어? 입이 달라붙었어? 너 누구야. 내가 묻는데 왜 말을 하지 않아?!”
“기가 차서.”
“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인석아.”
너만 주둥이냐. 나도 주둥이다. 쏘아붙이며 눈을 흘겼다.
소년이 벌에 쏘인 것처럼 발끈했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모르니까 그렇게 건방을 떠는 거지! 내가 누구냐 하면, 나는 금릉이다!”
“됐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는 안 나냐? 눈이 침침하거나 모습이 겹쳐 보이지는 않고?”
“이이익! 금릉이라고! 내 이름은 금릉이다!”
“인석아. 이름이 아니라 네 몸 상태를 묻고 있잖아. 여기가 어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
“아.”
광폭화 스킬을 시전한 곰으로부터 머리를 통째로 물어뜯길 뻔한 걸 떠올렸는지 잔뜩 풀이 죽어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어두워졌다.
그래, 엄청 무서웠겠지. 내가 저만한 나이에 저만한 일을 겪었으면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북극곰이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도 못 봤다. 이불속에 틀어박혀 벌벌 떨기만 했을 거다. 몸을 떠는 아이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냐! 추워서 그래!”
거의 울면서 금릉이 주장했다. 아이의 눈가가 습기로 촉촉했다.
나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어깨를 으쓱였다. 상대방이 봤을 적에 멋대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몸동작이었다. 그렇다, 아니다, 좋다, 나쁘다, 이해한다, 모르겠다, 원하는 대로 아무거나 골라도 된다.
“진짜야. 거짓말 아니야!”
“응. 믿어.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지금은 불을 피울 수가 없어.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 아직 위험하거든. 계속 움직여야 해.”
내 말을 듣고 아이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러더니 황급히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바짝 긴장했다.
“혹시 그 망할 곰이 근처에 있는 거야?”
“몰라.”
“큰일이네. 활도 잃어버리고... 검도 없는데 어쩌지.”
“그러니까 빨리 어른을 찾아야지. 검이 있어봤자 어차피 지금 네 힘으론 못 덤벼.”
금릉이 뾰족하게 반응했다.
“너! 그 말 취소해! 난 약하지 않아! 얼마 전 금단도 맺었다고!”
“금단이든 은단이든 부상을 입었잖아. 다친 몸으로 싸우고 그러는 거 아냐.”
“이게 말을 못 알아듣네. 금단을 맺었다니까! 건방지게 누구에게 충고하는 거야!”
“어른이니까 충고하는 거다, 인석아.”
“나보다 작은 주제에 무슨 헛소리야! 나는 올해 열둘이야! 넌 몇 살인데.”
“스물 하나.”
“흥! 숫자 세는 법을 엉터리로 배웠군. 하나, 둘, 셋, 다섯, 일곱, 이러면 그게 맞겠냐고.”
천하의 바보 취급하며 녀석이 눈을 흘겼다.
계속 따지기도 뭐해서 내가 동생 할 테니 네가 형 하라고 대인배의 마음으로 양보했다.
그보다는 지긋지긋한 이 산에서 내려갈 길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산을 무사히 내려가면...
“금릉아. 혹시 약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 여기서 많이 멀까?”
“촌부의 자식이라 진짜 몰라서 저러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어디 함부로 내 이름을 불러!”
금릉이 자기 옷을 가리켰다. 더러운 게 잔뜩 묻었어도 여전히 비싸 보이는 옷이었다. 소매에 모란무늬가 있고 금실로 수를 놓았다. 전부 수작업으로 수를 놓았을 테니 엄청난 공임이 들어간 옷이었다.
아니 씨발, 그래서 뭐요. 혹시 그건가. 내 이름은 이지호! 내 아버지가 삼성 회장 이재용! 네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나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넌더리를 냈다.
“알았어, 알았다고. 부잣집 도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정말 미안해. 너, 부자야! 나는 가진 거 없는 흙수저니까 도련님 이름 함부로 안 부를게. 됐지?”
“그게 아니라... 야. 너 진짜 모르는 거냐? 아님 바보야? 이 백모란 무늬를 봐도 아무 생각이 없어?”
“예쁘다고 생각해.”
“맙소사. 진짜 바보였군!”
내 대답을 들은 금릉은 어째서인지 화를 누그러뜨리고 대신 날 불쌍하다는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 시선은 반칙 아닙니까. 내가 왜 불쌍해? 진짜 불쌍한 건 너지.
시장에 갈 적에도 두 다리로 걷지 않고 꽃가마 타고 다닐 것처럼 생겨서 굳이 험한 산속에 뭣 하러 들어와 이 고생이래?
“곰이 있다고 알았음 절대 안 왔어. 소문에는 이 부근으로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신선이 만든 진법이 있는데 신선이 그 속에 무기를 숨겨놨다고 했거든.”
걸음이 계속 불편해보여 등을 보이고 업어주려 하자 금릉은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무례하게도 녀석은 코를 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좋을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대신 머리 높이로 자란 풀을 뒤로 꺾었다. 한껏 자란 풀들은 부드럽지가 않고 심지에 철사가 들어간 것처럼 단단하여 피부를 긁기 십상이었다.
“무기?”
“어떤 무기라는 말은 없었어. 그래도 보통 무기라고 하면 검이 떠오르잖아?”
어느 날 한 신선이 예사롭지 않은 무기를 발견하였다. 쓰려고 하니 요사스럽기가 그지없어 제멋대로 날뛰었다. 술법으로 제압하자 곧 얌전하게 되었으나 신선은 이 무기가 제법 쓸모가 있으나 조종이 되지 않으니 사람에게 이롭지 않다 여겨 그대로 봉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주변으로 큰 진을 그려 사람의 접근을 가로막고, 밖으로는 작은 진을 덧그려 다가가고자 하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금릉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잠깐만요, 요사스럽고 조종이 되지 않는다며. 그런 무기를 굳이 찾으러 왔다고?”
“쓸모는 있다고 했으니까. 여차하면 내가 써줄 생각이었지.”
그 무슨 근자감이냐.
금릉의 입이 댓바람이나 튀어나왔다.
“나라고 그러고 싶었겠어? 전부 외숙부 잘못이야. 외숙부가 내 검을 가져가서 눈을 이렇게 뜨고 ‘못 준다!’ 이래버리니 나로서도 방법이 없잖아. 외숙부도 10대 시절에 야렵을 나가 큰 공을 쌓았으면서 왜 나는 어리다고 못 나가게 막는 건데? 나도 충분히 요괴를 잡을 수 있거든?”
야, 네가 하는 말을 들으니 네 외숙부라는 사람이 무척 현명한 분인 거 같다.
“작은아버지도 내 실력이면 야렵에 나가 수살귀 서넛도 거뜬히 잡을 수 있을 거라 하셨어.”
그 작은아버지라는 양반은 단순히 널 추켜세우는 게 아니라 조카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것 같은데. 코흘리개 어린애가 무슨 귀신을 잡아.
“귀한 수호부를 주신 분도 작은아버지야. 혹시라도 위기에 처해도 이게 날 지켜줄 거라면서... 어, 내 팔찌. 어디로 갔지?”
자신의 텅 빈 손목을 보고 금릉이 눈을 커다랗게 치켜떴다.
입이 험한 것과 별개로 은근히 애가 맹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