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이 뭐냐 물어보자 「머저리」 라 했다.
자기에게 욕을 한다 생각한 하녀가 화가 잔뜩 나 콧구멍을 벌렁거렸는데 이상하리만치 애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어라. 이거 좀 이상한데.
진정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다시 한 번 더 묻자. 이름이 뭐라고?』
『머저리.』

뒤늦게 깨달음이 벼락같이 왔다. 아니 뭐 이딴 개 같은 경우가.

오래된 시골 풍습이다. 아들 이름은 개똥이고 손녀의 이름은 광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진짜 이름은 아니고 아명이다. 이름을 늦게 지어주면 사악한 악귀들에게 잡혀가지 않는다고 믿기에 이것아 저것아 하고 아무렇게나 부르는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장녀는 머저리, 둘째는 돼지, 셋째는 개자식으로 그 명칭이 고착된다. 편하게 첫째, 둘째, 막내, 이런 식으로 영혼 없이 불리는 일도 많다.

하여간 시골 사람들이란.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를 머저리로 부를 수는 없지 않겠니. 호적상 이름이 뭐지?』
『호적?』
환장할 일이다. 아이는 호적이 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여전히 그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속으로 천천히 1부터 10을 세었다.
『좋다, 그럼 이건 어떠냐. 기도를 드리러 신전에 간 적은 있겠지. 그때 신관님이 널 뭐라고 부르든?』
『머저리.』
『돌겠어... 진짜 돌겠어!!』

신음하며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동네야?! 신관이 코딱지 후벼먹게 생긴 아이더러 머저리, 머저리, 이랬... 잠깐만. 만장하신 가운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코딱지를 맛있게 후벼먹고 있으면 머저리가 맞겠지.

『코는 그만 후비고.』
『네.』
『몇 살이지?』
『아홉 살.』
『생각보다 나이가 많구나. 체구가 작아 훨씬 어린 줄 알았는데.』
『그럼 여덟 살.』
『얘는. 고무줄도 아닌데 사람 나이가 막 줄었다 늘었다 할 수 있니?!』
쏘아붙이며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잠가주었다.

임자가 따로 있던 옷이라서 그럴까, 품도 크고 소매가 길게 늘어져 펄럭거렸다.
야무지게 두 번 접으니 손등까지 올라갔다.
안 되겠다. 제대로 수선을 하려면 가위로 옷감을 잘라내야 할 것이다.
여자는 눈으로 오려낼 길이를 대중하며 또 한 번 소매를 접었다. 애들은 어차피 금방 자라는 법이지만... 늘어진 소매를 주렁주렁 매단 꼬락서니로 저택을 쏘다니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곳은 귀족이 머무르는 저택이었고, 똥간을 푸는 막일꾼조차 보우타이를 매고 다녔다.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겠어?』
불량스러운 태도로 벽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기사가 킥, 하고 웃음소리를 흘렸다.
『바느질을 다 마치기 전에 시체를 치워야 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애가 듣습니다, 기체릿 님.』
『들으라고 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끌어당겨 보는 이로부터 정나미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비열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속설과 다르게 뺨이라도 치고 싶은 미소였다.
『자고로 솔직한 게 최고야. 얘도 진실을 알아야지. 오늘부터 귀족 도련님의 놀이 상대가 되었으니 시궁창 인생에서 탈출해 드디어 찬란한 오색빛깔 무지개를 만났노라 착각이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안 그래?』

앞전에 그런 소년이 있었다. 자신에게 닥친 재앙을 무지개로 착각한 주근깨 소년이.
「소공자께서는 어떤 분이신가요? 상냥하신가요? 멋지신가요?」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흔하디흔한 어린애였다. 게을러 잠도 많았고, 더럽게 투정도 많았다. 침대가 딱딱해요, 흰 빵이 먹고 싶어요, 추운 건 별로에요, 이러쿵저러쿵. 가난한 집구석에서 입을 줄일 목적으로 팔려왔다는 것도 모르고 어지간히 앵앵거렸다.

영특한 아이니 무엇을 시켜도 잘 배울 겁니다. 눈치도 좋아요. 도련님의 놀이상대로 그만입니다.

영특한 거 좋아하시네. 기체릿은 더욱 입술을 비틀었다.
몇 살이냐 물어보니 손가락을 가만히 세었다.
참을성이 바닥날 즈음에 엄지와 검지를 접기를 슬그머니 그만두었다. 그러더니 스스로가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마도 열세 살일 거라고 대답했다. 자신감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런 아이였다. 만사 자신감 없어하는. 소공자 앞에서도 주눅이 들어 고개도 들지 못했다. 출신이 소작농의 자식이니 귀족 앞에서 고개를 들어서도 안 되었지만 – 그래도 고개를 들라 명령을 받았으면 번쩍 들었어야지, 거기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쌀 거 같아요, 이러고 울어서는 안 되었다.

