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이런 걸 두고 기시감이라고 하던가. 고죠 사토루는 가볍게 혀를 찼다.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중학생이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배경으로 푸른 불꽃이 보이는 듯했다. 분노와 증오, 덧붙여 두려움과 공포가 한데 뒤섞인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까득 이를 갈았다.
그래봤자 고죠 사토루에게는 고양이 하악질이어서 무심결에 손을 들고 여어, 인사하려 했다.
도중에 마음을 고쳐먹은 건 이번에도 남성의 중요부위를 걷어차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옆에 자리한 게토 스구루도 PK에 대비하는 축구 수비수처럼 눈치껏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런 두 사람을 위아래로 흘겨보며 이이지마가 말했다.
『찾았으면 내놔.』
『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언제 보따리 맡겼어?』
한쪽 눈썹을 갈매기처럼 휘게 만들며 게토 스구루가 항의했다.
듣는 척도 안 하고 중학생은 무슨 레이저 스캔하듯 그의 몸을 훑었는데 그게 거의 발가벗기는 시선이라 당하는 입장에선 매우 낯설고 불쾌했다.
『뭐야... 자세히 보니 빈손이네.』
『아니, 그러니까 언제 우리에게 보따리 맡겼냐고.』
막 입을 열어 다시 항의하려던 찰나, 관찰을 마친 이이지마는 용무 따윈 이제 없다는 투로 두 사람을 지나쳐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흡사 빈집털이범인양 이곳저곳을 빠르게 들쑤시기 시작했다.
장식장을 열어 트로피 안으로 일일이 손을 넣고 있다. 찾는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나올 기미가 없자 액자 뒤도 더듬거리고, 책상서랍도 전부 열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없자 주둥이가 좁고 긴 장식화병을 집어 올렸다. 던져 깨뜨려 안에 내용물이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거였다. 잘 몰라도 유명 장인이 만든 도자기였는데 한 번 결심하자 망설임이 없었다. 30만엔이 조각으로 부서졌다.
『쟤 지금 왜 저래.』
『글쎄다, 스구루. 쌓인 원한 풀기? 내가 당주 방에서 깽판 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는 한데...』
『잠깐만. 고죠 당주면 네 아버지잖아. 너는 아버지를 당주라고 부르냐?』
『아니. 평소엔 놈 자(者)로 부르지.』
소파쿠션을 잡아 뜯는 것까지 지켜보던 고죠 사토루가 짝짝 박수를 쳤다. 먼지가 나니 그만하라는 거였다.
무엇을 찾고 있는 거냐고?
슬프게도 이이지마 하나에 본인도 잘 몰랐다. 바람결에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고 토막글을 읽은 적도 있으나 상세하게 묘사한 내용이나 그림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그거 하나만 지푸라기처럼 잡고 있는 거였다.
이이지마 본가에 있는 창고 깊숙한 곳으로 여인이 쓴 일기가 하나 봉납되어 있다.
《이소노카미 신궁에 급히 소식을 띄워 부해한 신의 목을 베려 하오니 청컨대 신물을 내리옵소서 읍하였으나 감히 매월 피 흘리는 몸으로 황가의 보물을 꺼내가려 하느냐 호통만 돌아왔다. 마음에 한스럽지 않다 그리 말하면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여 내 장례 절차를 미리 준(竣)하고 시신이 없이 묘를 쓰라 명하였다. 동생이 싫다 울었기에 그럼 이것으로 관(棺)에 넣어라 손가락을 잘라주었다. 동생은 울음을 그치고 두 번 절한 뒤 삼가 뜻대로 상(喪)고저하옵소서 말하고 물러갔다.》
1943년 8월 말, 주령으로 타락한 신을 조복하라는 명령을 받고 주술사들이 모였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전쟁 중이던 사회적 배경 탓인지 모인 주술사들을 지휘하는 자가 여자였다.
지금도 남녀차별이 극심한데 1940년대였으니 여자가 우두머리인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적을 치기 위해 이소노카미 신궁으로 황가의 보물을 꺼내 달라 요청을 넣었으나 당연히 무시당했다.
심지어 더러워 초밥도 못 만드는 여자의 몸으로 감히 신물을 쥐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냐며 난리가 났다.
9월 초,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던 여자는 동생에게 손가락을 하나 잘라주고 이것으로 무덤을 쓰라 유언을 남겼다. 신변 정리까지 마무리가 되어 여자는 체념 상태였다.
「누부(누이)는 잘린 손가락 대신 주구를 상처에 꿰매어 붙이고 그 길로 죽으러 가셨습니다.」
술사의 원념 때문인지, 아니면 동생의 집착 탓인지 잘린 손가락은 그대로 주물이 되었다.
이이지마 가문의 봉인술식으로 단단히 묶인 여자의 손가락은 상하지도 썩지도 않았다.
「주술사의 신체는 재가 되도록 태워야 합니다만... 억울해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루는 와중에 집안의 높으신 어르신이 그러더군요. 황국신민으로의 의무를 다 하게 되었으니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카리야세 집안의 경사라고.
