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13

제3장 노잣돈 없음 저승에 가질 못한다

※ 오리캐 주인공, BL 요소 존재하는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의장은 장례용품을 보관하는 장소다.
관과 상여, 음력사(※ 저승에서 망자 대신 악귀와 싸워주고 지전을 귀신들에게 빼앗기지 말라고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종이인형) 같은 걸 넣어두는 창고 역할을 한다.
때로 연고 없는 시신이나 집안에 두기엔 불길한 시신이 나왔을 적엔 임시로 놓아두는 장소로 쓰기도 한다.

소산의 의장과는 달리 이곳의 의장은 크기가 컸다.
미리 만들어든 장례용 종이인형도 무슨 메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빈 관은 여섯 개나 있었다. 이곳의 인구가 소산보다 많다는 뜻이다.

창문은 없었다. 대신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용도로 뚫은 작은 구멍만 있었다.
뒤편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쪽문이 나있었는데 짐작과 달리 출관하는 구멍이 아니라 의장지기가 휴식의 용도로 쓰는 방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출입구 높이를 낮게 만든 이유는 혹시라도 시체가 시변하더라도 허리를 쉽게 굽히지 못해 머리를 벽에 턱턱 박고 방으로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계산을 해서다. 낮은 단계의 시변자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어 잘 걷지 못하니까.
낮은 단계의 시변자가 아닌 나는 당연히 허리를 접어 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불을 밝힐 수 있는 등롱과 지전 같은 잡동사니가 들어간 서랍장이 전부인 별 거 아닌 장소였다. 청소도 잘 되어있지 않아 천장에 거미줄이 가득했다. 나라도 이런 곳에 들어와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의장지기의 게으름에 뭐라 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건 한 마디 해야겠다.
이 사람들아, 자루에 시체 담아 던져놓고 까마득히 잊고 있음 어쩌라고?!

빛이 들지 않는 의장에서, 그것도 자루에 넣어진 상태에서 얼마나 버텼는지는 신만이 아실 일이다.
처음에는 시체의 본분을 어기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어야지. 이 게으른 인간들은 시체를 넣어두고 의장 문도 안 열어봤다. 느낌 같아선 거의 한 달 족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썩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일까? 흔히 미역국 데운다고 냄비 올려놓곤 타는 냄새 나기 전까지 잊어먹지 않던가. 냄새가 없으니 의장지기가 깜빡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팔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썩기는커녕 미약하게나마 온기도 느껴졌다. 탄력도 그대로여서 손가락으로 눌렀다 떼자 자국 없이 복원되었다. 화학 방부제 팍팍 뿌려 앞으로 몇 년 지나도 안 썩을 기세다.
아니면 참변을 당한 저택의 일이 쉽게 수습이 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죽은 사람 숫자가 많은데다 기둥 굵은 집이었으니 인력이 전부 그쪽으로 쏠렸을 거다.
밥 동냥 하러 갔다가 죽은 거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내일 들여다봐야지, 모레 들여다봐야지, 글피 들여다봐야지, 이러다가 아예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지면 얼굴에 쓴 안경을 찾는답시고 가방을 뒤지는 법이다. 이건 의장지기의 잘못이 아니다.

너무 심심해 장례용 지전 뒷면에 일천만원(一千萬圓), 일억원(一億圓) 이러고 글을 썼다.
내가 가지고 갈 노잣돈이었다. 설마, 단위가 달라도 환전되겠지.
그나마 종이도 금방 다 떨어져 이마저도 할 게 없어졌다.

낮에는 의장지기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빈 관에 들어가 눕기를 반복하기를 그렇게 여러 번, 동네에서 장례 치룰 일이 생겼는지 드디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로 파악하자면 다가오는 사람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의관을 정리하고 착한 시체가 되어 누웠다.
구석에 들어가 있으면 혹시라도 발견을 못할 수도 있으니 관 말고 그럭저럭 눈에 띄는 곳에 두 다리를 뻗었다.

“이곳이오?”
의장지기가 문을 열었다. 그는 문만 열었을 뿐, 다섯 걸음 떨어져 안에는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예, 나리. 이곳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나리라고 하지 말고 도장이라 부르시오. 그나저나 시취가 나질 않는데 이미 매장을 한 건 아니오?”
“그렇진 않을 겁니다. 확실하진 않으나... 저기. 워낙 경황이 없어...”
“표정을 보아하니 그게 전부인 게 아닌 듯한데. 혹여 다른 이유가 있소?”
“무서워서요. 상씨 세가에서 가져온 시신인데 아무래도... 시변했겠죠? 그런 일이 있었는데 멀쩡할 리 없잖아요. 다들 겁이 나 지금껏 문을 잠가두고 감히 접근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담 저 안에서 수상한 소리가 난 적이 있는지는 아오?”
“저어. 그게...”
“괜찮소. 눈치볼 것 없소. 함부로 확인하려 했다가 주시가 달려 나오면 그것도 나름대로 곤란한 일이지. 이해하오.”
의장지기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굽실거렸고, 도장 나리라고 높여 불린 사람은 괜찮다고 말해줬다.

