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사건 상세 내용도 원작과 다릅니다.
그렇게 한참을 효성진 손에 들려 운반되어져 가는 도중, 숲속이 시끄러워졌다.
저만치 앞에서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뭔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멧돼지? 아니면 싸움을 걸어오는 산적? 나름 잔뜩 긴장했는데 하하하 웃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보게, 효성진! 나야, 나!”
사내는 길 한 가운데서 절친 고교 동창생 만났다는 식으로 효성진 도장의 등을 팡팡 때리기까지 했다. 그것도 소리가 매우 찰졌다.
두 사람은 매우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시체자루를 옆에 내려놓은 효성진은 그렇게 얻어맞으면서도 상대방을 따라 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송자침. 반갑네.”
“연통을 보자마자 급히 날아왔어! 친구가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날아와야지, 암!”
“고맙네.”
“별 말씀을. 친구 사이에선 고맙다는 말이 필요 없지.”
들리는 목소리로만 판단하자면 그는 매우 쾌활한 사람이었다.
나는 수염자국이 시퍼렇고 풍채가 좋은 아저씨를 상상했다. 남에게 커피도 잘 사주고, 밥도 잘 사주고, 넥타이에 양념 자국이 묻었어도 하나도 미워 보이지 않는 차장님 같은 사람, 연애결혼을 해서 아이를 셋 낳은 사람. ‘정말 반가워!’ 악수하며 손에 힘을 콱 주는 사람... 그러고 보니 여기선 악수를 하지 않고 포권을 하지?
친구와 인사를 끝낸 – 팡팡 때리는 소리가 그쳤다 - 효성진 도장이 내려놨던 자루를 다시 들었다.
둘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린 것도 않은 속도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송자침은 효성진이 시체자루를 왜 들고 가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굳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묻지는 않았다.
“연통을 통해 내용을 대충 들었지만 보통 일이 아니더군. 팔관(※상씨의 저택,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에는 이미 들렸다 오는 길이야.”
“그래?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자침 자네가 보기엔 어떻던가.”
“보호 진법이 처음부터 잘 만들어진 종류는 아니었네. 4대 명문세가처럼 법보를 사용한 것도 아니어서 부수겠다고 작정을 했다면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거야.
다만 이상한 건 제법 요란하게 부순 뒤 술식을 반전시켰다는 점일세. 성진이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술식을 단순히 망가뜨리기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허나 술법을 뒤엎는 건 그쪽으로 지식이 상당해야 하지.”
“진법을 반전시켰다?”
“그랬다니까. 이게 혀를 내두를 솜씨였어. 사술에 능한 자가 일단 보호의 진법을 깨어 사귀를 불러 모았네. 그리고 이를 반전시켜 집안에 모두를 가뒀어. 여기서 ‘모두’ 라는 건 사람에 귀신을 포함해서라는 뜻이네. 팔관에서 일주일이나 새된 비명소리가 이어진 건 그 때문이야. 내가 볼 적에 그 사람들은 긴 간격을 두고 죽지 않았어. 그랬다면 시신의 상태가 제각각이었을 거야. 어느 건 덜 썩고, 어떤 건 더 썩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길어봤자 팔관 사람들이 버틴 건 하루 정도였을 걸세. 그런데도 약양 주민들 증언대로 일주일이나 귀곡성이 이어진 건 귀신이 저택을 빠져나가지 못해서야. 자기네들끼리 아우성치다 악귀 스스로 자멸하기까지 딱 일주일 걸린 걸세.”
“사람이 먼저 죽고, 그리고 귀신이 따라 소멸하고?”
“어딘지 모르게 고독(蠱毒)이라는 주술이 떠오르지 않나, 성진. 항아리에 전부 쓸어 모아두고 서로를 잡아먹기까지 시간을 들인 거지. 팔관 저택의 경우 아무것도 안 남았다는 부분에서 고독 주술과는 결과가 달랐지만... 아무튼 상씨 가주가 야렵을 다녀오는데 적어도 보름이 걸릴 걸 계산에 둔 걸세.”
이 말을 들은 효성진이 잠시 멈칫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제법 긴 시간동안 대화가 끊겼다.
돌이 많은 길로 접어들었는지 자박자박 소리가 커졌다.
아니, 자침이라 불린 사람의 발소리만 커졌다. 효성진 도장은 시체자루를 들어 무게가 더해졌음에도 여전히 사뿐사뿐 걸어 자갈 밟는 소리를 안 냈다.
“자침. 상씨 가주는 만나봤는가?”
“상평? 아아... 짧게만 만나봤어. 충격이 컸는지 상태가 좋지 않더군. 몸 보전하고 누웠더라고. 길게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네. 쉬고 계시라 하고 얼른 나왔지. 대신 부사에게는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어. 채무 관계라던가, 여자 문제라던가... 실례될 것 같은 것도 물어봤네.”
“이보게, 자침.”
“미간 찌푸리지 말게. 물어봐야 답을 알지! 암튼 별 거 없었어. 상평은 젊은 가주라 관계라고 할 게 아예 없었고, 몇 년 전 세상을 뜬 상평의 부친이 성격이 난폭하기에 사고를 제법 치곤 했다더군. 술이 들어가면 욕을 하고 트집을 잡는 버릇이 있어 몇몇과 관계가 매우 나빴다고 하네. 하지만 술주정이잖아. 지루하고 쓸데없었네. 별 것 없었어.”
