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어디까지나 완결까지 써보는 게 목적으로 내 글 구려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지적은 반사합니다.


비술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토 스구루는 늘 본심을 가리고 웃는 낯을 하곤 했다.
그건 종이로 만든 가면 같은 종류였다.
술사로서의 자질이 개화하는 시기는 대략 다섯에서 여섯 살 즈음이다.
어린 아들이 괴물이 보인다며 울먹일 적마다 아버지는 허황된 이야기를 꾸며낸다며 체벌을 했다.
오해는 하지 말자. 아동학대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수준으로 회초리를 들었을 뿐으로 소금을 잔뜩 넣은 밥을 주거나 한겨울에 마당에 세워두고 찬물을 뿌리는 멍청한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눈치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징그러운 괴물이 보인다는 말을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기행도 더 이상 저지르지 않았다.
그간 거짓말을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양친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 기뻐하는 표정을 소년은 그대로 따라하며 흉내를 냈다.

『아, 신난다. 써먹기 좋은 부하 1호가 생겼네. 하기노츠키(※촉촉한 카스테라에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지역 과자)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면 딱 이겠다. 한정판 초코렛 맛은 하루에 50상자밖에 팔지 않는다고? 혼자 줄 서는 거 힘든데 잘 됐다. 아참! 스구루는 잘 모르지? 하기노츠키는 센다이 명물 과자야.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지.』
잠자리 날개를 뜯으며 재밌어 하는 어린애 모습으로 고죠 사토루가 싱글벙글 좋아했다.
그 옆에서 게토 스구루도 사람 좋아 보이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눈매만 봐선 손톱이 두 개나 생으로 뽑혀나간 데다 아직 응급처치도 못한 상태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심부름을 보내기 전에 우리 중학생에게 시킬 일이 하나 있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 몸에 새긴 봉인술식 풀어라. 다섯 개 중에 두 개라도 풀어. 사지 절단나지 않도록 이 몸이 알아서 컨트롤 해줄게. 잘 하면 아프긴 해도 죽을 정도까진 아닐 거야. 어때. 마음에 들지?』

간혹 어쩌다 종이가면 같은 미소가 지워지고 가감을 하지 않은 맨 감정이 얼굴에 드러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가 극성 공유 결합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게토 스구루의 종이 가면이 벗겨졌다. 고죠 사토루가 힐끔거리자 언제 그랬느냐며 친절한 이웃 오빠 낯짝으로 돌아왔지만.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이지마 하나에가 발끈하자 고죠 사토루는 손가락을 꾸물꾸물 움직여 물결치는 파도를 흉내 냈다.
『그렇게 하지 않음 뱀 대가리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뭐?!』
『미완성 전개영역이 아까보다 더 커졌다고? 이 정도면 주물은 저쪽이 이미 흡수했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야. 물론 막연히 그럴 거다 짐작만 하는 거라 아직 주물을 흡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말한 고죠 사토루는 고개를 들어 천장 너머 어딘가를 쳐다봤다.
대략 7층에 있는 9학년 7반 교실 어디쯤이었다.
미리 밝혀두지만 카제야마 중학교는 5층 건물이다.
그리고 일본의 다른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3학년제다.

『게임으로 치면 보스 몬스터는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 표시가 안 되어 있고, 고블린이 입다 버린 팬티는 바닥에 깔렸고, 슬라임이 기어간 자국만 보이고, 0레벨 마을 주민들은 순진하게 버섯 따러 왔다가 동굴 안에 갇혔어. 초보 용사가 별 거 아니라고 판단해서 도전! 이러고 퀘스트를 받았는데 기절초풍하게 던전 레벨이 D가 아니라네? 자, 그러니 용사님. 싫어도 본인 레벨부터 올리셔야죠. 아님 모가지가 똑, 하고 날아가요. 버섯 따던 주민들도 전부 죽고요.』
전개영역이 완성되면 최악의 경우 내부에 있는 인원 전부가 몰살당한다.
아니, 무하한의 상전술식을 가진 고죠 사토루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 죽을 거다.
아랫입술을 가만히 안쪽으로 빨아 당긴 모습으로 생각에 잠긴 게토 스구루도 속으로 승률을 계산해보더니 안색이 나빠졌다. 막연한 자신감 이전에 그는 아직 주술고전 1학년생으로 이런 위험한 현장에서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살아남을 확률... 그 이전에 시체가 온전히 남을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했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사용한다.』
고죠 사토루가 이이지마 하나에의 왼쪽 손목을 붙들고 힘을 줬다.
순간 뜨겁게 달구어진 냄비가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식의 굉음이 나면서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산산조각 났다. 동물의 뼈를 가공하여 만든 구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파공음은 피부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 어깨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회전하는 힘에 휩쓸려 팔이 360도 이상 돌아갔다. 아니, 아직은 돌아가지 않았다. 고죠 사토루가 아직 이이지마의 손목을 쥔 채로 좌로 회전하는 힘에 맞서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힘을 가해 폭발하는 힘을 상쇄하려 했다.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이이지마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산 채로 갈려나간다는 감각에 몸부림쳤다.
『야! 이거 놔! 당장 놓으라고! 아님 나 죽어!』
『안 죽어.』
믿어라. 제대로 살려놓고 하기노츠키 한정판 사러 심부름 보낸다.
새파랗게 겁에 질린 이이지마의 어깨 위로 다른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다급히 끼어들려 하는 게토 스구루에게 소리쳤다.
『제대로 하고 있으니 넌 보기만 하고 끼어들지 마!』
난폭하게 소용돌이치던 힘을 무하한을 두룬 자신의 팔로 옮겼다가 재빨리 땅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무거운 철판이 곤두박질치는 굉음이 나면서 교장실 바닥으로 큰 구덩이가 파였다.

