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감상을 적자면 이런 건 결코 무용이라고 할 수 없었다.
『무게가 거의 없는 솜뭉치를 안는 기분으로 양팔을 앞으로 내밀어.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사선으로 틀어 옆으로 반보 전진하는 거야. 아니야, 그렇게 많이 벌리면 상체가 흔들려서 안 돼. 미끄러지듯 조금만. 거기서 재빨리 돌아 크게 숨을 내쉬고, 엉덩이와 허리를 일직선으로 고정하여 똑바로 선다. 이제 팔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무릎을 살짝 굽혀... 아니, 그보다 더 구부려.』
그보다는 건강 체조에 더 가깝지 않은가 -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제1보부터 2보까지만 외우면 이후로는 식은 죽 먹기라서 예의 동작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고, 은하와 별들의 운행함에 감사하고, 부모에게 감사하고...
용신의 은혜에 감사하고, 생명 있음에 감사하고, 황제의 은덕에 감사한다. 이것이 칠배례.

『요령을 알면 아주 쉬워.』
『과연.』
소년은 기억력이 좋았다. 세 번 정도 반복하자 어색했던 동작이 물 흐르듯 바뀌고 틀리는 부분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보기에 매우 좋았다. 무예를 익힌 몸이라 그런지 간결하고도 기백이 넘쳤다.
책에 적혀진 그대로 정확하게 움직일 줄 알아도 근본부터가 물렁뼈인 나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 나는 박수라도 치고 싶어졌다. 세상에, 같은 춤인데 사람에 따라 이렇게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는 거였다. 앞줄에 세워 자랑하고 싶을 정도다. 머리를 길게 기른, 남의 말 안 듣는 변방국 사람이라는 불리한 조건만 아니었으면 선발되어 뽑혔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저 등을 전부 덮는 길이의 머리카락은 여기선 너무 눈에 튀는데...
『머리카락은 죽어도 안 자를 거다.』
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인데 린청이 투덜거렸다.
그 짧은 기간동안 나름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어쩌면 직접적으로 가위를 들고 린청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린청은 주먹질을 해가며 위기를 모면해왔던 걸까, 냅둬라, 관둬라,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을 그를 상상해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한숨이야. 기분 나쁘게.』
『글쎄, 왜 한숨이 나오는 걸까,』
당분간 머리 모양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의 심혈관 질환 방지를 위해서라도 피하는게 좋을 듯하다.

『어쨌든 부럽다. 내가 추는 예식의 춤은... 뭐랄까. 운동을 전혀 못하는 자가 억지로 시늉하며 허우적대는 그런 느낌인데 말이지.』
『자학이 심하군, 안즈.』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고 늘 놀림을 받은 걸. 커다란 물 양동이를 들고 무게에 버거워하는 엉덩이 큰 여인처럼 하체가 이리저리 흔들흔들...』
『누가 그런 심한 말을 하든? 예의 그 꺼벙이들?』
『아니, 그 녀석들이 아니라 사실은...』
오래 전 내 친구가, 라고 말하려다 합죽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린청은 반쯤 벌어진 내 입을 주시하며 이어질 대답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그「오래 전 나의 벗이었던 자」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가볍게 도리질하며 웃기만 했다.
『누가 그랬다고?』
『어, 그게.』
『무시해버려.』
꺼벙이들 짓이라고 멋대로 단정을 지은 린청은 시원하게 잘라 말했다.
『머리가 텅 빈 바보가 지껄이는 말에 일일이 신경 쓰다간 오장육부가 썩는다.』
그가 지적한 바보라는 자가 제국의 황제라는 걸 알면 린청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돌연 궁금해졌다.

「그로부터 세월이 이렇게나 오래 흘러버렸으니 나의 친우도 많이 늙었겠구나...」
이 세계의 평균수명은 결코 길지 않다. 청룡의 용주(龍珠)이자 용선인(龍仙人)인 김 가(家) 태영의 말로는 자기가 원래 살았던 세계에선 평균수명이 80세가 넘었다던데 나로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고...
그래도 용신의 수호를 받는 이사실의 황족들은 누구랄 것 없이 신체 건강하고 보기 드문 장수 체질이다. 선황께서도 백수(99세)를 넘어 중수(100세)를 누리셨으니 녀석도 분명 칠순(70세)을 무사히 맞이하였을 것이다. 빈사국의 외진 골방에선 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할 수는 없었다만, 이사실의 황제가 붕어했다면 화산폭발이나 지진에 버금가는 큰일이니 분명 내 귀에도 소식이 들어왔을 거다.