“집안 은원관계에 대해 들은 말은 없고? 부사가 설양이라는 자에 대해 언급은 안 하던가?”
“설양?”
“이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일세.” 차분한 어조로 효성진 도장이 말했다.
“추정이 아니라 범인 맞다니까요.” 자루 속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내가 못 참고 토를 달았다.
송자침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효성진으로부터 자루를 빼앗더니 올림픽 투포환 던지는 식으로 날려버렸다.
패대기를 치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로 우주 저편까지 날려 보내려 했다. 효성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송자침!”
“왜 말려!!”
“나무가지에 걸렸잖는가. 어서 가서 도로 가져오게. 저 자루는 팔관 저택 참변 증거일세!”
“알게 뭐람!! 시체 자루가 말을 하는데! 저런 건 썩 버려! 아니, 태워버려!”
“증거라니까!”
효성진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20장(※약 50m)이나 날아가 나뭇가지에 걸린 날 아래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끌어내리기만 했을 뿐, 송자침은 효성진에게 자루를 건네는 대신 일단 깔고 앉았다.
더듬거려 여기가 머리, 여기가 다리, 이렇게 확인하더니 머리에 발을 올려놓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시켰다.
기분이 언짢은 것 이전에 밟는 힘이 장사여서 머리뼈가 수박처럼 터질까봐 걱정이었다.
“도장님, 이러다 저 머리 터져욧! 친구분 좀 말려 봐요!”
“진짜네? 말을 하네? 심장이 안 뛰는 시체 주제에 말을 하네? 허어, 이게 무슨 조화래?”
송자침은 쿵 소리가 나도록 내 머리를 더 밟았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말하고자 한 내용을 이해한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자침, 부탁이니 험하게 다루지 말아주게. 그건 시체지만 이지가 있다네.”
“그래봤자 시체야!”
“마르고 여윈 소년이라네. 가엾게 여겨주게.”
“시변한 시체라고!”
“말했잖는가. 그건 시체지만 사물을 분별하고 스스로 사고할 줄 안다네. 심지어 목이 마르다며 내가 보는 앞에서 물도 마셨지.”
“불가능해! 천하의 이릉노조가 부활하여 조화를 부린 것이 아닌 다음에야...... 다음에야. 이런! 이릉노조가 부활했구나! 이릉노조의 짓이었어!”
“이릉노조가 아니라 범인은 설양이라니꽈욧!”
세게 밟힌 상태라 발음이 옆으로 샜지만 어쨌거나 나는 범인의 이름을 연거푸 외쳤다.
어쩐지 콘서트 장에서 아이돌 이름을 연호하는 사생이 된 기분이었지만, 한 번 외쳐 상대가 믿지 않으면 백 번 외침이 마땅하지 않은가. 범인은 설양이다!
송자침이 다시 침착해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그는 나라는 존재를 무시하는 방법을 썼다. 깔고 앉은 것은 바위다 – 훌륭한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효성진 자네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나는 설양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어. 열다섯 어린 나이에 기주 지방에서 악명을 떨치는 아주 유명한 잡놈이야. 술 먹고 행패질에, 기물파손에, 무전취식을 하는 자일세.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많고, 가게를 부수고 다녀서 일찍이 요주의 인물이 되었어. 재주가 있어 금단을 맺었지만 덕분에 어떤 곳에서도 문하생으로 받아주지 않았지. 최근 유명 선문세가의 객원이 되었다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아마 새빨간 거짓말이었을 거야.”
짝 하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낮은 실력을 보충하고자 사술을 배웠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렇고 그런 놈이라고. 파락호 같은 놈이 술식반전을 하고, 세가 사람을 몰살시키고, 흉시를 만들어냈다고? 그 주장을 나더러 믿으라고?”
효성진은 진중하게 가능성 하나를 제시했다.
“이릉노조가 설양의 몸으로 탈사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죽은 지 3년이나 지나서 하필 고르고 고른 몸뚱이가 뭣 같은 동네 잡놈이라고? 아니, 백번 양보해서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현문세가 사람들 감시가 워낙 엄중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고. 그거야 설양을 잡아 족치면 확인할 수 있는 문제고... 그런데 이릉노조가 부활하여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약소한 상씨 세가 멸문이라는 건 많이 이상하지. 4대 현문이 공적으로 돌려 토벌하고자 한 이릉노조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직접적인 원한 관계가 있는 현문을 공격했겠지. 안 그래? 예를 들면 난릉 금씨의 금란대라던가. 운몽 강씨의 연화오라던가.”
“연화오는 여기서 머네.”
“으이그, 이 친구야! 효성진 자네는 거리가 멀면 은원청산을 나중으로 미룰 건가!”
“순서에 따른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복수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본 거라면?”
“끄응... 성진이 자네 말대로라면 조만간 수진계가 발칵 뒤집히겠군.”
“어쨌거나 확인을 하려면 설양부터 잡아야 하네.”
그래서 두 사람은 일단 설양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에 뜻을 같이하고 지역 수행자들에게 연락을 넣어 이 열다섯 살 악당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잠시만요. 저는요?”
효성진 도장이 내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까지도 송자침이 완강한 태도로 날 태워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