그래서 그따위 축하 인사는 받고 싶지 않다고, 자살을 강요하는 황국은 차라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누부의 손가락을 빼돌려 히로시마로 도주했습니다.
장례식장이 발칵 뒤집혔지요. 하지만 알 게 뭡니까. 그 길로 주저사가 되어 저주발원을 했습니다. 망해라, 망해라... 집안이고 황국이고 몽땅 망해버려라 빌었어요.
몇 년을 그렇게 숨어 지내다보니 어느 날인가 하늘이 하얗게 불타오르더군요.
그 빛을 보고 제 눈도 타버렸습니다. 아팠어요. 죽을 것처럼.
그런데 반대로 속은 뻥 뚫리더군요.
절반만 이어진 핏줄 탓에 불량품 취급을 받던 몸이었어도 저주는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기뻤습니다.」
저주반사 탓인지 남자는 제법 긴 세월동안 고통 받았다.
그래도 후회 한 점 없는 인생이었노라 웃으며 말하고 1962년 2월 암으로 사망했다.
빈집 털이범 쳐다보듯 하고 있는 고등학생 주술사 두 명을 무시하고 이이지마는 책상서랍을 거꾸로 뒤엎었다.
라이터니 볼펜이니 하는 잡동사니가 잔뜩 떨어졌을 뿐으로 눈에 띄는 물건은 없었다.
서류문진으로 쓰는 나무 조각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으나 크기나 모양새가 잘린 손가락 부위에 대고 꿰매기엔 무리라서 곧 눈을 돌렸다.
『저기, 그보단 이런 게 돈이 되지 않겠어?』
고죠 사토루가 14K 금으로 만든 닙이 달린 만년필을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완전 도둑 취급이었다.
『썩을. 너는 만년필로 신의 머리를 자를 수 있어?』
쏘아붙이자 고죠 사토루는 달라진 표정을 하고 만년필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럴 리가요. 펜은 총보다 강하다지만 무리.
『뭘 찾고 있는 건지 대충 짐작이 가. 그런데 찾고 있는 게 왜 교장실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게토 스구루가 질문했다.
바닥에 뿌려진 잡동사니를 헤집고 있던 이이지마 하나에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뺨을 붉혔다.
어쩐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흑역사 강제 공개다.
1학년 입학시절부터 줄곧 곳곳을 뒤져봤다는 고백을 하기는 부끄러웠다. 남자 화장실은 물론이고 표본실에 과학실험실, 설비시설과 옥상, 자판기 안쪽까지 전부 훑었다. 아직까지 털어보지 못한 장소는 일반 학생이 출입하기엔 모양새가 어색한 교장실과 숙식실 정도다. 신발장도 전부 열어봤고 중간고사 시험지를 보관하는 금고도 열어봤다. 집중하여 개(開), 라고 주언하면 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장래 희망이 도둑이세요?』
『아니거든! 내가 원한 건 그저 이 학교 어딘가로 숨겨져 있다던 특급의 주물이지 돈이나 귀중품 같은 건 아니었어. 그리고 주물도 봉인술식만 빼고 어차피 제자리에 돌려놓을 작정이었다고!』
『어머~ 그거 엄청 위험한 발언이네.』
선글래스를 슬그머니 콧잔등 아래로 내려쓴 고죠 사토루는 파랗게 빛나는 육안의 눈동자로 이이지마 하나에를 응시했다.
타락한 신을 조복하는데 앞서 당대 주술사들이 특급의 주물을 사용했다는 추측은 누구나 가능했다.
주술계에 남겨진 기록이 전무한 관계로 그게 어떤 종류였고,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는 불명이지만.
요점은 그 물건이 신을 조복하는데 사용되었을 정도의 특급이었다는 거다.
『그걸 봉인술식만 몰래 빼서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이었다고 말한 거냐, 너?』
『윽.』
하늘색의 눈동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마가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이제 와서 일반인이라서 난 그런 거 몰라요, 따위로 변명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죽되만(죽이 되다 만) 인간아. 주물이라는 건 저주라고, 저주. 물리적으로 실체를 가진 매우 강력한 저주. 그걸 봉인한 술식을 빼버리고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혹시 전교생을 몰살하고 싶었던 거냐?』
『아니. 어. 그건.』
『신을 죽일 정도의 저주를 학교에 풀어놓고, 봉인술식만 빼돌려 자기가 써먹을 심보였다고? 진심이냐.』
『아니. 저. 그게.』
『어머나. 이 새끼, 이제 와서 영혼 탈곡한 표정 짓는 거 봐라. 아~무 생각 없었어요?』
『네. 음. 아니.』
『아이고, 이걸 어쩐다. 아이고, 이걸 진짜 어쩐다.』
동물을 잘 모르는 사람이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로 –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고는 번쩍 들어 올려 앞뒤로 흔들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중학생 치곤 키가 큰 편에 속했지만 고죠 사토루가 그렇게 흔들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허공에서 대롱거릴 수밖에 없었다.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무지를 반성해라.』
『반성합니다.』
『좋았어. 그럼 지금부터 넌 고죠 사토루 꼬붕 1호다.』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계속해서 흔들리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소리 없이 절규했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