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repentance 05

『형?』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10시가 좀 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딘은 벌써부터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먼 거리를 운전하느라 내심 힘들었던 모양이다. 물에 젖은 솜덩어리가 되어 완전히 뻗었다.
샘은 신발도 벗지 않고 대자로 뻗은 형을 측은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멀리서 봐도 얼굴이 까칠하다. 먹는 것도 부실해, 생활 패턴도 불규칙해,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하늘을 팍팍 찔러... 그런데도 딘은 셰비 임팔라의 운전대를 동생에게 넘기길 거부하곤 했다. 어쩌다 샘이 허락도 없이 열쇠를 잡으면 난리가 난다. 남의 애인 뺏어갔다는 투여서 심각해지면 주먹으로 얼굴을 맞을 각오도 해야 한다. 왜 그렇게 똥고집을 부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들어선 체중도 많이 내렸다. 헐렁한 윗도리로 가리고 있어도 샘은 알 수 있었다. 건들건들 걸으며「내 알통 보여줘?」라고 해봤자 허세에 불과하다.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털썩 쓰러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딘이 쓰러지면...
여기까지 생각한 샘은 머리에 파리 붙었다며 마구 흔들어댔다. 안 된다. 걱정하면 언젠가 현실이 된다. 그러니까 싹수 누런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게 좋다. 형은 건강하다. 문제 따윈 없다.

『딘?』
대답이 없다.
곁눈질로 형을 훔쳐봤다.
어떻게 보면 눈만 감고 있는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혼수상태의 중환자처럼도 보인다.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린 채 꼼짝을 않고 있다.
샘은 손목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일단 30분 정도 기다려 보자. 그때 가서도 시체놀이에 열중하고 있다면 신발이라도 벗겨주어야 할 것이다.

딘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샘은 전원을 켜둔 노트북으로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노트북 화면은 한참 전부터 제임스 브리튼에 자살 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를 보여주고 있었다. 행여라도 놓친 것은 없는지, 아까부터 반복해서 읽는 중이다.
그런데 그게 참 난감하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꺼리가 나오지 않았다.
부담스런 마음으로 엔터 키를 눌렀다.

그러니까... 2년 전에 브리튼의 아들이 음주운전으로 죽었다.
대단한 말썽꾸러기였던 모양이다. 사망 당시의 나이가 겨우 열 아홉에 불과했다. 그 나이에 술을 먹고 핸들을 비틀다 저승행 티켓을 끊었으니 엄청난 미련 곰탱이다. 열 일곱 살엔 무면허 운전으로 적발, 열 여덟 살에는 과속... 샘은 한쪽 눈썹을 구부렸다. 소년의 아버지는 딘과는 달리「당장 고자로 만들어 버린다!」라며 호되게 야단을 치지 않았던 것 같다. 덕분에 망나니 아들은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끝장을 향해 달렸고, 인생을 종쳤다.

2005년, 1월 27일.
새벽이 다 되도록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브리튼은 벌겋게 충혈이 된 눈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자정 무렵에 아이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 아인 술에 취했더군요. 나는 그 애를 다그쳤고, 우린 심하게 말다툼을 했어요. 그치만 이렇게 아침이 지나도록 집에 안 들어올 아이는 아니예요. 뭔가가 잘못된게 분명해요.」

알고 보니 아이는 인기척 드믄 커브 길에서 차와 함께 그대로 뒤집어져 있었다.
경찰은 아들이 즉사했을 거라고 부모를 위로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과다 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아이는 무려 네 시간동안 짜부라진 고철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사실을 안 브리튼 부부는 무너졌다.

「꿈에서라도 좋으니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에게 반항하느라 그런지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더군요. 천국에 잘 있는지, 이제는 아픈 곳 없는지 알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 몹쓸 녀석이 저에게 전화로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뭔지 아세요?《이젠 저도 다 컸으니까 더 이상 훈계하지 마세요. 귀찮아요, 아버지》였어요. 맙소사. 나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전하질 못 했어요. 내가 무어라 했게요.《이 망할 자식아!》라고 했어요. 이렇게 못난 아버지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진짜 형편 없지 않나요. 전 후회스럽습니다.」

보험사가 권장한 우울증 치료는 효과가 별로였던 것 같다.
목에다 전선을 휘감고 죽기 바로 일주일 전, 이혼한 부인과 마지막으로 통화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샘은 손으로 두 눈두덩이를 세게 눌렀다.
그가 맛 보았을 절망감이 어떠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자 친구인 제시카가 죽었을 때,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또한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들은 떠났다. 샘은 남았다. 얼굴을 쓰다듬으며「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평소에 더 잘 했어야 했다고 후회해봤자 바뀌는 건 하나 없다. 헤어짐을 납득할 수 없는 심장은 그리하여 종종 쓰라린 경련을 일으켰다.
아빠가 그리웠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울면서 존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릴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 아니라고, 남겨진 아들 생각은 요 만큼도 하지 않았다며 화낼 것이다. 입술을 굳게 다문 존이 그만하자고 등을 돌릴 때까지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순간 샘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결국은 부자끼리 또 싸움박질이냐.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놈이네.

후, 하고 가늘게 숨을 토하며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틀렸다. 제임스 브리튼의 경우만 봐선 그의 죽음에 초자연적 존재가 개입되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의심스럽다고 한다면 자살 도구로 전선을 사용했다는 것 정도? 보통의 자살자는 목을 매달면서 넥타이나 커튼 줄처럼 보다 흔한 걸 사용하곤 한다. 전선은 좀 의외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브리튼이 전선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는 걸로 모두 설명이 되어버린다. 정말이지 답이 없다, 답이.