어지러운 상념에 빠져 가만히 손가락을 입에 넣고 지분거렸다.
아직 살아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는 하얗게 샌 백발을 자랑하며 건강하게 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왜 그래, 안즈. 식은땀을 흘리고.』
『배가 너무 고파서.』
『그거 큰일이군! 그런데 손톱을 씹는다고 허기가 가시겠어?』
그의 지적에 얼른 입에서 손가락을 빼내었지만 정체 모를 초조함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지리가 안즈로 다시 태어난 이상 이제는 완전 남남인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그렇게 끊어진 관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부분은 여전히 과거 어느 지점에 묶여 있다.

소원대로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책들과 같이 불살라 죽여주지.

떠올리자 현기증이 일었다.
『이봐!』
『조금 어지러워서.』
『낭패군. 그럼 그늘에서 조금 쉴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조금 숨을 고르면 괜찮아질 거야.』
시간은 누가 뭐래도 흘러간다. 가로막는다고 멈추는 일 없고, 흔든다고 제 길 아닌 곳으로 돌아가는 일 없다.

때마침 의전관이 타를 울려 모두를 환기시켰다. 무시할 수 없는 큼직한 탕, 하는 소리를 듣고 우리처럼 줄에서 벗어난 자들이 묵묵히 신을 고쳐 신고 자리로 돌아왔다.
잡담하는 이 없이 일순간 모두 입을 다물자 주변은 매우 엄숙해졌다.
그 고요함을 제물로 삼아 선두에 선 의전관이 다시 타를 들어 탕 탕, 간격을 길게 두 번 울렸다.
《각오~!》
저건 그저 준비하라는 뜻인데 나의 귀에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전장에 나가는 것처럼 각오해야 하나? 그럴 리 없지. 우스워. 이런 적 없었잖아. 겁먹을 필요 없어.
어느새 중천에 뜬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했다. 약해지는 햇빛에 나는 약간 안도했다. 앞 사람의 그림자에 가리워질 내 얼굴 같은 건 저 위에선 먹으로 검게 물들인 종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 이 안타까움은 쓸데없다.
《입장~!》
나는 안즈. 내 이름은 안즈.
제 명에 죽지 못한 책벌레 부서고서리의 팔자가 이제 와 서럽다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리.

하늘에 감사하시오, 무량의 은혜를 입었음이니... 땅에 감사하시오, 무량의 은혜를 입었음이니.
예식이 시작되어도 황제는 나서지 않는다. 칠배례가 황제 개인에게 바치는 의례가 아닌 탓이다. 황제의 육신 자체가 신룡을 대신하는 입장이지만 절까지 대신 받는 건 도에 지나치다.
은하와 별들의 운행함에 감사하시오, 무량의 은혜를 입었음이니.
이 순간엔 배고픔과 목마름도 잊는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숙연한 기분마저 든다.
부모님에게 감사하시오, 생명 있음에 감사하시오, 무량의 은혜를 입었음이니.
모든 조화와 섭리에 수긍하며 이에 한 목소리로 화답한다.
감사하오, 감사하오. 무량의 은혜에 감사하오.

《위전~!!》
황제가 위용을 뽐내며 제보전으로 입장하는 건 이 무렵이다.
적손의 은덕에 감사하시오, 무량의 은혜를 입었음이니.
의전관들의 봉납 노래가 끝남과 같이하여 춤추던 이들이 저마다 허리를 절반으로 구부렸다.

마음속에 무엇이 자라났는가, 이것은 풀인가 아니면 꽃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이기심인가
그대는 분명 나라는 존재를 잊었는데
밤중에 이슬이 내려 마치 비라도 내린 듯 젖은 속눈썹 무거워
눈을 질끈 감고 사랑하는 이여 오랜만이군요, 말을 걸어보고 싶어라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일어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들었다. 아니, 들려고 했다.
「보면 안 돼!」
옆으로 자리한 린청이 재빨리 손을 뻗어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 머리통을 찍어 눌렀다.
다시 타가 세 번 울리자 모두가 손등으로 눈을 가렸고 높으신 이 또한 준비된 가림막 뒤로 자리를 옮겼다.

Posted by 미야

2015/05/17 01:55 2015/05/17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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