도장 나리는 성격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나 같으면 방임행위 아니냐 야단했을 거다.
“정면 말고 혹시 다른 출구는 없소?”
“없는데요.”
“그거 다행이군. 뒷문이 없음 되었소. 그럼 나 혼자 안에 들어가 보겠소.”
“조심하세요, 나리!”

높은 문턱을 넘는 동작은 간결했다. 몸이 가벼워서인지 발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도장은 한 3초 정도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눈으로 내부를 본 뒤에 텅 비어있는 관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두드리는 소리에 밖에 서있던 의장지기가 ‘뭡니까? 뭔데요? 뭐가 있습니까?’ 물어왔다.
도장은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고 내가 구석으로 잘 개켜놓은 자루로 시선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잘못한 거 같다. 그간 접근한 사람이 없다는데 시신자루에서 죽은 몸뚱이가 빠져나오고, 자루가 네모반듯하게 접혀 있으면 누가 봐도 그건 퍽이나 수상쩍어 보였을 거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동시에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의장 안을 한 바퀴 돌고, 바닥에 깔린 볏짚의 색을 확인하고, 공양한 물건을 올려놓는 공대와 그 앞에 자리한 의자를 주의 깊게 살폈다.
“볏짚이 깨끗한 걸 보아 안에 썩어가는 것이 없었고, 먼지를 보니 의자를 옮긴 흔적이 있구나.”
마지막으로 팔을 가지런히 하고 누운 내 곁으로 다가와 단서를 추적하는 셜록 홈즈처럼 행동했다.
손가락과 손톱을 보고, 소매를 걷어 팔을 보았다. 찢어진 옷가지 틈으로 드러난 흉터에 주목하고, 입을 벌리게 해 입속을 보았다. 짐작하자면 살을 뜯어먹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려 한 것 같았다.

“의장지기. 혹여 이 아이가 어떻게 죽었다는 말을 들어보았소?”
“자세한 건 모릅니다, 도장 나리. 하지만 일꾼 말로는 시변해도 뛰어다니지 말라고 다리의 힘줄을 미리 끊었다고 했습니다.”
“잘려 있지 않소.”
“그럴 리가요.”
“원하면 직접 봐도 좋소.”
“아뇨, 아뇨, 아뇨! 도장 나리 말씀대로겠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의장지기가 질겁하며 손사래를 치는 와중에 도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내 옷의 앞섶을 열었다.
그 부분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다른 심각한 상처는 잘 붙고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설양이 찌른 자국만 그대로였다.
도장은 별 말없이 더듬더듬 가슴의 상처 자국을 만졌다. CSI 요원들은 시신에 남은 상처를 보고 범인과 피해자의 위치라던가, 자세라던가, 범행도구 종류를 추정하던데 그와 비슷한 작업에 들어간 눈치였다. 조사에 임하는 그의 손길은 매우 조심스러웠고, 침착했다.
그리고 대단히 간지러웠다.

“......”
“......”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리고 남자여도 젖꼭지는 부끄럽단 말예요!

챙, 맑은 소리와 함께 순백색의 차가운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둥둥 뜬 채 날 겨눴다.
나는 황급히 가슴을 여미고 뒷걸음질부터 쳤다.
세상에, 해리 포터에 나오는 님부스 2000도 아니면서 저게 막 날아다녀!
검은 무슨 자아라도 가진 것 같았다. 뒷걸음질을 하는 내 움직임을 보며 미간 정 중앙을 노리고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성격이 급한지 확 찌를 것처럼 시늉하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검이라면 양아치처럼 욕을 했을 지도 모른다. 확! 이걸 그냥 확!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최대한 정중하게 검날을 옆으로 밀었다.
그래봤자 약간만 밀려났을 뿐, 하얗게 빛나는 검은 미간을 노리며 고집스럽게 제 위치로 돌아왔다.

“선생님, 우리 말로 합시다!”
“도장이라고 불러라.”
“도장님!”
“효성진 도장이다.”
“효성진 도장님! 이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효성진 도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있잖아요... 도장님이 보기엔 한심해 보인다는 거 잘 압니다만. 저는 지금 대단히 심각하거든요?
걔 좀 치워주심 안 되겠어요? 찔려봐서 아는데 그거 많이 아프거든요?

에고 소드는 성격은 급해도 주인의 말은 잘 듣는 것 같았다.
도장이 돌아오라는 의미로 검집을 앞으로 내밀자 순백의 검이 빨려들 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Posted by 미야

2021/11/01 15:36 2021/11/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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