샘은 손바닥으로 뺨을 북북 문지른 뒤, 스카치테이프로 벽에다 붙여둔 조그마한 신문 스크랩으로 시선을 주었다.
 
리들리 먼치.
9년 전에 같은 집 계단에서 굴러 목을 부러뜨린 남자다. 보통 유령은 폭력적이고도 돌발적인 죽음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다. 이 점에 비추어 볼때 그 집이 이상해진 건 더도 말고 그가 원인이다.
그러나 샘은 초반부터 리들리 먼치의 죽음을 제외시켰다.
그 첫째, 리들리 먼치는 목을 부러뜨린 당일 날 죽지 않았다. 의료진이 들이닥쳤을 적에 그는 계속해서 숨을 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하고도 1년을 더 살았다. 중증의 전신마비로 고생하면서 먼저 죽은 부인의 이름을 딴 소아암 환자 후원회까지 만들었다.
자신에게 닥친 불운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먼저 생각한 선한 사마리아 인.
이런 남자까지 악령이 된다면 세상은 진작에 끝장났다.
코에 튜브를 꽃은 채 간호사에게 환한 미소를 던지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서 샘은 어떠한 악의도 읽어낼 수 없었다. 리들리 먼치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아이구야, 그렇다면 나이 들어 노환으로 숨졌다는 로렌스 할아버지의 무덤을 파야 한다는 건가.
털썩 쓰러지다시피 해서 침대에 누웠다.
골치가 아프다. 아흔 여덟이나 살다 간 할아버지를 악령 취급 해야 하다니. 로렌스 씨가 천당에서 급히 돌아와 지팡이를 휘둘러대며 역정을 내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이놈들아, 내가 계란 후라이라도 되는 줄 아냐. 내 뼈다구에 소금은 왜 뿌려!」
편안한 안식에서 깨어난 할아버지가 진짜로 원령이 되는 순간이다.
샘은 캐스터내츠처럼 딱딱거리는 할아버지의 틀니를 피해 요리조리 달아나는 공상을 하며 신음 소리를 냈다.
 
『7개의 분도패...』
『어?』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 샘은 드러누운 상태에서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분도패?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뭔 소리. 잠꼬대인가?
딘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형? 깨어 있었어?』
『아니. 사실 이쪽과 저쪽을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졸려 죽겠다.』
『그럼 신발이라도 벗어.』
『나중에.』
『그러다 발바닥 퉁퉁 붓는다.』
『부으라지.』
『겔름뱅이.』
『형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다. 지금 반항하냐.』
『반항이 아니라 충고하는 거야.』
『충고는 싫어. 그런 거 말고 서비스 해줘, 새미. 양말 벗겨줘...』
다리를 내밀며 징징대는 형이라니. 샘은 얼음 물을 뒤집어 쓴 표정을 지으며 정색했다.
『징그러워. 내가 출장 마사지 걸인 줄 알아?』
『스컬리 요원... 제발 부탁해요.』
『누가 스컬리얏!』
『또 화낸다. 하여간 내 동생은 애교가 없어서... 됐어, 됐어. 이 멀더 요원이 알아서 할게. 그러니까 넌 불이나 꺼. 자료 조사는 내일로 넘기고 잠이나 자자.』

그치만 샘은 아직 잠자리에 들 기분이 아니었다. 로렌스 할아버지의 틀니는 아직도 그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중이었고, 제임스 브리튼은 전선을 목에다 칭칭 감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척하고 잠들었다간 대략 낭패일 것이다. 잠에 취한 딘을 위해 조명을 낮췄지만 그래서 샘은 폭신한 베개에 머리를 묻고도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내일은 집을 지을 적에 혹시라도 인명 사고가 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봐야겠다. 카운티 오피스에 준공 기록서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운이 따라주길 기도해보자. 아울러「미국의 귀신들린 집. 닷컴」자료에서 언급한 영매 마리나 쇼우트도 찾아볼 생각이다. 재수가 좋으면 힌트가 될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그런 사람은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결말만 아니었음 좋겠다.

잠깐만.
그런데 아까 딘이 잠결에 무어라 했더라.
샘은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분도패~?! 맙소사, 형!』
『아우... 인석아, 머리 울린다. 왜 소리 질러.』
『자는 척 하지 말고! 성 베네딕트 메달이라니. 원인도 모르면서 미봉책을 쓰자는 거야?!』

앞면에는 수도회의 규칙서를 들고 있는 성 베네딕트 성인의 모습이, 그리고 뒷면으로 CRUX SACRA SIT MIHI LUX (거룩한 십자가여 저의 빛이 되소서), NUNQUAM DRACO SIT MIHI DUX (용의 길을 따르지 않게 하소서) 라는 문구의 첫 글자가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된 분도패는 악령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데 예로부터 요긴히 사용되어져 왔다. 동서남북의 각 방향으로 4개, 정 중앙에 하나, 그리고 건물의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에 각각 메달을 놓고 의식을 행한다. 잡스러운 기운을 내쫓을 뿐 아니라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결계를 만들 수 있다.

단순하게 보자면 딱일 것 같긴 하다만.
원인도 모르는 상태에서「밀봉」만 했다간 나중에 더 커다란 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건 상식이다. 찢어졌다고 무조건 꿰매냐. 상처 소독도 하고 이물질도 빼내야 한다. 무조건 봉합했다가 속에서 썩어나가면 그때는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

샘은 베개를 끌어안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건 최악의 선택이잖아!』

Posted by 미야

2006/12/08 15:32 2006/12/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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