『어디 보자... 네가 보기에 걔는 얼마나 갈 거 같아? 한 일주일?』
『기체릿 님!』
『아이구머니. 나 귀 안 먹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오늘 당장 저 어린아이가 오체분시 되어 뒈질 일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기체릿 소아르가 – 동대륙 사람이라면 그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떠는 섬멸 기사단의 일원인 기체릿 소아르가, 멍청한 하인들이나 할 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몸소 아이를 데리고 소공자와 놀이상대 대면식을 할 예정이었으니까.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영광이라고 생각하렴. 원래 이 몸은 일국의 대사 정도 되는 분들을 호위한단다. 아~아주 비싼 인력이지. 속된 재주를 부린다는 장점이 알려진 탓에 언제부터인가 도련님 전속이 되었다는 슬픈 사정이 있긴 하다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차분히 얘기하도록 하고 준비가 다 되었으면 가보도록 할까?』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수라장에서 높으신 분들의 호위를 맡았던 일과 비교하자면 이건 그냥 소꿉장난 수준이다. 대포가 날아올 일도 없고, 불붙은 화살이 쏟아지지도 않고, 사방에서 칼날이 번득이지도 않는다. 마물들이 송곳니를 드러내지도 않고, 바닥이 꺼지지도 않고, 거푸집이 무너지지도 않고, 그냥 팟! 하고 보이지 않는 바람에 피부가 베이는 정도.

기체릿은 손등으로 화끈거리는 통증을 호소하는 오른쪽 뺨을 문질렀다.
내일 아침이면 사람들로부터 키우던 고양이가 발톱으로 할퀴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아니면 면도날로 수염을 깎으면서 집중은 하지 않고 무슨 딴 생각을 했느냐는 면박을 들을 수도 있다.
가끔은 몸 파는 여자와 화대를 흥정하다 싸운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와우, 오늘도 환영인사가 참 멋지군요, 일로이 공자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소인의 절을 받으소서. 오늘은 공자님께 소개해드릴 자가 있어 같이 왔습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꺼져.』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꺼지라고 경고했다.』
『저도 공자님을 꺼지게 만들고 싶습니다. 진짭니다. 루름의 신전에서 앙망 와코와르 신관님의 손을 꼬옥 붙잡고 소원풀이를 기원했지요. 그런데 신께서 언제 제 기도를 들어주실지 짐작이 가질 않아 짜증스럽습니다.』
『간절하게 빌어봤어? 아니면 공물이 적었나보지.』
『글쎄요. 공물이 좀 부족했던 건지도... 제 급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서요.』
『술과 여자, 도박을 멀리하면 적게 느껴지던 급여가 다시 많아질 거야. 기체릿 경.』
『허어, 그거 참... 피와 살이 되는 충고로군요. 감사합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감사해하는 것 같지 않은 표정을 지은 기체릿이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별관의 응접실은 항시 어두컴컴하다. 암막기능이 있는 두꺼운 커튼을 사계절 내내 길게 늘어뜨린 탓이다.
그렇게 햇빛을 꺼리는 까닭은 응접실 상태가 영 좋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그 예로 눈앞에 놓인 4인용 소파는 고가품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뒤집혀진 채 양말도 신지 않은 맨 다리를 천장을 향해 번쩍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순결을 잃을 위협에 처한 가련한 처녀처럼 느껴지는지라 기체릿은 「실례」 라고 짧게 말한 뒤, 한 손만 사용하여 소파를 다시 뒤집었다.
처녀치고는 그 몸무게가 상당했다. 들었다 놓이자 쿵, 하고 응접실 바닥이 울렸다.
그런데 얼씨구, 뒷모습만 봤을 적에는 젊은 처녀였는데 앞으로 되돌리니 주름살이 가득한 노파였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러했다. 갈고랑이 진 모양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흠의 너비와 깊이는 제각각이어서 미친놈이 광분하여 손도끼로 마구 찍어댄 것 같았다.
문제는 가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였다. 패널로 장식된 벽면 또한 잔뜩 긁혀 흡사 응접실 한 가운데서 성능 나쁜 사제 폭탄이 터진 몰골이었다. 전장의 상흔이라도 입은 것 같은 천장은 또 어떠한가. 요인 암살을 노리고 일개 그림자 부대가 휩쓸고 지나간 식의 아찔함이 가득했다.

그 난장판 한 가운데.
두통과 현기증, 졸음, 무기력, 짜증, 분노, 한탄, 좌절, 기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종류들이 한 소년의 몸을 빌어 저마다 악을 쓰며 발현 중이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방구와 억압된 배변 욕구까지 포함되어 - 사악하고 불쾌했다.
식사로 나왔던 닭고기 탓에 배앓이라도 하는 중인가 – 알게 뭐람. 어제의 명품 가구는 오늘의 불쏘시개였다. 기체릿은 능숙하게 전진하며 파편만 남은 가구들을 발등을 사용해 죽죽 밀었다.
음, 방금 전 둥근 모양새 탓에 공이라고 착각하고 걷어찼던 건 떨어져나간 조각상의 머리 부분인가 보다.
데굴데굴 굴러가기에 흥미가 돋아 한 번 더 찼다.

『그게 내 머리라고 상상하니 재미있어졌나 보군. 기체릿 경.』
『설마요. 밟아서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재미있을 리가.』
짐짓 변명하며 주변 정리하는 것을 멈추었다.

Posted by 미야

2017/10/20 17:43 2017/10/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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