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우리 나기.』
마철은 아저씨처럼 허허 웃으며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저리 꺼져 – 습관처럼 피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마철의 이런 행동은 강아지를 키우던 어린 시절에 습득된 것이다. 잘 관리된 털을 보면 보듬고, 쓰다듬고, 핥고 싶어진다나. 무례하고 버릇없는 행위다.
『나는 개가 아니야.』
『물론 너는 개가 아니지.』
『그런데 그 손은 뭐지? 저리 가. 쉭쉭.』
쓰다듬을 야무지게 거부하자 마철의 눈빛은 애절하게 변했다. 쳇, 하고 혀도 찼다.
이걸 꼭 슬비에게 말해줘야겠다.
야, 슬비야. 네 애인 놈 아무래도 변태다. 그것도 중증이다.
『그렇게 미친 놈 쳐다보듯 하지 말아줄래? 내 손바닥이 꼭 처치 곤란 쓰레기가 된 느낌이잖아.』
손바닥이 아니라 애꿎은 손바닥을 죄인 만드는 네 놈 자체가 쓰레기인 것 같다만.
어째서 슬비는 이런 놈을 이성으로 사랑하게 된 걸까.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다.
덩치도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마철은 동성에게는 인기가 많다. 형님이라고 부르며 똘마니를 자처하는 놈들도 있을 정도니까. 술친구 목록은 수십 페이지를 쉽게 넘어간다.
마철을 우상으로 여기는 어떤 애는 마철을 볼 적마다 환히 불 밝힌 등대가 떠오른다고 했다. 큰 폭풍우가 일어도 등대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항해하는 배의 안전을 기원하며 등대는 항상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그런 느낌이란다.
허나 이성에게는 그리 호감을 주지 못하는 편이다. 눈매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턱은 각 져 있다. 한 대 치면 사람이 죽을 거 같은 주먹이라던가, 바늘조차 안 들어가게 생긴 허벅지 같은 부분이 제법 부담스럽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점심 먹고 운동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운동하는 거, 난 딱 질색이다. 본인은 맹세코 아니라며 부인하는데 뱃가죽에 왕 글자가 숨만 쉰다고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
『마철아.』
『어.』
『너 혹시 이상한 약 같은 거 복용하는 건 아니겠지? 스테로이드라던가...』
『스테로- 뭐시기?』
『됐어.』
팔을 휘적거려 있지도 않은 연기를 흩는 시늉을 했다.
그걸 마철은 모기를 내쫒는 거라고 오해했다.
아무렴 어때.
여름이다. 7월은.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마철이 왜 내 주변을 오작가작하며 인간의 관심을 요구하는 개처럼 쓸데없는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7월이었다. 일기예보는 북상 중인 장맛비를 예고하고 있었고 나는 편의점에서 구입한 싸구려 일회용 우산을 꺼내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끔 현관 앞에 걸어두었다.
장마철에는 장 마철.
『생일이구나.』
장마는 매년 찾아왔고 마철의 생일도 매년 찾아왔다. 나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됐다. 기상청에서 떠들어대고 있었으니까. 장마철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많은 비와 강한 바람이 예상되는 만큼 피해가 없도록 시설물과 농작물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세요.
하지만 인간은 쉽게 망각하고 매번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미안, 미안. 설마 지나버린 건 아니겠지?』
『아이고, 우리 나기.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는 알아?』
『어... 아마도 7월 9일. 아니다. 10일?』
나는 빠르게 눈을 돌려 어딘가에 있을 달력을 열심히 찾았다.
멍청한 짓이었다. 나는 무언가로 벽을 채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 포스터, 전부 불필요했다. 따라서 아날로그 감성의 끝판왕인 달력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기회는 이때다 하며 마철이 다시 팔을 뻗어 내 정수리 위로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얹었다.
안 돼. 내 머리카락은 가늘어서 그런 식으로 쥐고 뜯으면 잘 엉킨단 말이다!
『오늘은 12일이에요, 나기. 우리 우중충 패밀리 데이는 15일이구요.』
순간적으로 녀석의 동공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세로로 축소된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촉감 좋다. 끝내준다. 어쩜 이렇게 보드라울까. 너, 샴푸 뭐 써?』
착각이어야 한다. 씨발.
『저기. 핥아 봐도 돼?』
정수리 위로 뜨거운 콧김이 느껴졌다.
당연한 반응으로 오른다리를 들어 녀석의 옆구리를 돌려 찼다.
지금에야 우중충 패밀리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입에 담을 수 있지만 10년 전만해도 아니었다.
소 나기. 장 마철, 이 슬비.
고만고만한 마흔 다섯 명이 같이 거주하던 시설에서 우리 세 사람은 이름만으로도 눈에 띄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철은 코찔찔이 시절부터 행동거지가 거칠었고 – 싸가지였고 - 나는 그 유명한 소 가의 불량품이었다. 이래선 형광 스티커가 부착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디를 보아도 귀엽고 순하고 평범했던 슬비는 똥을 밟은 셈이어서 그저 이름 탓에 도매로 팔려나가 우리와 세트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젖었대요, 젖었대요. 곰팡이 냄새 난다, 곰팡이 냄새.」
짓궂은 상급반 학생들이 울먹거리던 슬비의 원피스 끝자락을 마구 잡아당겼다.
「젖었대요, 젖었대요. 흠뻑 젖었대요. 냄새 나요, 냄새 나. 곰팡이 냄새. 그러니 보지가 썩기 전에 어서 팬티를 내려라.」
돌이켜보면 성추행이다. 아찔해질 정도로 못돼 처먹은 장난이었다.
『슬비에게 진짜 집착했지, 녀석들... 내 팬티는 벗긴 적 없는데.』
『당연한 거 아냐? 가위를 들고 눈을 찌르려고 드는 녀석의 팬티를 무슨 재주로 벗겨.』
가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다.
『당연히 그러시겠지.』
마철은 전적으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너도 팬티가 벗겨졌었어?』
『그 까짓 거. 벗고, 말고, 자시고.』
보지가 썩기 전에 어서 팬티를 내려라 – 이게 자지가 썩기 전에, 로 가락이 바뀌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부끄러움이 없는 녀석이다. 상급생들의 등쌀에 마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를 벗었다. 대신 무료 서비스는 아니어서 속옷을 내리고 성기를 드러낼 것을 요구했던 녀석들은 한바탕 매운 주먹맛을 보아야 했다.
「이만하면 됐고.」
세 번을 때리면 다섯 번은 얻어맞아 코피가 줄줄 흐르던 와중에 마철은 잠시 숨을 골랐다.
「다음! 이 슬비 보지 봤던 놈들 앞으로 나... 아!」
보지는 상스러운 말이니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고 보육교사가 타이르던 걸 기억해낸 건 이미 입 밖으로 그 단어를 끄집어내놓은 뒤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