건물이 또 흔들렸다.
1학년 2반 반장인 하시모토 리코는 8층까지 걸어 올라가다 말고 중간에 멈춰 섰다.
도대체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현기증이 나려 했다.
더 위로 올라가고픈 마음도 이미 솜털처럼 녹아 사라졌다. 계단은 끝도 없이 위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흡사 센다이 시내에서 가장 높은 30층짜리 빌딩 내부처럼 느껴졌다.
30층이 별 거냐 하겠지만 부근 지반은 암반이 없어 무르고 지진에 취약한 탓에 높은 건물을 짓지 않았다.
오르고 올라도 계단이 이어지는 풍경은 낯설었다.

단단히 뭉쳐 아파오는 종아리 근육을 문지르고 교실의 푯말을 확인했다. 9학년 2반이라 적혀 있었다.
만우절 장난은 아닐 테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여전히 9학년 2반이었다.
『모르겠다... 나, 이미 죽은 걸까.』
어쩌면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중인 건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다. 사고로 갑작스레 죽은 영혼이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거다.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내려다봤다. 13분을 가리키던 숫자가 방금 전 12로 바뀌었다.
확실히 저승 언저리 어딘가로 떨어진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손목시계의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 이미 죽은 거야?』
소꿉친구인 이시즈미 루미가 나, 를 우리, 로 고쳐 말하며 울먹였다.
그녀는 최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다. 언제 죽어버린 걸까. 새벽에? 아침에? 등교시간에?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사고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눈물로 얼룩진 뺨을 문질러 닦고 기억을 더듬었다.
교통사고가 있었나?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이 인도를 덮쳐 하시모토 리코와 손을 잡고 나란히 죽어버렸다? 모르겠다.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다 급체가 와 세상을 떠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먹은 반찬은 가지무침에 소시지 볶음, 오이장아찌와 맑은장국이었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 종류라서 흡입하며 먹다 숨이 막히는 일은 없었을 거다.

『뭐?! 하시모토랑 이시즈미, 죽은 거야?! 언제?!!』
마찬가지로 8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동급생 나카소네 키요타가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그럼 혹시 나도 죽은 건가?!』
나카소네의 외침에 울음이 나오던 게 쏙 들어갔다. 이시즈미는 헛소리 그만 하라며 화를 냈다.
『내가 왜 너랑 같이 죽어! 리코와 난 같이 죽어도 되지만 너는 아니야.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너무해.., 이시즈미. 차별 쩔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나카소네가 저승길에서조차 왕따가 되어 부모님 낯을 볼 면목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만담 개그를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을 짐짓 무시한 하시모토 리코는 창문을 열고 밖을 살펴봤다.
언제나의 바깥풍경처럼 보였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날아가는 새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보여야 할 태양이 위치를 이탈하여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기체가 아니라 고체로 변한 느낌이다. 만지면 두부처럼 포슬포슬 부서질 것 같았다.
창문을 도로 닫고 깊게 심호흡했다. 어쩐지 숨쉬기가 힘들었다.

『탈출 못한 3학년 선배들이 난리가 났어. 콧쿠리님 찾는다며 단체로 눈 돌아갔더라.』
마찬가지로 푹푹 숨을 내쉬며 나카소네가 말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한 것치고는 호흡이 거칠었다.
『커터 칼 들고 나더러 1학년 2반 아니냐며 물어보더라고. 진짜 무섭더라. 그래서 3반이라고 거짓말했지. 2반이 맞다 사실대로 말했으면 계속 붙들려 있었을지도... 근데 웃긴 게 2학년들까지 학교에 내린 저주를 풀려면 1학년의 콧쿠리님을 잡아야 한다며 뭉친 눈치더라. 이이지마 선배는 무서우니까 대신 만만한 스가와라를 타겟으로 잡은 거지. 그러니까 반장도 그렇고 이시즈미도 달고 있는 명찰을 떼어서 버려. 우리가 1학년 2반이라고 들키면 좋을 거 없어. 선배들은 우리가 콧쿠리님을 따로 안전한 장소에 숨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숨기긴 뭘 숨겨. 기가 막혀서!』
화를 내면서도 일단은 조언에 따라 명찰을 떼어 얌전히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콧쿠리님을 찾으면 어쩔 작정이래? 체육관 단상에 모셔두고 단체로 심신공경례라도 하겠데?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주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이러고?』
『몰라. 단체로 눈 돌았다고 했잖아. 이성적으로 대화를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더라고.』
『미치겠네.』

세 사람이 저마다 머리를 끌어안고 끙끙 앓고 있는데 타박타박 이러고 계단을 밟는 기척이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니 스가와라 미즈키, 그러니까 1학년의 콧쿠리님이 아무 고민 없어 보이는 맹한 얼굴로 휴지, 휴지, 이러면서 윗층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Posted by 미야

2021/04/20 12:08 2021/04/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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